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연아(1)
“전 당신과 함께 가고 싶어요.”
그녀가 내뱉은 말에 나와 강윤우는 벙쪄버렸다.
“네? 그게 무슨···.”
당황스러워 아무 말을 꺼내지 못했다.
“당신들과 함께 가고 싶어요.”
“저희랑 안가도 보호소에서 지내시면 안전할 거예요.”
나는 그녀가 보호소에서의 안전을 확신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보호소가 안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가 아니에요. 전 은혜를 갚고 싶어요.”
“은혜요?”
많은 구호 활동을 하며 들어온 말이긴 했지만, 자신이 직접 함께하며 갚는다는 건 처음이었다.
“절 구해주셨잖아요.”
“구해주긴 했는데요··· 은혜를 갚을 정돈 아니에요. 제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양아치, 살인자 무리 수십 명 처리하는 건 이제 내겐 일도 아니었으니까.
“제가 불편한 건가요?”
하연아가 슬퍼 보이는 얼굴을 지었다.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여자와 대화를 해본 경험이라곤 방구석에서의 게임 채팅 말고는 없었던 터라,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 강윤우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강윤우는 내게 의아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무슨 짓을 했길래. 함께 가려고 안달이 났냐.’라는 것 같았다.
나는 입 모양으로 그에게 ‘아니’라면 부정했지만, 강윤우는 ‘알아서 해’라는 듯 근처 벤치에 앉았다.
“도움이 될 거예요. 전 물약을 만들 수 있어요.”
물약을 만드는 건 확실히 좋은 서포트였지만, 중요한 건 그녀가 너무 약하다는 거였다.
“저희와 함께 다니면 크게 다치세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나는 계속해서 강윤우와 엮어서 말을 건넸다. 나에게 계속해서 집중되는 게 부담스러워서였다.
“죽어도 상관없어요.”
“네?”
죽음에 관해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 꽤 충격적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저희와 다니시려고 하시는지.”
“오빠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요. 이대로 보호소에서 편하게 산다면, 오빠가 의미 없게 되어버려요.”
“오빠는 하연아 씨가 평온하게 사는 걸 바랄 겁니다.”
그러자 돌연 하연아가 천천히 눈을 감더니 두 손을 모았다.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스르릉.
그녀가 행동을 취하고 얼마 안 가, 잔잔한 바람이 발목에 불어오더니 그녀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스릉.
바람이 그녀의 몸을 맴돌더니 그녀의 손바닥에서 새하얀 구체가 빚어졌다.
“아니요. 오빠는 제가 많은 사람을 돕기를 바랄 거예요. 이 능력으로요.”
구체가 빛을 뿜어내기 시작하더니, 다시 점차 사그라들며 한 황금빛 사과의 형태를 내보였다.
“이게 뭡니까?”
그 아이템이 무엇인 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진 못했지만, 영롱한 빛이 쏟아지는 게 분명 좋은 것 같았다.
그녀는 내 물음에 음성으로 답하지 않고, 나의 손에 그 사과를 올려주었다.
[『신의 사과』
-등급: 신화
-특징: 약의 신 ‘파테카틀’의 사과.
-효과: 섭취 시 필요 상황에 맞는 버프를 획득한다. ]
“이게 무슨···.”
아무런 재료도 없이 맨손으로 신화급 아이템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반면, 만든 장본인은 멀뚱히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 능력이에요.”
“무슨 능력이길래. 이런 걸.”
단순히 물약을 만들어내는 게 능력의 끝일 줄 알았다.
“저는 지원형 아이템들을 만들 수 있어요. 다만, 영웅급 이상을 만든 건 처음이에요.”
그녀가 만들어내긴 했지만, 그녀도 희귀 등급을 넘는 걸 만든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무덤덤했다. 매우 진지해서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거 때문인 것 같네요.”
하연아가 소매를 걷으며 보여준 건, 한 문신이었다.
“이게 뭐예요?”
그녀의 팔목에 연한 녹색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오빠가 죽으니 생겨났어요. 인벤토리에 물음표로 된 아이템이 있었는데, 오빠가 떠나니 그게 사라지며 이렇게 변했어요.”
내게도 물음표로 된 무기가 하나 있었다. 여전히 조건도 공개되지 않는 아이템 말이다.
“정보를 보실 수 있어요?”
“네.”
그녀가 문양에 손을 대자 정보가 나타났다.
[【손길】
-등급: ??
-효과: 신력을 쌓으면 ‘손길’이 발동하여 창조를 도움.
-해방 조건: 사랑하는 이의 죽음. ]
“손길이라 되어있고, 해방 조건에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라고···.”
그녀도 이름과 조건을 처음 본 것이었다.
