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구어(2)
“뭐, 뭐야 저게!”
“맙소사!”
난리는 지하에만 난 게 아니다.
몬스터를 포위해 몰아넣고 있던 이들.
그들이 바닥을 뚫고 불쑥 솟아오르는 거대한 머리를 보고는 경악했다.
특히 기사들의 놀람이 컸다.
그들은 거대 몬스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기함했다.
“어, 어둠숲 오우거!”
“저 놈이 어찌 저기에서!”
정찰나갔던 그들을 패퇴시켰던 원흉.
그들의 무력으로는 어찌하지 못하는 강대한 적.
오우거 열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괴물.
뚫고 나온 머리만 보더라도 이 놈이 바로 그 놈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 안 돼! 아직 안에 성주님께서···!”
“젠장!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기사들의 절규.
그들의 반응에 병사들의 사기마저 꺾였다.
“기, 기사님들······?”
대부분이 뒷걸음질치며 종탑으로부터 멀어졌다.
포위가 느슨해지자 몬스터들이 더욱 흉폭해졌다.
크릉!
쿠헬!
키에엑—!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박아연은 두려움에 삐닉스를 꽉 안으면서도 제자리를 지켰다.
“모두 정신차려요! 아직 끝난 거 아니잖아요! 명이 오빠랑 성주님도 안에서 싸우고 있을 거라고요!”
그녀의 외침이 통한 것일까.
기사들이 먼저 정신차렸다.
그들이 퍼뜩 두려움을 밀어내며 검을 겨누었다.
“정신차려 모두!”
“아연 경의 말이 맞다! 여긴 공명 경도 계신다! 성주님과 힘을 합치시면 저 괴물도 막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한 번 꺾인 기세가 되살아나지는 않았다.
그저 현재 자리를 유지하는 게 고작.
저 머리만 해도 사람 세 명 크기인 놈이 움직이기라도 하면 어찌 되겠는가.
눈을 데룩데룩 굴리는 놈.
거기에 압도당한 병사들.
부상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으악! 내 팔!”
“아아악—! 아파!”
“정신 차려!”
그렇게 등장만으로 패닉을 준 오우거.
놈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멈춘 건 박아연이었다.
녀석의 동공이 순간 크게 확장했다.
마치 찾던 걸 발견한 녀석이라도 되듯.
“젠장! 아연 경이다! 놈이 아연 경께 다가가지 못하게 막아!”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 움직였다.
하지만 직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잠시 멈춰 있던 오우거의 머리가 냅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따, 땅 밑인가?”
“조심해! 아래에서 다시 올라올지도 몰라!”
······.
······.
“응?”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반응은 없었다.
용기를 내 구멍 근처로 간 기사 한 명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저기······.”
“무슨 일인가?!”
“저놈 쭈그려 있는데요.”
“······응?”
“뺙!”
모두가 영문을 몰라 할 때 삐닉스가 날아올랐다.
박아연이 놀라 잡으려 했지만, 삐닉스의 활공이 더 빨랐다.
“뺙! 어딜 도망갔냐 내 졸개!”
삐닉스마저 지하로 사라진 후.
“조, 졸개······?”
휘잉—.
지상에 남은 건 싸늘한 적막뿐이었다.
* * *
“어음, 그러니까······.”
공명은 머리를 긁적였다.
갑자기 엄청난 몬스터가 나타났다.
놈의 머리가 지상으로 뚫고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면 안 될 거라도 본 양 쭈그려 앉았다.
마치 어디서 귀신이라도 나올까 봐 겁먹은 모습이었다.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삐닉스가 녀석의 머리 위에 툭 내려앉았다.
안 그래도 쭈그리된 오우거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다 뭐지?
싶을 때 삐닉스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공명 님. 오다가 힘세고 멍청한 졸개 하나 주워 왔어요! 뺙!”
네가 주워 온 건 아니지 않니?
굳이 그런 태클 걸 타이밍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성을 뒤집을 듯 나타난 녀석이 삐닉스에게 잔뜩 겁먹은 이 상황이었으니까.
“알던 녀석?”
“맞아요. 숲에서 부려 먹던 졸개예요.”
“아, 어······. 그렇구나.”
잠시 고장난 듯 가만히 있던 공명이 성주를 돌아봤다.
“그렇다네요?”
“음. 아까 한 말은 사과하겠소.”
“네?”
“우리 가문 검술이 어떻다는 둥, 공명 경이 어떻다는 둥. 허허. 경은 나와 비교될 사람이 아니었어.”
어딘지 모르게 해탈한 표정.
사실 공명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삐닉스의 주인이라고 해서 이란 상황이 익숙한 건 아니니 말이다.
“어쨌든 이왕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정리부터 하도록 하겠소.”
