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도시(3)

"...마치 무언가 알고계시는 것 같네요."
나의 눈에는 노인의 장난스러운 미소가 무언가 알고 있어 나오는 미소라는 느낌이 들었다.
"글쎄... 어쩌면 늙은이의 착각일 수도 있지. 그럼, 인사는 아침에도 했으니 먼저 용건부터 들어볼까?"
그는 나의 말을 듣자 나를 놀리듯 능글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저렇게 나온걸로 봐서는 이미 어느정도 확신을 하고 있는 거겠지.
"은행에 맡겨둔 돈을 받으러 갔는데 은행이 완전히 마비가 되었더군요. 그래서 조언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럴줄 알았지. 의도치는 않았지만 너희 이야기를 엿들었거든 고생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찾아오는군"
우리가 돈 때문에 이 도시에 온 것은 이미 있었군... 생각해보니 그렇게 떠들었는데 못듣는게 더 이상하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만약 괜찮다면..."
"미리 말하지만 돈은 빌려줄 수 없네."
어르신은 차를 홀짝 마시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당연하게도 이 정도는 예상했다. 애초에 이 정도의 대금을 빌릴 생각도 없었다.
"저희도 그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습니다. 말했잖습니까. 조언을 구하러 왔다고."
나는 주머니에서 차용증을 꺼내 어르신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차용증이군. 게다가 꽤 큰 금액이야. 그렇군 무슨 사정인지 알겠어."
내가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르신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상황을 이해한것 같았지만 그래고 혹시모르니 설명을 시작했다.
"지금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차용증을 이용해서 돈을 받을 생각 이었는데 그게 불가능 해졌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어르신은 잠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은행일은 기다리면 해결 될거야.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확실히 말씀하시는 걸로 봐서는 은행 마비 원인을 알고 있나 보시군요?"
"그럼, 늙고 쇄해도 정보만큼은 뒤쳐지지 않지. 정보는 상인의 생명이라고."
어르신은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어보였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을까요?"
"껄껄, 그야 당연하지. 자네들에게는 빛이 있으니까 말이야."
"정말입니까?"
내가 아무 이유없이 다시 물어본것은 아니었다. 그냥 여전히 장난스런 미소를 짖고있는게 어째 믿음이 안간것 뿐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이 정보는 내가 알아낸게 아니야. 여기 있는 내 아들이 비싼 값을 치뤄서 얻은 정보야. 그러니 이건 내 아들과 교섭하게."
나는 시선을 돌려 영감의 아들인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세르딕은 이렇게 상황이 흐를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우리의 대화를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낭비할 시간이 없으니 먼저 물어보죠. 정보를 알려줄 의사는 있으십니까?"
"그건 대가에 따라서는 다르지요."
값에 따라서 결정하겠다라... 너무나 상인다운 말이다.
"아무런 정보없이 무턱ㄷ대고 살수는 없죠. 이 정보가 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부터 알려주시죠. 설마... 이 정도도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하시는건 아니겠지요?"
"설마요... 저도 사기를 칠 생각은 없으니 당연히 대답은 드릴겁니다."
세드릭은 아버지와 똑같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부자사이라 그런지 사소한 습관마저 똑같은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없네요. 제가 볼땐 알아봤자 소용 없습니다."
"예?"
이건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없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데이먼씨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될 겁니다. 적어도 제 생각에는 말이죠."
그렇게 말하는 세드릭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적어도 장난을 치기위해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솔직해도 괜찮은 건가요?"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이야기하자 세드릭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크게 웃었다.
"하하핫! 고작 그런것 때문에 놀라신 겁니까? 하하하하하!"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할 줄 알았죠. 상인은 대게 그렇잖아요?"
"하하! 그런 사람들은 장사를 할 줄 모르는 겁니다."
세드릭은 그렇게 실컷 웃고는 멋진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상인은 신뢰와 정보가 생명입니다. 눈앞의 푼돈에 신뢰를 파는 짓을 하는 상인은 멍청이들 뿐이죠. 이것도 못지키는 사람이면 큰 손해를 보기전에 장사를 그만두라고 일러두시면 됩니다."
"좋은 공부가 됐습니다. 그럼 이 이야기는 관두고 다른 걸..."
"아니요. 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냥 알려드리죠."
이번에는 또 무슨소리지? 꽁짜로 알려주지 않겠다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바꾸다니.
"아버님에게 듣자하니 꽤 실력이 있는 모험가라 하시는것 같더군요. 여기서 빛을 만드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래. 실력은 내가 보장하마. 적어도 우리 상단 호위보다는 실력이 좋다."
세드릭은 또 다시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제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고..."
"관련은 없지만 중요한 정보인건 맞습니다. 알아둬서 손해 보실건 없을 겁니다. 아, 그렇지만 다른 사람에게 팔지는 말아주세요. 데이먼씨와 동료들만 알고계시면 됩니다."
내가 의심이 과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수상쩍다. 시종일관 웃는 모습을 하고 있기에 무슨 꿍꿍이인지도 모르겠다.
"...좋습니다. 한번 들어보죠."
하지만 거절할 이유가 오히러 적었기에 들어보기로 했다. 안다고 위험해질 만한 정보까지는 아니겠지...
세드릭도 내 대답을 듣더니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차를 들어서 한모금 마신다음 입을 열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 이 대도시는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공격이라고요? 하지만 그런 느낌은..."
나는 말을 하는 도중에 불과 얼마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무언가 생각이 나신 모양이군요. 애초에 아버지와 같이 있으셨다 했으니 모를일은 없겠죠."
"다리 봉쇄와 관련이 있다는 소리인가요?"
