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보상 - 스킬 강화권]
- 보유하고 있는 스킬을 강화합니다. 사용 시 소멸됩니다.
게이트 공략 1위 기여도 보상, 스킬 강화권.
지니고 있는 스킬을 강화시켜주는 물건이었다.
“이런 게 뜨네.”
내가 게이트 공략 보상이나, 아니면 헌터들의 물건 따위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스킬 강화권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다.
높은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원래였다면 C등급 게이트의 보상으로는 나오지 않을 정도였지.
그럼에도 내 손에 이게 들어 온 건, 기여도 100%를 내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데케레프의 도움도 받긴 했지만 얘는 내 사역마니까 내 공략 기여도로 취급되는 모양이었다.
“이거 값이 비싼 걸로 아는데.”
상당히 비싼 물건이었다. 적어도 수 억은 넘어가는 걸로 알았다.
애초에 헌터들이 쓰는 물건들은 전체적으로 값이 비쌌다.
솔직히 이런 물건이 손에 들어오면 누구나 갈등되는 게 사실이었다.
그냥 팔아버리고 돈으로 바꾸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지.
하지만.
“내가 써야겠다.”
데케레프의 말에 따르면 얼마 뒤면 우리 집 근처에 탑이 나타난다고 했다.
그 탑을 공략하지 못하면 지구 멸망이 찾아온다고 했고.
내가 앞장 서서 탑을 공략할 생각까지는 별로 없었지만, 그렇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을 지닐 필요가 있었다.
‘아마 탑이 생기고 나면 스킬 강화권의 값어치도 올라 갈 거야.’
헌터들은 탑을 공략하려고 할 것이었다. 탑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고.
그러니 헌터들이 강해질 수단인 스킬 강화권의 값어치도 올라갈 게 분명했다.
그때 가서 돈으로 구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비쌀 텐데, 지금 얻어서 쓰는 게 이득이었다.
‘돈이 지금 당장 쪼들리는 것도 아니니까.’
이미 집도 구해놨고 달마다 게이트 관리국에서 월급도 나왔다. 돈이 급하지도 않아서 팔 생각도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비싼 물건은 어떻게 팔아야 할지 그 루트도 명확하지 않았다.
지금은 돈 보다는 강해지는 데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었지.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스킬 강화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현재 보유하고 있는 스킬이 세 가지 입니다.]
[강화되는 스킬은 랜덤하게 결정됩니다.]
내가 현재 가진 스킬은 흡혈, 혈폭, 혈갑. 총 3가지였다.
랜덤이라는 걸 보면 세 개 중에 뭐가 강화되는지는 알 수 없는 모양이었다.
뭐가 강화되도 큰 상관 없었다. 세 가지 모두 잘 쓰고 있는 스킬이었으니까.
[스킬 강화권을 사용합니다.]
[스킬 - 흡혈이 강화됩니다!]
[스킬 - 흡혈(쿨타임 3초)]
- 10미터 이내 대상을 흡혈합니다. 흡혈 시 혈액이 충전됩니다.
> [스킬 - 흡혈(쿨타임 3초)]
- 15미터 이내 대상을 흡혈합니다. 흡혈 시 혈액이 충전됩니다.
- 범위 내의 모든 대상에게서 흡혈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흡혈을 사용하는 대상 하나 당 쿨타임이 3초씩 증가합니다.
“어떻습니까? 주인님?”
나는 강화된 흡혈을 살펴보았다.
“일단 사거리가 늘어났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변화는 흡혈의 사거리였다.
10미터라는 짧은 사거리가 15미터로 변해 있었다.
이것만 해도 꽤 괜찮은 변화였다.
흡혈도 좋은 스킬이긴 했지만, 혈폭이나 혈갑에 비해 자주 쓰지 않던 건 사거리가 짧기 때문이었다.
흡혈의 사거리까지 적이 오기를 기다리면 나도 위험해졌으니까.
하지만 사거리가 15미터로 늘어나며 좀 더 쓰기 좋아졌다.
‘흡혈이랑 혈갑, 혈폭을 동시에 쓰는 것도 가능하겠는데.’
흡혈을 쓰면 적에게서 피를 뽑을 수 있었다. 그 또한 피였으니 혈폭을 쓰는 게 가능했다.
거기다가 혈갑까지 둘러버린 다음 혈폭을 쓰면 순간적으로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을 테지.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광역 흡혈이 가능하다는데?”
