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도시(10)

"맙소사, 철가면이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와 버렸다. 나도 제법키가 큰 편이지만 저 남자 앞에서는 고개를 올려서 봐야할 정도의 키차이가 났다.
"아니, 아니! 그런 소리 안했어! 아직 한창 장사중이라고. 하하하!"
주인장은 우리를 밀치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면서 철가면에게 다가갔다. 작은 드워프가 철가면 앞에 서있자 그의 덩치가 오우거 처럼 거대해 보였다.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군요. 이쪽에 흥미있는 물건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철가면은 머릭이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이 주인장쪽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칫!"
어라? 주인장 저자식 방금 잔뜩 구겨진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면서 혀를 찼다.
"왜 그러시죠? 제가 잘못 알고 왔나요?"
"아... 아닙니다! 당연히 있죠!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어이, 이봐"
"너희는 조용히해!"
우리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불러보았지만 돌아오는건 호통 뿐이었다. 그리고 주인장은 카운터 뒤에 있는 천막으로 들어갔다. 머릭은 주인장의 행동이 마음에 안드는듯 노려보고 있었다.
우당탕!
얼마나 급하게 가져왔으면 우리가 철가면에게 말할 틈 조차 주지 않고 내가 전에 봤을 때와 똑같은 천에 감싸진 검을 카운터 쪽으로 가져왔다.
"여기있소. 이게 내 가게에서 가장 자랑하는 물건이오."
"이겁니까? 구매하겠습니다. 이건 얼마죠?"
"어? 아, 예. 그러니까..."
"아저씨, 물건은 확인해봐야 하는거 아니오?"
철가면의 물건의 확인도 안하고 구매하려는 그 이해가 안가는 행동에 나는 못참고 끼어들어 버렸다. 주인장은 독기가 잔뜩 오른 눈매로 나를 노려보았다.
"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한번 확인해 보죠. 주인장 부탁하오."
철가면은 내말에 마치 마지못해 그러는 듯 주인장에게 개봉을 요구했다.
주인장은 우리쪽을 곁눈질로 한번 보고는 서서히 천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기서 은은한 초록빛을 띄고 있는 롱소드 모양의 검이 나왔다.
언제보아도 아름다운 검이다. 특히 저 은은한 초록빛이 조명에 빛춰지니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머릭도 그 검을 보고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채로 뚫어져라 차다보고 있었다.
"아름답군요. 마음에 드는 검입니다. 이건 얼마입니까?"
"100금화"
"뭐라고?"
나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아저씨, 아침에는 10금화 였잖아?"
"네가 훔쳐갈까봐 낮게 부른거야! 그리고 네가 참견할게 아니야!"
"듣자하니 나를 아주 거지로 보고있잖아? 아저씨, 장사를 그런식으로 하면 안되지!"
아까부터 계속 사람을 거지취급을 하더니 이번에는 아에 강도로 몰아가려고 하고 있다. 나도 참을만큼 참았어! 이딴 가게! 전부 부숴주마!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앞으로 나왔으나 철가면의 다음 말에 맥이 풀린다.
"좋습니다. 바로 사겠습니다."
"응?"
철가면은 누가보아도 부자에게 바가지를 씌울려하는 저 얄팍한 드워프의 제안을 덮썩 물은 것이다.
"하하하! 이 양반 소문대로 아주 통이 크구만! 좋아! 좋아! 내가 바로 멋지게 포장해서...!"
"그만!"
머릭의 갑작스러운 호통 소리에 분주하게 움직이던 주인장의 손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미간을 한계까지 좁히며 머릭을 노려보았다.
"형제, 제발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말게. 내 이렇게 부탁하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일 아닌가?"
협박에 가까운 부탁이었다. 하지만 그런 부탁을 머릭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거절했다.
"자네야 말로 그만하게. 우리 드워프의 명예를 잊었나? 고작 돈 따위를 위해서 명예를 접을 생각인가?"
