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도시(4)

“아시겠습니까?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은 엘프들은 분명 움직일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움직였을 수도 있죠. 엘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사건은 금방 해결될 거고 이 일의 장본인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반드시 찾아낼 겁니다.”
세드릭은 진지한 표정으로 불안감을 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밝은 모습만 보여주었던 그였기에 그만큼 사태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어떤 생각이 지나간다. 나는 곧바로 물어보았다.
"그런데 만약 문제가 운송루트가 막혀서 그런것 뿐이라면 이제 해결된거 아닌가요?"
"해결되다니...?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세드릭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저희가 막혀있던 곳 중 하나를 뚫었잖아요. 이쪽으로 다시 운행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어라? 그렇네? 이제는 해결된거 아닌가요?"
누실라도 나의 생각과 같은지 표정을 좋아졌다. 그러나 세드릭과 아르테마스 영감은 미묘한 표정을 짓고는 영감이 입을 열었다.
"데이먼, 한번 생각해 보게. 누군가 자네를 노리고 있다고 상상을 해보게."
상상...? 그래 상상해보자. 흠... 나를 노리는 자라... 청렴결백하게 살아온 나라서 그런일은 없을 테지만... 그래, 욕심많은 로렌스가 내 돈을 노린다고 생각하자.
"상상했습니다. 저는 지금 괴씸한 괴한에게 쫒기는 선량한 시민입니다."
내 준비가 마쳤다고 생각했는지 영감은 손짓을 섞어 가며 오바스럽게 말했다.
"그래... 그 정도로 할 필요는 없기는 하지만... 어쨋든 자네는 자신을 노리는 괴한을 피해 안전한 집으로 도망을 가려했지만 놀랍게도 집으로 가는길이 전무 막혀버린 거야!"
"로렌스 이자식... 부족한 머리로 가증스러운 짓을 했구나..."
"그런데 갑자기! 아이고 맙소사! 막혀있던 길중 하나가 갑자기 열리는거야! 그것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말이야!"
"함정이군요. 거기로 지나가면 파렴치한 로렌스가 저를 덮치겠죠."
"그래. 잘아는구만. 엘프놈들도 같은 생각이겠지."
아하. 완전히 이해했어. 길이 열렸다 해도 너무나 수상해 보이니 지나가지 않겠군. 이 영감 설명하는데 재능이 있구만? 잠깐, 마치 그러면 마치 내가 은행 돈을 노리는 범죄자 같잖아!
“잠시만요 우리의 문제와는 관련이 없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건 확실합니까?”
아까 분명히 이 정보는 우리의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실제로 내가 들어도 사건의 규모가 이미 우리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었다.
앞으로의 여행길에 방해가 될 거 같은 불안감을 떨치고 싶어 확신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 말에 거짓은 없습니다. 다만...”
세드릭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언가를 계산하듯 자신의 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다만?”
“앞으로의 사건과 연관이 안돼있을때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여기를 머무는 기간 동안 처신을 잘못해서 실수로라도 사건과더욱 엮이게 되면 결코 좋은 꼴은 못 볼 겁니다.”
“아니, 그 정도로 저희가...”
‘우리가 그 정도로 위기감이 없지는 않다‘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말하는 중간에 나는 알아 버렸다.
“그래요, 제가 이 정보를 알려드린 이유를 아시겠나요? 문제해결이 아닌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길 바래서 알려드린 겁니다. 본의 아니지만 여러분인 이미 한번 이 사건에 연루가 되었습니다. 충분이 의심받을 만한 상황입니다. 아마도 머지않아 엘프들이 찾아 갈 것입니다. 조사를 피하지도 마시고 수상한 행동도 하지 마세요. 그리고 일 이 끝나면 이 도시에서 빨리 떠나는 겁니다. 아시겠나요?”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여기가 아니면 더 이상 자금을 구할 방법이 없어요.”
나도 더 이상 귀찮은 일은 사절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이상한 음모에까지 연류가 되어버렸다. 나라도 빨리 나가고 싶지만 그것 보다 자금이 먼저다. 수도 도착전까지 자금이 없으면 앞으로의 여행길에 큰 차질이 생긴다고 머릭이 말했다.
“흠... 그거라면 제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 다지 권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지만요.”
세드릭은 말하기 꺼려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보다는
“알려주시겠어요? 지금은 상황을 가릴때가 아니라서요.”
세드릭은 내 말을 듣자 곧바로 차용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은행은 지금 입출금과 관련된 업무만 마비가 된 것이지 다른 업무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계약서를 수정하는 일이라던가요.”
“출금이 안돼는데 계약서를 수정하는게 큰 의미가 있나요?”
