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숲으로 빠져들었다
3
”빨리 나가라니까요!“
김영진이 마구 소리치며 남자에게 창문을 손짓했다. 그러나 남자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들은체 역시 하지 않았다.
”너는 네가 무슨 존재인지 모르는구나.“
남자가 갑자기 손을 김영진 쪽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공중에 마법 같은 푸른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 순간 김영진의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김영진의 눈이 고양이 나비를 향했다. 동시에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나비가 그 푸른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고양이의 작은 몸에서 빛이 터져 나왔고, 남자와 남자의 주위를 감싼 어둠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를 가로막는 힘처럼 보였다.
그순간 김영진은 깨달았다. 나비가 어쩌면 평범한 고양이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나비를 어떻게 만났더라?
그래. 나비는 길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는 김영진에게 마구 매달린 고양이었다. 얼마나 애처롭게 굴면서 김영진에게 매달리던지 그게 너무 불쌍해서 잠시 돌봐주겠다고 데리고 온 것이 그대로 가족이 되어버렸다. 그런 나비가 아무렇지 않게 그 빛에 자연스럽게 뛰어든 것이다.
이순간 김영진은 자신이 이 고양이와 단순한 주인과 애완동물의 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빛으로 뛰어든 나비를 보며 남자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좋아. 아주 좋은 시범이었다. 이번에는 네 주인이 뛰어들도록 유도해. 저자를 우리는 데려가야 하니까.“
”난 가고싶지 않아!“
김영진이 마구 소리를 지르며 몸을 움직이기 위해 애를썼다. 하지만 얼어붙은 몸은 여전히 움직여지지 않는다.
”수호자의 역할을 다하도록 해.“
남자가 고양이 나비가 들어갔던 곳을 향해 말했다. 수호자? 무슨 수호자? 지금 고양이 나비가 나의 수호자라는 걸 저 남자가 말하고 있는건가?그런 말을 하고 있는거야?
김영진은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꿈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비가 들어갔던 빛에서 빼꼼 눈을 내밀었다.
같이 가자.
나비가 제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나비는 정확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비와 눈이 마주친 순간 갑자기 귓가에 이명처럼 들리는 작고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이건 나비가 말하는게 분명하다. 분명할 것이다. 나비가 말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게 아니면 자신과 같이 가자고 이상황에서 말할 수 있는 상대가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나는 고양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거지? 이젠 하다하다 못해 고양이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게 된건가? 말도 안되는 일이다.
남자가 하는 말과 나비의 반응을 보면 이 상황은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며 고양이 나비는 김영진의 수호자였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 세계와 연결된 존재라는 의미 같이 들렸다. 이제 김영진은 혼란스러웠다. 자신을 둘러싼 말도 안되는 지금의 모든 상황을 꿈을 깨서 풀어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 낯선 괴한을 어떻게든 물리쳐야 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나비를 끌어내고 눈을 감았다 뜨면 꿈에서 깨어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여기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괴한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때 나비가 김영진을 향해 몸을 깜빡였다. 그러자 몸이 휘청거리는 느낌이 났다. 남자가 김영진과 나비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고양이에게 그런 힘이 있었다니...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군.“
김영진은 몸이 다시 움직이는 것을 느켰다. 그리고 남자의 말과 방금의 상황을 유추해본 결과 이 모든게 나비의 힘 덕분임을 직감했다. 이제 김영진은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생각했던 것처럼 싸울 것인가, 아니면 문 밖으로 도망칠 것인가.
그러나 문밖에는 분명 남자의 동업자로 추측되는 괴한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안전을 도모해야 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김영진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순간 나비가 빛의 무리에서 다시 나왔다. 고양이 나비가 다시 김영진의 곁에서 빛을 발하며 주위를 지켰다. 나비가 옆에 있는 순간 두려움이 사라졌다.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좋아. 이대로 저 미친 남자 침입자를 몰아내자.
이제는 자신도 이 전쟁의 일부였다.그런데 그때 몸이 두둥실 뜨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빛이 모조리 사라졌다. 남자의 얼굴도 고양이 나비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손도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고, 그저 불길한 기운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남자가 천천히 김영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김영진은 공포에 질려 몸이 굳어버렸다. 손과 발은 제멋대로 떨리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대체 뭐야? 왜... 나한테...이러는거야!”
그러나 더 말을 이어 뱉기도 전에, 무언가 김영진의 팔을 잡고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 순간,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김영진의 시야는 흐릿해졌고, 귀에서는 고요한 침묵만이 들려왔다. 그리고 갑자기, 김영진의 몸이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김영진은 정신을 차리려 했지만, 마치 꿈 속을 떠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았고 정신이 없었다. 멀미가 나는 것같기도 하고 어지럽기도 했다. 그저 이대로 속을 다 게워내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한참을 지난 후에 눈을 떴다. 그러나 주변은 더 이상 김영진이 알던 거실 풍경이 아니었다.
