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구어(1)
“···하여 이제 하루 정도면 지원군이 당도할 듯하오.”
레온의 집무실.
공명은 달달한 차를 마시며 현 상황을 공유받았다.
11층에서 몬스터를 대량으로 죽인 데다 마법진을 작동시킨 덕분에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평화로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지.’
무려 12층의 미션이 걸려 있다.
평화롭게 미션이 끝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거하게 뒷통수치는 일이 벌어질 게 뻔했다.
‘그 전에 내가 조금만 뒷통수 치는 건······.’
성벽에 담궜던 코인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코인 좀 얻자고 위험을 자초할수야 없지.’
“오빠 표정이 왜 이렇게 음흉해요?”
“응? 내가?”
“나도 느꼈소. 뭔가 나쁜 생각을 하는 표정이었소.”
사람을 뭘로 보고.
공명이 애써 침착하게 말을 돌렸다.
“상황이 너무 순조로운 거 같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씀이오?”
“구린내가 나는 습격이었잖아요. 그런데 이대로 끝난다? 너무 쉽잖아요.”
“흐음.”
뭔가 생각하던 레온이 이내 입을 뗐다.
“사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소.”
“?”
“마법진이 묘하게 불안정하오. 헌데 여러 방면으로 확인 중이나 특별한 문제는 없다오. 마나도 충분하고. 오래된 마법진이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말이오. 그저 약간의 불안정이라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공명과 박아연의 눈이 마주쳤다.
그거 같지?
네, 그거 같아요.
둘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플래그네.”
“플래그 떴다.”
“······응?”
레온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
펑—!
퍼펑—!
“폭발이다!”
“비, 비상—!”
“공격이다—! 모두 위치로!”
“이, 이게 무슨······!”
놀라는 레온을 잡아끌며 공명이 문을 박차고 나갔다.
박아연과 삐닉스가 그 뒤를 급히 따랐다.
“성주님! 마법진 중심으로!”
“마, 마법진 말이오?”
반쯤 장난이었는데.
플래그니 뭐니 했어도 이렇게 바로 문제가 터질지는 몰랐다.
그저 집중해야 할 단서 정도로 생각했건만.
“성주님! 우리 때문 아니에요!”
말이 씨가 된다고.
박아연도 마음에 걸렸는지 즉시 변명했다.
물론 레온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대체 무슨 말들이오? 게다가 몬스터를 막아야 할 시점에 마법진이라니?”
“몬스터가 왠지 안에서 밀려 나올 거 같아서 말이죠.”
“그게 무슨?!”
저택을 나서자 우왕좌왕하는 기사와 병사들이 보였다.
“뭣들 하는가?”
“그, 그것이 몬스터가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파악이 안 됩니다.”
“어느 성벽에서 폭발이 일어난 건지도 확인이 안 됩니다!”
레온의 시선이 공명에게로 향했다.
그제야 공명이 한 말의 의미가 조금이나마 이해됐다.
별것 아닐 거라 치부했던 마법진의 미묘한 불안정함.
정체불명의 폭발.
갈피 못 잡는 병력까지.
“노린 거예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해요.”
“알았소! 전원, 중앙 종탑을 포위하라!”
의아함은 있을지언정.
기사와 병사들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정예병이기도 하거니와, 함께 하는 공명을 보며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레온이 땅을 박차며 쓴웃음을 지었다.
“괘씸한 녀석들이오. 평소라면 질문 하나라도 나올 법한데. 공명 경이 함께 하니 묻지도 않고 따르는 것 보시오.”
에이, 설마 그러려고.
공명이 볼을 긁적였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종탑 주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이미 혼란이 시작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밀려 나오는 몬스터들을 힘겹게 막아내는 병사들이었다.
모든 신호의 중심은 종탑.
하지만 갑자기 쏟아져나오는 몬스터 무리에 사실을 전달할 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리라.
“헉헉! 성주님이다!”
“공명 경도 함께 오셨어!”
이미 만신창이가 된 병사들이 힘겹게 뒤로 물러났다.
당장이라도 도륙당할 상황.
공명과 레온이 동시에 신형을 날렸다.
“내가 오른쪽으로 돌겠소!”
“네, 그럼 전 왼쪽.”
“오빠, 전 삐닉스하고 뒤로 빠질게요.”
“오케이!”
실력 좋은 기사들도 그 뒤를 따랐다.
