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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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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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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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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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의 시작

DUMMY

불운의 시작


띠리리- 띠리리-.

이른 아침, 김영진은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잠을 무려 12시간이나 자고 일어났는데도 평소보다 피곤한 기분이었다.

어제는 특별히 늦게 잠든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정신이 깨지않고 계속 몽롱하기만 했다. 팔을 휘저어서 알람을 끄고 침대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김영진의 발치에서 그가 키우는 고양이 나비가 앵앵거리며 울며 몸을 비볐다.


“냐옹.냐옹.웨앵.”


“좋은 아침이네, 나비. 잘잤어?”


김영진은 가볍게 고양이의 털을 헤집으며 쓰다듬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창문을 열자, 흐린 날씨와 함께 찬 바람이 밀려들어 왔다.


“이제 지긋지긋한 여름이 드디어 끝나는건가. 12월까지 계속 날씨가 이난리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그래도 날이 선선해지니 다행이네.”


김영진은 더위를 많이 탔다. 비쩍 마른 몸인데도 추위보다 더위에 약했고 그래서 여름에는 매일 녹초가 되어있다시피 했다. 여름이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뛸 듯이 깊었다. 다가올 겨울이 무척 반가웠다.


“날이 풀리는 건 좋은데 불안하네.”


더위가 끝나는 시즌이 되면 김영진에게는 불우한 일이 자꾸만 생겼다. 일종의 징크스다. 길을 가다가 간판이 머리에 떨어질 뻔한 다든가, 멀쩡히 인도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미친 운전자가 버스 정류장으로 운전대를 튼다든가 하는 일들이 발생한 때는 딱 이런 계절이었다. 그게 매년 반복되다보니 이 날씨가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반갑지 않기도 했다. 이런 날씨는 김영진에게 예상 못한 불안감을 심어주곤 했다.


하지만 괜히 재수없는 생각을 하고 싶진 않았다. 김영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세수를 하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평소보다 좀 더 신중하게 옷장 앞에 서서 출근할 옷을 고르는 동안에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대충 옷을 고른 김영진은 부엌으로 가서 커피 머신을 켰다. 원두를 넣고 물을 채운 후,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냈다. 커피가 추출되는 소리가 익숙하게 들렸지만, 오늘은 그 소리마저 거슬리게 들렸다. 어딘가 모르게 기계음이 평소보다 더 크게 울리는 것 같았다.


드르르르르르륵-.


덜덜덜덜덜-.


김영진은 우유를 잔에 따르며 잠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재수없게 커피 기계까지 저지랄이야.


김영진의 불안감이 커피 머신의 소리 때문에 더욱 불편해졌다. 아무 일도 없는데, 마치 무언가 나쁜 일이 곧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분 전환이라도 할겸 김영진은 다 내려온 에스프레소를 따라놓은 우유에 부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늘 아침 조간 신문 읽듯 보던 소설을 읽기 위해서였다. 짧은 소설 한 편을 후루룩 흘리듯 읽고 나자 커피잔이 텅 비었다.


그래. 괜히 불안해 할 것 없다. 별일없을 것이다.


김영진은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자신을 진정시키려 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갈거야.”


김영진은 마음을 다잡고, 태연하게 옷을 입었다.


“나비. 아빠 돈벌어올게.”


다리에 몸을 비벼대는 나비를 쓰다듬어주며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며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1층 현관을 나서는데 번뜩 지갑을 집에 두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황한 김영진은 걸음을 멈추고 가방을 뒤졌다. 다행히 지갑은 그 안에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 계절의 징크스가 올해는 생기지 않기를, 무사히 넘어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출근길의 상태가 평소와는 달랐다. 매일 버스를 타고 가던 경로인데, 그날따라 교통 체증이 심했다. 도로에 길게 늘어선 차들 덕분에 버스가 한참을 멈춰있었고, 김영진은 결국 두 정거장 전에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가 지각할 확률은 백퍼센트였다. 중간에 내린 김영진은 열심히 회사를 향해 걸어갔다. 버스 안에서 답답하게 기다리느니 걷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사실은 걷는게 아니라 뛰는 거였지만. 그런데 몇 걸음 걷지 않았을 때 하늘이 갑자기 우중충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작정하고 비구름이 김영진의 위로 몰려오는 것처럼.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후두두둑-.


처음에는 몇방울이 떨어지더니 잠시 후에 집중 호우가 쏟아지듯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김영진은 가까이 보이는 편의점으로 마구 뛰었다. 인도에는 김영진의 몸을 비에서 가려줄 물건이 없었다.


하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김영진은 얼른 편의점에서 우산을 샀다. 하필이면 싼 일회용 우산은 모두 다 팔리고 2만원이 넘는 비싼 우산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김영진은 하는 수 없이 그 우산을 사서 밖으로 나왔다. 이미 옷은 비에 푹 젖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비를 맞고 가기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운 한번 더럽게 없네.


김영진은 우산을 펼쳐 들고 회사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빗방울이 바람에 날리면서 옷자락을 젖게 했다.



신발과 바지, 윗옷, 그리고 머리까지 젖은 채로 사무실에 들어가야 하다니. 참담한 기분을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설마 그 징크스가 다시 시작된 건가. 아냐. 그럴 리가 없다. 이정도는 그냥 운이 나빠 걸린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


김영진은 조금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러나 어떻게든 마음을 달래며 회사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습게도 그렇게 쏟아지던 비가 회사 건물에 도착하자마자 뚝 그쳤다. 비가 잦아들었지만 이미 김영진의 옷은 방금 세탁기에서 꺼낸 옷처럼 젖어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첫날부터 지각을 할 수는 없었기에 김영진은 그 상태로 대충 옷의 물을 털고는 사무실로 올라갔다.