"관련이 아니라 그게 원인 입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총 4곳의 다리가 같은 방식으로 봉쇄가 됐습니다. 한 곳은 얼마전에 여러분이 해결해서 지금은 3곳 이지만요."
다리가 봉쇄된게 도시의 공격과 은행의 마비와 무슨 연관이 있는다는거지?
"고작 그것만으로 공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요?"
"일반적으로는 힘들다고 봐야죠. 하지만 이번에는 봉쇄된 장소가 문제입니다."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세드릭을 차다보았다.
"하하하. 그렇게 보지 말아주세요. 금방 설명하겠습니다. 하이디, 지도를 부탁하네."
옆에서 뒷짐을 지고 계속 서있던 하이디라는 늙은 집사는 등 뒤에서 잘 말려있는 종이를 건내 주었다.
세드릭은 그걸 받아들고 탁자 위에 펼쳐보였다. 그것은 이 도시 근처의 지리가 아주 자세히 나와 있는 지도였다.
나와 누실라는 목을 길게 빼서 지도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대답하군요. 이정도로 정교한 지도는 처음 봅니다."
"당연합니다. 상인이라면 자기 지역 정도는 꾀차고 있어야죠. 자 여기를 봐 주시겠어요?"
세드릭은 지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지 내 칭찬에도 당연하다는 듯 넘더니 지도의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는 아르메니아의 서쪽문으로 이어진 길이었는데 빨갛색으로 X표시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X표시는 하나가 아니었고 동문, 북문, 남문쪽 길까지 합해서 총 4개였다. 그리고 남문쪽 X표시는 우리가 지나왔던 길이었다.
"지금 지도에 표시된 이것 들이 결계로 봉쇄된 곳 입니다. 이 위치들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존재하더군요. 뭔지 아시겠습니까?"
공통점이라... 내 눈에는 그냥 지도에 X표시한 걸로 밖에 안보인다. 곁눈질로 누실라를 훔쳐보았지만 누실라도 잘 모르겠는지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잘... 모르겠네요."
"그게 정상입니다. 지도에 적힌게 아니거든요. 하하하"
이 자식 살짝 짜증나려고 한다. 누실라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어이없는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잠깐 분위기좀 풀려고 해본겁니다. 뜸 들이지 않고 말해드리죠. 여기 네 곳 모두 은행의 현금 운송 루트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의도치 않게 눈가가 찌푸려버렸다.
"그런... 어떤 누가 그런짓을...?"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누실라는 꽤 당황했는지 중얼 거렸다. 세드릭은 우리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놀라셨습니까?"
"당연...! 누구라도 이 소식을 들으면 놀란다고요! 재정신이 아니에요...! 이건... 이거는..."
누실라은 말을 더듬을 정도로 심각했다.
"그래요. 이건 명백한 엘프에 대한 공격입니다. 재정신인 사람이면 그런짓은 절대 안하죠. 이건 자살행위보다 심합니다."
세드릭은 누실라의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는 자신의 권리를 침해 당하는것을 극도로 싫어하죠. 그걸 건드린 이상 무슨꼴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300년전 엘프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각국의 독립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몇가지 조약을 제시했다. 기억나는 대로 말해보자면...
첫 째, 마법으로 영혼을 창조및 복제를 금한다.
둘 째, 모든 국가는 의무적으로 엘프가 발행한 통화만을 사용 및 보급을 해야하고 이를 방해해서는 안된다.
셋 째, 화폐의 회손 및 복제를 엄격히 금한다.
넷 째, 엘프를 적대시하는 어떠한 행위도 용납되지 않는다.
다섯 째, 엘프에 대한 적대적 행동을 금한다.
여섯 째, 위 조항을 어긴 범법자는 엘프의 법으로 다스린다.
대충 요약하자면 이런 느낌인데 널널하다면 널널하고 엄격하다면 엄격한 조항이다. 하지만 두 번째, 다섯 번째 조항을 자세히보면 그렇지 않다.
화폐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은 실권을 쥐고 있는 거나 다름없고 다섯 번째 조항은 마음만 먹으면 입맛에 따라 누구에게든 적용할 수 있다. 사실상 독재와 다름이 없다.
이 문제는 당연히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쉽사리 입에서 꺼낼 수는 없었다. 입밖으로 말하면 죽을게 뻔한데 누가 입을 열겠느냐? 사실상 협박에 가까웠기에 모두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과감한 성격을 가진 어떤 종족은 곧바로 집에 하나씩 있던 도끼를 번쩍 들면서 외쳤다.
'이딴게 무슨 자유냐! 네놈들의 발을 핥을 바에 서서 죽겠다!'
기개는 좋았으나 아쉽게도 전설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결과 그 종족은 지금은 거의 멸족에 가까운 공격을 받았고 지금은 세계의 구석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고 있다. 멸족을 당하지 않은 것도 마지막에는 결국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만큼 당시 엘프는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잔인하고 강력했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종족을 멸하고 천하통일을 하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살려만 두었지 세계는 엘프의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갑자기 어떠한 이유도 없이 저 조건을 내밀며 각국의 독립을 제시한 것이다.
아니지, 이유는 있었다. 모든 종족의 화합을 위해라고 했던가? 물론 이걸 순순히 믿는 얼간이는 없었다.
방금 말한 제안을 제일 먼저 거절했던 그 종족이 멸족에 가까운 상태가 되는걸 직접 본 국가들은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조건을 받아 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300년이 지났다. 놀랍게도 엘프는 지금까지도 저 조항을 어기지 않는한 별다른 개입을 하지않았다. 조항 다섯 번째를 악용했다는 소문은 적어도 나는 듣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역사로 비교했을때 현재의 엘프는 아주 온순 해졌다고 할 수있다.
물론, 어디까지 이건 조항을 어기지 않았을때 이야기겠지만...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