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

나는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박쥐를 쳐다보았다.
평범한 박쥐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사실 실제로 박쥐를 본 적도 없기는 하다만,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애초에 데케레프라며 자기 이름까지 소개하지 않았던가.
내가 박쥐에 대해 잘 모르지만, 평범한 박쥐는 자기소개 따위 하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주인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실은 새로운 혈귀(血鬼)께서 각성하셨다는 말에 급하게 포탈을 열고 왔지만······ 인간들이 워낙 많아서 누가 혈귀님이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흡혈 능력을 사용하시는 걸 보고 한 걸음에 달려왔습니다.”
“혈귀?”
“예. 흡혈을 각성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사용한 흡혈이라는 스킬.
그걸 각성하면 혈귀라고 불리는 모양이었다.
“흡혈을 각성하신 분들을 혈귀라고 부릅니다! 바로 주인님 같은 분들을······!”
나는 목소리를 높이는 녀석을 보며 이야기했다.
“그······ 좀 조용히 할 수 없는 건가?”
아직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이렇게 소란스럽게 굴었다가 녀석들이 오기라도 한다면 감당이 안 됐다.
사실 그보다도, 내 앞에서 질질 짜대는 이 녀석부터가 골치 아프긴 했다.
손에 들고 있는 화분을 내려다 보았다.
‘후려칠까?’
인간 말을 하고는 있는데다, 나를 먼저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봐도 몬스터였다.
귀찮은 일이 생기기 전에 흡혈 스킬과 화분으로 쓰러뜨려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
“어, 어······! 죄송합니다! 제가 혈귀님을 뵈어서 잠깐 신이 났었나 봅니다!”
데케레프가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속삭였다.
그러면서 이 말만은 꼭 해야겠다는 듯 말했다.
“저를 사역마로 삼아주십쇼.”
“사역마?”
“저 데케레프를 사역마로 삼기만 한다면, 주인님께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데케레프가 당신의 사역마가 되기를 요청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다시금 그러한 메세지가 떠올랐다.
“도움이라면······ 이곳에서 빠져나가게 해줄 수도 있나?”
건물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구조가 많이 느리지는 않겠지만.’
게이트 관리국 산하에는 헌터 협회가 있었다.
이렇게 관리국에 게이트가 나왔으니 곧바로 협회 헌터들이 파견을 나올 테지.
그러니 구조가 많이 느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몬스터들이 습격을 올지도 몰랐다. 방금 쓰러트린 고블린 같은 녀석들이.
게다가 이 데케로프라는 놈 때문에 소란이 일어났으니 몬스터들이 더 몰려올지도 몰랐지.
탈출 할 수 있다면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야 했다.
‘아예 건물이 붕괴될지도 모르고.’
몬스터 때문인지 천장도 내려 앉은 상태였다.
건물에는 지식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위태로워 보였다.
지금도 작은 콘크리트 덩이 따위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중이었고.
이대로 건물이 붕괴되기라도 한다면 답이 없었다. 그대로 건물 잔해에 깔려죽겠지.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주인님을 바깥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길을 찾는 건 제 특기입니다!”
녀석이 자신만 믿으라는 듯 짧은 팔로 자기 가슴을 두드려 보았다.
확실히 박쥐는 깜깜한 동굴에서도 먹고 자는 녀석들이었다.
내가 알기로 눈은 별로 안 좋은데, 초음파 같은 걸로 탐지를 한다고 들었던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길을 찾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테지.
나는 긴 고민 없이 결정을 내렸다.
[데케레프를 사역마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역마는 당신을 보좌할 것입니다.]
내가 사역마가 되는 것도 아니고, 녀석이 내 밑에 들어오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어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히 부탁이 한 가지 있습니다만······.”
데케레프가 내가 쓰러트린 고블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고블린의 마석을 제가 섭취해도 되겠습니까?”
“마석을 섭취한다고?”
몬스터의 몸 내부에 있는 마석.
마력의 집합체이자 에너지원으로서, 헌터들은 사냥한 몬스터의 마석을 팔아 돈을 벌기도 했다.
“실은 이곳에 오기 위해 포탈을 여느라 마력을 많이 소모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 몸 상태는 원래보다 많이 약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석을 섭취하면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고블린의 마석이라고 해봤자 얼마 안 되는 걸로 알았다. 애초에 이런 위급한 상황에 마석이나 채취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고.
