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다리 위 투기장(3)

시간은 이미 자정을 지났고 원래라면 우리는 어둠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또다시 귀찮은 일에 빠지고 말았다.
"저희가요? 저 결계를?"
나는 노인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맞소. 자네의 친구가 마침 마법사니, 저 결계를 풀 방법을 알지 않겠나? 자그마한 온정을 베풀어 주게."
자그마한 온정? 고작 그 정도의 문제라면 당연히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도 여기를 지나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돌려 주실까를 바라보았다.
"무리야. 방법이 없어."
나의 시선을 받은 누실라는 단호하게 말했다.
"마법사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정말로 방법이 없나요?"
노인은 누실라의 말을 듣자 다급하게 되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실라의 대답은 비슷했다.
"없어. 정확하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지만 하나는 현실적이지가 않고 다른 하나는 이미 너희들이 하고 있잖아."
"이미 하고 있다고···? 저 1대1 대결을 말하는 거야?"
내 대답에 누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결계의 규칙을 지키며 술사를 쓰러트리는 방법이야. 근대 이미 57전 57패라면서."
"분하지만···. 그게 맞네. 그런데 맨손으로 오크를 이길 수 있는 휴면이 얼마나 있겠나?"
그것도 그렇다···. 규칙이 너무 저놈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거 아니야?
"다른 방법은 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마력이 고갈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
"그러면 글렀네. 벌써 이 주째 저러고 있다며."
어느새 페첼이 우리 사이에 끼어서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온 줄도 몰랐다.
"그 말이 맞아. 마력 양이 많지도 않은 오크가 두 주 동안 결계를 유지하는 것은 말이 안 돼. 아마 무언가의 도움을 받고 있겠지."
"그렇다면 그 마력의 원천을 부수면 되는 거 아닌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인이 예리하게 질문했다. 마침, 나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실라는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바보도 아니고 그걸 결계 밖에 두는 녀석은 없지. 그리고 저 오크놈이 그걸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뭐···. 이 뒤는 말 안 해도 알겠지?"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했다. 결국에는 무얼 하든 결계의 규칙을 지키면서 놈과 싸워야 한다는 거잖아?
"그게 뭐야. 그런 사기가 어디 있어. 마법 너무 사기 아니야?"
옆에서 지켜보던 처음 보는 남성이 입을 열었다. 누실라는 그 말을 듣고는 입을 열었다.
"결계는 사용하기 어려운 마법 중 하나야. 작은 결계라도 엄청난 준비가 필요해. 가성비도 별로고 말이야."
"아니, 가성비는 아주 좋아 보이는데?"
혼자서 이 많은 인원을 막고 있다. 이게 가성비가 안 좋으면 뭐란 소리냐?
"아니지. 생각해 보게 데이먼. 통행을 막는 거라면 뭐 하러 저런 번거로운 짓을 하겠나? 골목이라면 돌덩이로 막고 지금 같은 다리라면 그냥 부숴버리면 되는데. 실제로 다른 다리는 이미 부서졌다고 하지 않았는가?"
머릭의 지적은 환상적이었다. 나는 그의 논리에 오류를 찾을 수 없었다. 그걸 들은 누실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머릭이 말한 것처럼 결계로 할 수 있는 대부분 일은 마법의 힘 따위는 필요 없이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 그래서 결계는 진짜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가성비가 몹시 나쁘다는 거야."
"그럼 저놈은 왜 저걸 한 거야?"
"뭐긴 뭐겠나. 1대1 싸움하고 싶어서겠지."
나의 또 다른 의문을 머릭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너무나 시원한 대답이었기에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머릭을 바라보았다. 머릭은 시선이 느껴지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결계의 규칙이 2명 만이 입장 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봐 할아범. 저기 결계의 규칙, 짐작되는 만큼 말해줘"
페첼이 머릭의 말을 듣자, 노인에게 건방진 투로 말을 걸었다. 아마도 결계의 조건을 다시 확인하려고 그러는 거겠지. 그런데 역시 저 싹수없는 말투가 문제다. 저놈의 말투를 듣자마자 나는 화들짝 놀랐다고. 그래도 다행히 아르테마스씨는 기분이 상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규칙이라 하면···?"
"저기서 무언가를 하면 쫓겨나거나 페널티를 받을 거야. 아까 3명 이상 들어갈 수 없다며? 그런 거 말하는 거야."
