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
“실은 억지로 마석을 찾아 먹은 것도 다 주인님께 수혈을 해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역마는 주인님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수혈을 위해서는 마석 섭취가 불가피했습니다.”
억지로 마석을 먹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맛있게 먹은 거 아니냐.
그리 반박하고 싶지만 힘이 없었다.
“······알았는데 말이야.”
너무 피곤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안유진 마사지하고,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 사이에서 살아남고.
마사지야 늘상 있는 일이었지만 몬스터와 마주하는 게 심리적으로 크게 작용한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피로가 잔뜩 쌓였다.
하지만 이렇게 피곤한 와중에도.
한 가지는 확실히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너, 날 따르는 건 맞지?”
녀석은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저자세로 행동했다.
근데 그러면서도 내 명령이 아닌 일도 자의로 행했다.
안유진과 다른 헌터들 소유의 마석을 몰래 훔쳐먹지 않았던가.
나는 녀석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적 없었다. 온전히 녀석의 독자적인 결단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다른 때에도 자기 맘대로 행동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행동이 내게 피해가 될 수도 있었고.
‘······일단 집에 들이기는 했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게 사실이었다.
게이트 관리국에서 나를 구해준 건 맞았지만, 그렇다고 녀석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다.
여차하면 집으로 안유진이라도 불러서 데케레프를 처치해야 할 수도 있었다. 도움을 준 건 고맙지만 내 목숨을 빼앗을지도 모르는 놈과 함께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주인님.”
데케레프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전 정말 주인님의 편입니다! 믿어주십시오······! 주인님이 시키시는 거라면 뭐든 지 할 수 있습니다! 마석을 섭취한 건 주인님께 도움이 되고자······.”
거의 울기 직전의 울상이었다.
의심은 이쯤해도 될 것 같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 탈출을 도와준 녀석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건 없지 않던가.
그리고 생각해보면 데케레프 같이 강한 녀석이 내게서 얻어 먹을 게 뭐가 있다고 그런단 말인가.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 수혈이라는 걸 설명해봐.”
눈물을 닦은 데케레프가 수혈에 대해 설명했다.
“마력으로 피에 정보를 새겨 주인님께 드리는 겁니다.”
“그럼 네가 쓰는 기술들을 나도 쓸 수 있다는 거야?”
게이트 관리국에서 데케레프가 쓰던 광선을 떠올렸다.
오우거를 한 번에 반으로 갈라 죽일 만큼 강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지.
그걸 나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일까.
“가능은 합니다만······ 제가 쓰는 기술들을 주인님이 배우는 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낭비지요. 주인님은 혈귀이신 만큼, 혈마법을 배우시는 게 훨씬 더 좋으실 겁니다.”
일반적인 마력을 소모하는 마법과 달리, 피를 이용하는 마법인 혈마법.
그리고 그 혈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혈마법은 오직 혈귀님만이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저 또한 혈마법을 쓸 수는 없습니다.”
흡혈 스킬을 각성한 나 뿐인 것 같았다.
데케레프 또한 혈귀에게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배워두기만 했지 정작 사용할 수는 없다고 했고.
“부작용 같은 게 있나?”
“딱히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실은 고민하고 있었다.
흡혈 스킬을 각성하기는 했다만, 헌터가 될지 말지 확정지은 게 아니었다.
헌터로 살자면 수혈을 받아 스킬을 얻는 게 좋을 거고, 그게 아니라면 굳이 받을 필요가 없었다.
‘각성한 다음 일자리를 때려 치우는 사람도 많기는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 없었다.
어떻게 들어간 게이트 관리국인데.
지금이야 건물이 손상되긴 했지만 금새 복구될 것이었다.
일도 쉬운데다 따박 따박 나오는 월급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에 헌터가 된다고 해도, 게이트 관리국을 떠나는 건 내년이야.’
헌터가 되기 위해서는 헌터 면허 시험을 치뤄야 했다.
1년에 한 번 뿐인 시험이었지.
그리고 얼마 전에 이번 년도 헌터 시험이 끝났다.
헌터가 되기 위해서는 꼼짝없이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래도 뭐······ 해서 나쁠 건 없는 건가.”
“물론입니다!”
수혈을 받아도 부작용이 없고 그냥 스킬만 늘어나는 거라면,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게이트 관리국을 때려 치우고 헌터가 되는 건, 다음 시험이 있을 1년 뒤에 생각해도 될 테니까.
