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도시(12)

세드릭의 안내에 따라 우리가 들어온 곳은 전에 이야기를 나눴던 곳과 같은 방이었다. 다행이 이 방만큼은 전과 같은 아늑한 느낌이 보존이 되어 있었기에 나를 포함한 나의 동료들도 마음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 이 도시에 있을 지는 몰랐네요. 솔직히 금방 떠나시 줄 알았습니다."
"안그래도 오늘 떠날 계획 이었습니다. 애드먼드씨 덕에 어르신께 작별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군요."
그는 내 대답을 듣자 약간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원래라면 조문객을 데려오는 것은 금지지만... 그도 나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겠죠. 제 명령을 어긴것은 조금 불쾌하지만요"
그의 말이 끝나자 방문이 열리고 시녀가 들어온다. 전에 보았던 시녀가 다시 한번 우리에게 차를 나누어 주었다. 물론 머릭과 페첼은 처음 보았을 테지만.
"고마워 레이첼."
세드릭은 차를 받자 짧게 감사를 표했고 시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내고 방에서 다시 나갔다. 꺼내온 차는 따듯한 차였다. 더운날에 아쉬울 따름이다.
"어르신은 언제 돌아가셨죠...?"
나는 뜨듯한 홍차를 홀짝 마시며 물었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주제였지만 의문이 가득한 뒤흉흉한 죽음이니 물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어젯밤 입니다."
"어젯밤...?"
아니지... 놀랄 것은 아니다. 어르신과 가장 최근에 만난것은 이틀전이니 어차피 어젯밤 아니면 이틀전이다. 특별히 이상할 것은 아니다.
"사인은... 이미 들으셨나요?"
세드릭은 조심히 물었다. 아마 여기서 내가 못들었다고 하면 그는 태연히 거짓말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 일이 약간의 호기심을 품고 있는 나는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솔직히 말했다.
"예, 살해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내 대답을 듣자 차를 마시던 세드릭은 움찔 했다. 내가 알았다는 사실에 놀랐다기 보다는 범인에 대한 분노가 약간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 말대로 입니다. 살해 당했습니다. 검으로 목을 베었더군요."
"범인은 좁혀 졌나요?"
"..."
그의 표정이 한 순간에 경직된다. 의외의 반응이다. 표정을 숨기는 것 만큼은 잘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너무나 알기 쉬운 반응 이었다.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홍차를 마시면서 아무런 말없이 세드릭을 바라본다. 아니, 머릭은 예외다. 홍차의 맛이 미묘한지 다양한 표정을 짓도 있다. 그다지 이 일에 관심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달각
세드릭은 몸을 숙여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상체를 일으켰을 때는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분노를 참지 않고 있었다.
"범인이 '누구' 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자' 인지는 명확합니다."
"명확하다고요? 어르신이... 아니지,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그럼 누..."
"이 이상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내가 말을 전부 하기 전에 그는 내 말을 끊는다. 확실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이다. 그리고 곧바로 내가 이유를 되묻기전에 입을 연다.
"범인은 제가 잡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살해한 그놈은... 결코 놓아 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범인에 대한 정보는 일절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범인을 확실히 잡고자 한다면 오히려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는 고개를 가로로 젖는다.
"살벌한 소리지만 확실하게 말하겠습니다."
그는 몸을 내 쪽으로 가까이 내민다. 갑작스러운 거리감에 나는 흠칫 하고 그가 다가온 만큼 몸을 뒤로 당긴다.
"저는 범인을 정당한 방법으로 잡아서 심판할 생각이 없습니다. 내 눈앞에 끌고와... 내 손으로 확실히 죽이겠습니다."
감정이 없는 차가운 말이었다. 그의 말에는 면도날과 같은 날카로움 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누군가의 살인 선언을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상상했던 것 보다 소름이 끼친다. 나 뿐만이 아닌 모두가 그렇게 느꼈는지 관심없이 무덤덤 했던 머릭도 눈가를 찌푸리며 바라본다.
"그다지 좋지 않군... 아버지의 관에 피를 뿌릴 생각인가?"
머릭의 말에 세드릭은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머릭의 강한 어조에 비해 세드릭의 표정은 아까보다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뭐라 말하든 소용 없습니다. 이 모든건 아버지가 아닌 저를 위해서 벌이는 일 입니다. 비난은 감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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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익 쿵!
둔탁한 쇳소리가 울리며 철창문이 닫힌다. 문이 닫히자마자 경비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배웅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진 탓에 우리 4명은 마치 거대한 저택에 쫒겨나는 듯한 느낌이 되버렸다.
"...결국 우리는 여기 왜 왔던 거야."
"맛있는 밥은 먹었잖아. 이런 진수성찬 언제 또 먹어보겠어."