"하!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우리 꼰대들이랑 같은 말을 하는군! 너희 늙은이들은 그 명예라는 밥도 안아나오는 환상을 아주 죽도록 좋아하는 모양이지만 우리는 그 명예를 느껴본적도 없어서 뭔지도 모른다고!"
"명예는 눈에 보이거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닐세. 본인 내면의 자긍심에서..."
"그니까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쾅!
데릭이라 불리는 남자는 주먹으로 카운터를 쎄게 내리쳤다. 힘이 어찌나 강한지 나무 재질의 카운터가 약간 금이 갔다.
그리고 그는 씩씩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짜증과 분노를 과감없이 내보내고 있었다.그 모습은 정상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상태로 보이지 않는다.
"대화는 끝나셨습니까? 저도 바쁜몸이라 빨리 거래를 끝내고 싶군요. 돈은 여기있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철가면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품안에서 동전 주머니처럼 보이는 것을 카운터에 올려놓으려 했으나 머릭이 손을 뻗어 그것을 제지하였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의 이목이 머릭 쪽으로 향했다.
"그만두게. 저 검에는 그만한 가치가 없네"
"잠깐! 이 이상 방해 한다면...!"
"저 검은 가짜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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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릭의 갑작스러운 폭로에 가게가 한순간에 조용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어찌나 조용한지 내 귀먹어리가 된것이 아닌가 싶었다.
"무, 무... 무슨 즈... 증거로...!"
주인장... 억지를 부릴거면 적어도 말을 더듬으면 안되잖아. 얼굴도 새파래진게 이러면 누가봐도 아주 수상해 보인다고. 마치 7살때, 사탕을 몰래먹다 걸려 거짓말을 하는 내 모습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을 속여도 나는 못속이지"
"그러니까! 무슨 증거로...!"
"증거? 아주 많지. 이것도 말해줘야 하나? 먼저 우리 드워프는 미스릴로 검를 만들지 않아. 그건 드워프인 자네도 잘 알텐데?"
"이건...! 그러니까... 그래! 판매용으로 만든거야! 나라가 가난하니 어쩔 수 없이 수출 용으로..."
"그거야 말로 말이 안되네. 나는 내 눈으로 화로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지키고 왔다고. 불씨지기의 명예를 걸고 말하지만 화로가 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런 부정은 일어나지 않았어. 게다가 화로가 꺼졌으니 더이상 미스릴을 녹일 열기는 존재하지도 않지. 그러니 내가 떠나고 나서 만들어 졌을리도 없지. 확실히 말하지. 검의 형태를 한 미스릴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불씨지기? 이게 무슨 뜻이지? 내용으로 봤을때 오늘 머릭이 말해준 '태양'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추측했다. 자신은 없지만.
"맙소사... 당신이... 불씨지기였어?"
주인장은 마치 환상을 보고 있는 것처럼 눈을 크게 떴고 조금씩 머릭을 향해 허공을 더듬으며 다가왔다.
"불씨지기! 네... 네녀석은 여기서 뭐하는 거야! 여기서...! 느긋하게 뭐하는 거냐고...! 이런곳에 있으면 안되는 거잖아!"
갑자기 분노와 슬픔이 섞인 얼굴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삿대질을 하면서 머릭을 책망을 하기 시작했다.
"잠깐만 갑자기 왜..."
"데이먼, 말리지 말게"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갈 것 같아 나는 주인장을 막으려 했지만 머릭이 나를 막았다. 그리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이것도 내 역할일세."
"죄송하지만 정말로 바쁘거든요. 돈은 여기다 둘테니 검은 가져가겠습니다."
이런 진지란 분위기에서 철가면은 눈치도 없이 끼어들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이야기를 뭐로 쳐들었는지 저 가짜를 가져가겠다는 거다.
"아니 잠깐만! 이야기 못 들었어? 그 검은..."
"가짜라고요?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죠?"
"뭐라고?"
"저는 이 물건이 마음에 들어서 산것 뿐입니다."
