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
서울에 위치한 게이트 관리국.
나는 그곳에 재난 안내부라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삐-! 삐-!
내부에 있던 경보음이 울렸다.
“이상 마력 반응 감지! 강원도 원주시에 게이트 발생했습니다! 게이트 등급은 E등급입니다.”
게이트가 발생하면 이렇게 부서 안에 있는 경보가 울렸다.
손을 움직여 키보드를 두드렸다
재난 안내 문자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게이트가 발생하면 그와 동시에 브레이크가 발생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하면 게이트 안에 있는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주변에 있는 민간인들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으니, 곧바로 근처에 있는 이들에게 대피하라는 문자를 발송하는 것.
그리고 해당 지역에 있는 헌터들에게 진압을 요청하는 게 일이었다.
“안내 문자 보냈습니다.”
언뜻 보면 위급하고 바빠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이게 일에 끝이었다.
“그래. 잘 끝냈구만.”
전국에 하루 동안 열리는 게이트는 많아야 10개 정도가 고작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하루에 문자 10개 써서 보내면 일 끝이었다.
이마저도 직원들이 교대로 일하기 때문에 내가 작성하는 재난 문자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평소에는 자리만 지키면서 앉아 있으면 됐다.
이렇게 할 일 없는 부서가 하나의 부서로 인정되는 이유는, 게이트 발생을 탐지하기 위한 장비가 비싸기 때문이었다.
당장 우리 부서 앞에는 전국의 지도와, 현재 존재하는 게이트들의 정보가 나와있는 거대한 모니터가 부착되어 있었다.
전국 단위로 설치된 탐지기의 값도 비쌌고.
그렇게 다시 대기 상태로 돌아가 쉬고 있을 때, 문을 열고 사람 하나가 들어왔다.
“다들 좋은 아침!”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여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170센티미터는 족히 넘는 큰 키에 근육도 붙어 있어서 덩치가 큰 여성이었다.
헌터 협회 소속 A급 헌터, 안유진이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들어와 비어있는 소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헌터 협회는 게이트 관리국 산하 기관이었다. 그래서 협회 소속 헌터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중에서 특히나 한가한 편인 우리 부서를 많이 찾아왔다.
어디 게이트가 열린 게 아니면 항시 대기 상태였으니까.
종류는 다양했다. 그냥 근처에 왔는데 심심해서 수다나 떨자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 게이트 공략 보상을 자랑하러 오는 헌터들도 있었다.
오는 시간도 따로 없었다. 그냥 아무때나 찾아왔다.
가끔은 찾아온 헌터들끼리 마주쳐서 만남의 장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부서 제1업무가 헌터 접대고, 두 번째가 재난 문자 전송이라는 말도 있었지.
사실 하는 일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서에 흡수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준혁아? 커피하고 안마 부탁해.”
“예. 지금 갑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들어갔다. 믹스커피를 빠르게 두 잔 타서 각설탕까지 두 개 집어 넣었다.
두 잔을 한 컵으로 옮겨담고는 대충 휘저은 뒤 안유진에게 대령했다.
“음음. 니가 타주는 게 달달하니 맛있단 말이야.”
우리 부서에서 커피 먹고 농땡이 부리다가 간 협회 헌터만 한트럭이었다.
그들 중 몇은 외부 길드 헌터들을 데려오는 경우도 있었고.
그들이 여기와서 휴식을 즐기고 간 다음에, 마치 무슨 여기가 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카페라도 되는 듯 평점을 남기기에 이르렀다.
영향력 있는 헌터들이 좋은 평가를 내리고 간 만큼, 부서 통폐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기각되었다. 협회 헌터들 사기 떨어진다면서.
덕분에 우리 부서는 조금 특별 취급을 받게 되었다.
서열질에서도 빠지고, 내부 기강도 자유롭다면 자유롭고 헤이하다면 헤이했지.
두 모금에 커피를 나 털어 마신 안유진이 머리를 묶었다.
“자, 안마도 부탁해.”
어서 주무르라는 듯 어깨를 떨었다. 이 안유진이라는 헌터는 유난히 우리 재난 안내부에 자주 찾아왔다.
“······안마의자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부서 한켠에는 안마의자가 놓여 있었다. 사내 복지로 놓인 건 아니었고, 그냥 자주 방문하던 헌터 하나가 안마의자가 있으면 좋겠다면서 주문해버렸다.
그것도 500만원이 넘어가는 최고급형으로.
안유진 헌터는 그런 고급 안마의자를 두고 내게 안마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떠넘기는 것도 불가능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해도 억지로 내 이름을 호명하며 찾아댔으니까.
