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전(征服戰)(6)
먼저 올라탄 김성철은 유지나의 손을 잡아주며 탑승을 도와주었다.
그러고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화르륵.
나는 불이 활활 번지고 있는걸 지켜보고 있다.
“으아아!”
그때 한 사람 숲에서 튀어나오며, 연이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뭐야.”
나도 모르게 놀라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떼거진데?”
숲에서 튀어나온 이들은 모두가 청색의 무복을 입은, 청팀이었다.
신전 외부에서의 소란에, 내부에 있던 강윤우와 리진쳉, 그리고 대화를 나누고 있던 쉬징리와 하연아가 나왔다.
청팀의 참가자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어찌할지 모르고 있었다.
“왕이 오길 기다리는 것 같네.”
작은 소리긴 했지만, 자기네들끼리 하는 소리를 엿들으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들 중에는 시나리오 초반, 나를 죽이려 했던 이들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벌벌 떨며 눈도 못 마주치고 있었다.
“왔다!”
숲에서 청색 무복을 입은 사내가 걸어 나오자, 청팀의 참가자가 일제히 그를 쳐다봤다.
젊은 사람이었다. 한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머리와 눈동자가 푸르렀으며 몸 주위에 물줄기가 맴돌고 있었다.
나와 하연아는 그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어서인지, 다른 이들의 놀람과는 다른 놀람이었다.
신기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대단해서였다.
“연아 씨, 저거 아티팩트 맞죠?”
“네.”
청팀의 ‘왕’이 가진 아티팩트는 ‘바다의 주인’이라는 시나리오를 깨야 얻을 수 있는 거였다.
‘바다의 주인’이라는 시나리오는 히든 시나리오라서 난도도 쉽지 않으며, 게임을 모른다면 만나는 것 자체가 무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시나리오를 클리어 해야 얻을 수 있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강자임과 동시에 게임 유경험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까지 섰다.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같이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강인한 기운을 내뿜은 것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굉장히 소심했다.
그런 그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유는 누가 전체를 대변해 말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어서였다.
“김유원, 니가 해.”
강윤우가 나를 불러 뒤를 돌아보기 전까진 말이다.
상체를 돌리니, 흑팀의 모두가 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왕인 리진쳉까지 말이다.
“크음, 배신할 생각이 없다면, 상관없습니다. 저도 여기서 하루를 보내고 싶진 않아서요.”
“감사합니다.”
내가 조건부 긍정의 답을 내비치자, 청팀의 왕 네리우스가 나의 눈치를 보며 신전 내부로 천천히 들어왔다.
분명 내게 답을 맡긴 흑팀이었지만, 그들이 들어서자, 거리를 벌렸다.
경계심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방금까지도 다른 참가자들과 싸운 이들이니 말이다.
“백팀의 생존자는 더 없는 것입니까?”
주위를 살핀, 네리우스가 말했다.
“분명 더 있을 겁니다. 근데 전 만난 적이 없네요.”
몬스터에게 죽은 건, 시스템이 알려주지 않으니 알 수가 없었다.
“찾았다!”
그 순간, 환호의 소리와 함께 청팀이 나왔던 숲과 다른 방향에서 참가자들이 잔뜩 쏟아졌다.
“드디어!”
“여러분들 찾았습니다!”
열대 명의 백팀 참가자였다. 그들은 조난 당한 후, 구조된 것처럼 소리치고 있었다.
“드디어···, 허억, 허억. 도중에 저 늑대가 사라져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한 사내가 걸어 나와 숨을 헐떡이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 사내가 말한 늑대는 나의 권속인 ‘웨어울프’이었다.
“드디어 찾았네. 내 팀.”
나는 곧장 그들에게 다가가 하연아와 같이 물약을 나눠주었다.
그들은 굵직한 성과를 내진 못했지만, 자잘하게 고블린 같은 저렙 몬스터들을 많이 잡아낸 상태였다.
그들을 보며 내가 바로 느낀 건, 하연아가 뽑힌 데에 다 이유가 있었다는 거다.
그녀의 능력을 포함하면 적어도 방금 온 이들 중에선 하연아보다 쓸만한 사람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내게 합류한 백팀의 연령은 다른 팀들에 비해 낮은 것 같았다.
청소년까지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팀에 비해 절대적으로 강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도대체 왜 우리가 가장 강한 팀인 백팀이 된 건지···.’
