제6화. 새로운 가능성(2)
5만 코인.
선물 10배 레버리지 적용시 50만 코인.
50만 코인이라면 현금으로 5억에 준하는 거금이었다.
그런 금액을 한 번에 밀어 넣는다?
캔들이 반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x10 롱 시장가 체결 성공!>
‘뭐야? 흐름이 변하지 않는다고?!’
일봉이나 주봉 등 긴 타임프레임의 캔들이 움직이지 않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작은 단위의 움직임은 찔끔 수준일 테니까.
문제는 지금 공명이 보고 있는 타임프레임은 10초 봉이라는 것.
여기서 흐름에 영향이 없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한데 가능성이 한없이 낮았다.
단 하나의 경우의 수.
공명이 밀어 넣은 수요와 완벽히 동일한 공급이 한순간 이루어진 게 아닌 한은 말이다.
‘내가 개입하려는 걸 차트 너머의 누군가가 눈치챘다?’
의문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손에 들어온 물량을 다시 풀어보는 것이다.
<시장가 종료 성공!>
수익률: 0%
수수료: -2%
평가손익: -1,000코인
10배 레버리지가 적용되어 구입, 판매에 각기 1%씩의 수수료.
아까워 죽을 것 같았지만, 수수료가 나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판매할 때도 결과는 동일.
캔들은 원래 움직이던 흐름에서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제 갈 길 갔다.
‘하, 이것 보게?’
공명은 확신했다.
박아연의 특성 저 너머에 미지의 무언가가 있음을.
심지어 삐닉스 때처럼 게으른 존재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승부욕에 불이 붙었다.
누군가의 인생을 쥐락펴락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거부감도 들었고.
“그래, 한 번 해보자.”
“네? 뭘요?”
“조용히. 잠시만 기다려봐.”
“어, 네.”
갑자기 사람이 바뀐 듯.
박력 있어진 공명의 모습에 박아연이 움찔했다.
공명은 곧장 보조지표 상점에 들어갔다.
<고스트 무빙 LV1>
LV2로 레벨업 가능
가격 : 100,000코인
설명 : 대상을 제외한 대상의 차트를 보는 모든 존재의 감각을 5초간 속인다. 캔들의 실제 무빙과는 별개로 무빙이 없는 것처럼 느끼게끔 만든다.
LV1 효과는 그대로 유지.
고스트 무빙에 새로운 설명이 생겨났다.
조금 전 특성이 레벨업하며 바뀐 부분이었다.
오로지 차트의 주인만 속일 수 있는 것에서 차트를 보는 모두를 속이는 것으로.
그 말은 즉.
‘박아연의 차트에 개입하는 존재도 속일 수 있다는 뜻이겠지.’
비싸긴 더럽게 비쌌다.
하지만 못살 수준은 아니었다.
이번에 벌어들인 코인이 적지 않아 무려 30만 코인이 지갑을 두둑히 채우고 있으니까.
‘목표는 박아연의 특성 레벨업!’
차트 너머의 존재는 시스템과는 분명 다른 녀석이다.
그렇다면 시스템이 개입하는 특성 레벨업마저도 미지의 존재가 거스를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실험은 거기에 초점을 맞춰볼 생각이었다.
‘구매!’
[고스트 무빙이 레벨업했습니다.]
다시 박아연의 특성차트로 돌아갔다.
고스트 무빙을 활성화하고.
남은 시간 5초.
4초.
5만 코인을 다시 들이부었다.
<x10 롱 시장가 체결 성공!>
꿈틀!
이번에는 공명이 예상한 대로 다른 움직임이 나타났다.
캔들이 위로 한 차례 치솟은 것!
한껏 올라간 캔들은 어떤 마지노선에 닿았는지 막판에 주춤했다.
공명은 급히 박아연을 살폈다.
화들짝 놀란 그녀의 표정을 보니 작전이 성공한 모양.
[특성 레벨업!]
“어?!”
[특성의 페널티 하나가 랜덤으로 삭제됩니다.]
[특성 페널티 중 ‘등반자의 특성이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특성일 때만 적용’ 부분이 삭제됩니다.]
“에에?!”
놀라는 박아연을 응시한 채.
공명은 이어지는 차트 움직임을 주시했다.
남은 시간 1초.
0초.
고스트 무빙 2레벨 효과 종료.
출렁!
직후 캔들이 한 차례 휘청했다.
미지의 존재가 급히 개입한 게 확실했다.
하지만 하락은 잠깐.
떨어진 만큼 다시 솟구쳤다.
마치 그 위치가 맞다는 듯.
파지지지직!
기이한 스파크와 함께.
‘됐다!’
시스템과 미지의 존재.
대결 결과는 명확했다.
시스템 승!
‘그럼 이제 내 코인도 회수를······.’
