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새로운 가능성(3)
다음 날.
“오! 집 좋네! 그렇게 여자 방이 궁금했어요? 이렇게 좋은 집 있으면서 굳이 우리 집에서 하자고 하고.”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공명은 결국 집을 공개했다.
박아연의 자취방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그녀가 믿을 만하다 판단도 했기에.
그 결과로 짓궂은 장난을 감수해야 했지만 말이다.
“에이,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요?”
눈에 광기가 흐른다.
저런 걸 맑눈광이라고 하던가.
공명은 애써 무시하며 말을 돌렸다.
“우선 어제 얻은 보상부터 확인해 볼까?”
“아직도 확인 안 했어요? 전 어제 헤어지자마자 주사위 굴렸는데.”
박아연이 신발을 하나 꺼내 들었다.
“무려 B급 장비 겟뜨! 바람이 깃든 도적의 신발이라고 들어는 보셨나 모르겠네.”
잔뜩 들뜬 박아연.
그럴만했다.
C급 이상 무구 주사위에서 B급이 나온 것이니.
고작 한 단계 높은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으나 확률을 생각하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무려 5%의 확률을 뚫고 나온 것이었으니.
공명이 자신의 주사위를 꺼내 들었다.
과연 박아연만큼 선방할 수 있을까?
A급 이상 랜덤 아이템 주사위.
A급 이상은 확정이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그녀의 결과를 보고 나니 S급 욕심이 슬슬 났다.
“욕심부리면 안 되겠지?”
“무슨 소리예요! 욕심부려야 좋은 게 나오죠! 따라 해보세요! 트리플 S급 아이템 나와라!”
“···트리플씩이나?”
“이 오빠가 부정타게? 꿈이 커야 절반이라도 이루어지는 거라고요. 자, 다시! 트리플 S급 아이템 나와라!”
“트, 트리플 S급 아이템 나와라.”
“목소리가 작다! 트리플 S급 아이템 나와라!”
“트리플 S급 아이템 나와라!”
“던져요!”
에라 모르겠다.
공명이 눈을 질끈 감으며 주사위를 던졌다.
데굴데굴.
탁.
한참을 굴러가던 주사위가 멈추는 소리가 났다.
“······.”
박아연도 조용한 순간.
공명이 슬쩍 실눈을 떴다.
그가 가장 먼저 마주한 건 표정이 굳은 박아연이었다.
‘망했나······?’
고개를 돌려 주사위를 봤다.
원래는 아무것도 안 쓰여 있던 면에 이제 막 새겨진 글씨가 반짝이고 있었다.
SS!
“헉!”
떴다!
S급을 넘어 무려 SS급 아이템!
보상 자체도 역대급이었는데 운빨도 역대급으로 붙어버렸다.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 일단 안 될 거 같아도 비벼라도 봐야 한다니까요!”
반응 보니까 너도 안 믿은 거 같은데?
박아연의 호들갑을 뒤로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어떤 SS급 아이템이 나올 것인가.
잠시 후 환한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책이다! 스킬!”
공명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의 특성이 역대급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전투 쪽으로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전투력만 높으면 뭐하나.
그걸 뒷받침할 만한 기술이 부족한데.
경매장에서 전투 관련 허접한 스킬이라도 사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마침 떠주었다.
심지어 SS급!
<파천십검>
하늘을 부수는 10개의 검이란 뜻일까.
이름도 착착 감겼다.
“세상에! 스킬북이라니! 그것도 SS급! 이건 부르는 게 값이겠는데요?”
스킬북은 귀하다.
그만큼 비싸다.
경매장에 나온 것도 제일 높은 게 C등급인 걸 고려하면 매물이 얼마나 귀한지 알 수 있다.
나오는 순간 본인이 익히기 바쁘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공명이 설레는 얼굴로 스킬북을 펼쳤다.
빛나는 글자들이 온몸을 휘감으며 흡수됐다.
새로운 지식들이 기억의 한 편을 차지했다.
<파천십검>
등급 : SS
숙련도 : 0
[스킬 파천십검을 습득했습니다.]
[특성 ‘차트를 보는 눈’이 스킬을 감지했습니다.]
[파천십검이 특성 내 보조지표로 등록됩니다.]
[파천십검을 사용할 때 필요한 ‘내공’을 셀프 차트가 감지했습니다.]
[조건을 만족할 시 셀프차트 내 내공차트가 오픈됩니다.]
입이 떡 벌어졌다.
스킬을 먹는 특성이라니.
그것도 심지어 SS급을.
고작 보조지표로!
‘거기다 내공까지!’
아직 열린 건 아니지만 조건만 맞으면 열린단다.
