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웨어울프(9)
“모두! 도망쳐!!!”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반사적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 몸은 멋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녀석은 기다린 거다! 우리가 승리에 취해 방심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동족을 미끼로까지 사용하면서까지 말이다!
모두가 나의 반응에 어리둥절하고 있었지만, 페텔만큼은 나의 외침에 반응해 주었다. 페첼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내 표정을 보고 상황의 긴박함을 알았나 보다. 바로 망설임 없이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누실라의 등을 발로 있는 힘껏 찼다.
현명한 판단이다. 우리가 모두 중상을 입었을 때 치료 마법을 가진 누실라가 없으면 여행에 큰 차질이 생긴다. 그렇기에 누실라를 살리는 게 현명한 판단이다. 하지만 그 판단에는 자신의 안전은 포함하지 않은 듯 했다.
누실라는 페첼의 발길질에 앞으로 몇 번 바퀴 굴러갔다. 그리고 페첼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화난 듯 짜증 섞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그 뒤에는 더 이상 페첼과 머릭은 없고 분노로 이성을 잃어 흉포해진 웨어울프만이 서 있었다.
“딸꾹!”
넘어져 있는 누실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딸꾹질까지 하며 몸이 경직되었다. 아주 좋지 않다. 마력이 바닥난 누실라는 움직이기조차 힘들 텐데 마법사를 지켜줄 페첼과 머릭은 이미 웨어울프의 일격에 저 멀리까지 날아갔다.
어중간한 나무는 일격에 분질러 버리는 웨어울프의 공격을 정통으로 맞았다. 즉사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크아아아악!” "꺄아아악!"
웨어울프의 포효와 누실라의 비명이 동시에 울렸다. 웨어울프의 거대한 입이 누실라의 머리통을 부수기 위해 달려온다.
"누실라! 고개 숙여!"
누실라는 나의 외침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나는 누실라와 웨어울프 사이에 끼어들어 검을 뽑을 틈도 없이 웨어울프의 입에 검집 채로 재갈 물리듯이 밀어 넣었다. 으드득! 하는 검집과 검날이 씹히는 소리가 났다.
간발의 차이였다. 웨어울프를 목격하자마자 바로 달렸기에 다행히 늦지 않았다. 게다가 페첼이 누실라를 조금이라도 밀어주지 않았다면 늦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안도감도 금방 가지 못하고 웨어울프의 완력에 내 허리가 뒤로 꺾이기 시작했다.
“으으윽! 누실라! 어서 주문을!!”
"하지만, 마, 마력이···!"
젠장! 너무 급박했던 나머지 까먹고 있었다.
"그럼 도망이라도 가!!! 으으윽!"
누실라는 내 외침에 허둥지둥 빠르게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한다. 오래 버티지는 못한다. 놈의 힘은 점점 강해졌고 녀석의 뜨거운 콧김이 나의 코를 간지럽혔다. 코앞에서 내 머리보다 큰 주둥이가 이빨을 맞물며 딱딱거리고 있으니 도저히 현실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온몸을 울리는 통증이 싫어도 현실임을 알려준다. 이 녀석과 힘겨루기를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지? 10초? 5초? 몇초인지 가늠조차 가지 않는다. 1초가 영겁의 시간 같았다.
젠장! 이제는 몸이 한계다. 허리는 끊어질 것만 같고 머리는 피가 쏠려 코피까지 난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모두가 죽는다! 쓰러지더라도 1초라도 더 버텨야 한다!!
1초라도 더 버티기 위해 있는 힘껏 녀석을 밀어내지만 조금도 거리가 벌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크아악!”
시발! 녀석이 나와의 힘 싸움을 포기하고 내 검을 물고 있는 채로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저 손이 떨어지면 나는 끝장이다. 여기서 끝날 수는 없어! 아직 메이를 구하지도 못했다고!
