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태양 속으로(6)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우리 의견을 전해줬으니까 나머지는 페첼이 알아서 생각할 문제야. 우리는 오늘 바로 계획이나 세워 보자고."
머릭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큰 가방에서 돌돌 잘 말린 지도를 꺼냈다.
"이스메이가 잡혀있는 곳은 아마도 드레곤레어 일거야. 위치를 알고 있다는건 참으로 다행이지"
드래곤이 잡아갔으니까 드래곤레어에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드래곤이 납치해간 상황은 비정상적이지만 메이가 드래곤레어에 있다는게 당연하다니. 참으로 웃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길이 아주 더럽게 멀어. 현재 우리 위치로 보면 이 나라를 횡단해야 한다고. 게다가 세로로 긴나라인데 세로로 횡단해야 하지."
머릭은 손가락으로 가야할 길을 쭉 그어서 보여주었다. 내 국가는 '데아폴리스'라 불리며 특징으로는 땅만큼은 아주 크다는 거다. 그것도 세로로 말이다. 평소에는 별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거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으로 가야한다 생각하니 머리가 어지럽다.
"게다가 수도에서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서 수도는 꼭 들려야 하네. 전에는 여기서 수도까지 가는데 넉넉한 휴식까지 더해서 약 한달 반 정도 걸렸었지. 우리끼리 똑같은 길을 서두른다면 2주 정도는 줄일 수 있을 걸세, 휴식과 보급을 최소한으로 간다면 3주까지 줄일 수 있을 걸세."
"아니 휴식은 중요해. 멀리 가는 만큼 예상치 못한 문제가 많이 발생할 거야. 게다가 수도 위로는 마물이 많다고 들었어. 도착하기도 전에 전멸해서는 의미가 없어."
머릭과 누실라도 동의 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아마도 수도까지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야.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지."
나는 뭐가 문제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 했다. 머릭은 나의 반응을 한 번보고 다시 말을 이어서 했다.
“수도까지는 말을 타고갈 수 있어서 금방 도착하겠지만 수도부터 레어까지는 길이 너무 험하고 위험해서 말을 탈 수가 없네. 수도부터 레어까지 최소한 한달은 생각해야 할 걸세."
“말을 못 탄다고? 그럼 전에도 말 없이 걸어서 간 거야?”
그렇게 되면 머릭이 여기까지 오가는데 상당히 오래 걸렸을 건데 그러면 메이가 이 집을 나간 날짜랑 안 맞는다.
“아니, 우리는 다른 수단을 이용했지. 마법이세. 왕궁에 있는 대단해 보이는 마법사가 우리를 도와줬지. 왕의 명령이었지만 말이야."
마법? 마법이라면 우리도 마법사가 있다. 고개를 돌려 누실라를 보았다. 평범하고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우리 마법사는 아쉽게도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실력은 좋은 마법사이니 약간은 기대해 볼 만 하지 않을까?
“마법이라면 우리 쪽도 마법사가 있다고. 그렇지? 누실라?”
“그래, 누실라. 자네는 마법사라고 했지? 자네도 순간이동 같은 걸 쓸 수 있나?”
순간이동? 그건 힘들지 않나? 가만히 듣고 있던 누실라도 역시 이마를 찡그렸다. 그러고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응? 텔레포트? 그만한 마법을 달걀프라이처럼 뚝딱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못 하는 건가? 같은 마법사인데?”
“못. 해. 나는 여러 서포트가 있어야 간신히 7레벨 주문 정도 쓸 수 있다고 머릭 너가 말한 텔레포트는 9레벨 주문이라고. 고위 마법 중에도 한참 고위 마법의 영역이야. 휴먼 중에 그걸 쓸 수 있는 인재라면 뭐... 대마법사 알타이르 정도겠지.”
“그 양반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허참... 그거 아쉽구먼”
머릭은 정말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머릭이 아직 말은 안 했지만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알 것 같았다. 마법의 서포트가 없으니 순탄하게 가더라도 2달 정도. 재수가 없으면 더 플러스 될 수도 있다는 건가?
“머릭. 메이가 정확히 언제 잡혀갔어?”
나는 머릭이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으로 여행 기간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 물어 보았다.
“5월 19일 저녁일세.”
"어라? 혼자 여기까지 오는데 3달이나 걸렸네? 혼자 오면 오히려 더 빠르지 않나?"