“해봐. 뭐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데케레프가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더니 셔츠 팔 부분을 조심스레 걷어 올렸다.
“살짝 따끔합니다!”
그러더니 이빨로 팔을 콱 깨물었다.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주사 맞는 정도라고나 할까.
[스킬 - 혈폭을 각성하셨습니다!]
[스킬 - 혈폭(쿨타임 10초)]
[30미터 이내의 피를 폭발시킬 수 있습니다. 사용 시 피로해집니다.]
[혈액의 최대치가 증가합니다!]
[100 > 200]
[수혈을 통해 혈액을 공급 받았습니다.]
[혈액이 최대치까지 차오릅니다.]
[혈액 : 200/200]
=====
콰직!
안유진이 오우거의 팔을 뽑아냈다.
“끝이다.”
방금 오우거가 마지막이었다.
게이트 관리국의 옥상.
주변으로는 몬스터의 피가 낭자했다.
안유진과 헌터들이 행한 일이었다.
안유진은 옥상에 있는 B급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빛이 일렁였다. 주변에 있는 몬스터를 처리했음에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게이트를 닫기 위해서는 안에 들어가 게이트의 핵을 직접 파괴해야 했으니까.
그들이 한 일은 게이트 브레이크로 밖으로 빠져나오는 몬스터들을 처리한 것이었다.
진압은 끝났으니 공략은 다른 공략대가 알아서 잘 해줄 것이었다.
“저, 안유진 헌터님, 보고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때 한 헌터가 안유진을 불렀다.
“뭔데?”
“저희가 밑에서부터 몬스터를 처리하고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 밑쪽 괴수들의 마석을 누가 다 뽑아갔답니다.”
몬스터의 부산물은 큰 돈이 되었다.
그중 가장 주요 수입원은 마석이었다. 운반도 쉽고 사용할 곳도 많았기에 헌터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었지.
“그게 무슨 소리야?”
안유진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자세하게는 확인해봐야겠지만······ 아래 쪽에 추가 투입된 헌터들로부터 온 연락입니다. 어떻게 마석만 딱 빼갔답니다.”
물론 안유진 정도 되는 헌터면 여기서 얻은 마석 쯤 없어도 아무 문제 없었다.
돈이야 차고 넘치는 게 그녀였으니까.
다만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자기 것을 남이 빼앗아 갔는데 어떻게 기분이 좋겠는가.
이런 일을 할 사람이라면 뻔했다.
“빌런 이 씹새끼들······ 이제는 잡아 놓은 몬스터 마석까지 빼간다는 건가?”
각성한 스킬로 범죄를 저지르는 악질들을 빌런이라 칭했다.
빌런 중에는 가끔 헌터들이 잡은 몬스터의 부산물을 훔쳐가는 녀석들도 있었다.
안유진 또한 여태까지 그런 빌런을 많이 마주쳤었다.
협회 헌터는 빌런과 싸울 때 많이 차출되기도 했으니까.
“모든 괴수의 마석이 다 털렸다고?”
“3층부터 1층까지 거의 전부 빼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아예 다 빼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도적질을 당해도 이리 크게 당할 줄이야.
당연히 건물 내부 cctv는 개박살이 났을 것이었다.
몬스터들이 들이 닥쳤는데 제대로 남아 있을 리가 없었지. 아까는 전기도 나가버렸었고.
“외부 cctv라도 얼른 찾아보겠습니다. 출입의 흔적이 남아있을 수도······.”
“헌터하고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건물에 들어 올 놈들이면 그 정도는 대비하고 왔을 거야.”
카메라 따위는 각성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었다.
모습을 감추는 은신이나 텔레포트 따위를 쓰는 각성자도 많았으니까.
“아오 씨발. 이놈의 빌런들을 아예 다 죽여버리던가 해야지.”
안유진이 옥상 바닥에 괜히 헛발질을 했다.
=====
데케레프에게 수혈을 받은 이후.
씻지도 않고 셔츠 상태 그대로 잠들었다. 너무 피곤해서 수혈을 받으며 동시에 잠에 빠져들고 말았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뭐야.”
데케레프가 내 몸에 붙어 있었다.
자지도 않고 눈을 뜬 채로.
“저는 안 자도 괜찮습니다. 주인님이 주무시는 동안 곁을 지키겠습니다.”
“그래 그래······ 고맙긴 한데, 일단 좀 씻자.”
나는 데케레프를 데리고 욕실에 들어갔다. 녀석도 어제 게이트 관리국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바람에 더러웠거든.
