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의 사연

돈키호테 일행은 다시 강가를 따라 여정에 오른다. 소금을 가득 실은 배 한 척이 장대로 강바닥을 밀어내며, 부서지듯 반짝거리는 수면 위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돈: 엘프나 드워프도 인간종이면 자네와 나는 뭐라고 부르지?
산: 인간이라 부르죠.
돈: 하하, 인간 놈들 너무 오만한 거 아니냐, 로시난테야.
로시난테가 짖어서 화답한다.
산: 어쩌겠습니까. 우리가 제일 많은걸요.
돈: 요전에 무기를 샀던 대장간의 드워프와 엘프 부부도 차별당하나?
산:아니요, 드워프도 어지간히 오래 사니까요. 수명이 많이 차이 나는 조합의 부부가 주로 차별받죠. 사실 주로 엘프와 인간 부부만이 차별받아요. 위험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건 핑계고, 마왕에 대한 두려움이 그렇게 발현되는 거죠.
돈: 마왕이 인간이었다니 놀랍군.
산: 원래 인간의 문제는 인간 스스로 불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랬어요.
돈: 그 이야기 좀 자세히 해줄 수 있겠나?
산: 저도 자세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아마 이렇게 시작할 거예요. 옛날옛적에 한 엘프와 한 인간이 사랑했습니다.
돈: (입방구를 뀌며) 푸우우, 그러시겠지.
산: 이러쿵저러쿵 흑마법에 손을 댄 인간은 죽음의 산맥으로 향했고, 그 당시에는 죽음의 산맥이라 불리지도 않았겠죠, 그곳에 사람의 생명을 바쳐서 원하는 바를 이뤘죠. 죽지 못하는 자가 날뛰는 산맥을 남기긴 했지만. 그렇게 수백 년을 함께 살 줄 알았던 둘은 수십 년 만에 토벌당했습니다. 참 그 난리를 펴놓고 수십 년이 뭡니까. 건강관리만 잘했어도 그만큼은 살았겠어요.
돈: 그 사람 말대로 함께 죽을 희망을 품었던 거지. 결국엔 함께 죽었잖는가. 이야기는 그게 끝인가?
산: 엘프는 살아서 도망쳤다거나, 둘 사이의 아이가 살아남아서 그 혈통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둥 뒷이야기에 대한 속설은 많지만 가장 대중적인 건 여기서 끝이에요.
돈: 그럼 둘의 원혼이 섞여서 부활하려는 것인가.
산: 다들 그렇게 믿고 있죠. 죽고 섞여서는 이전과 비교도 못 할 정도로 강해졌다고요.
돈: 어제 그자가 말한 마지막 기회라는 건 뭐지?
산: 제국은 말이에요 마왕이 부활할 조짐이 생기면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서 묘비를 부수러 가요. 실패하면 다음 토벌대를 조직하고, 또 실패하면 다음을 준비하고. 문제는 곧 있을 원정대가 일곱 번째라 말이죠, 원정대가 여덟 번 이상 파견된 전례가 없어요. 이번 원정이 실패하면 정말로 마왕이 부활할지도 몰라요. 말은 안 하지만 다들 그런 두려움을 품고 있어요.
돈: 이쪽 세계는 이쪽 세계대로 머리가 아프구만.
돈키호테 일행은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길의 끝에 놓인 작은 마을은 대낮인데 조용하다. 사람이 사는 곳이 맞나 싶다가도, 폐허치고는 건물이 깔끔해서 오히려 기분이 뒤숭숭해지는 곳이었다.
산: 아까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했다니까요.
돈: 새로운 길에 새로운 인연이 기다리고 있겠지. 저기 보게, 신부님이 뛰어오고 있네.
성직자: 다가오지 마세요. 여기는 문둥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돈: (계속 다가가며) 우리는 모험가요. 길을 잃은 김에 사냥한 것을 좀 팔려고 하오.
성: 문둥병 마을인데 괜찮겠습니까?
돈: 감염되지도 않는 걸 두려워해서 뭐하겠소. 어서 안내해 주시오.
돈: (뒤돌아보며) 산초, 빨리 오게나.
산: 위험한데 꼭 가야겠어요.
돈: 감염 안 된 다네. 혹시 내 동료가 아픈 사람들을 두고 신벌을 받았다고 욕하는 저급한 자였나?
산: 전에 감기는 매우 작은 것들에게 감염돼서 생기는 것이니 손 잘 씻으라면서요.
돈: 그때는 듣는 시늉도 안 하더니 지금 와서 말썽인가?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산: (마을로 걸어가며) 정말이죠.
돈: (마을에 도착해서) 아마도.
산: 네?
돈: 아니, 나병 환자는 처음 만나보니까.
산: 보지도 않고 단언한 거예요?
돈: 우리 세계에선 다 치료가 됐으니까 만날 일이 있어야지.
돈: (얼굴이 사색이 된 산초를 보며) 농담이야. 우리 세계에선 기본 상식이었으니 확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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