내가 잘못들었나? 아니면 내가 서민의 감각에 사로 잡혀 있는건가? 엄청난 부자들은 마음에만 들면 가짜든 진짜든 그리고 바가지든 말든 상관 없다는 건가?
"더하실 이야기는 없습니까?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니..."
철가면은 다시금 문을 비집으며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머릭을 바라보았지만 머릭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진짜 미스릴도 아니었고 가짜 미스릴임을 아는데도 자기가 사겠다는 거면 더 이상 우리가 참견할게 아니지. 냅두게."
그건... 그렇지. 응, 생각해보니 막을 이유가 없다. 본인 돈으로 본인이 마음에 드는걸 사겠다는게 뭐가 문제지? 하물며 그게 가짜여도 본인이 상관 없다는데 뭐가 문제냐. 내 돈도 아닌데 말이야...
"아!"
머릿속에 섬광과 같은것이 스쳐지나갔다. 지금 놓치면 안된다! 나는 황급히 가게 문을 열고 나가 좌우를 빠르게 살폈다.
다행이 철가면은 멀리가지 않았다. 그가 사라지기 전에는 소리치며 달려갔다.
"잠깐! 기다려줘!"
철가면은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일이시죠?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바쁜몸입니다."
"알고있어 빨리 끝낼게. 미안한데 이걸 사줘"
나는 이 남자가 바쁘다고 떠나기전에 바로 차용증을 꺼내서 물건을 보여주었다. 철가면은 가면때문에 안보이는지 어두운 골목이라 안보이는지는 모르겠지먼 그 긴 허리를 숙여서 글자를 읽기 시작했다. 그것이 마치 뱀처럼 보이는 기괴함이 느껴졌다.
"이건... 차용증이네요."
"그래. 게다가 이건 그 검과는 다르게 진짜야. 무려 10금화 짜리라고. 이걸 싸게 팔게. 8...아니 7금화여도 좋아. 여기 나랑 같이 은행에 가서 수령인 이름만 바꾸면 끝나."
내 제안을 들은 철가면은 천천히 허리를 다시 폈다. 그리고는 잠시 서있었다. 가면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아마도 생각에 잠긴것 같았다.
"아마도... 급하게 돈이 필요하서 그러시는 것 같군요. 맞습니까?"
"그래! 잘 알고있네! 다들 현금을 갖고 았지 않아서 곤란했다고. 너는 그럴 걱정 없잖아. 그냥 은행의 기능이 정상화 될때까지 며칠만 기다리면 쉽게 이득을 볼 수 았다고."
"음...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겠군요."
"그렇지? 그럼 바로..."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매력적인 제안이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철가면은 내 기대와는 다른 다른 뜻을 담은 말을 했다.
"그게 무슨소리야. 내가 사람을 가릴만한 조건을 제시했나?"
"그건 아니지만 고객을 잘못 찾았군요. 당신의 제안에는 저에게 두가지 큰 장애가 있습니다."
"...뭐가 문젠데"
아무래도 거래가 이루어질 것 같지 않는 분위기로 흘러갔기에 내 목소리에서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철가면은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혼자 나불 거렸다.
"첫 번째로 저는 돈이 아쉬운 사람이 아닙니다. 고작 몇 금화 벌겠다고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하진 않을 겁니다."
"그건 내 잘생긴 얼굴을 봐서라도..."
"두번째."
바로 무시냐고.
"데이먼씨가 보기에는 이 더운날에 저의 복장이 왜 이럴거라 생각하십니까?"
"응? 그야..."
철가면의 복장은 저 거대한 몸을 다 덮을 정도로 큰 로브를 입고 있었고 색깔조차 답답하게 전신이 검은색이었다. 마치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싶은것 처럼 말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눈동자초자 보이지 않는 가면을 쓰고있는 것을 보아...
"정체를 숨기고 싶어서..."
나는 말하기도 전에 문제를 알아버렸다. 그렇기에 이후에 나온 나의 말은 자신감이 없는 개미만한 목소리였다.