도저히 나의 팀이 가장 강력한 팀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게 평균의 모순이지.’
아마도 나의 저력이 제대로 발휘돼서 그런 것 같았다.
“몬스터들을 유인하려고 불을 지르긴 했는데, 예상 밖으로 참가자들이 모이게 되었네요. 일단 한 가지 말해두고 시작하겠습니다.”
적대심이 있는 이들을 위해 하는 말이었다.
“이제부터 참가자끼리 싸우는 건 없습니다. 싸우면 뒤집니다. 이 친구들한테요.”
나는 곧장, ‘샴 오우거’와 ‘오크 족장’을 소환했다.
기강을 잡아두려는 거였다.
이에 의도대로 사람들이 놀라기 시작했다.
“자, 그걸 전제로 하고 작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겁을 주고 나니, 사람들이 내 말에 더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제 곧, 이 신전에 보스 몬스터를 포함해 엄청나게 많은 몬스터가이 들이닥칠 거거든요. 그러면 저랑 몇 명만 나서서 최종 몬스터를 잡을 테니까. 여러분들은 서로를 지키면서 일반 몬스터들을 잡으십시오. 팀 다르다고 편 가르지 말고요.”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내 말을 들은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별다른 불만이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복전의 현재 순위를 발표하겠습니다.]
한데, 이 평화를 시스템은 지켜줄 생각이 없었다.
왜 하필 지금인데···.
[《정복전 기여도 순위》
(팀)
1위, 백팀 (457점)
2위, 흑팀(115점)
3위, 청팀(103점)
4위, 적팀(탈락)
(개인)
1위, 김유원(400점)
2위, 리진쳉(64점)
3위, 네리우스(57점)
4위, 강윤우(32점)
···7위, 하연아(18점)···]
겨우 만든 밥상을 시스템이 뒤엎으려 하는 것이었다.
2, 3위의 점수 차가 팀전은 12점, 그리고 개인전은 고작 7점밖에 차이 나지 않아, 문제였다.
순위가 발표되고 나니, 예상대로 시끌벅적해졌다.
대체로 내용은, “이거 양보 못하겠는데?”, “격차를 벌려야 해요.”, “참가자 몇 명만 죽이면···.”과 같은 점수에 관한 것이었다.
이걸 잠재우려면 압도적인 무력 말고는 없는 것 같았다.
쾅.
이에 거대한 권속, ‘샴 오우거’가 땅을 내려쳤다. 《브레이크 어택》이라는 스킬까지 쓰며 말이다.
굉음과 파괴력에 일대에 울려 퍼졌고, 이를 본 주위는 다시 잠잠해졌다.
“다시 말하지만, 더 이상 참가자끼리의 전투는 없습니다. 점수를 올리고 싶다면, 몬스터로만 잡으십시오. 목숨값에 대한 점수는 타인만이 가지는 게 아닙니다. 자신도 가진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내가 한 말을 요약하자면, 30점 먹으려고 하다가는 니 모가지가 날아간다는 거였다.
모든 사람은 30점의 몫을 가지니 말이다.
다들 나의 말을 들으며 공감은 했지만, 크게 동조하려는 흐름은 아니었다.
또, 상황 이상하게 꼬이겠네.
하지만, 그럼에도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크악.
그때 한 고블린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우리를 보자마자, 신속하게 유턴을 했다.
하지만, 지금 참가자들은 점수를 지닌 고블린을 놔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쏵.
공기를 베는 소리와 함께, 일렁이는 물의 검기가 날아가 고블린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몬스터 처치로만 경쟁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청팀의 왕, 네리우스가 고블린을 잡으며 말했고, 이에 청팀의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희도 마찬가집니다.”
리진쳉까지 나서서 말하니, 사람까지 죽이고자 하는 과도한 경쟁 심리로, 물불 가리지 않으려 하는 충동이 잠잠해졌다.
“그럼, 슬슬 가보시죠.”
『폭풍의 반지』를 이용해 몰살하려는 계획이 틀어질 수 있었지만, 그래도 참가자 자체의 피해를 줄어들 것 같아 좋았다.
내가 선두로 신전 가운데로 향하자, 참가자 모두가 나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전장의 지휘자가 된 느낌이었다.
***
중앙에 가까워질수록 많은 몬스터가 보였다.
-크아?
-크아악!
-캭!
많은 몬스터가 나오며 다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생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아주 어리석었다는 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었다.