“맘대로 해도 상관 없어. 근데 안전하게 내보내 줄 수 있는 거 맞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데케레프가 고블린에게 달려들었다.
이빨을 세우더니 그대로 고블린의 가슴팍에 구멍을 냈다. 안에서 나온 푸른 마석을 입에 집어 넣었다.
“후우.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데케레프가 앞장 섰다.
몬스터의 뒤를 따라가는 꼴이었지만 녀석을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다.
‘공격했을 거라면 처음부터 달려들었을 거다.’
방금 고블린에게서 마석을 뽑아 먹는 모습을 보며 느꼈다.
이 데케레프라는 흡혈박쥐 역시, 몬스터는 몬스터라는 것을.
이빨로 고블린의 살가죽을 가볍게 뚫는 걸 보면 약한 것 같지도 않았다.
덤벼들었다면 내가 졌을 확률이 높았지.
그런데 덤벼들지 않고 길을 안내하는 것부터 신뢰도가 올라갔다.
데케레프를 뒤따라 걸었다. 녀석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길을 찾기 시작했다.
쿠와아아아-!
‘······길은 잘 안내하는 모양이네.’
벽 뒤로 몬스터들의 울음이 들렸다. 먼 곳에서 들리는 울음이었다.
다행히 데케레프가 안내하는 길은 큰 위험이 없었다.
아니, 없는 줄 알았다.
앞장 서서 걷던 데케레프가 말했다.
“이 앞에 몬스터가 있습니다.”
“다른 쪽으로 돌아가자.”
“아닙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이윽고 정말로 몬스터가 나타났다.
고블린 같은 냐악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이런 미친······.”
우리가 걷던 복도를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크기의 이름 모를 몬스터였다.
나는 떨리는 눈으로 놈을 쳐다보았다.
“오우거입니다. 그중에서도 큰 편에 속하는 녀석 같습니다.”
떨림 없는 목소리로 얘기한 데케레프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은 주인님의 은혜로 마석을 섭취한 뒤라, 간단한 마법 정도는 쓸 수 있습니다.”
파자자자작-!
데케레프의 눈에서 붉은 빛의 광선이 발사되었다.
광선은 그대로 오우거의 몸을 갈라버렸다. 바닥에 널부러진 오우거의 몸에서 진득한 피가 솟아올랐다.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데케레프는 고작해야 내 팔뚝만 한 덩치를 지녔다. 그런 녀석이 저리 커다란 오우거를 작살내다니.
데케레프가 박쥐라는 특성을 이용해 어두운 곳에서 길을 찾고자 한 게 전부였는데.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뛰어난 전투 능력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 혹시 날 공격하지는 않겠지?”
데케레프의 눈에서 나온 광선이 나를 노린다고 생각해보았다.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그, 그럴 일 없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사역마가 아닙니까?”
데케레프가 내 발목에 얼굴을 비벼대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처음에는 조금 귀여운 구석도 있나 싶었는데 지금보니 상당히 무서웠다.
“저, 오우거의 마석을 먹어도 괜찮겠습니까?”
오우거의 마석은 꽤 값이 나가는 걸로 알았다. 못해도 수십에서 상태가 좋다면 수백까지.
“······먹어도 돼.”
데케레프는 마석을 먹으면 강해지는 모양이었다. 강해진다면 바깥으로 나가는 데 도움을 줄 테지.
무엇보다 이 녀석의 비위를 조금 맞춰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강아지도 밥을 굶기면 주인을 문다던데, 박쥐라고 그러지 않겠는가.
데케레프는 오우거의 몸 안에서 마석을 꺼내 먹었다.
=====
그후로도 꽤 오랜 시간을 걸었다.
몬스터들이 나타나면 데케레프가 손쉽게 녹여버렸고, 마석 섭취를 통해 녀석이 마력을 보충했다.
B급 게이트라서 그런지 몬스터의 숫자가 많았다.
다행히 건물이 무너질 조짐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냥 구조를 기다렸으면 시간이 엄청 걸렸겠는데.’
몬스터가 이렇게 많으면 인력이 많이 필요했다. 당연히 구조 작업에 시간이 많이 들어겠지.
핸드폰이 고장난 상태라 구조 요청도 힘들었다.