“네, 그게 낫겠네요.”
콕콕.
삐닉스의 부리 두 방에 오우거가 더 움츠렸다.
“뺙! 공명 님 일하시잖아. 너도 일해!”
“구어?”
“뺙! 저 몬스터들 정리하라고!”
“구워어—!”
두드드드!
몸을 일으키는 오우거.
그것만으로도 땅이 진동했다.
녀석이 발을 구르자 지금껏 굳어 있던 몬스터들이 짓이겨 터져나갔다.
몇 번 그러자 몬스터들이 알아서 밖으로 도망갔다.
“이런! 이러다 포위망이 뚫리기라도 하면!”
공명이 급히 오우거에 올라탔다.
반항하려던 녀석은 삐닉스의 부리 공격 한 방에 잠잠해졌다.
“쿠어······엌.”
“뺙! 조용히 해! 내 주인이시다!”
공명이 오우거에 올라탄 이유는 간단했다.
더 빠르게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빨리 올라가서 뭐하냐고?
“삐닉스. 구멍 더 넓혀서 위로 올라가자. 돈 벌 기회다.”
“뺙뺙! 들었지? 올라가.”
“구워어.”
오우거가 구멍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몇 번 강하게 휘젓자 구멍이 조금씩 넓어졌다.
‘돌대가린가 보네. 손으로 할 때보다 머리로 할 때 더 제대로 박살 난 거 보면.’
공명이 이상한 감상을 하는 사이.
“구워어!”
“뛴대요 공명님!”
“좋아!”
오우거가 무릎을 굽혔다 폈다.
단숨에 지상이 보였다.
“오오!”
쿠웅!
녀석이 착지함과 동시에 퍼지는 적막.
하지만 박아연이 씨익 웃으며 옆 사람 등을 팍팍 쳤다.
“저거 제압당했어요! 무시해요!”
“공명 경이다!”
“공명 경과 삐닉스 경이 오우거를 길들이셨다!”
우와아아아아—!
이상한 데서 사기가 올랐다.
뭐 상관없다.
그래서 나쁠 건 없으니까.
“몬스터 한쪽으로 좀 몰 수 있을까?”
“가능해요. 뺙!”
삐닉스의 지시에 따라 오우거가 움직였다.
이리 몰고 저리 몰고.
몇 번을 그리 하자 놈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도망가려는 놈 먼저 잡아 족치니 놈들도 눈치챈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일단은 살 수 있구나.
“오! 아주 좋아!”
“이게 무슨······.”
마침 뒤늦게 올라온 레온이 진풍경에 넋을 놨다.
하지만 이후 펼쳐진 풍경이 더욱 가관이었다.
“자, 한 놈씩 앞으로!”
“구워!”
키엑.
오우거의 재촉에 종족 불문.
한 마리씩 대열을 이탈했다.
놀라운 건.
<대상 종목 상장 폐지>
풀썩.
“다음.”
<대상 종목 상장 폐지>
풀썩.
아무 이유 없이 죽어 나가는 녀석들.
공명이 코인을 쪽쪽 빨아먹고 있다는 걸 녀석들이 알 리가 없었다.
“구워?”
“뭐가 이상해. 그러니까 내 주인님이신 거다. 빨리해, 뺙!”
세 마리.
네 마리.
그쯤 되자 이제는 숫제 도살장에 끌려 나가는 돼지였다.
눈망울에 그렁그렁 물기를 다는 녀석까지 나타났다.
그 기이한 광경에 소름이 끼친 건 몬스터들만이 아니었다.
“그······, 저번에 공명 경 놀린 놈들 있지 않았어?”
“난 아냐!”
“나, 난데.”
모두가 측은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딸꾹!
병사 혼자 놀라 딸꾹질하는 사이.
“어? 뭐야 이거.”
공명은 새로운 메시지를 마주했다.
[과도한 사용으로 차트에 과부화가 걸렸습니다.]
[과부하가 풀릴 때까지 사용이 불가능해집니다.]
이런!
딱 좋았는데.
“뭐 그래도 나쁘지 않게 벌었으니까.”
이번에 번 것만 무려 30만 코인이 넘어섰다.
지갑 : 625,339 코인
“쩝.”
공명이 입맛을 다시자 모두가 움찔했다.
과부하가 언제 풀릴지 모르니까 남은 놈들은 물리적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삐닉스. 나머지는 알아서 정리하라고 해.”
“뺙!”
이후는 순식간이었다.
명령을 받지 않은 기사와 병사들까지 합세해 몬스터들을 학살했다.
특히 딸꾹질하던 병사가 발군이었다.
“공명 경을 위하여!”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는······.”
그렇게 성내에서 벌어졌던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단락되었다.