추후에는 코인으로 내공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어차피 당장은 내공이 필요 없다.
모든 무공형 스킬은 숙련도 작이 우선이었기에.
숙련도 먼저 올리고 내공을 사용할 때쯤 되었을 때 내공차트를 열면 최상의 시나리오라 부를만했다.
“오빠, 입에 파리 들어가겠어요.”
“뺙!”
“아.”
감동이 좀 길었나보다.
공명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박아연은 어느새 부츠 착용도 마친 채 기다리는 중이었다.
삐닉스는 조그만 부리로 몸을 단장하는 중이었고.
“슬슬 들어가 볼까?”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등반.
다른 등반자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는 분기점이었다.
이게 올바른 선택인지는 모른다.
다만 하나 확실한 건 있었다.
“고고!”
“뺘뱍!”
자신뿐만 아니라 박아연과 삐닉스마저 상기되어 있다는 것.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걷는다는 건 생각보다도 더 설레는 일이라는 거였다.
[탑 12층에 진입합니다.]
[이동에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미션>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번스타인 성을 사수하라.
번스타인 성.
12층에 진입한 모든 등반자들은 이미 무너진 성을 마주하게 된다.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모두가 장렬히 전사한다는 스토리였다.
하지만 그게 변했다.
새로운 가능성이란 게 무엇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와! 우리가 나갈 때 그대로네요?!”
“그러네.”
둘은 조금 더 활기 넘치는 거리를 바라봤다.
주변을 정리 중이던 병사 하나가 마침 그들을 발견했다.
“엇! 여행자님! 오셨습니까?”
“아, 네.”
과하게 반긴다 싶었더니 다음 말에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틀이나 지나서 아예 떠나신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다시 뵐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스토리상 이틀이 지난 걸로 되는 모양.
군례를 올린 병사가 잽싸게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단의 무리가 우르르 몰려왔다.
앞장선 이는 레온 번스타인.
성주였다.
부상이 어느 정도 나았는지 움직임이 경쾌했다.
“공명 경! 아연 경!”
“안녕하세요.”
“어서오시오! 내 눈이 빠져라 기다렸소!”
얼마나 기다렸는지 표정에서 드러났다.
안도와 반가움과 기쁨.
그 모든 감정이 눈빛에서 드러났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공명이 해준 건 단순히 몬스터를 막아준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경들이 없는 사이 최선을 다해 성벽을 복구 중이었다오. 공명 경이 해준 기적에는 비할 바 아니지만, 이제 나름 성벽이 견고해지고 있소. 이 초석을 마련해준 공명 경에게는 뭐라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구려.”
공명이 멋쩍게 웃었다.
이런 직접적인 칭찬에는 뭐라 답해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는다.
박아연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맨입으로 그런 말하는 건 아니죠?”
“설마! 내가 그리 막 돼먹은 영주는 아니라오. 그렇지 않아도 두 분 경께서 오면 전해드리려던 게 있소. 함께 가보시겠소?”
박아연이 슬쩍 뒤를 보며 윙크를 했다.
하여간에 못 말린다니까.
‘뭐 그래도 나쁠 건 없지.’
자기 대신 챙겨주겠다는데.
오히려 고마웠다.
둘은 레온을 따라 저택으로 들어갔다.
레온이 한쪽에 서서 거대한 철문을 열어젖혔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이게 다 뭐예요?”
“번스타인 가가 쌓아온 재산이라오.”
“성주님. 부자셨네요.”
공명의 말에 레온이 쓴웃음을 지었다.
“재산으로 치면 제국 내에서도 손꼽힐 거요. 허나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건 이런 번쩍이는 황금 따위가 아니거늘.”
타이탄 제국 내 가장 위험한 곳에서 창과 방패가 되어주는 가문.
황제는 그들에게 많은 부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정작 그 재산은 허울뿐인 보상일 뿐이었다.
“성에 족쇄라도 걸려있나요?”
공명이 툭 내뱉은 말에 레온이 눈을 크게 떴다.
“그걸 어찌 아셨소?!”
“···그냥 눈에 보여서요.”
“허—, 어찌······. 대마법사들조차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단 말이오?”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였나?
공명이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은 그저 진짜 보여서 물어본 것뿐인데.
종목명 : 레온 번스타인
섹터 : 번스타인 성주
종목설명 : 번스타인 성을 지키는 타이탄 제국의 백작. 번스타인 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 차트를 열어볼 틈이 없었다.
마침 생각나서 열어보니 설명이 저랬다.
