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도시(2)

햇살이 너무나 뜨겁다. 9월이지만 아직 날이 너무 덥다. 게다가 도시의 덥기는 나의 상상 이상이었다. 숲과는 달리 열기가 바닥에서도 전해져 오는 듯 했고 위건 아래건 나의 몸을 뜨겁게 지지고 있었다.
이 거리로 나온지 3시간 정도 지났다. 여관에 도착하자마자 대충 짐을 풀고 은행에 방문하기 위해 서둘러 나온 것 이었다.
그러나 3시간 가량 강렬한 열기를 받고 있으니 나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의식보다는본능에 가까운 걸음 걸리오 걷고 있었다.
"어라...?"
그러나 그때 내 눈에 무구점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창문 안에는 관리가 아주 잘된 갑옷 부터 방패, 건틀릿... 그리고 검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 허리춤에 있는 검을 만지작 거리며 무구점에 가까이 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 목덜미에 갑작스러운 힘이 느껴지며 뒤로 당긴다.
"케헥!"
"데이먼, 어디가는거야! 이쪽이야. 이 방향으로 가야지 은행이 있대"
불품없는 숨이 세어나가는 소리가 내 입에서 나왔다. 목소리의 정체는 누실라였다. 누실라는 딴길로 세어나가려하는 나를 옷깃을 잡아 당겨서 제지한 것 이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이거 놔."
나는 누실라의 손을 쳐내며 소심한 반항을 했다. 누실라는 그것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이번에는 내 뒤를 붙잡고 끌고갔다.
"뭐가 알았어야! 그런건 나중에 구경해도 괜찮잖아?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빨리 가는게 좋다니까"
"아야야! 네가 우리 엄마냐?! 이거 놔!"
결국 나는 강하게 당겨지는 귀의 통증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 시선은 아지 무구점으로 향해 있었다.
아무래도 부러진 검을 계속 들고 다니는게 계속 찝찝했기에 조금이라도 빨리 검을 바꾸고 싶었다. 하루중 대부분을 검을 달고 다니는 나의 입장에서는 검이 부러진 것 만으로도 평소와의 무게감이 달라 너무나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누실라는 내 기분도 모르고 나를 붙잡고 골목을 나와 다시 골목으로 들어가고 또다시 다른 골목을 들어가는 걸 반복했다. 그렇개 몇번을 반목하니 처음 왔을때 보았던 큰 도로가 나왔다.
이런 복잡한 길을 선택한 이유는 여관주인이 알려준 은행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저기 동상 보이지? 저기 중앙 광장에 은행이 자리 잡고 았대"
누실라는 갑자기 손짓으로 멀리 있는 동상을 가르켰다. 거기에는 한손에 작은 병 같이 생긴걸 올려 놓은 한 남성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저 동상은 뭐야? 병같이 생긴건 왜 들고 있는거야? 무슨 의미라도 있나?"
"저 동상의 연금술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어."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누실라는 갑자기 신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막을 틈 조차 없었다. 강제로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시간이 시작되었다.
"연금술은 원래 마법으로 인정받는 학문이 아니었어. 왜냐면 '이론'이 부족했거든. 부족한 이론 탓에 매번 결과 값이 달라 마법이 아닌 사술로 취급 받았지. 그래서 정형화된 교육도 당연히 없어고 사회 인식도 아주 안좋았지. 그덕에 연금술사는 아주 적었고. 그나마 있는 몇몇의 연금술사도 각자 말도 안되는 자신만의 이론을 바탕으로 연금술을 연구를 해왔어. 그 있잖아... 솥에다가 이상한 재료를 넣고 끓이는 그런 방식으로 말이야."
"아, 그 어린이 동화에 나오는 못된 마녀같은 이미지?"
흉악하고 못생긴 늙은이가 펄펄 끓는 솥에다가 이것저것 수상해 보이는 재료를 넣고 음흉한 미소를 짓는 그런 동확속에 나오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누실라는 내 비유가 웃겼는지 기분좋게 웃었다.
"깔깔깔! 그래, 못된 마녀같은 이미지였어. 그런 이미지까지 더해져서 연금술은 더더욱 천시되었었는데 어떤 한 연금술사의 등장으로 연금술은 전성기를 맞이해"
"그게 저 동상속 남자고?"
누실라는 약간 기분이 좋은지 희미한 웃음 지으면서 동상을 차다 보았다.
"맞아. 저 남자는 '로코엘 파울료'라는 특이한 이름의 남성인데 어느날 갑자기 연금술을 증명한다면서 사람이 아주 많은 광장 중앙에 서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돌을 줍고는 이렇게 외친거야. '내가 이 돌을 금으로 바꿔보겠다!' 이런식으로 말이야."