내가 의견을 말하자 세드릭은 계약서의 이름 부분을 가르켰다.
“이 차용증의 권리를 개인에게 팔면됩니다. 10금화가치의 차용증이니 7~8금화에 판매를 하면 사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은행 업무가 완전히 마비가 된 것은 아닙니다. 이 차용증이 유효하다는 것은 지금이라도 은행에 가서 확인을 받을 수 있고 권리 변경까지도 가능할 겁니다. 물론, 지금 당장 돈이 나오지는 않겠지만요."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나는 약간의 손해를 보겠지만 사람만 구한다면 지금 당장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소리다. 몇 백금화가 사라지는 것은 평소라면 아주 속이 쓰리겠지만 이런 돈에 미련이 없는 지금은 조금이라도 빨리 받는게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여길 와보는 것은 정답이었다. 나였으면 은행에 그런 기능이 있는지는 모르고 상당히 헛고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은 쉽지가 않을 겁니다.”
나는 세드릭의 말에 고개를 갸웃 거리며 차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몇 백금화를 현금으로 들고 있는 사람은 이 대도시 안에서도 많지가 않습니다. 은행이 도시 안에 있으니 큰돈은 대체로 은행에 보관을 해두죠.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고요."
“아”
그래서 그다지 권하지 않는다고 했던 거군. 수수료도 많이 나가는데 구매자를 구하는 것 자체가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라는 거다.
쉽게 말해 수지타산이 안맞는다는 거다.
“젠장... 알면 알수록 머리만 아파오네...”
좀처럼 일이 진전이 안되고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 같아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불만을 표했다.
“데이먼, 왜 그렇게 심각해? 몇 백금화를 가지고 있는 부자를 우리는 알고 있잖아.”
“엉? 뭐라고?”
내가 아는 사람중에 그런 부자가 있다고? 그런 큰 돈을 현금으로 들도 다니는 사람이?
“그렇죠? 세드릭씨?”
누실라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세드릭을 바라보았다.
“뼈속까지 상인인 세드릭씨가 며칠 기다리기만 하면 2~3금화를 벌 수 있는 이런 좋은 제안을 거절하실 리가 없잖아요?”
생각을 할 때마다 턱을 쓰다듬던 손이 멈춘걸 보아 누실라의 순진무구한 웃음에 세드릭은 약간 놀란 듯이 보였다. 하지만 금방 다시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녀인 누실라씨의 부탁이니 흔쾌히 들어주고 싶지만...”
그는 손을 다소곳하게 탁자위에 올려놓고 지금 까지 와는 다른 진지한 어투로 말을 했다.
“지금은 현금을 비축할 때입니다. 그러니까 죄송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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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나는 힘없이 빌린 여관의 방문을 열고 터덜터덜 들어왔다. 그러자 침대에 앉아서 자신의 도구들을 닦고 있던 페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뭐야, 생각보다 너무 늦은 거 아니야? 해가 저문지 한참 되었다고.”
“말하자면 길어. 머릭은 어디 갔어? 앞으로의 일을 좀 생각해봐야겠어.”
“머릭은 잠시 외출이야. 아는 사람을 만나고 온다고 했어.”
어쨌든 간에 지금 머릭은 없다는 거군.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다. 나는 문을 조용히 닫고 비어 있는 침대로가 바로 풀썩 누웠다.
아침부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 다녔다. 계속해서 고민을 하면서 움직였더니 하루종일 말을 타는 것보다 힘이 들었다.
“머릭이 오면 깨워. 그때 동안 잠좀 자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나는 눈을 감으면서 생각에 잠기었다.
아쉽게도 세드릭은 우리와의 계약을 거부했다. 지금은 현금을 챙겨둬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 판단이 어찌나 확고한지 설득할 의지조차 사라질 정도 였다. 유일한 희망인 아르테마스씨도 그 자리에서 다른 말을 안하는걸 봐서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결국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저택에서 나왔다. 나오면서 혹시 거래에 응해줄 만한 사람이 있나 조심히 캐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그 정도 거금을 들고 있는 사람은 저와 같은 상인 아니면 이 도시 영주 뿐일거라 생각합니다. 상인들은 아마 저와 같은 판단을 할 것이니 물어봐도 헛수고일겁니다. 영주님을 만날지 안만날지는 그건 여러분이 판단하시는게 좋을겁니다."
세드릭은 영주를 만나볼것을 권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다지 좋게 보지 않고 있다. 우리의 여정의 목표는 여동생의 구출이지만 그 과정이 왕국의 음모와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아주 크다.
말존 아저씨의 조언을 잊지말자. 여동생의 실종에는 분명 아주 구린 부분이 있다. 게다가 그걸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는것도 분명하다.
