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돈키호테 일행은 골짜기 사이의 도시에 도착해 산초의 검은색 로브를 수리하기 위해 며칠 동안 쉬고 있다. 머리 부분을 다시 만들고, 금실로 자수를 새겨 인챈트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산초가 머리에 새겨진 문장들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나마 빠르게 수리할 수 있었다. 사이로는 계곡이 흐르는 좁은 지대에 터 잡은 도시는 산골을 타고 오르며 이어진다.
공예 수준이 상당한,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은여신상은 나누기도 그래서 산초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돈키호테의 빛은 많이 남았지만 말이다.
그들은 여관에 딸린 주점에서 주인장 앞에 가로로 길게 늘어진 식탁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마음씨 좋은 주인이 로시난테도 주점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해줬다.
돈: 자네 옷을 수리할 때 로시난테 방어구도 사는 게 좋지 않았을까.
산: 마물은 육체 자체가 검이고 방패니까요. 갑옷이 오히려 걸리적거릴 거에요.
돈키호테는 밥을 먹으면서 왼편에서 낮술을 마시는 청년과 중년 사이쯤의 애꾸눈이 자꾸 신경 쓰였다. 안대를 쓴 키가 2m는 돼 보이는 사내라, 평범한 체격인 자기보다 키가 큰 산초보다도 머리가 하나가 더 차이가 났으니까, 눈에 띄어서 그런지 이 여관에 묵은 후부터 자꾸 마주치는 것이었다. 며칠간 여관을 돌아다닐 때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마주친 것이었다.
애꾸눈의 사내는 그가 자신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을 눈치챘는지 이쪽으로 걸어온다.
애: (손에 든 맥주잔을 내려치며) 어이 영감,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나?
돈: (얼굴에 튄 맥주를 닦으며) 나의 시선이 무례하게 느껴졌다면 사과하오. 자네에게 할 말이 있다기보단 자네와 대화를 해보고 싶었소.
애: 싱겁기는, 됐수다.
돈: (뒤돌아 돌아가는 애꾸눈을 향해) 자네도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요 며칠 사이에 자주 스쳐 지나갔다오. 왜 스치는 것조차 큰 인연 아니겠소. 그런데 이런 인연이 반복되다니 우리 사이에는 무언가 신의 뜻이 있을 거리 여겨진...
애: (다시 뒤돌아 돈키호테를 바라보고) 거 말투가 재수가 없는 게 공부 꽤 했나 본데 내 고민이나 들어보렵니까?
산초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을 직감하고 독주를 주문한다.
애: 참고로 내 이야기는 아니고 우리 마을의 지인한테서 들은 이야기요. 이야기를 듣기 전에 우리 마을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소. 우리 마을 사람들은 뭔 이유에선가 대대로 체격이 큰 장사들이지만 오른쪽 눈이 없소. 문제는 때때로 양쪽 눈이 온전한 사람이 태어난다는 거요. 완전 외눈박이 마을에 눈 두 짝 달린 신세지. 외눈박이 마을에선 애꾸가 정상이고, 정상은 비정상 취급을 받는다고, 눈이 두 개인 마을 사람들이 너무 차별받고 사니까 오래전 마을 촌장은 남녀노소 안대를 쓰게 시켰소. 그런데 현재 시대의 사람들은 전부 자기는 눈이 온전한데 규칙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안대를 쓰고 다니는 것이라 성토하는 것이요. 그리고 자신의 오른쪽 눈알이 온전함에 대해 희열에 가까운 자부심을 느낍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인데 그래서 누군가 만약에 안대가 벗겨지거나 해서 자신이 외눈박이임을 들키면 그대로 돌팔매에 맞아서 죽는 겁니다. 규칙을 어겼으니 사형이라고 주장하는데, 본심은 내가 너 때문에 멀쩡한 오른 눈을 못 쓰고 있다는 분풀인 건지. 아니면 돌을 던지며 희열을 느끼거나, 아니면 자기 마을에 애꾸가 있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거나.
누가 거기에 죽이는 건 너무하잖소라고 반대하면 그 사람도 죽게 됩니다. 너도 외눈박이구나.
그래서 어렸던 그는 자신의 막힌 눈알구멍을 어루만지며 생각했지. 나만 정상이 아니구나.
매일 두려움에 떨었소. 혹시나 자신의 비밀이 밝혀져서 죽을까.
이런 상황에서 나이를 먹고 보니 나는... 내 친구는 의문이 생긴 것이요.
양쪽 눈이 모두 있는 사람은 얼마일까. 떠드는 걸 봐서는 죄다 멀쩡한데 왜 안대가 벗겨지는 족족 애꾸일까?
그 친구는 장의사가 되어 사람을 화장할 때 몰래 안대를 벗겨 본 거요. 근데 웬걸 눈이 두 짝인 사람이 아무도 없네? 혼란스러운 거지. 내가 우연히 못 만난 건가? 하지만 마을에 죽은 사람은 내가 다 처리하는데? 그럼 눈이 두 짝인 놈들은 어디로 갔지? 이 이상한 풍습에 미쳐서 오른 눈을 뽑았나? 그럼, 정체가 탄로 난 외눈박이는 왜 죽이는 거지? 사실 모두에게 안대를 쓰라고 명령한 촌장은 자신의 애꾸눈이 부끄러웠던 거 아닐까? 그는 식은땀이 날 정도로 겁이 나서 그대로 마을에서 도망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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