넙치
돈: 심오한 이야기구만
애: 그렇다니까
돈: 그렇구만.
애: 그게 다요?
돈: 산초, 그렇지?
산: 그렇네요.
애: 그게 아니라 이 잔혹한 경험담을 들었으면 위로라도 건네 달라는 거요.
돈: 현실이었나? 나는 어떤 뜻이 담긴 난해한 우화인 줄만 알았네.
애: 물론 현실이지. 내가 직접, 아니 내 친구가... 내가 겪은 진짜 사건이지.
돈: 하하, 그렇게 숨길 필요는 없었잖은가. 죄지은 것도 아니고.
애: 그냥 바보 같지만 내 이야기라고 하면 내가 진짜 애꾸인 게 들통나잖소.
돈: 그런 법이야. 안대를 쓰다 버릇하면 싫어도 계속 쓰게 되지. 벗은 모습이 부끄럽거든. 떠나고 나니까 속은 후련한가?
애: 비슷합디다. 전쟁이 나면 용병으로 한탕 벌고, 전쟁이 끝나면 모은 돈 다 써버리고. 결국에 파리 목숨이면 마을에서 돌팔매질이나 할걸.
돈: 잘 싸우나?
애: 기가 막히지. 창질 한 번에 셋씩 쓰러진다니까.
돈키호테는 생각했다. 금은보화를 위해 사선을 넘나들며 싸우는 용병이라, 원정대의 네 번째 동료로 받기에 최적이지 않을까. 기사도를 위한 여정에 속물적인 목적을 가진 인물을 받아들여도 될까 고민하지만, 깨끗한 물에 물고기가 못 산다고 한다는 격언이 떠오른다. 그래 소설에서 평면적이기만 하면 매력이 떨어진다. 마왕을 물리치면 우리의 모험담이 만천하에 노래 될 터이고, 둘시네아 공주님에게도 이야기해야 할 텐데. 가치관이 다른 동료와의 다툼이라. 그를 영입함으로써 우리의 영웅담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돈: 우리는 마왕을 잡으러 여행하는 중인데 함께 하겠나?
애: 난 용사가 아니라 용병이요.
돈: 그러니 내가 자네를 고용하겠네
애: 내가 얼마를 부를 줄 알고?
돈: 걱정을 말게. 얼마를 부르던 줄 돈 없으니.
애: (어이가 없어서) 장난치자는 거요?
돈: 값은 마왕을 토벌한 후에 치르겠다는 말이야. 토벌 후에 내가 얻게 될 보상을 전부 자네에게 주겠네. 그리고 밥 사줄 정도는 있으니 끼니 거를 걱정은 말게.
애: 결국 말뿐이라는 거잖소. 옛날에 한 영주가 옆 도시를 점령하고 싶어서 내가 속한 용병대를 고용했소. 가진 돈은 없으니까 임무를 완수하면 점령한 도시를 약탈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러곤 도시 점령에 실패했지. 이야, 그놈들 진짜 잘 막더라고. 그래서 우리를 고용한 영주는? 그놈 영지가 쑥대밭이 됐어. 주인장 계산 좀 해주쇼.
거한의 사내가 주머니를 뒤지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멈칫한다. 돈이 모자란다. 그가 가진 돈이라곤 이게 전부인데.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원정을 위하여 인근 국가들이 힘을 합쳤기에 최근에 돈 벌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물이나 잡으면서 성실하게 살자니 그것도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는 다시 앉아야 했다.
애: 술값을 내준다면 생각해보겠소.
돈: 물론이네. 안주도 시키게나. 동료가 된 김에 통성명도 해야지. 주인장, 여기 맥주 석 잔 주시오.
셋은 술에 취해 서로를 소개하고 신변잡기를 나눴다. 사내의 이름은 데베 미트보흐였다.
돈: (잔뜩 취해서) 미트보흐, 이제 우리 동료니 자네도 알아두어야 할 거야.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내 고향은 멸망해가는 중이라네. 연구소의 머저리들이 되도 않는 실험을 하다가 좀비 바이러스를, 그러니까 사람들을 언데드로 만드는 포자가 전 세계로 유출된 거야. 썩어가는 시체가 사람을 잡아먹고, 생존자도 생존자를 죽이고, 정부도 감염의심자를 죽이고. 우리 가족은 운이 좋게 정부 휘하의 도시에 무사히 도착해서 망정이었지. 그래도 백신이 개발돼서 진짜 멸망은 면했지만 언제 폐허를 재건하겠냐고.
그는 식탁에 이마를 대고 잠들었다.
산: 정말 우리와 함께할 건가요? 방금 들었다시피 그는 광인이에요.
미: 어느 정도로?
산: 인챈트도 안된 장식용 투구를 쓰고 다니는 정도로요. 죽기 싫으면 투구를 바꾸라고 만 번을 말해도 안 고쳐요.
미: 하하하, 나도 정상은 아니야. 싸우기만 잘 싸우면 상관 안 해. 그는 강한가?
산: 그건 제가 보장하죠.
미: 그럼 됐어.
산: 그런 문제가 아니라...
미: 그러면 너는 왜 그와 같이 다니는 건데?
산: 그러게요. 음... 받을 돈이 있다고 해야 하나.
미: 나도 그가 돈을 준다길래. 내 얼굴을 봐. 나도 슬슬 정착해서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언제까지 이 꼴로 살 수는 없잖나. 나에겐 철들 계기가 필요하다고 할까.
산: (웃으며 술잔을 기울인다) 철들려고 마왕을 잡겠다고요. 죽는 게 빠를걸요.
미: (폭소하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 버릇 고치기 전에 죽는 게 빠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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