페첼이 마치 치매 노인을 대하듯이 말했다. 저놈이 입을 열 때마다 내 심장이 아프다. 큰일이 나기 전에 저 주둥이를 막아버리는 게 좋을까?
"아아···. 그런 거라면 한 가지 더 있지. 무기를 들면 안 된다는 조건이 있어."
"그렇다면 저 결계의 조건은 비무장으로 2명 이하라는 게 되겠네. 역시 예상대로 그다지 까다로운 조건은 아니네. 혼자서 만들 결계라면 역시 이 정도가 한계겠지."
누실라는 그렇게 말하며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건 결국에는 달라진 게 없다는 건가? 저 오크 녀석 상당히 강하다고. 여기 있는 대부분의 용병은 이미 대부분 패배했다네."
아르테마스는 고심하는 듯 보였다. 거기 있는 모두가 다른 수는 없는지 고민했지만 누군가의 싹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당신들 사정이지. 우리는 그냥 강을 건너갈 거야."
당연하게도 목소리의 범인은 페첼이었다. 그 탓에 거기 있는 전원이 페첼을 바라본다.
"이봐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앞니가 없는 남자가 얼굴을 한껏 구기며 앞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페첼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한다.
"너희는 아마 마차랑 짐 때문에 시도하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는 아니야. 여기에는 마법사도 있고 여차하면 힘들겠지만, 배를 만들어서 가면 그만이야. 여기 싫은 우리 알 바가 아니라고. 알아서 해결해."
"이 자식이!"
남자의 위협에도 계속 말을 하는 페첼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페첼의 멱살을 과격하게 잡았다. 페첼은 변함없이 무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오래 봐온 나는 안다. 이 이상 내버려두면 페첼은 분명 저 남자를 팰 거다.
"이봐 그 이상은...!"
"애드먼드! 그만두거라!"
내가 급하게 나서서 남자를 막으려 했지만, 다행히 나보다 먼저 노인이 나섰다.
"하지만 어르신! 이 녀석 아까부터 말하는 꼬락서니 좀 보세요! 감히 어르신에게도...."
아무래도 페첼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었나 보다. 결국 저렇게 될 줄 알았다.
"그만하거라."
노인은 그럼에도 단호하게 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아주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결국은 혀를 차며 페첼의 멱살을 신경질적으로 풀어주었다.
페첼은 아무렇지 않게 옷을 가다듬기 시작했고 누실라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사람이 많은 이곳에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달그락 텅- 텅-
그러나 그때 옆에서 쇳덩어리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크게 들린다. 옆을 보니 머릭이 갑옷을 벗고 있었다. 그는 갑옷을 벗으며 말했다.
"이보게 페첼, 너무 딱딱한 소리는 할 필요 없네. 해보고 안 되면 그때 떠나도 늦지 않네."
갑옷을 다 벗자 가벼운 차림의 천 옷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의 옷차림보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인 것은 흉터였다. 그의 몸 여러 곳에는 위협적으로 보일 정도로 많은 흉터들이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머릭의 몸은 육중했으면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니, 이 정도면 머릭처럼 생긴 근육이라 봐도 될 것이다.
그의 모습만 봐도 알겠다. 머릭은 저 오크와 한판 해볼 생각이었다.
"마음대로 해보라고."
페첼은 포기한 듯 한숨을 쉬며 말했고 오히려 머릭은 활짝 웃으며 걸어갔다. 나는 자신 있게 걸어가는 머릭에게 지나치듯 말했다.
"괜찮겠어? 저 오크 녀석 싸움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던데? 오십···. 몇 승이 더라?"
"57승이야. 참고로 패배 없이 연승으로 57승이다. 내 앞니도 저놈이 가져갔지"
애드먼드라 불린 남자는 투정 부리듯 말했다.
"그렇다는데 괜찮겠어?"
머릭은 나를 보면서 씩 웃어 보였다.
"싸움 못 하는 드워프를 본 적 있나? 오히려 주먹다짐은 내 분야라고 할 수 있지."
그렇게 자신감을 내보이며 오른팔을 붕붕 돌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앞에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입구까지 길을 비켜주었다.
터벅터벅
머릭이 다리 쪽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잠시 멈춰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아이라이츠 머릭! 자랑스럽고 용맹한 드워프다! 거기 있는 오크는 어서 일어나서 나의 오라를 받아라!!!"
와아아아!
