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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이가 떨리는 몸을 웅크리고 오민석을 올려다봤다. 그 순간, 벽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던 불길한 기운이 갑자기 더 강렬해지며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오민석은 이제 더는 단순한 불안감이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곳에는 분명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었다.
갑자기 벽 한가운데에서 어둠이 한층 더 짙어지더니, 마치 공간 자체가 찢어지는 듯한 괴상한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오민석은 등 뒤로 저절로 발이 밀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벽에서 뻗어 나오는 어둠은 마치 생명체처럼, 자꾸만 그를 향해 뻗어왔다. 그의 시선은 벽에 고정되었고, 숨은 가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벽이 뒤틀리며, 마치 검은 틈새가 열리는 듯한 형태가 나타났다. 그 틈새는 서서히 커져 가면서, 그 안에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그를 부르는 것 같았다. 오민석은 눈을 뜨고 있었지만, 그 틈새 속에서 느껴지는 힘이 마치 그의 정신까지 빨아들이려는 것처럼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지만, 시선은 그 틈새에 묶여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방울이는 끊임없이 경고의 소리를 내며 민석의 발밑에서 미친 듯이 울어댔다. 그 작은 몸이 온몸을 떨며 필사적으로 벽을 향해 으르렁거렸지만, 어둠은 더욱 더 깊어져 갔고, 그 안에서 알 수 없는 존재가 점점 더 오민석을 끌어들이려 했다.
"아니, 이건··· 뭐지···!"
그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치 그 어둠 속에서 나오는 무언가가 그의 목을 조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몸은 점점 그 틈새 쪽으로 끌려가고 있었고, 발밑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무언가가 그의 발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틈새로 다가가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틈새 속에서 시커먼 손 같은 형체가 뻗어 나왔다. 손가락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를 그 형체는 뾰족하고 길게 늘어져, 마치 그의 몸을 휘감고 자신에게 끌어당기려는 듯 움직였다. 그 손은 마치 그의 몸을 휘감으며 그의 의식을 틈새 안으로 빨아들이려는 듯한 강렬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오민석은 발버둥치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그 기운은 그의 의지를 꺾으려는 듯한 힘으로 다가왔다. 모든 신경이 마비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방울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그를 깨우려는 듯 짖었지만, 그마저도 이제 희미하게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의 시야는 점점 좁아져 갔고, 틈새 속의 어둠은 마치 거대한 구멍처럼 그의 온몸을 빨아들이려 했다.
그 순간, 오민석의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면을 힐끗 보니, 거기에는 김영진의 이름이 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손을 뻗어 전화를 받으려는 찰나, 마치 그 움직임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어둠의 힘이 더욱 강하게 그를 붙잡았다. 무언가 그의 팔과 몸을 얽어매고, 어둠이 깊숙이 그의 몸에 파고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는 느낌이었다.
“제··· 제발···!”
오민석은 떨리는 손을 뻗어 간신히 전화기 버튼에 닿으려 했지만, 그 순간 벽에서 나온 검은 형체가 그의 팔을 단단히 휘감았다. 팔을 움직일수록 그 어둠의 힘은 더욱 단단하게 그의 손목을 조여 왔다. 그는 전화를 받고 싶었지만, 손끝이 저려오며 무언가가 그의 힘을 빠르게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방울이는 눈을 부릅뜨고 더 강하게 짖기 시작했다. 마치 김영진의 전화를 받게 해야 한다는 절박한 본능에라도 사로잡힌 듯, 방울이는 오민석의 발치를 물어당기며 그의 정신을 붙들어두려 애썼다. 강아지치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게 몸을 부딪치며 그를 깨우려 했다.
"방울아··· 잠깐만··· 도와줘···"
그가 간신히 말하는 사이, 전화는 계속해서 진동을 울리며 그의 주머니 속에서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검은 손 같은 형체가 마치 그의 몸을 삼키려는 듯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 이제는 숨조차 자유롭게 쉴 수 없는 느낌이었다. 그는 눈을 간신히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의 시야는 점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김영진의 이름이 화면에 마지막으로 빛나는 순간, 어둠은 완전히 그의 시야를 덮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방울이의 절박한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마저 점점 멀어지며, 오민석은 서서히 의식을 잃고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오민석은 천천히 눈을 떴다. 머리는 지끈거렸고, 주변이 흐릿하게만 보였다. 그는 숨을 고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거실 바닥에 누워 있었고, 방 안은 다시 조용해져 있었다. 몸은 온통 뻐근했고, 손끝은 아직도 약간 저린 듯한 감각이 남아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그는 머리를 감싸 쥐며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방 안은 여전히 어지럽고 정리되지 않은 상자들이 널려 있었다. 그 혼란 속에서 벽 쪽을 바라보니, 아까 그 불길한 틈새가 사라지고 평범한 벽만 남아 있었다. 집 안은 다시 고요했고, 이따금 창문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방울이가 보이지 않았다.
"방울아? 어디 갔어?"
그는 다급하게 거실과 방을 돌아다녔다. 방울이는 평소 같았으면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따라다녔을 텐데, 지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온갖 불안한 생각들이 스쳐갔다. 하지만 그때, 휴대전화가 주머니에서 울렸다. 화면에는 김영진의 이름이 떴다.
"···영진아?"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김영진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석아! 너 괜찮아? 전화는 계속 안 받지, 방울이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오민석은 그 말을 듣고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졌다.
"뭐··· 방울이가···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방울이가··· 널 찾아갔다는 거야?"
김영진은 한숨을 쉬며 이어서 말했다.
"그래, 너한테 무슨 일 있는 것 같아서 바로 너희 집으로 가려다가, 이상하게도 방울이가 우리 집 문 앞에서 짖고 있더라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너한테 다시 전화한 거였어."
오민석은 김영진의 말을 듣고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안도감이 들었다. 방울이는 어떻게든 그곳에서 빠져나와 김영진의 집까지 간 모양이었다. 그 작은 몸이 겪었을 공포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알겠어··· 방울이 데리고 내가 곧 내려갈게. 할 얘기가 많아··· 뭔가 말로 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 같아.”
통화를 끊고 방울이를 다시 만나러 가는 동안, 오민석의 마음속에는 그 불길했던 순간과 어둠이 남긴 감각들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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