“정확히는 이곳 번스타인 백작령, 전체에 걸린 제약이라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그 누구도 백작령 너머로 넘어갈 수 없소. 단 한 군데, 증오스러운 저 어둠숲을 제외하고는 말이오.”
“저주네요.”
레온이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속시원하다는 듯 웃었다.
“처음 듣는 혹평이지만, 왠지 모르게 속 시원한 기분이오.”
레온이 성큼성큼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온갖 금은보화.
갖가지 아이템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레온이 무엇이든 둘러보라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공명과 박아연의 표정은 점차 굳어갔다.
삑—!
[미션 지역 내 습득이 불가한 아이템입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에라이.
이거 그림의 떡이잖아.
“그냥 나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조금만 더 봐요.”
박아연이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혹시라도 가져갈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어 작은 보석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다.
삑—!
[미션 지역 내 습득이 불가한 아이템입니다.]
삑—!
[미션 지역 내 습득이 불가한 아이템입니다.]
“아, 억울해! 억울해!”
“···아연 경?”
“······혼잣말이었어요. 계속 구경해요.”
“···음.”
한참을 둘러봤다.
하지만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여기가 마지막 구역이라오. 마음에 드는 건 무엇이든 가져가도 좋소.”
자신만만한 레온의 표정.
박아연은 똥 씹은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꾸했다.
“생각해 보니까 굳이 안 받아도 될 거 같아요. 그쵸, 오빠?”
“어···, 응. 감사하긴 한데 저희가 해드린 게 이런 걸 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아니, 도대체 경들은!”
가만히 쳐다보던 레온이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여행자라지만 그대들 같은 이들은 처음 보오. 이런 대범함과 물질에 대한 초연함이라니! 내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소.”
거기까지 말한 레온이 한쪽으로 향했다.
잔뜩 사치스러운 사방에서 유일하게 약간의 공백을 유지하는 공간이었다.
레온이 가까이 다가가자 수수한 작은 상자가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그걸 본 공명의 눈이 커졌다.
“사실 이곳에서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이라고 한다면 이거라 할 수 있소. 어찌 보면 나머지는 이걸 감추기 위한 속임수라 볼 수도 있을 거요.”
일단 습득 불가 메시지는 없었다.
그것만 해도 환호할 일이었지만, 생긴 게 문제였다.
당장 시장에 내다 팔면 천 원도 받기 힘들 것 같이 생긴 꼬질꼬질함.
“엄···, 그러니까 그게······.”
박아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공명은 정보를 보며 속으로 소리 질렀다.
왜냐하면 그건.
<코인 변환기>
설명 : 주기적으로 쌓이는 에너지를 코인으로 변환한다.
코인을 생성해 내는 장치였기 때문.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모를 까마득한 조상으로부터 전해지는 번스타인 가의 가보라오. 사실 가보라고는 하나 나도 쓰임새는 잘 모르오. 하여 이게 경들에게 얼마나 가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원한다면 드리리다. 혹여 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내 마음이 이렇게까지 진심이라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좋겠소.”
“좋네요! 그걸로 하죠!”
레온과 박아연의 표정이 변했다.
박아연은 의아함.
반면 레온은 꼬리라도 밟힌 듯 화들짝 놀았다.
“저, 정말로 이걸로 하겠다는 말씀이오? 저리 엄청난 물건이 많은데?”
흔들리는 레온의 눈빛.
그가 이거 맞냐는 의미로 박아연을 쳐다봤다.
박아연은 금세 상황을 눈치챘다.
공명은 누구도 보지 못하는 정보를 보는 이.
그가 원한다면 이유가 있으리라.
“저도 찬성!”
“허, 허허! 다시 생각해 보는 게···.”
“뭐예요? 뭐든 줄 것처럼 굴더니? 가보라고 아까운 거예요?”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레온이 땀을 삐질 흘렸다.
그냥 쇼맨십이었다.
공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이런 보잘것없는 상자 따위를 진짜 선택할 줄이야.
“다시 생각해 보시는 게······.”
“그걸로 할게요.”
공명의 단호한 답변.
파드드득!
“뺙! 공명 님이 원하신다. 내놔라 인간!”
삐닉스가 작은 날개를 퍼득이며 상자를 낚아챘다.
그 작은 몸으로 어찌나 잽싼지 단숨에 공명에게로 돌아갔다.
“아아······.”
가보가.
천 년도 더 된 번스타인 가의 가보가!
레온이 글썽이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할아버님. 조상님들.’
“받은 것도 있으니 제가 이 성 열심히 지켜드릴게요.”
어차피 미션이거든요.
뒷말이야 당연히 삼켰다.
공명의 위로 아닌 위로에 레온이 찔끔 나온 눈물을 애써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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