"정답입니다. 그러니 그 차용증에 저의 이름이 적힐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데이먼씨"
철가면은 그렇게 상쾌한 작별인사를 남기고는 밤의 거리에 녹아들듯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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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내가 문을 열기도 전에 경쾌한 종소리가 울리며 머릭이 가게에서 나왔다.
"다 끝난거야?"
"그래, 이제 여기에 볼일은 없네."
그렇게 말하는 머릭의 표정은 평소의 머릭과 다른것이 없었지만 묘한 분위기가 느껴져왔다.
"자네는 잘 풀렸나?"
"응? 나? 아, 아니. 아무래도 여기서 돈 벌기는 글렀나봐"
안에서 무슨일이 있었나 멋대로 추리하고 있던 와중에 질문을 받아 순간 반응을 못했다. 그래도 간신히 질문의 뜻을 이해하고 농담처럼 웃어넘겼다.
머릭도 내 웃음을 보고 약간 기분이 풀렸는지 씩하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데긴이라는 저 젊은이는 고향을 나온지 13년이 되었다고 하더군"
"응? 그 주인장?"
젊은이라고 해서 누군지 인지하지 못할뻔 했다. 저 얼굴로 젊은이라고? 드워프들이 노안인 건냐? 아니면 머릭이 상상을 초월하는 늙은이 인거야?
"그래, 마을을 나오고 여러곳을 떠돌다가 몇년전 이곳에 정착을 했다고 하더군"
"음... 좀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건가."
"20년 이상 떠돌아 다닌 나는 알고있네. 고향을 나온 드워프는 살곳이 마땅치 않네. 자네도 알겠지만 드워프도 엘프만큼 소문이 나뻐서 말이네."
"하하... 그건 그렇지."
생각이 난다. 머릭이 우리 멤버와 처음 만났을때 사기꾼으로 몰릴 뻔했었다.
"그럼에도 저 젊은이는 꿋꿋하게 자기 가게를 열었지. 비록 음침하고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골목이지만 말이야. 아주 훌륭한 젊은이야."
머릭은 담담히 밤의 골목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사실 옛날까지만 해도 드워프의 인식이 이렇게 까지 나쁘진 않았네. 고지식해도 신용은 확실한 그런 답답한 장인의 이미지였지. 하지만 근몇십년 사이에 급격히 나빠졌지."
"어째서?"
"살기 힘들어져서 그렇다네. 고향의 화로가... '태양'이 꺼졌다네. '태양'은 이름뿐인 태양이 아니야. 저것이 없으면 태양이 없어진것 처럼 모든것이 얼어붙지. 동물이... 자연이... 따스한 온기하나 안남기고 말이야. 그렇기에 점차 모두 떠난거야. 살기 힘든 고향을 떠나 인간들이 사는 대륙으로 넘어온 것이지. 가진것 없이 모두 두고온 그들은 살기 위해서 자존심도 명예도 포기 할 수 밖에 없었을 거야... 그러다 보니 드워프는 욕심쟁이라는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지. 게다가 그 소문은 아마도 거짓이 아닐게야. 다들 먹고 살기위해 독해졌을 것이야. 저 젊은이 처럼 말이야."
머릭은 허탈한 듯 헛 웃음까지 지었다.
"저 젊은이가 말해주더군. 이제 고향에는 미련이 남은 늙은이와 떠날 용기가 없는 겁쟁이들만 남았다고. 전부 나 때문일세."
"그게 왜 네 탓이야. 이거는..."
"아니, 내 탓일세. 불씨지기인 내가 불을 지키지 못했어. 나는 내 역할을 완수 하지 못했던 거야. 꺼져가는 불을... 그저 바라 볼 수 밖에 없었어..."
자신의 책망하고 있는 머릭을 나는 그저 보고만 있었다. 위로의 말 한마디 정도 건내주고 싶었지만 왠지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머릭은 자신의 책망하는 와중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타성에 젖어 포기를 할 남자가 아니었다. 지금은 잠시 침울해진 것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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