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고기

달그닥 달그닥
우리는 흔들리는 마차속에서 각자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누실라는 자신의 지팡이를 베게처럼 끌어안고 새우잠을 청하고 있었으며
머릭은 잠이 안오는지 마차 밖을 바라보면서 경치를 즐기고 있었고
페첼은 앉은 상태로 고개만 숙여서 꾸벅 꾸벅 잠을 자고 있었다
덜컥! 덜커덩!
딱!
마차가 심하게 흔들리자 내가 그만 누실라의 지팡이를 넘어트려 지팡이가 누실라의 이마에 맞았다.
"아야! 뭐야... 조심하라고..."
"아니... 그건..."
덜캉!
변명의 틈조차 주지 않고 마차안은 다시한번 심한 진동냈고 내 몸은 버티지 못하고 무력하게 굴러가 페첼의 몸을 강타하였다.
"...."
페첼은 고개만 살짝 들어서 불쾌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아무말 없이 나를 내려보았다.
"아니... 이건..."
덜컹!
또다시 변명할 틈도 없이 마차가 요동친다 이번에는 위험하게도 내 몸은 짐칸 입구 쪽으로 아무런 저항 없이 굴러간다.
"잠깐! 도, 도와줘!"
덥썩
"어이쿠! 데이먼, 가만히 안있으면 위험하다고"
굴러 밖으로 떨어질 뻔한 나를 마차에 다리를 걸쳐 밤하늘을 구경을 하던 머릭이 붙잡아 주었다. 후... 진짜 심장떨어질 뻔 했다.
"...나도 일부러 한거 아니라고. 미안한데 어떻게 좀 해주래?"
나는 지금 목걸이의 후유증으로 온몸에 힘이 없다. 그 탓에 심하게 흔들리는 마차안을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상황을 알고 있는 머릭은 슬며시 웃으며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나를 일으켜 짐사이에 끼우듯 밀어넣어 고정시킨다.
"이러면 괜찮나?"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꽤 편한 자세임을 확인하고 말했다.
"어... 쓰레기가 된 기분이지만 떨어지는 것 보다는 낫지"
내 대답을 들은 머릭은 다시금 짐칸 입구 쪽에 걸쳐앉아 밖을 구경하기 시작햇다.
"이번에는 자네가 고생이 많았군."
"엉? 아, 그렇지. 솔직히 그렇게 강한 놈과 붙은건 오랜만 이었다고."
갑자스러운 머릭의 위안에 잠시 당황했다.
"그래, 아주 강한 놈이었어. 아무리 나라도 정직하게 붙어서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들더군."
그때의 머릭은... 의외일 정도로 비겁한 수를 썻다. 죽은척에 부상당한 곳을 집요하게 때리기까지... 승리에 대한 집착이 놀라웠다.
"조금 놀랐다고. 나는 머릭은 죽더라도 야비한 수는 안쓰는 남자인 줄 알았어."
"흠흠...! 너무 놀리지 말게. 나도 조금은 비겁했다고 생각하네."
그는 그래도 약간은 부끄럽다고 생각하는지 얼굴을 살짝 붏히며 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화제를 전환하듯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보다 누실라... 평범한 마법사인줄 알았는데 아닌것 같군. 혹시 알고 있었나?"
"음... 대충은 알고 있었지."
나는 눈을 굴려서 누실라를 차다본다. 지팡이에 침을 흘리며 자고 있는 그녀를 보니 절로 표정이 구겨진다. 엘프의 고귀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이것도 하프라는 이유로 얼버무리겠지.
"누실라의 아버지가 휴먼이거든."
"하프라는 말은 들었네. 부친쪽이 휴먼이었나 보군."
"그래. 그런데 아버지가 생전에는 궁전 기사라고 했었어. 그 탓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어렸을때 호신술을 몇개 배웠나봐. 술 마실때마다 말하는 걸 보니 꽤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것 같았고 말이야. 실제로 본건 나도 처음이지만..."
"생전...? 그러면 지금은..."
머릭은 말을 하다가 말았다. 아마도 이유를 깨닳은 거겠지. 누실라는 하프지만 장명종이다. 아버지는 나와 같은 휴먼으로 단명종. 그렇다면 이별은 당연한 것이다.
"너무 부담갖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머릭. 그냥 누실라가 나이가 많은 것 뿐이야."
"그, 그렇게나 많나?"
머릭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 반응이 묘하게 재미있었다.
"그래... 아마 칠백살은 되지 않았을까...?"