하지만 녀석의 손은 금방 최고점까지 올라가 거대한 손이 달을 가렸다. 달빛을 받은 녀석의 손톱은 화려한 빛을 내는 녀석의 손톱이 내 머리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아마도 콤마 몇초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내 대가리는 몸과 이별을 하겠지.
고작 콤마 몇초의 시간이다. 고작 그 정도의 시간인데 아주 느리게 느껴졌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주마등인가? 시간은 정지한 듯 멈추었고 지금 까지의 기억이 플래쉬 백 하기 시작한다.
여행 시작부터 더웠던 여행길, 여동생과 함께한 동료들과의 추억, 로베르타 씨와 처음 만났을 때, 말존 아저씨의 마차에서 몰래 숨어 살다가 걸렸던 일···. 나의 기억은 점점 과거로 갔다.
그런데 과거로 가면···. 기억이 과거를 가버리면 싫었던 그날의 기억마저 도 떠오른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다르게 항상 미소가 가득한 우리 어머니···. 하지만 더는 웃지 못하는 우리 어머니. 마치 인형처럼 누워서 계신 어머니. 어머니는 갈색 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인형처럼 누워있네. 그리고 어머니를 안고 있는 우리 아버지···. 평소와 같은 무뚝뚝한 표정···. 그런 아버지에게 외치는 나···. 아버지···. 허리춤에 있는 그 검은 무얼 위해 있나요···. 참아야 한다고요?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만큼은 꼭 지킬 거라고? 자기 아내조차 못 지킨 네 녀석이···!?
"지랄하지 말라고!!!"
터져 나오는 분노에 순식간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목 아래 말존씨가 준 목걸이에서 푸른 광채가 뿜어져 나왔지만, 그 순간의 나는 인식 하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공포를 덮었다.
"내가 네 녀석처럼!!"
양손을 검의 손잡이로 옴기고 녀석이 입으로 씹고 있는 검집에서 몸을 힘껏 돌려 검을 억지로 뽑는다. 드드득! 검신에서 불길한 소리가 난다. 검날이 나갔나 보다. 하지만 그게 어쩄냐는 거냐. 나는 검을 힘껏 뽑은 반동으로 몸이 돌아갔지만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더욱 가속한다. 그와 동시에 몸을 숙여 앞으로 전진한다.
머리위에 강력한 풍압이 지나간다. 오싹한 느낌이 들며 고개를 좀 더 숙이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고 더욱 깊이 전진한다. 녀석은 나라는 지지대를 잃어서 내 쪽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놈의 무게는 수백kg은 될 것이다. 아마 깔리는 것만으로도 큰 부상이겠지.
"가만히 지켜만 볼 것 같아?!!"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검을 수직으로 세워 놈의 심장 쪽으로 붙는다. 푸욱 하고 놈의 살가죽에 검신이 박히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고작 웨어울프의 무게를 이용했다고 해서 놈의 심장에 검이 닿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이 정도의 힘으로는 놈의 털을 뚫어 심장까지 도달 할 수 없다!
"으아아아악!"
그렇기에 나는 발을 뒤로 뻗어 내 몸을 지지 시키고 땅을 강하게 밀어 쓰러지는 녀석의 심장에 검을 꽂고 가슴을 어깨로 기대서 밀어낸다. 온몸에 있는 모든 세포의 힘을 쓴다는 기백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수백 킬로가 넘는 녀석의 무게를 들어 올리려 하자 허벅지가 불에 붙은 듯 고통스럽다. 아니, 허벅지만이 아니다. 허리에는 뼈가 갈리는 소리가 났고 무릎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다.
“아아아아악!"
녀석의 몸을 밀어낼 때마다 점점 검신이 녀석의 근육 속으로 깊게 박히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놈은 마물이다. 고작 이 정도의 깊이로는 치명상이라고 볼 수 없다. 하물며 웨어울프 상대로는 더욱이 말이다. 그렇지만 더 이상 놈의 무게는 이용할 수 없었다. 놈은 이제 거의 일어서 있었고 나는 녀석과의 신장 차이 때문에 나의 검은 내 머리 옆까지 와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달리기로 했다. 녀석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고 계속해서 달려갔다.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내 다리가 멈출 때까지다. 그러나 그때 나의 등에서 날카로운 감촉이 느껴진다. 내 등의 가죽이 벗겨지는 듯한 통증이 오면서 뜨거운 물이 흐르는 느낌이 든다.