범위 내의 모든 대상에게서 흡혈을 할 수 있다는 문장이 추가되었다.
시험해봐야 알겠지만 상당히 좋은 능력이 틀림 없었다.
원래는 대상 하나로부터만 흡혈이 가능했다. 그게 나름대로 번거로운 제약 중에 하나였다.
적이 하나 일 때야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지만, 아까처럼 오크 수 십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 들 때는 흡혈을 쓸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능력이 강화됨으로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제는 여러 적이 달려들어도 사거리 내에만 있다면 흡혈을 사용해서 전부 공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광역 흡혈을 함과 동시에 혈폭을 사용해도 될 거고.
여러 대상을 흡혈하면 그만큼 쿨타임이 늘어난다는 제약도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상당히 좋아졌다.’
스킬 강화권 한 번 썼다고 이렇게나 강해질 줄이야.
물론 스킬 강화권을 몇 개 더 얻는다고 계속 강해질 거란 보장은 없었다.
‘스킬을 강화할 수 있는 횟수도 정해져 있다고 들었는데.’
언제까지고 무한히 강화되는 건 아니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한계치가 존재한다고 했었다.
S급 헌터들의 경우 대부분 그 한계치까지 스킬 강화권을 사용한 뒤라고 들었다.
‘나처럼 스킬이 많은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대부분의 헌터들은 한 가지의 스킬을 가졌다.
나 같이 여러 개의 스킬을 지니는 경우는 흔치 않았지.
한 개의 스킬을 최대치까지 강화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스킬 강화권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나처럼 여러 개의 스킬을 전부 강화하기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었고.
“오오오!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그래. 오크들한테서 나온 마석은 다 먹었어?”
“물론입니다. 이미 한참 전에 싹 쓸어 먹었습니다.”
게이트에 들어오기 전에 데케레프에게 한 지시가 있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족족 녀석들의 마석을 먹으라고.
마석을 빼서 가져가봤자 판매할 루트가 마땅히 없었다.
불법 게이트 공략으로 획득한 거라 장물 취급일 텐데,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가 장물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차라리 데케레프한테 다 먹이고 수혈을 준비하는 게 더 나았다.
“그럼 너 먼저 집으로 가서 나 좀 소환해 줄래?”
지금 쯤이면 방치되어 있던 게이트가 공략되었다는 걸 게이트 관리국에서 눈치챘을 것이었다.
얼마 뒤에 조사관을 파견할 수도 있으니 빨리 피해야 했지.
불법적으로 게이트를 공략한 사실이 알려져 봐야 좋을 것 하나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데케레프가 게이트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갈 즈음에는 마법으로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녀석의 비행은 빠른 편이었으니, 여기서부터 우리 집까지 가는 것에도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가끔 방치되는 게이트 있으면 공략하러 와야겠다.”
어차피 야수왕의 반지로 인해 잠을 자야 할 저녁 시간에 깨어 있었다.
이렇게 방치되는 게이트가 있으면 몰래 공략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스킬 강화권 같은 보상도 받을 수 있을 테고.
=====
“자. 다들 좋은 아침.”
부서의 문을 열고 안유진이 들어왔다.
피곤한 기색으로 소파에 앉은 안유진이 내게 손짓했다. 커피를 타오라는 신호였다.
“이준혁, 너 요즘 혈색이 좋다? 뭐 보약이라도 챙겨 먹냐? 나도 소개 좀 시켜주라.”
내 혈색이 좋다는 이유는 손에 끼고 있는 야수왕의 반지 때문이었다. 이걸로 인해 피곤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 얼굴빛이 좋아졌다.
한 모금에 커피 두 잔을 원샷 때린 안유진이 내 반지를 발견했다.
보는 것만으로는 장비의 설명을 읽을 수 없었다. 디자인도 평범한 쇠반지라 눈에 띄지 않아서 항상 차고 다녔다.
“어어, 이게 뭐야? 너 결혼했냐? 이거 얼굴 빛이 좋은 이유가 있었네. 여자 만나고 다니면 다들 혈색이 좋아지더니만.”
“아뇨. 그냥······.”
“아, 그럼 약혼 반지야?”
나는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혼자 설레발 치기 시작했다.