남자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누실라는 묘하게 웃겨 웃음을 참았다. 누실라는 계속 이야기를 했다.
"다른것도 아니고 금이라고 하니까 모두의 시선을 한번에 모았지. 물론 다들 그저 호기심으로 본것 뿐이였지만. 어쨋든 간에 그는 사람이 아주 많은 광장 한가운데서 주운 돌을 병안에 넣고 단단히 밀봉을 한다음 그걸 금으로 바꿔보였지."
"그게 진짜 금이였어?"
내 물음에 누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려 그 자리에서 몇번을 더 보여주고는 만든 금을 사람들에게 뿌렸다고해. 물론 뿌린 금은 진짜였고 말이야."
"이거 안 믿을수가 없겠구네. 누구라도 금을 받으면 없던 신앙심도 생긴다고."
누실라는 내 말에 공감하는지 깔깔 웃었다.
"깔깔! 그렇지 금 앞에서는 누구나 그렇지. 어쩃든 그날을 기점으로 연금술은 대중에게 주목 받았어. 성공적으로 화려한 데뷔를 한 거이다. 게다가 그는 이를 틈타 자시의 연금술의 이론을 계속해서 입증해 나갔어. 완벽하고 깔끔한 이론에 보수적인 마법학회도 결국 연금술을 마법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 그 업적을 기리기위해 연금술사들은 이 도시에 모여 그날 로코엘이 처음으로 연금술을 보였던 장소에 연금술로 동상을 세웠는데 그것이 저거야."
"상당히 재밌는 이야기네. 처음 들어봤어."
누실라는 손가락을 체켜세우며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는 기억해두는게 좋을거야. 이건 휴먼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역사야. 원래 대부분의 마법은 엘프의 마법을 재해석하거나 답습하는 형태로 마법을 배워나가는데 연금술은 엘프도 모르는 휴먼이 만든 최초의 마법이라고 할 수 있어. 이른바 휴먼의 마법이지."
누실라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덧 우리는 광장에 거의 도착해 있었고 광장 중앙에 서있는 평범해 보이는 동상이 아까와는 다르게 위엄이 있어 보였다.
가까이와서 크게 보이는 탓도 있겠지만 나는 웬지 그 때문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너는 엘프면서 잘 알고있네? 어디서 들은거야?"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누실라는 알기쉽게 대답했다.
"내 연금술 선생은 휴먼이었거든. 그때 들는것 뿐이야."
수업도중 굳이 엘프에게 인간의 역사를 설명한덜 보면 아무래도 애국심이 뛰어난 선생을 만났나 보다.
"동상이 세워진걸 보면 당연히 지금은 죽었겠지?"
아무 이유없이 적당히 뻔하디 뻔한 질문을 했지만 되돌아온 말은 뻔한 대답이 아니였다.
"100년전 일이니까 아마 죽었겠지...?"
"뭐야 그 뒤가 구린것 같은 말투는?"
"음... 그게 사실은 아무도 로코엘의 마지막 행방을 몰라."
"그게 뭐야. 인기 많은 유명인 인거 아니야? 숨고싶어도 숨을 수 없을것 같은 유명인 일거라 생각했는데?"
"네 말이 맞아. 로코웰은 그 당시 엄청난 유명인 이었지만 저 역사적인 사건부터 1년뒤 그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않고 사라졌어. 금을 만드는 연금술과 함께 말이야."
실종 됐다는 소리인가? 저 정도의 유명인이 완전히 몸을 숨기는게 가능한 건가?
"실종? 설마, 돈을 노리는 사람한테 납치됐나?"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 세상을 뒤흔들 천재가 한순간에 사라졌으니 당연히 세간은 떠들썩 해졌지. 그래서 많은 소문도 생겨났지만 결국은 전부 근거없는 추측 뿐였지.
"...뭔가 괴담같은 이야기 인걸... 조금 무서워 진다고. 그 녀석 제자같은건 없었어? 금 만드는 법이 사라진건 아쉬운데?"
나의 반응을 본 누실라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이면 나에게 가까이 왔다.
"아쉽게도 그걸 마지막까지 전수해주지 못하고 실종이 되었다고해. 제자들의 아우성에도 그는 항상 '아직 너희는 그럴 단계가 아니다.'라고만 말하면서 미뤘다가 마지막까지 전수해주지 못했지. 게다가 설상가상 그의 연구 기록도 같이 사라졌으니 이제 알 방법이 없지. 그런데 진짜 무서운건 여기서 부터가 진짜야."
누실라의 얼굴이 너무나 가까워서 나는 한걸음 물러서면서 말했다.
"그... 그게 뭔데?"