나의 투덜거림을 누실라가 달래듯 말했지만 눈치로 보았을때 누실라도 이놈들의 행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아 보였다.
장례식은 범인을 잡을 때까지 미룬다고 했다. 도련님의 고집인거 같기에 뭐라 대답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기껏 찾아온 손님을 그냥 보낼 수 는 없다고 대신에 식사에 초대해 준 것이다.
칫, 그깟 밥. 어린애도 아니고 밥 하나에 넘어갈것 같냐?
"음, 확실히 오리 요리는 맛있었지. 믿기지 않는 부드러움 이었어."
큰일이군, 내가 볼떄는 머릭 저놈은 넘어가기 직전이다. 나이도 제일 많은 놈이... 고작 요리에 낚이고 말이야. 물론... 맛있기는 했지만.
"됐어, 그런 오리 따위 메이의 풀드비프 앞에서는 맛없는 샐러니나 다름 없어."
이렇게 된 이상 어거지라도 밀어 붙이기로 했다. 솔직히 맛으로는 둘중 우위를 가리기는 힘들었지만 요리에 맛이 중요하겠느냐. 뭐든지 애정이 먼저지.
어찌되었건 나는 방금 먹은 오리 요리를 애써 머리에 지우고 미리 대기되어 있던 나의 말에 올랐다.
이힝힝-
꽃순이도 그동안 몸이 근질거렸는지 좋다고 울었다. 그런 꽃순이를 달래기위해 목을 긁어 주었다. 목에 힘이 들어간걸 보니 상당히 기운이 넘친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이, 데이먼. 저길 봐."
갑자기 페첼이 나에게 말을 걸며 시선을 보낸다.
"?"
페첼의 시선을 따라 어두운 골목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애드먼드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마치 비밀요원이 몰래 접신하듯 멋드러지게 서서 말이다.
"아, 사라졌다."
누실라가 낮게 말한다. 애드먼드는 우리에게 발각되자 마치 따라오라는 듯 고개짓을 하고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거참 출발하기도 힘들군.
"잠깐 다녀올게. 몰래 오라는것 같으니까 너희는 잠시 숙소로 돌아가 있어."
"응? 다시 돌아가는 거야?"
"...내가 볼땐 오늘 출발하긴 글렀다. 그냥 하루 더 방을 빌려."
이미 해는 정오를 넘어갔다. 지금 당장 출발하면 나쁘지는 않겠지만 저렇게 폼잡고 사라진 애드먼드를 무시하는 것은 남자의 도리가 아니겠지.
"알았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짐은 안 옴기고 남겨둘게."
누실라는 그렇게 답하고는 페첼과 머릭을 데리고 출발했다. 나는 말을 골목쪽으로 몰아 잠시 세워두고는 어두운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왔냐?"
"애드먼드씨, 또 저희를 만나도 괜찮나요? 그 뺨 한대 더 맞으면 터질것 같은데요?"
거기에는 한쪽 뺨이 빨갛게 부어오른 애드먼드가 서있었다. 아까 주인에게 맞은 것이 생각보다 강했나보다. 하긴, 그 도련님 오른손의 근육은 심상치 않았다. 오른손으로 평소에 뭘 했길래...
"신경꺼, 도련님의 빈약한 싸대기로는 흠짓도 안간다고."
강한척 하기는... 이라는 말은 하면 안돼겠지? 지금은 그저 묵묵히 그의 각오를 인정하자.
"그래서, 왜 부른 거에요. 저희 진짜로 바쁘다고요. 더이상 허비할 시간은 없습니다."
"...도련님의 상태는 봐서 알겠지?"
깔끔하게 무시하는군. 우리의 사정은 알바 아니라는 건가? 아니면 그만큼 급하다는 건가?
"그래요. 보니까 정상은 아니더군요. 적어도 평소의 쾌남 이미지는 버린듯 보이던데요."
아마도 후자가 맞겠지. 도련님은 지금 정상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밑에 사람들이 급해진건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짓도 서슴치 않을 것 같은 분위기이긴 했으니까.
"그래, 네말 대로야. 지금의 도련님은 정상이 아니야. 쉽게 말해 눈이 돌아갔어. 나는 이걸 좋게 보지않고 있어. 이걸 막고 싶어."
"막는다고요? 그게 가능하겠어요? 세드릭씨의 말을 빌리자면 '이건 자신을 위한 일' 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나온이상 세드릭씨를 설득하는 것은 무리일텐데요?"
그의 행위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가 바탕이지만 행동 원리는 자신의 마음의 정리다. 아버지를 죽인 자에 대한 원망보다는 아버지의 원수를 살려두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거겠지.
이렇게 된이상 '아버지는 복수를 원치 않을 거에요!' 와 같은 흔한 설득이 먹힐리가 없다.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살인. 심지어 본인도 그걸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설득을 하자는게 아니야. 도련님의 꿈을 뺏자는 소리야."