데케레프 없이 구조를 기다렸다면 하루 가지고는 안 됐을지도 몰랐다.
그 와중에 몬스터와 마주친다면 저승행 스피드런이었고.
그런 생각을 하며 1층 언저리로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앞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과 합류하시겠습니까?”
지금 이곳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라면 몬스터를 퇴치하기 위해 파견된 헌터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이들은 이미 탈출한 뒤일 테니까.
데케레프를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한테 보여줘도 되나?’
여태까지 날 지켜준 걸 생각하면 믿을만 한 놈인 건 틀림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미지수였다. 외관만 보면 틀림 없는 몬스터였다.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 들어온 헌터들과는 마주했다가 싸움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싸우다가 나한테도 불똥이 튈지도 몰랐다.
내 걱정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데케레프가 말했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데케레프가 그림자 안에 몸을 숨겼다.
순식간에 녀석의 모습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모습을 감추는 건 자신 있습니다. 탐지 스킬을 지닌 사람이 와도 웬만해서는 보기 힘들 겁니다. 앞으로 가시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데케레프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건.
“어?”
“어.”
내게 안마를 받았던 안유진이었다.
안유진은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 쓴 채 나를 쳐다보았다.
“뭐야. 너 아직 탈출 못 했었구나?”
나는 안유진에게 갇히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물건에 머리를 맞고 기절하는 바람에 제 시간에 탈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크흐흐흐, 그래서 기절한 채로 계속 누워 있었던 거야?”
설명을 들은 안유진은 크게 웃었다.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 잘 살아왔네. 이 다음은 걱정 안 해도 돼. 바깥까지 내가 경호해 줄테니까.”
안유진은 차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게이트 관리국에 게이트가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몬스터 퇴치를 위해 곧바로 핸들을 꺾었다고 했다.
옆에는 다른 헌터들도 있었다. 그들 또한 B급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을 막기 위해 온 모양이었다.
“자자. 일단 생존자 구출이 급선무니까. 나는 이 친구부터 밖에 두고 올게.”
안유진이 다른 헌터들에게 얘기하며 내게 손짓했다.
나는 안유진을 따라 걸었다.
“허······.”
건물의 한 골목 한 골목을 지날 때마다, 입에서 자동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복도 전체가 몬스터들의 사체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아우. 네가 보기에는 좀 잔인한 광경이다 그치? 눈이라도 가려줄까?”
옆에서 안유진이 장난스레 얘기했다.
잔인한 건 별 상관 없었다. 원래 비위가 좋은 편이었으니까.
사체에서 나는 기분나쁜 냄새는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괜찮습니다.”
조금 놀라울 뿐이었다. 이 많은 숫자의 몬스터가 죽어 있는 게 신기했다.
데케레프도 내려오면서 여러 몬스터를 처치하기는 했지만, 이만큼은 아니었다. 몬스터들의 사체는 안유진이 올라 온 1층에 특히나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건물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헌터들에게 발각되어 처치당한 거고.
“자. 여기로 나가면 돼. 나는 다시 올라가서 싸워야 하니까.”
안유진은 나를 밖으로 안내한 다음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
일단 집으로 돌아온 이후.
“주인님!”
숨어있던 데케레프가 나타났다.
“······너 덩치가 왜 이렇게 커졌냐?”
데케레프의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덩치가 상당히 커져 있었다.
좀 푸짐하게 변했다는 표현이 걸맞을 것 같았다.
‘마석을 먹을 때마다 조금씩 커지던 거 같기는 한데.’
······왠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숨기 전보다 훨씬 더 커진 것 같다고나 할까.
“아하하하. 눈치채셨습니까? 실은 아까 숨어서 몬스터들의 마석을 빼먹었습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었읍죠.”
“그, 그걸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마석을 비롯한 몬스터의 부산물은 잡은 사람의 몫이었다.
1층에 있던 몬스터를 잡은 건 안유진과 다른 헌터들.
우리의 소유가 아니었다.
“......안 들키게 몰래 먹었습니다. 절대 들킬 일 없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도.”
데케레프가 급하게 주제를 돌렸다. 자기도 떳떳하지 않은 행동인 걸 안다는 듯.
“마석 섭취 덕분에 제 몸에 마력이 넘칩니다. 제게 수혈을 한 번 받아보시겠습니까? 수혈을 받으시면 주인님이 새로운 스킬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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