“성주님과 공명 경의 뒤를 받쳐라!”
“종탑을 봉쇄해!”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공명의 입꼬리는 오히려 올라갔다.
이럴 때를 미리 대비해 두지 않았는가.
물론 순전히 운빨이긴 했지만.
빠르게 보조지표를 열었다.
<파천십검>
상세 : 하늘을 부수는 열 개의 검식. 정체불명의 절대강자가 창안했다는 설이 있다.
숙련도 : 1성(0%)
제한 : 유지 시간 1분당 1코인 소모
[보조지표 파천십검을 활성화했습니다.]
파천십검에 관한 지식은 있으나 몸에 익지 않은 상황.
보조지표는 그걸 간단히 해결해 주었다.
검을 휘두르려는 생각이 일자 몸이 절로 반응했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것에서 절제 있는 동작으로.
쓸데없는 동작은 빼고 간결한 검식으로.
한데 뭉쳐 있던 병사와 몬스터 사이를 공명의 검이 길게 가르며 지나갔다.
일검.
서걱—삭—촤좍—!
베어낸 건 몬스터의 몸뿐.
일반 오크의 정강이.
오크 전사의 팔꿈치.
검은 늑대의 주둥이 등등.
각기 다른 부위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쿠워어!
꾸에엑—!
캥—!
“어헉!”
“헉!”
“공명 경?!”
그들이 채 놀라기도 전에 공명은 이미 다음 타겟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검.
검을 한 번 더 휘두르자 위력이 강해졌다.
움직임은 기민해졌으며, 검격은 날카로워졌다.
삼검.
단 세 번의 휘두름에 종탑의 한 방면을 점했다.
뒤따르던 기사들이 놀라면서도 뒤처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다.
“이미 전투불능 상태다! 침착하게 목숨줄을 끊어!”
“넌 저 병사들부터 챙겨!”
“밀어! 공명 경이 열어준 길을 빼앗기지 마!”
하지만 그런 파천십검도 무적은 아니었다.
이제 고작 걸음마 단계.
1성의 경지.
숙련도 : 1성(1.2%)
숙련도가 조금 오르기는 했으나 삼검이 한계였다.
‘어쩔 수 없네. 조금씩 휴식하는 수밖에.’
심지어 몇 번이나 움직였다고 벌써 몸이 삐거덕댔다.
한껏 올린 전투력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검술이었다.
다른 기사들에게는 다행이라면 다행.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명 경! 이제 나아가도 됩니다.”
이상한 오해가 생겼지만.
뭐 어때.
나쁠 것도 없는데.
공명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파천십검을 펼쳤다.
일검.
이검.
삼검.
조금 전보다 확실히 나아진 움직임이 또다시 전장을 휩쓸었다.
스가가가각—!
케헥—!
켕!
“뒤처지지 마! 다시 한번 붙는다!”
“번스타인 가 기사들의 실력도 나쁘지 않다는 걸 공명 경께 보여드려!”
두 면을 점했다.
잠시 숨을 고르자 마침 반대편으로 출발한 레온도 모습을 드러냈다.
문이 따로 없이 사방으로 뚫린 디자인의 종탑.
그걸 포위해 막은 모양새였다.
“확실히 대단하오. 아무리 내 부상이 남았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 차이가 나다니.”
“저도 방금 왔는걸요.”
“그 약간의 차이가 우리와 같은 기사에게는 생사를 가르는 시간이라오.”
레온이 허허 웃으며 종탑을 향해 돌아섰다.
포위한 기사들이 고군분투하며 전선을 구축 중이었다.
“공명 경이 아니었다면 큰일날 뻔했소. 설마 몬스터가 내부에서 들이칠 줄이야.”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러요. 제가 적의 수장이라면 이 타이밍에 밖에서도 공격할 거고, 그렇게 흔들릴 때 가장 강력한 패를 성안으로 집어넣을 거 같거든요.”
레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막을 수 있겠소? 마법진은 이미 쓰임새를 다한 듯한데.”
“글쎄요. 봐야 알 것 같아요.”
확신은 할 수 없다.
마법진의 차트를 직접 봐야만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
“그럼 최대한 빠르게 길을 뚫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겠구려.”
지체할 여유가 없다는 듯.
레온이 즉시 몸을 날렸다.
콰가가각—!
오크 두 마리가 단숨에 갈려 나갔다.
점잖은 성정과는 다르게 패도적인 검세.