“카악! 카아아아악”
다행히도 녀석이 고통스럽게 울부짖는다. 효과가 있다! 그렇기에 멈추지 않는다! 계속해서 전진한다. 계속해서, 계속해서 달린다!
“으아아아아!”
쿵! 둔탁한 충격음이 들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진격이 끝이 났다. 앞에 있는 장애물에 부딪힌 것 같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발만 미끄러질 뿐이다. 검도 이제 검날이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놈이 검을 뽑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 마고는 말이다.
“허억! 허억! 하악!”
검에 매달려 가쁜 숨을 몰아쉰다. 더 이상 손가락 하나 꼼짝도 할 수 없다.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이 이상은 하늘에 맡길 뿐이다. 녀석이 제발 죽었길 바라며 고개를 들어 놈의 얼굴을 바라본다.
젠장···. 끈질긴 녀석이다. 심장을 꿰뚫렸는데도 녀석은 마지막 힘을 짜내서 나를 죽이기 위해 입을 천천히 벌리고 있었다.
"카아아...."
숨의 뜨거운 숨결이 내 얼굴을 덮는다. 내 머리가 녀석의 입속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녀석이 숨이 끊길 때까지 검에서 손을 뗄 수는 없다. 이 검을 포기하면 지금도 내 등을 긁고 있는 저 손이 검을 뽑을 것이다. 그러니 죽더라도 이 검은 놓지 않을 거다. 내가 죽더라도 모두가 살면 괜찮다. 나 대신에 모두가 메이를 구해 줄 거다.
“데이먼! 고개 숙여!”
죽음을 각오한 순간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울린다. 나는 뜻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몸이 반사적으로 빠르게 몸을 숙였다. 그러자 머리 위로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촤아악
얼음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웨어울프의 머리는 마치 얼음속 물고기처럼 통째로 얼었다. 이 마법은 몇 번 보았기에 알고 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만 돌려서 말했다.
"누실라!"
“하.... 콜드 빔이야.... 고작 3레벨 주문이 먹혀서 다행이네”
내 등 뒤에는 나의 예상처럼 누실라가 서있었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지팡이의 끝은 떨리고 있었다.
"너.... 마력도 없으면서 어떻게....?"나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그러나 나는 말하는 도중에 깨달아 버렸다. 누실라의 입 주변은 붉은색의 피가 가득 묻어 있었다. 내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누실라는 힘없이 미소를 지으면서 지팡이에 기대면서 걸어왔다.
"그래···. 마력이 없어서 억지로 끌고 왔지···. 궁금할까 봐 말하자면 웨어울프의 피는 정말 맛없었어···. 몇 번이나 토할 뻔했다고."
누실라의 농담에 나는 실없이 웃었고 웃으니, 긴장이 풀렸었다. 몸의 긴장을 푼 상체가 먼저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에 쓰러지자, 아까까지 보이지 않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웨어울프가 나무에 매달려 나를 물어뜯으려 했던 머리가 얼어붙어 있었고 녀석의 심장 부분에 검의 손잡이만이 보였다.
나머지 검신 부분은 놀랍게도 나무의 건너편까지 보였다. 내 검이 웨어울프를 뚫고 나무까지 관통했다는 것이다.
“하하···. 진짜냐고···.”
이 믿기지 않는 광경에 나는 그만 한 번 더 실소를 해버렸고 갑자기 닥쳐온 깊은 잠에 나의 의식은 끊어졌다.
- 작가의말
최대한 빨리 업로드를 했지만 아쉽게도 살짝 늦었습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