"응? 그게 무슨 소리..."
나는 말하는 도중 그의 말을 이해했다. 젠장, 이집 사람들은 왜 이러는 거지?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 머리도 비슷해지는 건가?
"도련님보다 우리가 먼저 범인을 잡는다. 그러면 도련님의 살벌한 계획도 막을 수 있겠지."
"살인 의뢰는 거절입니다. 그것 만큼은 황금으로 만든 집을 준다해도 거절합니다."
모험가로서 명성이 높아지면 흉흉한 일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있다. 그렇기에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여동생과 맹새한 일이 하나 있다. '결코 사람을 해하는 일 만큼은 하지 않을것.'
물론, 우리는 잡일만 하는 그저 그런 모험가라 그런 흉흉한 의뢰는 단 한번도 들어지 않은것은 별개 이야기.
애드먼드는 질색하는 나에게 가까이 붙어 설득하듯 말했다.
"오해하지 말라고. 살인을 하자는게 아니야. 살인을 막자는 거야. 우리가 먼저 범인을 잡고 공권력에 넘기자는 소리야. 그렇게 하면 아무리 도련님이라도 감옥에서 끌어내서 죽이지는 않을거야."
"거절합니다. 당신, 어르신을 상당히 따르지 않았나요? 저희를 이용해서 자기 손으로 죽일 생각인것은 아닌가요? 아니면 우릴 속이고 도련님에게 가져다가 바칠 수도 있고. 간접적이라도 살인 의뢰는 안받습니다."
"아니야! 나는 그런...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어..."
그는 말하다가 말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다. 내 놓을 증거도 없으니 그도 침울해진 거겠지.
"어찌 되었건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저희는 바쁜데다가 수상쩍은 일까지 맡을 생각은 없습니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해봤자 시간만 끌릴 뿐이다. 나는 빠르게 몸을 돌린다. 혹시나 잘못 되어서 살인자 딱지라도 붙어 봐라. 모험가 생활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내 유일한 밥 벌이 수단인데.
"잠깐! 잠깐만 기다려줘!"
"아아! 이거 왜 이러세요!"
그는 떠나는 내 어깨를 다급하게 붙잡는다. 어찌나 강하게 붙잡는지 어깨가 뽑힐 것 같았다. 한번에 도망칠 수 있을거라고 생각치는 않았지만 이렇게 끈질기게 늘어지다니.
"이걸... 이걸 너에게 줄게...!"
"잠시만요. 방금 말했듯 황금으로 만든 집을 준다 해도 저는..."
나는 그가 내민 물건에 움직임이 멈추었다. 정말 황금으로 만든 집문서를 내민것은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는 생소한 물건을 제시했기에 당황한 것이다.
"이건 뭔죠...?"
그가 내민 것은 단순한 뱃지였다. 화려한 문장과 고급의 재질로 만든 것 같은 뱃지였다. 그외에는 특별한 것은 없는 물건.
"이건... 우리 켄실레나 가문의 일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물건이야. 가문에 큰 공헌을 한 자에게 이름을 세겨서 어르신이 직접 수여 해주시지. 여기 보이나? 내 이름이 적혀 있어."
뱃지의 뒷면에는 누구의 글씨인지 참으로 고풍스럽게 '애드먼드 켄실레나' 라고 적혀 있었다.
"켄실레나...? 당신 이집 사람이었나?"
"아니... 이건 어르신이 나에게 주신 선물... 길바닥 출신인... 이름 뿐인 나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이다. 형식적인 거라 실제로는 아무런 도움도 안되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것이지... 이걸 너에게 주마."
"저에게 주신다 해도... 제가 쓸일 곳은 없는데..."
"알고 있어. 보수는 당연히 따로 줄거다. 이 뱃지는 그저 나의 각오를 알아줬으면 하는것 뿐이야. 그 뱃지를 포기한 다는 것은... 나는 켄실레나 가문을 떠나겠다는 거다."
그의 말에 나의 눈가가 좁혀진다.
"내가 도련님의 명을 어기면서 까지 이러는 이유는 도련님과는 반대야. 내 모든 것은 어르신의 위해서 하는 행동. 어르신 이라면 분명 도련님을 막으 셨을 것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떠날 이유는 없을 텐데요...?"
"어차피 도련님의 명령을 어겨도 한참 어겨버렸어. 파문은 각오한 바다. 그러니 알아줬으면 한다. 어르신의 명예를 걸고 오로지 옳은 일을 위해 행동하겠다고. 그러니 제발... 도와줬으면 한다."
그렇군... 요점은 자신을 믿어달라는 건가? 흉한 마음은 없으니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고...
"페첼에게 한 소리 듣겠군..."
나도 참 헤픈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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