"드래곤 녀석이 친절하게도 수도로 우리를 마법으로 날려버려서 왕궁에 그만 붙잡혀 버렸지. 그래서 한달 가까이 심문을 받았네. 다행이 더 길어지지 않고 나올 수는 있었지만 시간을 많이 허비해 버렸어."
"그러면 수도에서 레어로 가는 길은 머릭도 모르는 거야?"
누실라가 머릭에게 물어보았다. 누실라의 말대로 머릭은 텔레포트로 왔다갔다 한것이니 그 길은 잘 모른다는게 된다.
"그렇게 되겠군. 나도 지식으로만 알 뿐이지 직접 가본적은 없네."
지식이라도 아는게 어디냐. 하지만 잘못하면 길을 헤멜수도 있다는 소리다. 드래곤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지만 반년이나 살려둘 만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가? 지금도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더 지체할 수록 위험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우리도 최대한 빨리 가야한다.
“우리도 혹시 대마법사를 만나 텔레포트를 써달라 할 수 있을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어림도 없지”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게”
예상은 했지만 누실라와 머릭은 단번에 내 의견을 쳐냈다. 나도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뿐인데 바보를 보는듯한 눈길은 치워줬으면 한다.
“데이먼, 이건 기밀 임무였네. 외부에 발설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걸세. 나도 자네도 말이지. 이 자리 떠난 그 키작은 친구에게도 단단히 입 단속 좀 부탁하네”
“그런데 머릭, 너는 굳이 우리한테 와서 도움을 청했잖아. 그래도 괜찮은 거야?”
“당연히 괜찮지 않네. 내가 구금된 것도 외부 발설을 막기 위해서였지. 아마 내가 떠벌리고 다닌가는걸 아는 순간 당장 나를 잡으러 오겠지. 하지만 그녀와 나는 친구라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는 이정도 위험은 감수 할 수 있네. 그렇다고 자네들을 말려들게 한 건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네.”
머릭은 미안하듯 말했지만 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여동생을 생각해 주는 그 심성에 고마운 마음만 생길 뿐이었다.
“머릭”
“응?”
누실라가 머릭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 보며 말했다. 영문을 모르는 머릭은 멀뚱멀뚱 차다 볼 뿐이었다.
“첫 만남 때 무례하게 대한 걸 다시 한번 사과할게. 메이를 대하는 너의 마음을 의심한 것, 나였으면 아주 화났을 거야. 미안해”
평소에는 항상 술을 쳐먹고 흐리멍텅한 눈인 그녀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진심을 보이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 소리 말게. 이미 그건 끝난 일이야. 계속 말하면 어색해지지 않는가.”
머릭은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변화에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문득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머릭, 왕궁에서 갑자기 너를 왜 풀어준거야? 계속 가두는게 비밀을 지키는게 더 좋은거 아니야?"
"뭘 당연한걸 묻나. 그 녀석들이 놓아 줄리가 있겠나? 내가 탈출했네."
"뭐어?" "뭐?" 나와 누실라가 동시에 말했다.
"아, 너무 걱정하지 말게. 분위기를 보니 녀석들도 기를 쓰고 잡을 생각처럼 보이지는 않았네. 그래서 탈출이 가능했던거고 수배도 안뜬것도 그 이유지."
"뭐... 그러면 다행이지만..."
비밀을 지키겠다고 요란하게 수배까지 내려서 잡았다가는 오히려 위험할 거라고 판단한 거겠지.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으니 왕궁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겠다.
“그러면 이제 대충 다 정해진 건가?” 나는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으음... 미안하지만 자네들이 해줘야 할 것이 하나 있네."
나는 기지개를 피다 말고 팔을 다시 내렸다. 아직도 뭔가 있다는 건가? 아무리 먼 거리라지만 출발하기가 참으로 힘들다. 하지만 이것이다 메이를 구하기 위해서 나올것 같은 한숨을 억지로 참았다.
"그게 뭔데? 말만해 그 정도는 우리가 준비할게."
머릭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돈일세. 그것도 상당히 많은 돈."
"돈? 돈이야 먼 길을 여행하는거니까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많이 필요해?"
"많을 수록 좋네. 얼마가 들지 예상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수도에서 레어까지 지름길을 가는데 사람을 한 명 고용해야 하네. 일반인은 거기를 지나가기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 사람이 아주 몸값이 비싸서 말이야. 게다가 짜잘한 비용하지면 넉넉히 금화로 8~9개면 될 걸세."