우리는 어쩌면 그 구린 부분을 들추는 행위를 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대도시의 영주와 같은 왕궁에 가까운 자를 만나 우리의 행적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꺼려진다.
나는 좀 처럼 잠에 들지 않아 잠시 몸을 뒤척였다. 고급은 아니지만 싸구려도 아닌 거친 느낌의 이불의 감촉이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걸 지도 모르지만 조심해서 나쁠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영주와의 알현은 보류다.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그 상황까지 보류하기로 했다.
끼-익
낡은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곁눈질로 보니 아니나 다를까 머릭이 온 것이었다.
"음? 언제오나 했더니 드디어 왔구만."
머릭은 무언가 가득 담긴 종이봉투를 입구 옆에 있는 탁자에 올려놨다.
"일이 꼬여서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고"
"그 말은 일이 잘 안 풀러렸다는 뜻인가?"
아직 제대로 쉬지못해 지친 몸을 다시 움직여 침대위에 앉았다.
"그래, 꼬여도 보통 꼬인게 아니야. 게다가 그 일로 몇가지 말할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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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건 곤란하군."
나는 오늘 있었던 일을 간단하지만 요점만 빠르게 전달했다. 아니나 다를까 머릭은 물론 페첼도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이쯤되면 편하게 도착할 거라는 희망은 버리는게 맞겠어."
페첼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나라고 좋다고 이러는건 아니라고."
"알고있어. 탓하는건 아니야."
나는 약간 억울함을 내비추었다.
"게다가 돈이라면 잘하면 해결될 수도 있어. 사람을 구하는건 어렵겠지만..."
"돈은 큰 문제가 아니지. 문제는 다른 걸세."
머릭의 말에 페첼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면 역시 그거겠지.
"엘프?"
내 짧은 물음에 머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필이면 엘프와 연관 되다니. 재수가 더럽게 없는게 분명하다고.“
페첼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 정도의 일이야?”
내 인생에서 엘프와 연관된 적은 누실라를 만났을 때밖에 없어서 나는 엘프와 연관 된다는 의미가 어떤 걸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게다가 이 하나도 누실라는 아마 ‘나는 하프니까’ 예외라고 말할게 뻔하지만.
“페첼,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네. 엘프가 깐깐한 놈들인 것은 맞지만 그 만큼 정확하게 일을 한다는 거네. 우리가 이 사건과는 무관하다는건 그들도 금방 알아챌 걸세. 그때 우리는 빨리 이 도시를 떠나면 된다네.”
머릭은 어느새 일어서 탁자위에 놓아두었던 종이봉투를 뒤지고 있었다.
“뭐야? 돈은 어떻게 하고? 다음 대도시에서 크게 필요하다며?”
머릭은 내 물음에도 태평하게 봉투안에서 초록색 사과를 꺼내서 나와 페첼에게 하나씩 던져 주었다.
“아, 고마워”
머릭 본인도 사과하나를 들고는 탁자위에 풀썩 앉았다.
“돈이 급한 것은 사실이네. 수도에 도착하고 나서도 큰돈이 없으면 여행 일정이 크게 지연 될 걸세.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돈을 모으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지.”
나는 머릭의 말을 들으면서 초록색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사과에서 신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진 것이 좋은 품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였다면 왜 진작에 말하지 않은거야?”
머릭은 잘 익은 초록색 사과를 몇 번 문지르더니 아삭 하고 씹어 먹었다. 몇 번인가 맛을 음미하고는 입을 열었다.
“수도는... 오래있을수록 위험할 거라 생각하네.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군.”
근심걱정과는 거리가 먼 머릭이 저런 표정으로 말하니 묘한 신뢰감이 들어왔다. 이 여행에는 아직 미지인 부분이 너무 많다. 그렇기에 직감에 의지하는 것은 크게 나쁜 판단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페첼이 물었다. 머릭은 잠시 고민하더니 물음에 답했다.
“아무래도 엘프가 우리를 찾아올 것은 불 보듯 뻔한 것 같으니 엘프의 조사를 받을 때까지 일단은 대기다. 그때까지 각자 휴식과 현금을 구하는 방법을 찾아보게. 그리고 조사가 끝나면 최대한 빨리 여기를 뜨는게 최선인 것 같군.”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일을 계속 기다리자고?”
최선이라고 말하는 머릭의 계획이 나에게는 비효율처럼 보여서 계획에 불만을 표출했다.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일부러 피했다는 걸 알면 오히려 일이 꼬일게 분명해. 아마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며칠 감수하는 것이 안전해.”
페첼은 그렇게 말하면서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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