“······부럽다. 아니, 근데 내가 그렇게 별로인가? 다른 헌터들 보면 같이 몬스터 잡다가 사귀기도 하고 그러던데. 나는 그런 게 일절 없더라고?”
안유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소파에 등을 기댔다.
“별로라기 보다는 좀 다가가기 어려운 면이 있죠.”
평소와 똑같이 잠깐 말동무를 해주기로 했다.
“그래? 어디가?”
“아무래도 A급 헌터시잖아요. 되게 쎈 헌터님이시니까······. 아니, 그것보다 약혼 반지 아니에요. 여자친구도 없고요.”
반지를 들어보이며 정정했다.
장비라는 걸 밝히기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없는 애인이 생기는 것도 원치 않았다.
애초에 약지에 끼지도 않았는데 왜 제멋대로 결혼 반지라고 생각한 걸까.
“그래? 그럼 뭔데?”
“어······ 우정 반지 비슷한 거예요.”
“······무슨 사내 놈이 같잖게 우정 반지야?”
안유진이 어이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너 나 안마 안 해준지도 오래됐다?”
지난 번에 월드 보스를 쓰러뜨리고, 혈폭의 부작용으로 인해 쓰러진 뒤 부터.
안유진은 내게 안마를 부탁하지 않았다.
안유진은 내가 쓰러진 이유가 과로와 함께 안마로 인한 피로가 중첩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미안해 하면서 안마를 안 시키게 됐던 것이었지.
“오랜만에 안 되나? 피곤하면 말고.”
하지만 안마를 안 받는 것도 한계가 있던 모양이었다.
미안해 하면서도 부탁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안유진에게 다가갔다. 내가 쓰러졌던 건 안유진 때문이 아니었다. 혈폭을 과도하게 쓴 게 원인이었지.
게다가 지금은 짐승왕의 반지 덕분에 힘이 넘쳤다.
안유진 마사지 쯤이야 힘들지 않았다.
“오오, 그래, 이거지. 다른 애들한테도 시켜 봤는데 영 시원치가 않아서. 다들 대충하는 것 같더라고.”
당연히 대충하지.
한 번 제대로 해주면 계속 시킬 게 분명하니까 다들 설렁 설렁 하는 게 틀림 없었다.
“음음, 너 손 힘이 이렇게 좋았나?”
안유진이 작게 감탄했다.
데케레프에게 두 번째 수혈을 받은 뒤 처음으로 하는 마사지였다.
수혈을 받을 때마다 신체 능력 또한 좋아졌다. 손아귀 힘이 강해진 건 그 때문이었다.
짐승왕의 반지 덕에 손목과 팔에 피로도 크게 없었으니 힘을 아끼지도 않는 중이었고.
안유진이 어깨를 돌리더니 얘기했다.
“아 맞아. 내가 좀 있으면 지방으로 며칠 출장을 가거든?”
“출장이요?”
“어, 무슨 이상한 경매 같은 게 있나 봐. 협회장이 나더러 거기서 호위를 서달라지 뭐냐?”
나도 들은 것 같았다.
얼마 뒤면 부산에서 큰 경매 행사가 열린다고.
바다를 통해 들여 온 물건들을 가지고 경매를 하는 모양이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온다고 했었지.
나 같은 일반 개인이 참여하기에는 물건 가격대가 높았다. 몇 천에서 몇 억은 기본으로 넘어가는 경매였다.
길드나 회사 단위로 참여하는 커다란 행사라고 얼핏 들었다.
“경매가 사흘 동안이나 진행된다나봐. 나도 숙소에서 경매장까지 왔다갔다 해야하고. 그래서 운전기사겸 짐꾼 같은 게 한 명 필요한데······ 너 할래?”
“제가요?
“너 운전 면허는 있지?”
“예. 있기는 한데요.”
게이트 관리국 직원들은 가끔 이렇게 차출 되는 경우가 있었다. 협회 헌터들의 수행원 느낌으로.
특히나 재난 안내부는 비교적 일이 널널한 편이고, 헌터들이 자주 들락거리기에 이런 일이 많았다.
“뭐, 부산까지는 기차 타고 갈 거고 운전은 부산 내에서만 해주면 돼. 돈은 다 내가 댈 테니까 짐 정도만 들어주면 일 끝이야. 오면 추가 수당 넣어줄게.”
이윽고 안유진이 나를 데려가는 주된 이유를 밝혔다.
“가서 그······ 안마도 좀 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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