"금화 9개?" 나는 깜짝 놀랐다.
금화로 9개라고? 나랑 여동생이랑 아무리 열심히 돈을 모았다지만 그 정도로 큰 돈은 없다.
모험가 수입이 괜찮은 것은 맞지만 그건 위험한 일만 골라서 하는 애들 이야기다. 나 같이 적당히 하는 모험가는 여유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은근슬쩍 시선이 누실라에게 갔다. 내가 아는 사람중 가장 경재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실라 뿐이다.
"아... 아홉 개?"
저건 틀렸군. 도저히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해한다. 금화 9개는 너무나 큰돈이다.
내 친구 로렌스가 경비대로 일하면서 한 달에 은화 세 개를 받는다고 하니까 금화 하나를 벌려면 로렌스 기준으로 8개월을 아무것도 안 먹고 모으기만 해야 한다. 게다가 금화 여섯 개면 그걸 아홉번 반복해야 한다. 그런데 절재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나와 누실라가 금화 9개를 가지고 있을리가 없다.
달그랑!
식탁위에 금화 두 개가 올라온다. 나와 누실라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내가 가진 돈 전부이네. 이것까지 포함해서 자네들도 최대한 돈을 모아주게. 그런데 넉넉잡아 금화 9개라는거지 상당히 쌀 수도 있네. 그러니 너무 목숨을 걸지는 말게. 돌아올 집까지지 팔면 싸울때 의욕이 나겠나?"
"머리익...!"
이녀석 상당히 좋은 녀석이구나...! 고작 몇달만난 짧은 인연에 금화를 선뜻 내주고 목숨까지 걸었다. 감동의 눈물이 안나오면 이상할 정도다. 나는 손을 뻗어 머릭의 손을 잡으려고 일어나가 허리춤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어?"
허리춤에 대충 쳐넣고 잊고 있었던 물건의 감촉이 느껴졌다. 영주님이 나에게 보여준 두루마리는 고용계약서와 사망통지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표'였다. 나는 다급히 허리춤에서 넣어둔것을 꺼내 책상에 펼렸다.
"이건 뭐야?" 누실라가 물었다.
"수표야. 미리 말하지만 진짜 수표야."
"수표?"
누실라는 종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초록색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뭐야 이게? 10금화? 무슨 금액이 이렇게 커? 게다가 네 이름이 적혀있네?"
"이건... 메이의 목숨값이야."
내 짧은 설명에도 누실라는 이 수표의 의미를 바로 파악했다. 그렇기에 그녀도 숙연해 질 수밖에 없었다. 이 수표는 토벌에 실패시 절반을 주고 만약 사망시 전체를 주기로 한 계약으로 왕궁의 이름으로 지급된 수표였다. 메이가 죽었으니 가족인 내 이름으로 발행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 메이는 대리인을 나로 정한 거겠지.
"하지만 나는 목숨 값이라 생각하지 않아. 그래, 굳이 말하자면 정신적 피해 보상금이야. 그러니 이건 메이를 구하는데 감사히 쓰도록 하겠어."
"그래... 그거면 기분 좋게 쓸 수 있겠네."
누실라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머릭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그럼 돈도 해결 되었으니 출발하는 일만 남았군. 하지만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야 하니 첫 목적지는 여기서 북쪽 방향에 있는 ‘아르메니아’라고 불리는 대도시를 가야겠군. 거기에는 은행이 있을 걸세.”
"아르메니아? 거기는 좀 멀지 않아?"
"뭐, 바로가겠다는 것은 아니고 중간에 휴식겸 보급을 위해 마을 몇 곳을 들리긴 할 거네. 그걸 고려해서 출발 날짜를 정해주게."
“천천히 출발해서 좋은 건 없겠지. 오늘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으니까 지금이라도 준비하고 내일 새벽에 출발하도록 하자”
“잠깐" 누실라가 손을 들며 말한다.
"난 집에 돌아가서 끝내고 싶은 일이 있어. 하루만 시간을 줘”
누실라가 무슨 볼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오랜 여행이 될 테니 마쳐야 하는 일도 있겠지.
“그래 그럼 이튿날 새벽으로 하자”
내 의견에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꼭 챙길 것을 정하고 이야기를 마쳤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에 마을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누실라와 헤어졌다. 머릭은 머물 곳이 없으니 출발할 때 까지 나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 작가의말
살짝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2025. 1. 11. 내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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