"연금술사의 실종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거야. 방식도 아주 똑같아. 아무 흔적 없이 바람에 나라간 먼지처럼 갑자기 감쪽같이 사라져."
꽤 충격적인 결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누실라는 그런 나의 반응이 재밌는지 혼자 킥킥 거리면 다시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누실라와의 거리가 벌어지기 전에 후다닥 달려가며 말했다.
"자... 잠깐만, 이건 더 이상 괴담의 소준이 아니잖아."
"맞아. 그래서 연금술사들은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알아낸 사실은 두가지 뿐이었어."
"그게 뭔데"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과 단체로도 실종될 수도 있다는 점. 이 두개 뿐이야."
"그게 뭐야. 결국은 모른다는 거잖아"
"그래. 결국은 아무런 해결도 못했다는 거야. 그래서 마법사들이 연금술을 배우기 꺼려하는 현상이 생겼지. 연금술사가 적은 이유는 이것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러면 너는 왜 배운거야?"
"응? 나?"
내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누실라는 약간 당황하는것 처럼 보였다.
"그래. 아까 분명 이 이야기를 연금술 선생한테 들었다고 했잖아. 그럼 연금술을 배웠던거 아니야?"
"아하하... 그건..."
누실라는 얼굴을 약간 붏히면서 부끄러운듯 조심스레 말했다.
"그때 돈이 궁해서 말이야... 금이나 만들어서 연금술로 돈 좀 벌어 볼까 해서... 하하하..."
"...."
맥빠질 정도로 하찮은 이유다. 뭔가 중요한 비밀이 있을거라 생각한 내가 바보 같다.
"그래서. 금 만드는 법은 알아냈어?"
"아니, 그랬으면 이 더위에 여기까지 오는 고생을 했을거 같아?"
단호한 말이었다. 결국 돈도 못벌고 괴담의 희생자 리스트에 올라갔다는 건가...? 내 실망스러운 눈빛을 눈치챘는지 누실라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 그 보다 봐봐. 벌써 도착했어. 여기가 이 도시에 하나 뿐인 은행 '젤코바'야"
젤코바라 불리는 이 은행은 광장에서 아주 잘 보이는 위치에 엄청난 크기의 고풍스러운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다.
입구도 일반 건물의 몇배는 큰것이 이 건물의 위엄을 보여주는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열린 문 너머에 보이는 풍경에 눈가가 찌푸려 졌다.
"뭔가 안에 사람이 너무 많은데? 이게 정상인 거야?"
"무슨 촌사람 같은 소리야. 당연히 은행에는 사람이 많은데 정상...."
누실라는 문 너머에 보이는 사람수를 보고는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리고는 이상다는 듯 눈가를 찡그리며 말했다.
"뭐야? 너무 많은데? 게다가 엄청 시끄러워. 어서 들어가보자."
누실라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성큼성큼 걸어 들었다. 나는 한숨을 한번 푹 쉬고 같이 따라 들어갔다.
은행에 들어가자 아주 높은 천장과 넓은 실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분위기도 고급스러운 것이 잠깐은 서서 감상을 하고 싶었지만...
"이새끼들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니들 사정은 우리 알바가 아니야!" "당장 책임자 데려와!"
수많은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안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어서 도저히 가만히 않아서 감상할 분위기가 아니였다.
그리고 다행이게도 누실라는 아직 인파에 섞이지 않아서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일야?"
"글세... 나도 잘 모르겠네..."
누실라는 고개를 도리도리 거렸다. 음... 그럼 어쩔수 없지...
"저기요. 죄송하지만 뭐 좀 물어 봅시다."
나는 바로 앞에 있는 잔뜩 화가난 사람의 어깨를 붙잡으면서 물어보았다.
당연히도 남성은 화가나서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바라 보았다.
"뭐야? 지금 바쁜거 안보여?!"
"화내지 마세요. 무슨일인지만 물어보려는 것 뿐입니다."
나도 화가난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고 싶지는 않지만 주위에 화가 안난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약간 강압적으로 물어 보았다.
남성은 잠시 나와 누실라를 번갈아 보더니 다시 입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 복장을 보니 상인은 아닌거 같은데 무슨일로 온거야?"
이 남자의 분노의 원인이 우리가 아닌걸 알기에 나는 담담히 말을 했다.
"돈을 찾으러 왔습니다. 여기서 받을 돈이 있어 가지고요."
"허 참! 그럼 너희도 나랑 같은 신세야. 아주 좆된거지!"
"그게 무슨 소리죠?"
내 질문을 들은 남자는 기껏 조금 가라앉은 화가 다시 일어났는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 개자식들이! 은행에 돈이 없다고 하더군! 여기 모두가 받아야 할 돈을 못 받고 있어서 이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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