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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석은 벽을 향해 계속해서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하면서 손끝이 점점 더 차가워졌다. 모든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그 중에서도 벽 쪽에서 풍겨오는 싸늘한 기운이 특히 섬뜩했다. 마치 현실이 아닌 차가운 무언가가 자신을 천천히 휘감는 듯한 느낌이었다.
방 안은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의 귀에는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방울이의 짧고도 불안한 숨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저녁 늦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희미한 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방 안은 마치 완전히 고립된 공간처럼 고요했다. 그 고요함 속에서 미세하게 들리는 방울이의 숨소리는 민석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건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야. 그럴 수 있어···’
오민석은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 상황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애써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불안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벽 쪽에서 느껴지는 그 기운은 절대 단순한 착각으로 넘기기 어려운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방울이는 여전히 그의 발 아래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벽을 향해 몸을 낮추고 있었다. 작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얕은 으르렁거림을 내며 마치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했다. 민석은 방울이의 반응에 더 깊은 공포감을 느꼈다. 평소에는 얌전하고 애교 많던 방울이가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울이는 다시 민석을 올려다보았다. 그 작은 눈동자 속에는 분명 불안과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민석은 방울이를 달래려 손을 뻗어 쓰다듬었지만, 방울이는 그의 손길에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더 움츠린 채 그를 응시했고, 민석은 방울이의 온몸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방 안에는 점점 싸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창문을 열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방 안에는 이상한 냄새가 감돌기 시작했다. 눅눅한 벽지와 먼지가 섞인 냄새가 처음엔 거슬렸지만, 그것과는 다른 기운이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 마치 낡은 건물 속에서 오래도록 갇혀 있던 무언가가 스며나오는 듯한 냄새였다. 그것은 소름끼치는 냉기를 머금고, 그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느낌을 주었다.
그때 방울이가 작은 몸을 부르르 떨며, 갑자기 짧게 낑낑대기 시작했다. 오민석은 방울이의 반응에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방울이의 반응은 무언가가 근처에 있다는 경고처럼 느껴졌다. 방울이는 꼬리를 낮게 내린 채 그의 다리 쪽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와 몸을 바싹 붙였다. 민석의 가슴은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숨을 크게 내쉬며 공포를 떨쳐내려 했지만, 방 안을 휘감는 서늘한 기운은 그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방 안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창문 너머로 들어오긴 했지만, 벽에 짙은 그림자가 서려 있었다. 짐들이 어지럽게 놓인 거실 구석구석에 어둠이 깔려 있었고, 그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길한 기운이 민석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그는 그 그림자들 속에 무엇인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을 떨었다. 자꾸만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어떻게든 이 어두운 기운을 무시하려 애썼다. 손을 문지르고 팔을 쓸어내리며 침착함을 찾으려 했지만,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그 차가운 기운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방 안을 침범해 오고 있었다. 마치 현실과 다른 차원의 틈새가 슬며시 열린 듯한 섬뜩한 기운이었다.
"방울아··· 우리 그냥··· 방금 느낀 거, 그거 다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자."
그는 방울이에게 말을 건네며 어떻게든 상황을 넘겨보려 했지만, 방울이는 여전히 벽을 응시하며 낑낑거렸다. 마치 그곳에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는 듯했다. 방울이는 벽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오민석에게 몸을 붙이고 있었고, 그의 작은 떨림은 민석의 두려움을 더 자극했다.
갑자기 방 안의 온도가 조금 더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팔뚝에는 닭살이 돋았고, 목덜미에선 차가운 땀이 흘러내렸다. 방울이의 작은 몸도 그대로 경직된 채, 민석의 발을 감싸며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춘 듯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오민석은 그의 등 뒤에서 스치는 냉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을 감싸고, 천천히 숨소리를 죽이며 그의 존재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벽 쪽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가 무언가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였다.
"이게 대체··· 뭐지?"
그는 스스로 중얼거리며, 방 안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에 잠식되었다.
오민석은 벽 쪽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긁는 소리에 숨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마치 무언가가 벽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듯한 불쾌한 소리였다. 한동안 그 소리가 잠잠해지더니, 방 안에는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불길한 기운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짙어져 갔다. 그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끔찍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방울이는 그의 다리 옆에 바짝 붙어 몸을 웅크리고, 꼬리를 납작하게 내린 채 여전히 낑낑거렸다. 작고 겁에 질린 눈동자는 민석의 시선을 따라 벽 쪽으로 향했고, 그 속에서 무엇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방울이의 작은 몸은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민석은 방울이의 털 사이로 스며든 차가운 땀을 손끝으로 느꼈다. 방울이조차 이렇게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그도 어쩔 수 없이 공포에 휩싸였다.
"방울아... 그냥 기분 탓이겠지? 우리··· 우리 아무 일도 없는 거야."
하지만 말하는 그의 목소리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을 억누르려 애썼지만, 가슴은 점점 더 빠르게 뛰었고, 그 불안감은 갈수록 커져 갔다. 주변을 둘러봐도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시야 속의 어둠은 점점 더 두텁게 느껴졌다. 이사 온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집 안은 여전히 생경했고, 이방인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때, 갑자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냄새는 처음엔 희미했지만, 이내 강하게 그를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나무 속에서 썩은 물이 스며나오는 듯한 찌릿한 냄새였다. 이사하면서 맡았던 먼지 냄새와는 차원이 다른 불쾌한 악취였다. 그 냄새는 신경을 날카롭게 찌르며 불안을 가중시켰다.
오민석은 코를 움켜쥐며 몸을 살짝 뒤로 물렸지만, 여전히 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곳에서 눈을 돌리기만 해도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공기는 점점 더 무겁고, 차가워져 갔으며, 이제는 손끝이 약간씩 저려오는 듯했다. 방울이도 이 차가운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지, 작게 기침하듯 소리를 내며 그의 발치에 몸을 바짝 웅크렸다.
‘여길 떠나야 할까··· 아니면 그냥 쉬고 자버려야 하나···’
머릿속에서 불길한 생각들이 가득 찼지만, 그는 마치 마법에 걸린 듯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가 눈을 돌리기라도 하면 그 순간 무언가가 그의 등 뒤에서 손을 뻗을 것만 같았다. 방 안을 둘러싼 어둠과 냄새, 그리고 알 수 없는 기운은 점점 그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었고, 오민석은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불현듯 고개를 돌려 방울이를 내려다보았다. 방울이는 여전히 벽을 주시한 채 그를 향해 무언가를 경고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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