“안마의자는 주무르는 것 같지도 않단 말이지. 힘도 약하고 괜히 쓸데 없는 곳이나 주무르고. 네가 주무르는 게 딱이야. 뭐해? 어제 게이트 하나 공략하고 와서 뭉쳤단 말야. 빨리 주물러.”
안유진이 내게 재촉했다. A급 헌터가 이렇게 요구하면 일개 게이트 관리국 직원인 나는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보통 A등급 헌터부터 상위 등급의 헌터로 취급되었다.
안유진처럼 상위 등급 헌터의 건의에 따라 내가 잘리기도, 아니면 승진하기도 했다. 최대한 맞추는 수 밖에 없었다.
셔츠를 걷고 온힘을 다해 안유진의 어깨를 주물렀다. 나름 건장한 체격의 내가 모든 힘을 쏟아 부었지만, 안유진은 조금도 아파하지 않았다.
“오늘 밥 안 먹었나? 평소보다 힘이 좀 약하네?”
오히려 좀 더 세게 해보라는 요구를 해올 뿐이었다.
일반인의 근력으로는 A급 헌터를 제대로 주무르기조차 힘들었다. 각성자, 그중에서도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헌터의 신체는 일반인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내가 커피는 불만없이 타와도 안마는 하기 싫어하는 이유였다. 한 번 주무르고 나면 손목이며 전완근이며 찢어질 듯 아파왔으니까.
그렇게 안마를 끝마쳤을 때는 손가락에 감각이 사라지고 말았다.
“끄으으응–! 오늘은 이만 가볼게. 안마 고마웠어.”
안유진이 그렇게 떠난 이후.
의자에 앉아 팔을 주무르며 잠깐 숨을 돌리던 때였다.
갑자기 내 시야에 글자들이 떠올랐다.
[스킬 - 흡혈을 각성하셨습니다!]
[스킬 - 흡혈(쿨타임 3초)]
- 10미터 이내 대상을 흡혈합니다. 흡혈 시 혈액이 충전됩니다.
[혈액 : 0/100]
삐-! 삐-!
그와 동시에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서울에 게이트 발생했습니다! B등급 입니다!”
“상세 위치는?”
“그게······ 게, 게이트 관리국 옥상입니다!”
콰아아아앙-!
큰 소리가 울리며 전등이 나갔다.
“어, 어어어엇!”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물건들이 떨어졌다. 바깥에서 비명이 돌려왔다.
우리가 있는 게이트 관리국.
그곳에 옥상에, B등급짜리 게이트가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매일 게이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는 재난 안내부였지만, 이처럼 게이트 관리국에 게이트가 생긴 건 처음이었다.
직원들은 당황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 어떡하죠?”
“일단 바깥으로 대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몬스터랑 마주칠 수도······!”
나 말고도 다들 처음 겪는 상황이라 혼란에 빠져있는 동안.
콰아앙-!
다시 한 번 커다란 진동이 일어나더니, 이번에는 콘크리트 천장이 아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나는 떨어진 콘크리트에 머리를 맞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
찌뿌둥한 머리를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주변은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는지 난잡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콘크리트로 머리를 얻어 맞은 걸 제외하면 특별한 외상도 없는 것 같았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서진 건물 잔해에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전등이 없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벽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 덕분에 조금은 볼 수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다 대피한 건가?’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황상 다른 직원들은 먼저 대피한 것 같았다.
시발. 나도 데려가지.
사실 생각해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는 했다.
내 몸무게가 70킬로그램이 넘어가는데, 몬스터를 대피하면서 나까지 업고 가기란 쉽지 않았을 테지.
“길게 기절해 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해보니 쓰러져 있던 시간은 기껏해야 10분 남짓이었다.
여기서 나가는 건 위험할 것 같았다. 아직 건물 안에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가 남아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B급 게이트라면 상당히 위험할 거야.’
내가 기절하기 전, 다른 직원이 발생한 게이트가 B등급이라고 했었다.
S급, A급, 그리고 그 다음이 B급이었다.
내가 어떻게 손쓸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몬스터가 잔뜩 나왔겠지.
섣불리 움직였다가 몬스터랑 마주치면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서 죽을 게 분명했다.
게다가 전등이 나가서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여기에서 헌터들이 구조를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문제는 핸드폰이 없다는 건데.’
주위를 둘러보다 내 핸드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떨어지는 모니터에 깔려 액정이 박살 난 상태였지.
연락이 안 되면 구조요청을 하기 힘들었다. 구조대에 나온다고 해도 내가 어디있는지 알기 어려울 테니까.
그래도 기다리면 구조는 올 것이었다.