“물 온도 괜찮냐?”
놈이 얼굴로 물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샤워기를 틀어 놈에게 대충 물을 뿌려주고, 나도 목욕탕에 들어갔다.
계속 물을 틀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작은 대야에 물을 받아서 데케레프를 넣었다.
“후우······! 주인님 덕분에 제가 이런 호사를 다 누려보는군요······!”
“어제 있었던 수혈이라는 거 말이야. 스킬이 추가되는 게 끝이야?“
나는 어제 있었던 수혈을 떠올렸다.
혈폭이라는 스킬이 새로 생겨났다. 데케레프가 피에 정보를 새겨서 넘겨준 모양이었지.
“스킬도 전달했지만, 실은 수혈을 통해 주인님과 제가 연결되었습니다. 피를 나눴다- 이겁니다. 예를 들면.”
- 이런 식으로 텔레파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데케레프의 입이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귀에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주인님도 제게 보낼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능합니다. 거리 제한 또한 없습니다.”
주인님과 저는 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데케레프가 그렇게 덧붙였다.
뭔가 박쥐하고 피로 연결 되었다는 게 기분이 조금 이상하긴 한데.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주인님이 저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저도 주인님을 불러낼 수 있고요.”
“그런 게 된다고?”
“물론입니다! 한 번 여기서 해보시지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냥 손을 들고, 저를 부른다고 생각해보십쇼.”
나는 데케레프가 말한대로 따라해보았다.
“어어.”
그러자 허공에 구멍이 뚫렸다.
데케레프의 몸이 반짝이더니 뚫린 구멍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동에 시간이 조금 걸리지만, 이걸 이용해서 먼거리를 한 번에 텔레포트 할 수 있습니다!”
데케레프가 말했던 것처럼 이동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헀다.
10초에서 20초 정도는 가만히 기다려야 하는 것 같았다.
몬스터한테 뒤쫓기고 있을 때 사용하기는 애매해보였다.
맹하게 텔레포트를 쓰다가 공격 받으면 그대로 끝장이었으니까.
“와. 잠깐만.”
그러던 도중 머릿속에 번뜩하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만 있으면 퇴근이 10초 컷이라는 거 아니야.”
집에 데케레프를 박아놓은 뒤 밖에 나가면 언제든지 복귀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또 마석을 많이 섭취하면, 또 다른 스킬을 주인님께 전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수혈을 할 때마다 필요한 마석의 양이 늘어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까 수혈은 네 마력을 쓰는 거지? 그럼 수혈하고 난 다음에는 네가 마법을 쓰기 힘들어지나?”
데케레프가 마법을 쓰던 게 생각났다.
오우거를 반으로 갈라 버릴 정도로 강력한 마법.
수혈을 통해 마력을 소모했으니, 그런 마법을 쓰려면 다시 마력을 충전해야 하는 건가 싶었다.
“아닙니다. 수혈을 하기 위해서 제 몸에 마력이 필요한 거지, 수혈을 하는 자체에는 마력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한 번 마석을 섭취해서 마력량을 늘려 놓으면, 거기까지 다시 마력을 재생하는 속도도 빨라지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인님은 제가 지킬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지킬 일이 얼마나 있다고.’
갑자기 발생하는 게이트 때문에 위험한 일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그 빈도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다.
나도 건물에 그렇게 갇혀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
“슬슬 나갈까.”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서는 벗어두었던 옷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완벽하게 박살나서 액정이 다 나간 핸드폰.
잘못 만졌다가는 손이 베일 것 같았다.
“그래도 유심은 살아있네.”
핸드폰 번호를 비롯한 통신 정보가 담겨있는 유심.
핸드폰이 다 박살나도 이 작은 심 하나만 살아있으면 웬만한 건 다 복구할 수 있었다.
부서진 핸드폰에서 유심을 꺼내, 집구석 한켠에 두었던 구형 핸드폰에 넣었다.
오래된 핸드폰이기는 했지만 임시로 쓰기에는 충분했다.
‘일단 연락이 오겠지.’
게이트 관리국, 내가 있던 직장이 부서졌다.
직장에서 무슨 공지가 올 게 분명했다.
“그래도 며칠 정도는 쉴 수 있겠지. 아무렴 건물이 무너졌는데 출근을 하라고······.”
- 재난 안내부 전원 헌터 협회로 정시 출근.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구두로 설명하겠습니다.
“아니 시발.”
우리 부서 단톡방에 올라온 공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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