“죄송해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뜻하는 건, 하인혁인 것 같았다.
괜히 물어, 방금 오빠를 잃은 상처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 것 같아 사과했다.
“괜찮아요.”
하지만, 하연아는 오빠의 죽음에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다. 죽은 지 하루 채 안되었고, 더군다나 방금까지 따라간다던 그녀였지만 말이다.
“누군가 절 지탱해 주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편안해졌거든요.”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 계속해서 감싸주는 걸 느끼었다. 자신의 슬픔과 분노가 날뛰지 않게 말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손길】이라는 아이템과, 나일 거라 여기고 있었다.
【손길】를 얻은 직후부터 일어난 일이고, 내게 오빠의 모습이 겹쳐 보이니 말이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절 받아주는 건가요?”
“그건···.”
한참 동안의 대화를 들고 있던 강윤우가 고민 중인 내게 오며 속삭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잖아. 받아주자. 언제까지 우리 두 명에서 할 순 없잖아.”
맞는 말이었다. 물약이나 지원형 템을 만드는 사람은 귀하며 필요했다. 더군다나 인원을 증축할 필요도 있었다.
성장함에 따라 보스도 강해지니 말이다.
“그럼···, 일단 알겠습니다.”
“함께 가는 건가요?”
“네, 근데 마음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유예 기간을 둔다는 거였다. 그녀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니 말이다.
“알겠어요.”
“그럼, 이제. 우리 어디 가는 거냐?”
강윤우가 스트레칭을 하며 물었다.
“일단 보호소 가야지.”
“거긴 왜?”
“한 번 가보려고 했었고, 또 이번에 거기 도움 좀 받게.”
보호소에는 각성자들이 많으니, 정복전 전에 훈련을 받아볼 생각이었다.
물론, 성장 차이가 심해서 큰 도움이 될 거라곤 생각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클 것 같았다.
“그럼 가자.” .
***
“이 건물인가 본데?”
무전기를 통해 보호소를 찾으며 도착한 곳은, 축구 경기장이었다.
“좋은데 자리 잡았네.”
축구 필드에는 천장이 없기에, 낮에는 햇빛으로 시야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밤에는 자면 되니까.”
밤에는 시스템화된 무기들로 만든 불씨로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전체를 밝히기엔 무리가 있기에, 자는 것이 좋았다.
그 순간, 아이들과 어른들, 그리고 사복을 입은 군인들이 뛰어왔다.
내가 구조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님 같았다.
“형아!”
“유원 씨.”
“삼촌!”
동시에 여러 명이 나와 윤우를 보고 소리치며 다가왔다.
한꺼번에 몰리는 소리에 정신이 어지러워 지긴 했지만, 좋았다.
“보람 있네···.”
가슴 한켠이 뜨거워지며 자연스럽게 나온 혼잣말이었다. 강윤우도 내 말에 동의하는지 나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사람이 내게 감사를 표하고, 반겨 주는 것을 보니 너무나도 뿌듯했다.
의미 있는 삶을 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하연아 씨도 웃음이 만개했다.
자신도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덥썩.
아이들 몇몇이 나와 윤우에게 업혔다. 이에 그들의 부모가 미안하다며 떼어내려 했지만, 난 괜찮다고 가볍게 손짓했다.
“맨날 무전만 하고, 오랜만에 보네요. 유원 씨.”
“보고 싶었어요.”
천민준과 서진영이었다.
둘 다 군복을 입을 땐 근엄하며 멋있었는데, 사복을 입으니 연예인 같았다.
“이 아름다운 여성분은 누구십니까?”
서진영이 하연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한참, 연애할 나이인 그가 첫눈에 반해 물은 거였다.
“구조를 갔다가 만났습니다.”
“그럼, 이분도 보호소에 있는 건가요?”
“아뇨, 저희와 함께 모험하고 싶다고 하셔서. 일단은 함께 갈 생각입니다.”
내 말을 들은 천민준이 서진영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말했다.
“진영아, 유원 씨 여자는 건드리는 거 아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당황했고, 서진영은 그런 내게 물었다.
“아! 여자친구십니까?”
“아니요, 그런 거 아닙니다.”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잘 어울리십니다.”
뚱뚱했던 학창 시절 때와 달리, 살이 빠진 김유원은 미남이었다. 이에 천민준과 서진영이 장난친 것이었다.
“아닙니다···.”
천민준은 멀쩍이 나를 보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 부탁하신 사람들은 다 모아놨습니다. 근데, 저희 쪽 각성자 중에 치유사가 없어서 치유사는 못 모았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미리 천민준에게 부탁한 거였다.
-“훈련이 필요해서요. 각성자를 계열별로 좀 모아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러하겠습니다.”
무전 친 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다 모은 거였다.