퐈그, 쏵, 퐝.
소리를 내는 순간, 그 소리는 유언이 되어버렸다. 더 높은 순위에 도달해, 더 좋은 보상을 받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서 말이다.
“김유원, 우리는 저렇게 안 해도 돼?”
강윤우가 참가자들의 전투적인 의지를 보며 내게 물었다.
“우린 가만히 체력 보충만 하면 돼.”
워낙 점수 차이가 크기도 했고, 《데스메테오》의 여파로 계속해서 점수가 오르고 있었다.
최대 마력량이 9천이 되니, 지속시간이 무척 길었다.
그리고 만약 따인다 해도 문제는 없었다. ‘뱀파이어’를 잡으면 되니 말이다.
‘뱀파이어’가 강하긴 해도 9,000마력을 담은『폭풍의 반지』을 견딜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으니.
“슬슬 나와야 할 텐데. 어디서 뭘 하는 건지.”
내가 말한 대상은 김성철과 유지나였다. 이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들떴는데, 막상 보이지 않으니 죽은 건가 싶어 걱정이 되었다.
퐝.
“으아아!”
평온하게 김성철과 유지나를 걱정하던 순간, 폭음이 터져 나오며 비명이 들려왔다.
“뭡니까.”
놀란 나는 다급히 나보다 앞에 서 있는 이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뱀파이업니다!”
제일 앞으로 나가 직접 보지 않아도 누군가의 전달로 알 수 있었다.
“뱀파이어요?”
나는 더욱 빠르게 달려 나가 전장을 살피니 게임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의 뱀파이어가 서 있었다.
노인이지만, 성난 근육질을 가진 뱀파이어.
게임에서 봤던 뱀파이어가 그대로 있었다.
“다들 물러서십시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뱀파이어는 뱀파이어들 중 최하위인 일반 뱀파이어였다.
백작과 후작 같은 귀족 뱀파이어와 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약한 몬스터였다.
그럼에도 일반 몬스터들에 비해 훨씬 강했다.
레벨이 무려 75나 되니 말이다.
“이제 끝내자.”
나는 바로『폭풍의 반지』를 꺼내 들었다. 권속들을 보내 먼저 맛을 볼 생각은 없었다.
굳이 변수를 사서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곧바로 『폭풍의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뒤에서 청색 무복을 입은 적색 장발의 소녀와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걸어왔다.
***
“예상 밖의 상황이긴 하나, 큰 문제가 되진 않아.”
세 치수 큰 적색 후디를 착용한 사내가 천천히 걸으며 말했다.
“언데드를 이용한 자가 문제니까, 그놈만 어찌하면 되는 거잖아?”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는 달빛을 보려 후드를 걷자, 적색의 장발이 드러났다.
남자라고 느껴진 뱀파이어는 사내가 아닌 여자였다.
후디가 큰 탓에, 그녀의 몸체와 얼굴이 보이지 않아 생긴 오해였다.
“백작 부인, 적들이 거의 다 왔다고 합니다.”
가만히 서, 달빛을 바라보는 여백작을 향해 한 뱀파이어 다가와 말했다. 건장한 체격에 청색 무복을 입고 있는 뱀파이어는, 귀족 출신인 뤄크였다.
“그래? 그럼 슬슬 가야지.”
뒤를 돌아본, 여백작에게 뤄크가 청색 무복을 건네었고, 전해 든 여백작은 청색 무복으로 환복했다.
“잘 행동해야 해, 쟈크.”
원래 이 시나리오의 최종 보스였어야 할, 뱀파이어는 쟈크에게 한 말이었다. 쟈크는 일반 뱀파이어로, 여백작의 집사였다.
“네, 아씨.”
한 명이어야 할 뱀파이어의 수가 셋이 되었고, 더군다나 일반 뱀파이어들과는 비견조차 할 수 없는 귀족 뱀파이어 둘이 껴 있었다.
“오늘은 정말 특별한 밤이 될 거야. 내가 우뚝 서는 날이 될 테니까.”
뱀파이어 여백작, 루즈미아는 시나리오에서 승리를 거둬 더욱 높은 경지의 뱀파이어가 될 생각이었다.
“가자.”
루즈미아가 불쾌한 미소를 지으며 숲에 잠복해 있는 청팀을 향해 걸어 나갔고, 이를 뤄크가 뒤따라갔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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