"맙소사... 내가 평생 살아도 부족하군... 겉모습으로는 판단해서는 안되겠어..."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 거렸다. 하하, 볼만하군. 뻔뻔한 말이지만 누실라는 칠백살이 아니다.그저 머릭과 누실라 둘다 골탕 먹일 생각으로 구라를 친것 뿐이다. 실제 나이는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나와 메이의 추측으로는 백살 근처라고 생각하고 있다.
"설마... 페첼도 사실 나이가 많다거나 그러진 않겠지?"
머릭은 다급하게 다에게 물었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단호해다.
"아니, 저 놈은 꼬맹이가 맞아. 딱봐도 애새끼처럼 생겼잖아."
"그렇군... 다행이야. 상식이 의심할 뻔 했어..."
사실 페첼은 나보다 연상이다. 그러나 내 알바 아니다. 지금의 내 기분이 그렇다.
"머릭, 너는 몇 살이야?"
"음? 나 말인가?"
"그래. 혹시나 말하지만 나는 23살이야. 동안이라고 오해하지 말라고."
"아니, 오해를 한 적은 없지만..."
이럴때만 정직하게 빈말조차 하지 않는 군... 죽은척도 하는 비겁쟁이면서...
"난 151살 이라네."
"151? 그렇게 많았어? 드워프 수명이 대충 200중반이니까..."
"그래, 드워프임에도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지. 게다가 대부분의 드워프는 일평생 거칠게 살다보니 수명을 전부 채우는 자들도 아주 드물거야. 나는 지금 내 아버지보다 오래 살았다고."
허허... 머릭이 나이가 많을 것 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것은 예상외다. 생각 이상으로 나이가 많다. 말존 아저씨의 배보다 많은 나이잖아?! 이런, 갑자기 머릭이 조금 부담스러워 질것 같다.
머릭은 그 뒤로 잠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앉아 별밖에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달빛에 비춰져 밤인데도 표정이 선명히 보였다. 그 모습은 언뜻 기묘해보여 나도 모르게 말을 걸어버렸다.
"왜그래? 감성적이게 앉아 있고 말이야. 나이가 많다고 하니까 상처라도 입었어"
평소 잠만큼은 누구보다 빠르고 우렁차게 자는 머릭이 오늘 밤만큼은 왜 잠을 설치는 이유가 궁금했다.
"...드워프는 휴먼처럼 나이가지고 우울해지지는 않네. 그저 고향 생각을 잠깐 한것 뿐일세"
"고향? 드워프의 고향이면 '니다벨리르'였나?"
내 기억이 맞았는지 머릭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있군. 내가 평소 감성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저런 달을 보면 고향 생각이 안날 수 없군"
머릭의 시선을 따라 나도 고개를 들어보자 아주큰 만월의 달이 떠 있었다.
"내 고향은 아주 추운곳이지... 밤낮, 여름, 봄 할것 없이 아주 추운 곳이야. 너무나 추운 탓에 눈바람도 아주 세차게 불지. 얼마나 추우면 늙은이 젊은놈 할거 없이 그 힘든 용광로 근무를 선호할 정도라고"
"용광로라면... '뷜란트의 용광로'를 말하는 거야?"
머릭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껄껄, 생각보다 자세히 알고 있군? 자네 말이 맞네 우리 선조 '뷜란트'의 유산중 하나이고 우리의 자랑이지"
머릭의 웃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다. 옛날에 책을 읽어온 보람이 있다.
"니다벨리르는 그 용광로가 없으면 모두가 얼어 죽을 정도지. 농담이나 과장이 아니라네. 정말로 용광로의 주위로 동물이 살고 우리도 살고 있지. 사실상 우리의 태양은 용광로라고 할 수 있지. 아주 소중한것 일세."
"...그런데 그거랑 지금 달이랑 무슨 상관이라도 있는 거야?"
내 말에 머릭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별 상관 없네. 자네가 하도 자세히 알기에 잠깐 기분이 들떠서 다른 소리를 해버렸군."
뭐야 아무상관 없는 거였어? 속은 기분이 드는데?
"크흠! 어쨋든 말을 다시 돌리자면 니다벨리르는 낮에는 눈보라가 세차게 불고 밤에는 낮과는 구름이껴 태양은 보이지도 않지. 그러다 보니 우리 드워프는 태양보다는 달이 더욱 친근하지. 밤에 뜬 달은 아주 잘 보이거든. 그래서 저렇게 선명한 달을 보면 문득 고향 생각이 나곤 하지."
"그런 곳이 라는건 처음 알았어... 그런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네 이야기만 들어서는 도저히 사람이 살 만한 곳 처럼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도 고향 생각이 나는 거야?"
나의 무신경한 말에도 머릭은 씩 웃으면 계속 말했다.