“무얼 하시길래 훈련이 필요하신 건지.”
“아, 곧 열리는 시나리오가 하나 있어서요. 그걸 준비한다고 그럽니다.”
“여기서요?”
보호소로 삼은 축구장에서 열린다고 착각한 그의 눈이 평소보다 두 배는 커졌다.
“아닙니다. 이곳에 열리는 게 아니라. 저가 따로 혼자 소환될 겁니다.”
강윤우도 선출될 가능성은 있었지만,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아 확신하진 않았다.
“유원 씨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엘리트만 뽑아내서, 약하진 않을 겁니다.”
천민준이 으쓱대며 뒤에 물러나 있던 사람들이 앞으로 나왔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박준우입니다.”
“저는 김준서입니다.”
“김지훈입니다.”
세 명이 차례대로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요청했다.
“전 김유원입니다.”
나를 거치고 옆으로 가서 강윤우, 하연아와도 인사를 했다.
“다들 레벨이 어떻게 되시는지?”
“저희 전부 30레벨입니다.”
천민준이 서진영과 함께 새로 온 세 명을 안으며 말했다.
“다들 높으시네요.”
“그렇습니다! 저희 바로 진행하는 겁니까?”
그들은 벌써부터 몸을 풀고 있었다. 마치 나와의 전투를 고대하고 있던 사람들 같았다.
“네. 그럼, 바로 시작합시다.”
안달나 보이는 모습에 내가 수락하자, 보호소 내에 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재미난 구경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였다.
내기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에이 5 대 1이 말이여? 천하장사도 다구리 앞에선 샌드백이여!”
“여기 보호소의 삼 할은 저 사람이 구했다는데, 무척이나 셀 거야.”
“그럼 내기해, 진 사람 딱밤 20대로.”
“좋아, 해.”
가볍게 상대하려 했는데, 많은 인파가 모이니 부담이 됐다.
“그럼, 셋 세고 시작합니다.”
“네.”
상대는 마법사 둘, 전사 셋이었다. 수적 우위를 가진 건 군인 쪽이었다. 물론 권속을 소환한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굳이 이 전투에서 소환하고 싶진 않았다.
“갑니다.”
외침과 함께 다섯 명이 각자 최적의 자리를 잡았다. 마법사는 후방을, 전사를 일제히 돌격하는 전방을 잡았다.
“으아아아아!”
발 맞추어 뛰어오는 전사들이 나에게 《충격 강타》를 일제히 날렸다.
하지만, 내게 그 공격은 느림보였다.
쑤웅, 쑹.
쉽게 공격을 회피하며, 전력으로 달렸다.
“뭐야, 저게.”
치타 같은 속도에 모두가 멍해져 있었다.
난 순식간에 선두의 ‘김지훈’에게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챙!
상대가 나의 검을 받았지만, 그의 검은 내 위력에 의해 날아갔다.
수우웅 숭, 탁.
자신의 검이 날아간 것을 인지한 ‘김지훈’은 곧바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입니다.”
나는 ‘김지훈’은 뒤로 하고, 은밀하게 다가오는 두 명의 전사, 천민준과 서진영에게 마력을 담은 『데스플로라 소드』를 휘둘렀다.
쑤웅 팡!
“크악!”
검에서 솟구친, 넝쿨이 상대 둘을 강하게 밀쳐냈다.
그때.
팡! 팡!
마법사들의 스킬, 《그라운드 웨이브》와, 《아이스볼》이 내게 날아왔다.
솟아오르는 《그라운드 웨이브》의 공격을 점프로 피하며, 《아이스볼》은 검으로 쳐 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데스메테오》를 사용했다.
거대한 검은 구체가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마법사들이 항복 의사를 밝혔다.
탁.
항복의 의사를 확인하자, 난 손가락을 튕겨 스킬 시전을 취소했다.
와아아아!
상대가 모두 항복하자, 관중석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난 너무나도 쉽게 이겨버린 탓에, 승리에 좋아하기보다 무너진 밸런스가 걱정되었다.
‘다음번엔 강윤우도 상대에 넣고 해야겠다.’
고민하던 그 순간.
[이벤트 시나리오, 《정복전》이 일주일 뒤 전개됩니다.]
[이벤트 시나리오, 《정복전》의 선출이 시작됩니다.]
[귀하가 《정복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참가를 거부하려면, 거부 의사를 밝히십시오.]
“마침 왔네.”
기다리던 《정복전》의 초대장이 왔다. 한데, 나에게만 온 것이 아니었다.
“김유원, 나 정복전인가 뭔가 하는 대상이라는데?”
“저도···.”
52레벨의 강윤우뿐만 아니라, 21레벨의 하연아까지 초청 대상이었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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