재난 안내부 직원 중에 내가 쓰러지는 걸 봤던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그들이 말해주겠지.
일단은 기다리는 게 최선처럼 보였다.
‘그보다도······.’
허공에 떠오른 글씨들을 바라보았다.
난 각성했다.
흡혈이라는 스킬을.
각성이란 축복이었다.
헌터가 되어 돈을 버는 것도 가능했고, 굳이 헌터가 되지 않더라도 각성자라는 것만으로 여러 이점이 있었다.
남들은 쓸 수 없는 강력한 스킬을 하나는 가지고 있다는 것 아니던가.
이대로 안전하게 구조되기만 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부서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케륵! 케릭!
들어 온 존재는 다름 아닌 고블린.
중학생 정도의 덩치에 초록빛 피부를 지닌 녀석이었다.
약한 몬스터 중에 하나였지만, 괜히 발각돼서 좋을 게 없었다.
나는 책상 밑에 들어가서 몸을 숨겼다.
싸우라고 한다면 이길 수도 있었다. 고블린은 그리 강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걱정하는 건 그쪽이 아니었다.
고블린과 투닥거리다가 다른 괴수가 그 소리를 들을지도 몰랐다.
‘B급 게이트라면.’
게이트 관리국에서 일하는 탓에 게이트에 대해서는 얼추 알고 있었다.
B급 게이트라면 고블린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그 뒤에 강력한 몬스터가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숨을 죽이고 있을 때.
‘이런 망할······.’
고블린이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내 냄새라도 맡은 모양이었다.
점점 놈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게 느껴졌다.
싸움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녀석이 나를 먼저 발견하게 되면 싸움이 길게 끌릴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주변에 다른 몬스터가 이쪽으로 올지도 몰랐고.
기습으로 한 번에 끝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바닥에 굴러 떨어진 화병을 집어들었다. 깨지지 않고 멀쩡했다.
둔기로서 써먹을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고블린이라고 해도.’
고블린은 약한 괴수였다.
그러나 나도 그에 못지 않았다. 싸움이라고는 학창시절 어쩌다 말려들어 주먹질을 몇 번 한 게 고작이었다.
고블린을 한 번에 제압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긴 싸움으로 이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 그러다가 다른 몬스터의 시선이라도 끌게 되면 바로 죽을 것이었다.
다만 그게 무서워서 계속 숨어 있어서도 안 됐다. 이대로라면 고블린 쪽에서 먼저 날 발견하게 될 테니까.
‘······.’
[스킬 - 흡혈(쿨타임 3초)]
- 10미터 이내 대상을 흡혈합니다. 흡혈 시 혈액이 충전됩니다.
문득 허공에 떠 있는 글자들이 들어왔다.
흡혈이라는 능력.
어쨌든 피를 흡수한다는 거니까, 상대에게 피해를 준다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것과 함께 화분으로 머리까지 내려친다면.
한번에 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스킬을 사용하는 방법 정도야 알고 있다.’
나는 머릿속으로 언젠가 안유진이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 각성자들의 스킬은 그냥 생각만으로도 발동 돼. 뭐 종류에 따라서 다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각성도 안 한 나한테 왜 그런 소리를 했나 했는데, 이제야 은혜를 깨달았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고블린의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으니까.
침을 꿀떡 삼키며 잔해 밖으로 나갔다. 그와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 흡혈을 사용합니다.]
파사사삭-!
케엑······!
종이가 구겨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고블린의 피부가 뜯겨나갔다.
뜯어진 피부에서 핏줄기가 쏟아져 나오며, 그대로 내 몸으로 흘러들어왔다.
손에 들고 있는 화분을 쓸 필요도 없었다.
고블린이 바닥에 쓰러졌다.
미동도 없는 걸 보면 숨통이 끊어진 모양.
[혈액 : 15/100]
“······후우.”
생각보다 좋은 능력인 것 같았다.
고블린을 한 번에 쓰러트렸으니까.
그대로 다시 몸을 숨기려던 때였다.
“드디어 찾았습니다아–!!”
공간을 쩌렁쩌렁 울리며 박쥐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급하게 몸을 눕혔지만 이미 발각되어 버린 것 같았다.
다시 흡혈이라도 사용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박쥐가 내 앞에 정확히 착지하며 이야기했다.
“안녕하십니까! 주인님! 저는 혈귀님을 보조하기 위해 파견된 데케레프라고 합니다. 앞으로 주인님의 사역마가 되어 주인님을 모시겠습니다!”
박쥐의 입에서 인간의 언어가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떠오른 메세지.
[데케레프가 당신의 사역마가 되기를 요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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