공명이 곧장 매매창을 조작했다.
<시장가 종료 진행 중!>
“······.”
······.
“······응?”
얼마 지나지 않아 공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차트의 급격한 변화로 ??시간 동안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합니다.]
[시장가 종료가 자동 취소됩니다.]
서킷 브레이커.
주가 등 변동이 심할 때 잠시 매매를 중단케하는 제도.
‘아, 젠장! 또 묶였어!’
물론 완전히 묶인 건 아니지만, 문제는 언제 풀릴지 모른다는 거였다.
꼼짝없이 박아연을 감각에 달고 있어야 하는 상황.
그나마 김홍구가 아닌 게 다행이었다.
만약 그였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공명이 몸서리치는 한편.
[다른 등반자의 특성에 의해 강제 레벨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지연 특성이 해당 등반자의 특성과 미약하게 공명합니다.]
박아연은 커진 눈을 더 크게 떴다.
특성이 느닷없이 레벨업하나 싶었더니 그게 다른 등반자의 영향이란다.
여기에 있는 등반자라고는 공명과 자신뿐.
볼 것도 없이 공명이 범인(?)이었다.
박아연의 눈이 촉촉해졌다.
“······뭐예요, 오빠?”
“응?”
모두가 무시하던 자신의 특성.
공명은 그걸 단 몇 시간 만에 변화시켰다.
그뿐인가.
딱히 티 내지 않는다.
그 엄청난 일을 벌여놓고는.
아마도 시스템이 자신에게 알려줬다는 걸 모르는 모양.
울컥!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북받쳐 올랐다.
다시 말을 이으려던 그녀가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안 그러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으니까.
마침 병사들이 짓궂게 웃으며 지나갔다.
“여자 울리면 벌 받습니다.”
“아니, 이건 내가 그런 게······.”
막 변명하려던 공명이 입을 다물었다.
마침 시스템이 중요한 내용을 전달해 온 탓이었다.
[돌발 퀘스트의 대상 등반자가 만족을 넘어 감동했습니다.]
[돌발 퀘스트의 조건을 만족했습니다.]
[돌발 퀘스트를 클리어하여 임시 개방되었던 등반자 특성 차트가 정식 개방됩니다.]
[업적 ‘만족 그 이상의 감동’을 달성했습니다.]
[업적 달성으로 5만 코인이 지급됩니다.]
[업적 달성으로 1명예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만족을 넘어 감동.
공명이 박아연을 쳐다봤다.
그녀의 촉촉한 눈과 마주쳤다.
맞네.
내가 울린 게.
괜스레 쑥스러워진 공명이 급히 병사의 뒤를 따랐다.
“생각해 보니까 성주님께서 저 찾으신다고 했던 거 같은데······.”
“성주님 지금 주무시는데요.”
“······크흠.”
아무래도 오늘 이불킥 좀 해야 할 모양이었다.
* * *
“쓰읍—.”
날카로운 입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팀원들은 이미 자리를 비운 사무실.
강지유는 텅 빈 자리들을 보며 손톱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톡톡톡.
“쓰읍—, 하아——.”
이번에는 긴 한숨.
그러길 수 분.
이윽고 무언가 결정을 내린 그녀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케이! 인정! 머리카락 하나 안 보이게 꼭꼭 숨은 실력 인정!”
탕비실 근처에서 머리통 하나가 슬쩍 나왔다가 들어갔다.
그 찰나의 변화를 놓칠 강지유가 아니었다.
“나와!”
“······.”
“어쭈, 안 나와? 좋아, 어디 간만에 모가지가 돌아가 봐야!”
“에헤이—. 선배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 선배가 찾는 건 우리가 아니잖아요.”
“그래, 아니지. 그런데 너 깐족대는 거 보니까 더 열불 나서 안 되겠어.”
“고작 고개 한 번 내민 거 가지고······.”
“고작? 고자악?”
화풀이 대상 될까 봐 도망간 녀석이다.
그래 놓고 빼꼼 고개 내밀어 훔쳐보다가 놀리듯 집어넣으니 화가 안 날 수가 있나.
“팀장님! 전 커피 타러 온 겁니다!”
“전 설거지 중이었슴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한 명 한 명 모습을 드러냈다.
강지유의 타겟이 된 박성열이 억울한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야! 너희들!”
“튀어와 박성열.”
“넵!”
적게 맞으려면 지금 뛰어가야 한다.
경험으로 그걸 아는 박성열이었기에 특성까지 시전하여 강지유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것 같던 강지유가 의외로 침착하게 물었다.
“성열아.”
“넵! 선배!”
“너라면 어디 숨겠냐?”
“네?”
“공명말이야. 공명.”
“아하, 혜성 물 먹인 그 친구요?”