그가 씨익 웃었다.
마치 공명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이게 바로 우리 번스타인 가의 검술이라오.”
“멋지네요.”
위험한 상황에서도 피어나는 호승심.
공명도 화답하듯 검을 그었다.
일검에 이은 이검, 삼검까지.
검의 주인마저 벨 듯 날카로운 검세.
확실히 레온과는 다른 느낌의 강함이었다.
“파천십검입니다.”
“허허—, 대단하구려. 이거 괜히 승부를 걸어서는 창피하게 생겼소.”
말만 그럴 뿐.
레온의 기세는 갈수록 강해졌다.
공명도 마찬가지.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내부로의 길을 뚫었다.
기사들은 이미 저 멀리.
그들을 기다릴 틈이 없었기에 둘은 서로의 등을 맡기며 더욱 깊숙이, 지하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쿠오오오오오—!
잔뜩 금이 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마법진을 마주했다.
아니, 단순히 제 역할을 못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몬스터를 쏟아내는 마법진.
성안에 나타난 몬스터들이 어떻게 들어온 건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마, 마나가!”
마나가 뒤틀려 있다.
마나에 관해서는 일반인에 가까운 공명마저 느낄 정도의 뒤틀림이었다.
어떻게 아냐고?
“욱!”
마나결에 닿는 순간 속이 뒤집히는 듯한 역함이 훅 올라왔으니까.
“설마! 일전에 성내로 침입했던 몬스터들이?!”
공명도 기억났다.
처음 성으로 들어왔을 때.
엉망진창이었던 성 내부.
성안까지 침입했던 몬스터들이 난동을 부린 탓이었다.
그런데 놈들의 진짜 목적이 공격이 아니었다면?
무언지 모를 씨앗을 이 마법진에 심는 거였다면?
지금의 모든 상황이 말이 된다.
“돌아가야 하오! 이건 어찌할 수 없소!”
몸을 돌리려는 레온.
그에 반해 공명은 애써 버티며 눈을 부릅떴다.
촤르륵!
펼쳐진 마법진의 차트가 뭐가 문제인지 보여주었다.
‘미친!’
차트가 뒤집혔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양수가 음수가 되고 음수가 양수가 됐다.
마이너스를 향해 치달아 올라가는 캔들.
‘위로 올라가는 게 더 큰 음수로 가는, 아니 더 작은 음수로 가는······. 에이, 복잡해! 어쨌든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방구석 트레이더 시절.
커뮤니티에서 놀다 보면 차트를 거꾸로 편집해서 올리는 이들이 종종 있었다.
폭락한 걸 가지고 폭등했다고 장난치는 그들만의 유머.
딱 그 모양새였다.
‘그런데 지금 코인을 넣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마이너스 숫자가 커질수록 이득인 걸까, 손해인 걸까.
단순히 차트가 뒤집힌 것뿐인데 영 계산이 서질 않았다.
에라이, 내가 언제는 계산하고 넣었다고!
바로 진입한다!
공명이 즉시 코인을 밀어 넣었다.
물론 1코인만.
<x1 롱 시장가 체결 진행 중!>
[뒤틀린 역천의 차트를 발견했습니다!]
[특성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특성 레벨업!]
[차트 타겟 리미트가 일부 해제됩니다.]
[레버리지 최대 배율이 12배로 상승합니다.]
발견만으로 경험치 대폭 상승이라니!
그런데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x1 롱 시장가 체결 실패!>
최초 실패!
게다가.
[뒤틀린 역천의 차트는 진입이 불가합니다.]
[차트 너머 미지의 존재가 차트 진입 시도를 눈치챘습니다.]
[차트가 강제로 닫힙니다.]
차트가 강제로 닫히기까지!
“공명 경! 무언가 심상치 않소! 얼른 밖으로!”
마나의 뒤틀림이 더욱 가속화됐다.
그에 따라 마나 폭풍이 거세졌다.
무언가가 변하려는 건지 쏟아져 나오던 몬스터도 뚝 끊겼다.
변화의 결과는 오래지 않아 나타났다.
찌지지지직—!
구구구구구구—!
공간이 해체되듯.
금이 마법진 전체로 퍼졌다.
이윽고 마법진이 완전히 소멸되었을 때는.
쩌저저저적!
쿠오오오오오—!
생각지도 못한 크기의 몬스터.
거대한 어둠숲 오우거가 종탑 지하를 부수며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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