"자네 말이 맞네. 아무리 용광로가 생기면서 조금은 살만해졌다고 한들 편안한 곳은 절대로 아니지. 그런데도 고향은 쉽게 잊을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나 처럼 인생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낸 사람은 더욱이 그렇지. 고향은 싫다 좋다로 설명할 수 있는 그런곳이 아니네. 그래... 마치 영혼이 묶여있는것 처럼 말이야."
"영혼이 묶여있는것 같다고?"
"데이먼, 자네는 사슴고기 스튜를 먹어본적이 있나?"
머릭은 뜨금없는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사슴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먹어본적이 없나? 그것 참 아쉽군. 단단한 식감에 지방이 거의 없는게 아주 담백하지. 그런데 말이야... 사슴고기는 말일세 냄새가 아주 지독하다고. 마치 생고기와 같은 누린내가 진동을 하지. 아무리 나라도 가끔은 먹기 힘들 정도로 말이야. 먹을걸 투정할 만큼 고향이 풍족하지는 않지만 이 냄새가 없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지."
"으웩! 생각만 해도 별로인데? 나는 냄새에 민감한 편이라고"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 여기서 먹어본 사슴스튜는 특이하게도 냄새가 안나더군. 휴먼들이 만드는 사슴스튜는 정말 맛있지. 사슴 특유의 잡내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나도 처음 먹었을때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 였지."
자신이 말하고도 군침이 느껴지는지 그는 침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입가를 쓱쓱 닦았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그 맛있는 스튜를 배터지게 먹어도 항상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거든. 알수 없는 허전함이 항상 내 안을 채웠어. 나는 이 이유모를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한번은 내가 재료를 사서 직접요리를 해보았지. 그런데 생각보다 결론은 싱거웠어."
"사실 그 누린내를 좋아했었다든가...?"
나는 적당히 내 추측을 말해보았다. 이야기의 흐름상 뻔한 결말이었지만 머릭은 씨익 웃으며 말해주었다.
"그래. 그다지 놀랍지도 않는 당연한 결론이었지. 그런데 신기했지. 내 요리는 형편없어서 고향의 맛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내가 서툴게 만든 냄새나는 스튜를 먹자 신기하게도 몸안에 느껴진던 허전함이 단번에 사라지더군. 그제서야 알았지 나는 그 냄새를 싫어하지 않았던 거야. 100년 가까이 싫다고 느껴졌던 그 냄새를 사실은 좋아하고 있었던 거였지. 고향이란 그런걸세. 싫었던 것도 멀어지면 그리워지는 거지."
"나는 잘 모르겠네..."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머릭은 그말에 약간 놀랐는지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고향이 그립지 않다는 건가?"
"고향?... 그런거는..."
옛날 생각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남에게는 말하고 싶지않는 기억이 잠시 떠오른다. 머릭은 나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고는 툭하고 내뱉었다.
"23년"
"응?"
갑자기 머릭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내가 고향을 나온지 23년이 지났네."
"23년이면 상당히 긴데... 아니, 내 나이랑 똑같잖아. 못 돌아가는 사정이라도 있는 거야?"
드워프는 휴먼과 달리 장명종이지만 장명종이라 한들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23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을 것이다.
머릭은 고개를 흔들고서 입을 열었다.
"아니. 못 돌아 간다든가 그런것은 아니라네. 해야할 일을 마치지 못해서 안 돌아가는 것 뿐이지. 하지만..."
머릭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았다.
"이제 슬슬 일이 마무리 될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그때가 되면 자네를 먼저 초대해주지. 내 고향을 한번 봐주었으면 하는군."
머릭의 포근하고 인자한 웃음에 나도 무심코 미소가 지어졌다.
"나 추운곳은 질색인데"
"허허, 사내녀석이 그렇게 불만이 많아서 되겠나? 어른이 초대하면 잠자코 따라오게."
"머릭. 상당히 어울리는데? 성격 괴팍한 구시대 노인 역할로 말이야."
"알면 혼나기 전에 잠자코 내 초대를 받게."
"그래 그래, 알겠다고. 대신에 기념품을 가득 챙겨서 돌아갈 거니까 알아두라고"
"하하하! 그래! 내가 우리 고향의 자랑 사슴고기랑 함께 '얼음주'를 잔뜩 선물해 주겠네! 하하핫!"
머릭과의 대화는 재미가 있었다. 머릭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호쾌하게 웃고는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나는 적당한 말을 내뱉고 이미 늦은 밤이지만 지금이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고향을 너무 미워하지 말게... 슬픔은... 아픔은... 분명 시간이 해결해 줄 걸세..."
머릭이 조용한 혼잣말이 들려 왔지만 나는 모른척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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