“그래. 너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
“음······. 전 이미 잡혔을 것 같은데요.”
“이 쓸데없이 솔직한 새끼가!”
강지유가 손을 들어 올릴 때 다른 데서 대답이 나왔다.
“저라면 경매장 이용할 거 같습니다.”
외근에서 이제 막 돌아온 막내.
강지유가 내심 주목하고 있는 유소현이었다.
“경매장?”
“네. 범죄 저지른 각성자들이 자주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가정이 틀렸다.
“만약 공명이 각성자가 아니라면?”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랬으면 진작 잡혔을 겁니다. 우리한테든, 혜성한테든.”
강지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도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었기에.
“혜성도 아직 움직이고 있다고 했지?”
“네. 거기다 시크릿 5팀도 추가로 투입된 거 같습니다.”
“5팀도?!”
“오늘 아침에 들어온 보고에 따르면 5팀은 슈퍼개미 찾는 중인 거 같습니다.”
“슈퍼개미······. 그러네. 공명을 못 찾으니 그 사람이라도 찾으려는 거겠지.”
가만히 고민에 잠겨 들 때.
“잉? 으헉!”
“뭐, 뭐야, 갑자기?”
“무슨 일 났어요?”
박성열의 호들갑에 모두가 놀랐다.
강지유가 눈을 부라리자 그가 급히 변명했다.
“명예의 전당 좀 보세요! 대박 사건 벌어졌어요!”
비공개 (11층) 명예 +12
강지유가 한 차례 눈을 비볐다.
요즘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나.
허나 잘못 본 게 아니었다.
클리어한 11층보다 1이 더 높은 명예 포인트.
분명 말도 안 되는 수치의 명예 포인트였다.
“이게······.”
“미쳤다! 미쳤어! 이게 가능한 일이에요?!”
“명예 포인트라는 게 한 층에 하나씩만 얻을 수 있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었나 봐요.”
모두의 상식이 깨졌다.
한 층마다 하나씩 올린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이제는 심지어 층수를 초과한 포인트라니.
도대체 뭐 하는 인물인 걸까.
사무실이 적막해진 가운데.
강지유는 페이지를 더 넘겼다.
리스트 마지막에 새로 생긴 신입이 눈에 들어왔다.
박아연 (11층) 명예 +1
공교롭게도 같은 11층.
심지어 이름이 익숙하다.
‘박아연? 들어본 거 같은데.’
스쳐 지나가듯 어디선가 보거나 들은 것 같은 이름.
떠올려보려 했지만, 딱히 기억나지 않았다.
‘착각인가?’
뭐가 어찌 됐든 11층에서 명예 포인트를 얻은 등반자다.
이후 주시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렇게 잠시 고민 중인데.
비공개 (11층) 명예 +1
“···이것 봐라?”
이름이 갑자기 비공개로 돌아갔다.
가능성이 하나로 좁혀졌다.
“박성열. 이거 명예 포인트 12점 보고 있는데 올라간 거야?”
“네네! 맞아요! 언제쯤 11층 공략하나 싶어서 보고 있는데 마침 숫자가 촤르륵—!”
강지유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금 전 공략이 완료된 거라면 타이밍이 완벽하다.
비공개와 박아연이 함께 11층을 공략했고, 박아연은 첫 명예 포인트를 얻으며 명예의 전당에 올라갔다.
잽싸게 비공개로 돌리긴 했지만, 자신은 운 좋게 그걸 봤다.
···라는 시나리오라면?
답이 나왔다.
비공개 등반자와 박아연은 동료다.
박아연이 누군지만 찾아낸다면 비공개의 주인공을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인일 가능성이 높아.”
“네? 뭐가요?”
“박성열, 유소현. 하던 일 올스탑. 지금부터 이제 막 11층 클리어한 박아연 등반자 찾는데 집중해.”
“읭? 그런 범죄자가 있었어요?”
“아니. 범죄자 아니니까 찾으면 극진히 모셔.”
“······?”
“······?”
영문을 몰라 하는 둘을 보며 강지유의 미소가 짙어졌다.
* * *
박아연의 자취방으로 돌아온 둘.
공명은 즉시 박아연에게 부탁했다.
명예의 전당 이름을 비공개로 돌려달라고.
누구나 의심할 수 있는 타이밍이었기에 당연한 조치였다.
“그런데 꼭 비공개로 돌릴 필요가 있어요?”
“···나중에 명예 포인트 더 얻은 다음에 한 방에 공개하면 더 기분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도 안 되는 설명이다.
하지만 박아연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렇겠네요. 생각만 해도 짜릿한데요!”
하지만 정작 그녀가 보고 있는 단락은.
비공개 (11층) 명예 +12
그녀의 눈이 의미심장한 빛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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