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청소와 정리를 마무리하지도 못한 채 한쪽 벽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기운에 신경이 곤두선 오민석은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졌고, 머릿속에서는 ‘단순히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런 그의 불안을 눈치라도 챈 것처럼 방울이 또한 벽을 향해 긴장된 눈빛을 보내며 낑낑댔다. 방울이의 소리가 더욱 초조하게 들려 오민석의 마음을 한층 무겁게 만들었다.
그때 휴대전화 벨소리가 갑자기 울리며 그의 마음을 더 놀라게 했다. 오민석은 손을 뻗어 휴대전화를 쥐었고,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자 김영진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이사와 청소로 이미 지친 상태에서 벨소리마저 긴장감을 더했지만, 그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 영진아."
그는 침착하게 말하려 애썼지만, 목소리에서는 미묘한 떨림이 감지되었다. 그러나 전화를 건 김영진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평범한 안부를 물어왔다.
"어, 민석아! 이사하느라 고생 많지? 잘 마무리하고 있어?"
김영진의 평소와 다름없는 밝은 목소리에 오민석은 약간 안도하면서도, 곧바로 자신이 느끼는 불안함을 털어놓을지 망설였다. '이걸 말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스쳐갔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어... 뭐, 그렇지. 거의 다 끝났어." 오민석은 최대한 무심한 척 답했다.
그 사이 방울이는 주인의 곁을 맴돌며 불안한 눈빛으로 벽 쪽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방울이의 초조한 소리가 자꾸 귀에 거슬리기 시작하자 오민석은 다리를 떠는 버릇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벽 쪽에서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묘한 기운이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서늘하게 감돌았다. 청소 도중에 남겨진 물걸레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상자들은 여전히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거실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기이한 냉기는 집 안을 가득 채우며 그의 신경을 더욱 곤두서게 했다.
"어디선가··· 찬 기운이 들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오민석은 김영진과의 대화에 집중하려 했지만, 집 안의 스산한 분위기가 대화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다. 전화기 너머 김영진이 무언가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방울이는 그가 말하지 못한 불안감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작고 불안한 소리를 내며 오민석의 다리 쪽에 몸을 기대왔다.
"민석아, 괜찮아? 피곤해서 그런지 목소리가 좀 힘 없어 보이네."
김영진의 말에 오민석은 움찔하며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친구가 자신의 불안감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애써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냥 이사 정리하느라 좀 지친 거지 뭐. 방도 닦고, 짐도 옮기고 하다 보니까 꽤 오래 걸리네."
김영진은 가볍게 웃으며 "그래, 이사가 원래 고역이지. 다 끝나면 연락해, 내가 이사 축하 겸 한잔 사줄게!"라고 말하며 통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오민석은 여전히 집 안을 둘러보며 불안감을 숨기려 노력했다. 손에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얼굴에는 미세하게 경직된 미소가 감돌았다.
그가 그렇게 대화에 집중하는 척하는 동안에도 방울이는 그가 바라보던 벽을 계속해서 주시하며 작게 으르렁거렸다. 오민석은 방울이를 바라보며 혹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 벽 뒤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머리로는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며 자꾸만 합리화를 시도했지만, 마음속 불안은 점점 더 커져 갔다.
"그래, 영진아. 이사 정리 다 되면 내가 먼저 연락할게."
"그래, 그러면 오늘은 좀 쉬어. 그래도 오늘 하루 종일 고생했잖아. 내일도 할 게 많을 테니 오늘 푹 자라고."
김영진은 여전히 그의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오민석은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오민석은 한숨을 내쉬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여전히 불안한 시선을 벽 쪽에 고정한 채, 그는 방울이의 불안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기운이 집 안을 채우고 있다는 확신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민석은 통화를 끝내고 휴대전화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불길한 느낌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다시 방 안 한구석에 고정되었고, 방울이도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똑같이 주시하고 있었다. 방울이의 눈은 경계심으로 반짝였고, 작고 예민한 귀는 그쪽으로 쫑긋 서 있었다. 집 안은 조용했고, 바깥에서는 간간이 지나가는 차 소리와 멀리서 울리는 개 짖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러나 그 정적 속에서도 그는 무언가 기이한 기운이 계속해서 방 안에 퍼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문득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오민석은 순간 어깨를 움츠렸다. 어지럽게 쌓인 이삿짐 상자와 아직 닦지 못한 구석구석에 얹힌 먼지가 그에게 다가오는 불안감을 더했다. 그는 방울이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고, 방울이는 긴장한 듯 꼬리를 낮게 내리며 그의 발치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작은 발로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를 내며, 방울이는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단순한 피곤 때문이 아님을 알려주는 듯했다.
"방울아... 너도 뭔가 느껴지는 거지?"
오민석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방울이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의 손은 이미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그의 손길을 느끼는 방울이 역시 더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방울이는 머리를 살짝 그의 손에 비벼 대며 위안을 구하는 듯했지만, 여전히 벽 쪽을 향한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주변의 공기는 차가웠다. 분명히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방 안은 점점 더 차가운 기운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그들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민석은 다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공포는 점점 더 커졌다.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히 그의 시야를 피해 숨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거실 구석구석에는 아직 정리되지 못한 짐들이 쌓여 있었다. 식기와 컵이 담긴 상자, 침구가 담긴 커다란 상자, 아직 조립하지 못한 가구의 부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오민석의 눈에는 그 그림자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방 안에 쌓인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은 오민석의 정신을 짓누르듯 압박했다.
"아휴, 이게 뭔가··· 내가 왜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거지?"
오민석은 자신의 불안을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몸은 점점 굳어 갔다. 그는 손끝이 약간씩 떨리는 것을 느끼며, 잠시 의자에 앉아 긴장된 몸을 풀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시선은 벽을 벗어나지 못했다. 방울이도 그를 따라 그의 다리 옆에 몸을 기대고 누웠다. 방울이는 불안한 듯 간간이 바닥을 긁고, 얕은 소리로 신경질적인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방울이를 달래려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손끝에 닿는 방울이의 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방울이 역시 그 차가운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방울이는 눈을 치켜뜨고 어딘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는 오민석은 방울이의 예민한 반응에 더 큰 공포를 느꼈다.
방울이는 그가 보는 곳을 주시하며 작은 으르렁거림을 내뱉었다. 마치 그곳에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는 듯, 몸을 웅크린 채 꼬리를 낮게 내렸다. 오민석은 주먹을 꽉 쥔 채, 다시 한번 그 자리를 응시했다. 차가운 기운은 점점 더 그를 압박했고, 뭔가 가시 돋친 듯한 불안감이 온몸을 감쌌다.
"정말로 뭔가 있는 걸까···?"
그의 목소리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었지만, 대답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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