* * *
빛조차 거부하는 어두운 숲.
그 어딘가에 로브를 깊숙이 뒤집어쓴 존재가 서있었다.
그는 어딘가를 향해 공손히 조아리며 벌벌 떠는 중이었다.
그러기를 한참.
허공 중에서 그를 향한 음성이 날아왔다.
- 실패했다고?
“네, 넵!”
- 어째서?
“누군가에게 방해받았습니다. 성의 인물은 아닌 듯한데 계획을 들키는 바람에 구어를 먼저 보냈는데도 막히고 말았습니다.”
- 구어? 그 힘만 센 멍청한 오우거?
“넵!”
- 그래서 기껏 모아놓은 군단은 쓸 일도 없이 방치 중이다?
“아, 아닙니다! 어떻게든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제가 직접 나서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음성은 뒤늦게 답했다.
- 뭐, 좋아. 한 번 더 지켜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실망하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내는 한참이나 몸을 조아렸다.
이내 음성이 들려오지 않자 그가 몸을 일으키며 이를 바득 갈았다.
“구어 이 멍청한 새끼! 그깟 별 볼 일 없는 성 하나 점령하지 못해서!”
그가 어찌 알겠는가.
구어의 앞에 나타난 게 진짜 숲의 지배자라는 사실을.
어쨌든 그는.
“모두 정렬해라! 당장 성을 박살 내러 간다!”
몬스터 대군을 이끌고 성으로 향했다.
* * *
“그나저나 얜 어쩌지?”
“구어?”
귀여운 척한다.
천하의 오우거가.
그 두툼한, 사람 허벅지보다도 두꺼운 손가락으로 애써 하트를 만들고 있었다.
저런 건 또 언제 배운 거야?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서 딴청 피우는 박아연이 보였다.
하여간에 못 산다 진짜.
“뺙! 공명 님. 이 졸개 쓸모가 많아요. 데리고 다니시면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도움이야 많이 되겠지.
힘쓰거나 지금 같이 몬스터들 몰아낼 때.
그런데 그만큼 공격받을 일도 많아지지 않을까?
갑자기 이 녀석이 보이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도망가거나.
공격하거나.
저 멀리 떨어진 병사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황급히 피하는 모습이지 않은가.
물론 그건 공명 때문이었지만, 거기까지 깊이 생각할 리 없는 그였다.
“다른 사람들 겁먹잖아. 눈 깔라고 해.”
“뺙! 어디 공명 님께 눈을 부라리냐!”
“구어······.”
억울한 표정이지만 어쩔 수 있나.
처음부터 줄을 잘 섰어야지.
공명이 재차 고민에 빠질 때.
삐닉스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 날개를 퍼득였다.
“뺙! 데리고 다니기 부담스러우시면 좋은 방법이 있어요.”
“음?”
“제 권속으로 만들어주세요.”
권속?
순간 공명의 눈이 반짝였다.
보조지표!
숲의 지배자 칭호도 보조지표로 온오프가 가능하지 않은가.
그것처럼 저 녀석도 넣다 뺐다 할 수 있다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소환수 같은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명은 즉시 차트를 열었다.
마침 조금 전 과부화가 풀렸기에 문제는 없었다.
간만에 들어간 삐닉스의 차트에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버튼이 반짝이는 중이었다.
<보조지표 추가>
보조지표 ‘권속’에 지정될 수 있는 개체가 주변에 존재합니다. 해당 개체가 복종 중입니다. 보조지표 추가 비용이 대폭 감소합니다.
정상가 : 300,000코인
할인가 : 50,000코인
무려 25만 코인 할인 중!
이걸 참으라고?
못 참지!
공명이 냅다 버튼을 후려갈겼다.
띠링!
[종목 삐닉스에 보조지표 권속이 추가됩니다.]
[권속명 ‘구어’가 삐닉스의 권속으로 등록됩니다.]
[보조지표 권속 내 구어 활성화 시 권속 구어가 소환됩니다.]
[해당 보조지표는 종목 삐닉스의 자체 판단으로 활성화 가능합니다.]
곧이어.
“뺙!”
“구어?!”
삐닉스의 기쁜 외침과 점차 희미해지는 구어의 당황한 외침이 성내에 울려 퍼졌다.
연달아.
[성내 절대다수가 경외심을 갖습니다.]
[명예 포인트가 5 상승합니다.]
[유일 업적 ‘진심으로 이끌어 낸 명예’를 달성했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다른 등반자가 사용한 명예 포인트의 10%를 적립 받습니다.]
[현시점 이후 모든 등반자의 명예 포인트 사용이 가능해집니다. 관련 상세 내용은 명예의 전당에 공지됩니다.]
등반자들을 뒤흔들 일이 벌어졌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