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오두막

그녀는 자신을 아카 율리라고 소개한다. 마녀의 오두막이라 추궁받던 그녀의 집은 사탕으로 되어 있지도 않았고 깨끗하지도 않았다. 사람의 사체나 마녀의 주술 흔적 같은 건 나오지 않았지만 집은 온갖 책과 잡동사니와 동물의 사체로 너저분했고, 무엇보다 피 냄새가 진동해서 입맛을 다시면 철 맛이 났다. 피 냄새에 마음이 동한 산초는 생각했다. 혹여나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어서 마녀가 다시 풀려났다면 가장 먼저 죽어야 할 사람은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때 여인이 산초의 어깨를 톡 건드렸는데 그는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율리: (가볍게 웃으며) 겁이 많으신가 봐요.
산: 죄송해요.
율: 어머,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에요. 당신도 제 은인이신걸요. 기사님 머리에 붕대 감아드렸으니 식사를 준비할게요. 소시지 괜찮으시죠?
산: 물론이에요. 그나저나 혼자 살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않나요?
율: (옷장을 열며 검은 옷을 꺼냈다) 약초를 캐러 나갈 땐 이걸 입고 다니죠.
옷에서는 방안에서 나는 비린내가 진동했다.
산: 그거 혹시...
율: 네, 마물의 피가 잔뜩 묻었답니다. 마물은 마물을 공격하지 않으니까요.
산: 당신이 왜 마녀로 몰렸는지 알겠네요. 그걸 연구하시는 건가요?
율: 마물의 피는 귀하니까요. 마물 냄새가 나는 향수를 개발하면 모두가 안전해지겠죠. 이 집은 혼자 살기에 위험하진 않아도 너무 넓네요.
산초는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
산초는 식사하기 전 무장을 풀고 율리가 데워온 물로 가볍게 씻었다. 그는 로시난테도 씻겼는데 발만 닦았는데도 털에서 때 국물이 줄줄 흘렀다.
산: (그녀의 볼을 잡아당기며) 넌 날 잡고 대청소를 해야겠어.
돈키호테는 오른손에 든 포크로 소시지를 찔러 들고 왼손으로 와인을 마시고 있다. 집주인의 친절로 로시난테도 의자에 앉아 밥을 먹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와인을 삼키기 무섭게 소시지를 크게 베어 물고선 말한다.
돈: 이 나라의 소시지와 와인은 수준급입니다.
돈: (입에 음식물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실례했습니다. 이런 볼품없는 행동을 하게 만든 소시지를 욕해주시오. 우리 세계의 소시지는 정말 형편이 없어서 이 맛이 각별합니다.
율: 어느 나라에서 오셨길래?
돈: 아가씨가 모르는 나라에서 왔지요. 아, 아가씨의 식견을 무시하는 발언은 아닙니다. 다만 이 노인은 다른 세계에서 왔기에 박식하신 아가씨도 어찌 알 방도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율리는 당황하는 듯했으나 이내 “먼 곳에서 오셨네요” 하며 웃었다. 산초는 그녀가 농담으로 받아들인 건지, 그가 광인임을 깨달은 건지, 아니면 그의 말을 진실로 믿는 건지 헷갈렸다.
돈: 그래도 우리 세계의 축산가공품을 위한 변명을 하자면 우리 세계의 것도 원래 육즙이 풍부하고, 향신료도 강렬하고 맛이 좋았지요. 세계가 대충 망하고 난 뒤에 모든 것이 어그러졌지만.
율: 힘드셨겠어요. 맛없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또 있을까요. 이쪽 세계가 마음에 드시나요?
돈: 물론입니다. 유랑하는 생활이 고되긴 해도 부하들과 함께하니 즐거운 나날이죠
산: 부하가 아니라 동료죠. 로시난테가 부하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돈: 자네는 내가 아가씨 앞에서 멋진척하게 장단 좀 맞춰주면 어디가 덧나는가.
산: 아가씨한테 잘 보여서 어쩌시게요. 둘시네아 공주님에게 이릅니다.
돈: 기사는 백성들 앞에서 허세를 부릴 필요가 있다네. 그래야 백성들이 우리를 믿고 안심하지. 자네는 기사도를 더 배워야겠어.
산: 기사도는 모르겠고 은근슬쩍 저를 다시 부하로 부릴까 그렇죠.
율: (놀리듯 웃으며) 부하이긴 하셨네요.
돈: (크게 웃으며) 그렇습니다. 설거지고 잡일이고 다 도맡아서 하던 놈이 벌써 다 컸지요.
율: (산초를 향해 웃으며) 오늘 설거지는 막내인 제가 하겠습니다.
식탁이 소란스러워지니 로시난테도 크게 짖는다.
흥을 내던 돈키호테는 또 술에 진탕이 되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스스로 엔이 내어준 빈방까지 걸어갔다. 하나뿐인 침대에는 먼지가 잔뜩 쌓여있었다. 산초는 이 방을 정말로 써도 되겠냐고 물어보려다 참았다.
산: (앉은 채로 이불을 토닥이며) 침대가 얼마 만인지. 오늘은 숙면에 취할 수 있겠어요.
로시난테가 산초와 돈키호테 사이로 뛰어들면서 침대의 먼지가 버섯 포자처럼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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