찝찝한 상태로 자리로 갔다. 사람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는 중에도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사람들 중에서 비에 쫄딱 젖은 사원은 김영진 뿐이었기 때문이다.

김영진은 같은 팀 사우들과 인사를 주고받고는 안내받은 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불운의 징크스는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었는데. 이상하게 컴퓨터가 부팅되지 않았다. 김영진은 어이가 없어서 계속 버튼을 누르고 콘센트도 확인했다. 기웃거리는 그를 보고 옆자리 사원과 다른 사람들도 와서 기웃기웃 거리며 같이 확인을 해주었는데, 몇 번을 시도해도 화면은 까맣게만 있었다. 마치 고장난 것처럼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이럴 수가... 설마 아침에 시작한 불운이 아직 안끝난거야?”


김영진을 살펴주던 팀장이 한숨을 쉬며 인사팀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인사팀은 상황을 듣고 바로 담당자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재수없게 혼자 비를 쫄딱 맞은 것도 모자라서.


컴퓨터까지 제대로 켜지지 않으면 오늘 하루가 정말 계속 불운으로 이어질 것만 같았다.


제발 이 불운이 여기서 끝이길. 올해의 징크스는 이렇게 넘어가길.


컴퓨터를 직원이 만져줬다. 얼마후에 컴퓨터의 전원이 들어왔다. 담당자도 이유를 모르겠다는데, 어쨌거나 컴퓨터가 켜졌으니 다행이었다. 조금 늦었지만 김영진은 다시 오늘 하루를 평소처럼 시작하기 위해 프로그램들과 인터넷 창을 켰다. 그런데 곧바로 메신저에 팀장이 보낸 메시지가 떴다.

[김 대리, 어제 요청한 보고서 아직 제출 안 했더라. 오늘까지 꼭 부탁해.]


아아악!


그 내용을 보는순간 김영진은 머리를 감싸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없다. 어제 분명 보고서를 제출하고 가야지 해놓고 그냥 퇴근해버린 것이다. 정신머리가 있냐 없냐.


김영진은 얼른 다시 제 폴더를 뒤졌다. 그런데 불운은 거기서 끝나지않았다.


이게 왜... 여기까지밖에 안써있는 거지?


제가 분명 마무리까지 다 했는데. 보고서의 뒷 내용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 뒷내용만 삭제한 것처럼 깔끔하게 지워져있었다. 당황스러웠다. 김영진은 얼른 다른 폴더와 파일도 모조리 검색했다. 그런데 없었다. 감쪽같이 보고서의 뒷 내용이 날아간 것이다.


미친, 이게 말이 되는건가.


그렇다고 이 상황을 변명이랍시고 말할 순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어제 제출하고 갔어야 하는 보고서였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김영진은 급히 보고서의 뒷내용을 다시 작성했다. 오늘 해야하는 일도 있는데, 어제 했던 일까지 또 하려니 시간이 부족했다. 미친 듯이 속도를 내서 다시 내용을 정리해 써내려 갔다.


김영진 이 미친새끼야. 정신차려, 이게 뭐냐.


그런데 오늘따라 일에 집중이 되질 않았다. 머릿속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김영진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짜듯 일을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김영진은 잠시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동안 일에 집중하느라 배가 고픈 줄도 몰랐던 김영진은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근처 카페에 가기로 했다. 평소 자주 가던 곳이라 익숙한 곳이었다. 그리고 커피와 디저트들이 훌륭한데 사람도 많지 않은 곳이라 직원들과 단골이 된 곳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카페에 사람이 많아 앉을 자리가 없었다.


“오늘 무슨 일 있나?이렇게 사람이 바글바글한건 처음보네요.”


“그러게요. 주변에서 무슨 행사라도 했대요? 김 대리 아는 거 있어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주문을 받는 데부터 메뉴가 나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면 음료를 받지도 못한채 점심시간이 끝날 터였다. 하는 수 없이 김영진과 직원들은 결국 가깝지만 맛이 없는 근처의 싸구려 커피 체인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회사로 돌아온 김영진은 다시 보고서 작성에 몰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김영진이 맡은 클라이언트와 문제가 생겼다는 내용의 메일이 들어왔다. 오늘내로 보고서를 넘겨야 하는데. 왜 하필 지금 이 난리냐고!

김영진은 오늘 그가 해결해야하는 업무파일들을 가만히 노려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었다. 김영진은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겨우 보고서를 제출하고 클라이언트와의 문제도 해결하고 나니 어느새 퇴근시간이 훌ᄍᅠᆨ 지나있었다. 사무실에는 김영진 혼자 남았다. 김영진은 가방을 챙겨 천천히 밖을 나왔다. 그런데 사무실 복도에 불이 꺼져있었다.


뭐지.


엘리베이터가 있는 복도에는 늘 밝게 불이 켜져있는데.

사람도 없는 사무실이 무섭게 느껴졌다. 설마 오늘의 불운이 계속되는 건가.

김영진은 한숨을 쉬며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건 아니었다. 오늘 하루는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안 좋은 일이 계속 겹치다 보니 스트레스는 평소보다 더 심했다.

회사 밖으로 나온 김영진은 캄캄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 확인을 했다. 집에 도착하면 씻고 자기 바쁠시간이다. 오늘 하루가 또 이렇게 끝나버리다니.


그래도 불운이 여기서 끝나준다면 다행이지.


몸이 피곤해서인지 집에가는 것조차 귀찮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에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이제 집에 가서 쉬어야지...’


김영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애써 괜찮은 척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늘 연달아 터진 불운이 오늘로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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