새로운 구경거리가 생겨서 그런지 모두가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엄청난 환성 소리를 질렀다. 머릭의 목소리는 다리 건너편에 있는 사람까지 들렸는지 건너편에서 까지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환호성에 반응하듯 오크도 천천히 일어나더니 머릭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머릭고 오크가 다가오는 걸 확인 하고는 오크가 있는 다리 중앙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둘은 금방 중앙에서 만나게 되었다. 저렇게 나란히 서 있으니 키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거의 두 배는 차이 나는 것 같다.
"흥! 제법 기개 있어 보이는 놈이 왔군!"
오크는 약간 기쁜 듯 보였다. 머릭은 오크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오크는 그런 머릭에 반응해서 전투 자세에 들어갔다. 하지만 머릭은 바로 싸우지 않고 한 손을 손바닥이 보이게 뻗었다.
"잠깐!"
누구나 알 수 있는 멈추라는 제스쳐였기에 오크는 잠깐 자세를 풀고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크흥! 뭐야! 나는 당장 싸우고 싶다고!"
아무래도 엄청난 호전광 인가 보다. 아니 호전광이 아니고서야 이런짓을 안 벌이겠지. 머릭은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
"그냥 싸움도 좋지만... 아무래도 이유가 있는 편이 더 재미있지. 거기 있는 오크여!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지!"
오크는 머릭의 말에 큰 콧구멍으로 숨을 내뱉으면서 말했다.
"흥! 당연한 걸 묻는군! 크흥!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다!"
증명···?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머릭도 나와 같이 느꼈는지 영문이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무슨 증명을 한다는 거지? 이런 짓을 한다고 무언가 증명이 되는 건가?"
오크는 슬슬 참기가 힘든지 약간 다급해 보였다.
"흡! 어떤 자가 알려 주었다! 후읍! 이 다리의 통행을 두 달 동안 막을 수 있다면! 킁! 내가 최강이라는 걸 모두가 인정할 것이라고!"
누구냐 그런 쓸데없는 정보를 알려준 녀석은···. 물론 통행량이 많은 이 다리를 혼자 막게 된다면 아주 유명해지긴 하겠지···. 최강이 아니라 민폐 쪽으로 말이다.
오크는 갑자기 오른손을 번쩍 들어서 하늘을 가리켰다.
"크흡! 그래서! 나는 여기를 막고 있는 거다! 훙! 그리고! 나는 증명할 것이다! 흥! 이 내가 하늘 아래 가장 강한 남자라고 말이다!"
오크의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어린애 꿈 같은 소망을 말했지만 여기있는 모두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지켜만 보았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알겠다. 남자라면 한 번쯤 꿈 꿔보았을 소망인 '지상최강'을 지금 저 오크는 실현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이것을 어떤 남자가 이를 비웃을 것인가! 나도 잠시 비웃기는 했지만 내 안에 약간 타오르는 듯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아마 다른 이들도 똑같이 느끼겠지 그러기에,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저 민폐뿐인 오크를 비판하지 않았다.
물론 누실라는 약간 질렸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지만 못 본 거로 하자.
"크하하하하하핫!"
하지만, 이 어색한 정적에서 머릭만은 그 자리에서 아주 크게 웃었다. 시원할 정도로 통쾌하게 말이다. 그 웃음에 오크는 화가 났는지 말투가 거칠어졌다.
"크흥! 뭐가 그렇게 우습지!"
"하하하핫...! 미...미안하네...하하하...! 결코... 비웃는게 아니라네!"
머릭은 실컷 웃어놓고 고개를 들어 오크를 향해 깔끔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그러고는 자기 손바닥에 침을 툇 하고 뱉고는 말했다.
"이런 사내가 있다는 거에 감동했다! 이거 싸울 맛이 나겠군!"
머릭은 팡팡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몇번 박수 치고는 두손 모두 주먹을 꽉쥐고 천천히 가드를 올렸다.
"네 녀석의 꿈! 절대 비웃지 않았다! 하지만 그 꿈! 나 정도에서 무너질 정도는 아니겠지! 덤벼봐라! 드워프의 자랑스러운 격투술 '바랏츠'를 보여주마!"
- 작가의말
어제는 집에 귀가할 수 없어서 연재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이틀 잠수는 하고 싶지 않아 집에 오자마자 검수 없이 바로 올렸습니다.
이상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다음날에 읽어보고 수정하겠습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