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어느덧 깊어진 밤. 오민석과 김영진은 긴장된 표정으로 12층과 13층 사이의 계단으로 향했다. 방울이는 이동가방에 몸을 숨기고 조용히 있었지만, 가방 안에서 느껴지는 작은 떨림이 그녀의 불안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선택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두 사람의 신경은 점점 더 예민해졌다. 발소리마저 공간에 크게 울려 퍼지는 듯했고, 계단 사이사이의 어둠이 마치 그들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느끼는 긴장감은 뚜렷이 전해졌다.
"영진아, 너도 느껴지지 않아? 공기가··· 뭔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오민석은 조용히 속삭였다. 김영진은 잠시 멈춰 계단 난간을 잡고 주변을 살폈다. 공기는 차가웠고, 눅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벽의 콘크리트는 오래된 듯 곳곳이 갈라져 있었고, 간헐적으로 으스스한 소리가 먼 곳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느껴져. 평소 계단에서 느끼는 느낌이 아니야. 뭔가··· 이질적이고 묘해.”
김영진은 대답하며 방울이의 가방을 살짝 열어 확인했다. 방울이는 조용했지만, 귀가 잔뜩 쫑긋 세워져 있었고 눈은 주변을 계속해서 경계하고 있었다.
12층과 13층 사이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발걸음을 멈췄다. 공간은 마치 별도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계단 한가운데에 서서 위와 아래를 둘러보았지만,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흔들리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벽에 부딪힌 바람 소리가 귀를 때렸고,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 속삭이는 소리처럼 왜곡되어 들렸다.
오민석은 한걸음 물러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울이가 가방 안에서 작게 낑낑거리는 소리를 냈고, 그의 손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여긴··· 공기가 너무 차가워. 마치 뭔가 날 보고 있는 것 같아.”
김영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비슷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어둠 속에 무언가가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아마 이 지점이 문제의 중심일지도 몰라. 그 벽··· 확인해 보자.”
그들은 계단 벽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겉보기엔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였지만, 손을 뻗어 만져보는 순간 오민석은 기묘한 차가움을 느꼈다. 콘크리트 표면은 다른 부분과 달리 얼음처럼 차갑고 매끄러웠다. 그 순간 방울이가 가방에서 짧게 짖었다.
그때였다. 벽 한가운데에서 희미한 빛의 흔들림이 보이더니, 마치 어둠 속에서 조용히 드러나는 틈새처럼 공간이 서서히 뒤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세하게 흔들리는 듯하던 벽이 점차 물결처럼 움직이며 그 안에서 깊고 검은 틈새가 나타났다.
오민석은 숨을 삼키며 뒤로 물러섰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방울이조차 가방 안에서 울부짖듯 낑낑거리며 그의 발을 긁었다.
“영진아, 이거··· 이거 진짜 틈이 열리는 것 같아!”
김영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그 틈새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는 손전등을 꺼내 빛을 비췄지만, 틈새 안은 마치 빛을 삼키듯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그 안은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이건 단순히 벽이 아니야. 다른 차원으로 연결된 무언가야. 우리가 겪었던 모든 게 여기서 나온 게 틀림없어.”
김영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방울이가 짖는 소리를 듣고 가방을 열어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방울이는 틈새를 향해 계속해서 경고하듯 짖었다. 그 순간, 틈새 안에서 무언가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우리 이걸 그냥 둘 순 없어,”
김영진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더 많은 문제가 생길 거야. 이 틈을 닫을 방법을 찾아야 해.”
“닫는다고? 그런데··· 어떻게?” 오민석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혼란이 섞여 있었다.
김영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도움을 요청해야 해. 이건··· 전문가가 필요한 문제야. 하지만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길 봉쇄해야 해.”
오민석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울이는 그들의 긴장감을 느끼고 두 사람 사이에서 몸을 웅크린 채로 가만히 있었다. 작은 몸이 떨리고 있었지만, 방울이는 한 번도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변에서 무엇이라도 틈새를 가릴 방법을 찾아보려 했지만, 공간을 가리는 것만으로는 어둠의 기운을 막을 수 없었다. 그때 김영진은 관리 사무소에서 가져온 자료에서 보았던 한 단서를 떠올렸다.
“민석아, 그 자료에서 말했던 게 기억나? 옛날에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 사람들이 무언가를 사용해서 공간을 봉인했다고 했잖아.”
“그래, 뭔가 물건 같은 걸 사용했다는 얘기였지··· 하지만 그게 정확히 뭔진 없었잖아.”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건··· 뭔가 상징적인 걸 사용하는 거야. 불, 빛, 혹은 금속 같은 것들. 어둠을 밀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들은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와 손전등, 그리고 열쇠 같은 금속 물체들을 꺼냈다. 모든 것이 즉흥적이고 불확실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김영진은 손전등을 틈새를 향해 비추며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라이터를 켠 오민석이 그의 뒤를 따랐다. 방울이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두 사람의 발밑에 바짝 붙어 있었다. 틈새는 그들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강렬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 순간, 틈새 안에서 거대한 손 같은 형체가 나타났다. 검고 뒤틀린 손가락들이 마치 그들을 붙잡으려는 듯 서서히 뻗어왔다. 두 사람은 비명을 질렀고, 방울이는 그 손가락을 향해 겁 없이 짖었다.
“민석아, 지금이야! 빛을 더 비춰!”
김영진의 외침에 오민석은 손전등의 불빛을 최대한 밝게 틈새 안으로 비췄다. 어둠 속의 형체는 불빛에 움츠러드는 듯했지만, 완전히 물러서지 않았다. 어둠은 거칠게 요동치며 그들을 집어삼키려 했다.
“계속해! 틈을 닫아야 해!” 김영진이 외쳤다.
그들은 더 큰 결단을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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