푸르스름한 하늘, 거대한 나무들, 기이한 생물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김영진은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게... 대체 어디야?”
김영진은 당황한 채로 일어나 보려 했지만, 김영진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볍지 않았다. 몸이 무겁고 낯설었다. 김영진은 손을 내려다보았고, 그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김영진의 손은 더 이상 김영진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흡사 동물의 발톱 같은 모습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악!”
김영진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게... 뭐야? 내 손이... 이건 내 몸이 아니야!”
김영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김영진은 자신의 팔과 다리를 더듬으며 확인했다. 모두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몸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얼굴을 만져보니 거칠고 뾰족한 털이 손가락에 걸렸다. 김영진은 계속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목소리가 나왔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김영진은 이제 비명을 지르는 대신, 기이하고 깊은 울음소리를 냈다. 공포에 휩싸인 울음소리같았다. 김영진은 자신이 어떤 존재로 변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뭐가 된 거지?”
김영진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숨을 고르려 했지만, 공포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 몸이, 이 형체가 전혀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영진은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 일어서보려 했지만, 다리마저 낯설고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려웠다. 천천히 다리를 들어보았으나 그 형체는 마치 짐승의 다리처럼 뻣뻣했다. 김영진은 이 현실이 꿈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것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김영진은 점점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더 이상 인간의 몸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있던 공간 역시 더 이상 김영진이 살던 평범한 인간세상의 평범한 집의 평범한 거실이나 부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김영진은 천천히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나무들 사이로 빛이 흘러들어왔고, 들리는 소리는 이질적이었다. 새들의 울음소리조차도 김영진이 알던 세상의 그것과는 달랐다. 김영진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몸이 평소보다 훨씬 무겁고 피곤했다. 하지만 두려움에 그렇다고 늘어져 있을 수도 없었다. 어딘가 숨어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 김영진이 해야할 건 편하게 바닥에 드러눕는다거나 회사에 출근할 생각을 한다거나 하는 것 따위의 평범한 현대 사회의 인간 직장인이 해야 할 행동이 아니었다. 그것 외에 뭔가 무언가를 행동해야 할 것 같았다. 여기서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왜... 이런 데 와 있는 거지?”
하지만 무턱대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조금 더 명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기위해 김영진은 혼잣말을 하며 몸을 더듬었다. 무언가 실마리가 필요했다. 왜 지금 이 상황 이 자리에 제가 있는 것인지를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어지럽기만 했다. 갑작스러운 차원이동, 그리고 자신이 짐승의 형체를 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그 어떤 설명도 할 수 없었다.
김영진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변한 것 같은 이 괴상한 현실만이 김영진의 생각을 가득 채웠다. 침입자가 그러니까 정확히는 꽉꽉 닫혀있고 1층도 아닌 자신의 집 거실 창문으로 남의 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침투해서 들어온 불청객인 남자가 대체 어떻게 그 흰 빛을 만들었으며 김영진을 어떻게 여기로 보낸 것일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있을수도 없으니 김영진은 우선은 무작정 앞으로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길이 없는 숲속에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지금처럼 인간의 몸이 아닌 상태에서. 김영진은 걷다가 자꾸만 넘어졌고, 나뭇가지가 거칠게 김영진의 몸에 스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고통마저도 감각이 둔했다. 지금의 몸이 인간의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김영진은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돌아가야 할 세상은 분명 여기가 아니다. 자신의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자리에서 도망쳐야만 했다. 지루하지만 편안했던 자신의 원래 집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빨리 어서 방법을 찾아 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신비로운 숲속의 첫 걸음이었다. 사실 신비롭다기 보다는 공포스러운것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평범하지 않은 숲속을 김영진은 여전히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숲을 걸었다.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진 숲속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곳곳에서 들리는 알 수 없는 생물들의 소리가 김영진의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 이 몸이 무엇이든 간에, 이전처럼 숨 쉬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작정 멈출 수는 없었다. 김영진은 발끝에 힘을 주어 한 걸음,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저 머얼리 보이는 나무 사이로 보이는 희미한 빛이 유일한 방향감각의 단서였다. 마치 그곳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곳에 가야한다.
반드시 저곳에 가야한다. 반드시 저 장소에 가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꼭 가야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영진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그 빛이 내뿜는 자리를 향해 마구 뛰듯이 걸었다. 걸었다고 표현하는게 맞을까?
정확히는 뛰었다고 보는게 맞다. 그러니까 더 정확히는 뛰듯이 걸었다는 것에 가깝겠지. 그것도 두 발이 아닌 네발로. 숲을 헤치면서 힘겹게 몸을 이끌고 걸어갔다. 도저히 두발로는 땅을 딛기가 힘들어서 저절로 네발이 되었다. 네발로 걷는게 두발로 걷는 것 보다 편한 건 살아 생전 처음이었다. 아마 아주 어린 기억에도 없을 아기적 시절을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어찌됐든 저기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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