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를레앙 전투 : 투렐요새 공방전 (1)
투렐 요새.
윌리엄 글라스데일은 웃고 있었다.
"정말이지 성능이 아주 탁월하구나. 이 좋은 걸 저들만 알고 있었다니."
그들이 개발한 주퇴복좌기.
주퇴복좌기라고 불리기에도 민망한 어떤 조악한 형태의 용수철이 이리저리 얽히고 설킨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작동은 했다.
수많은 민간인 포로들과 주민들을 갈아 넣어 만든 용수철이었다.
오를레앙의 기술공들이 만든 것보다 내구성에서는 처참했지만 물량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카캉!!
규격이 맞지 않는 용수철 하나가 튀었다.
"끄으아아악!!"
옆에 있던 포병 하나가 튄 용수철에 몸을 맞고 나가 떨어져 고통을 호소했지만 글라스데일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 오를레앙만 접수한다면 다 해결 될 일.
내부의 기술공을 잡아서 개량을 꿈꾸면 되니까.
"이 참에 저 답답한 성벽을 부숴버리고 말 것이다."
명중률이 현저히 낮은 채 반동만 억지로 잡은 포탄들이 무수히 쏟아져 내렸다.
오를레앙 성은 공성무기를 막기 위해 성벽이 약간 사선으로 되어 있었는데.
덕분에 대부분의 돌 공이 튀어 루아르 강으로 떨어졌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것은 성벽을 넘어 안으로 굴러 들어가기도 했고, 또 어떤 것은 나무 방벽을 쳐 그 뒤에 있던 프랑스 군을 다치게 하기도 했다.
오를레앙 수비대가 생 루 요새에서 전투를 하고 잉글랜드 군 진영을 박살내고, 심지어 생 장르블랑을 접수하고, 생 앙투안 섬까지 손아귀에 넣을 동안.
윌리엄 글라스데일은 꾸준히 오를레앙의 성벽을 넘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매우 집요한 자였다.
반면, 오를레앙 성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요셉과 로아반이 만든 주퇴복좌기가 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다.
이제는 규격이 맞지 않은 용수철이 제멋대로 튀어 아군을 죽이는 불상사는 없을 것이었다.
턱! 턱! 하고 잉글랜드 장궁병들의 화살이 나무 방벽에 박혔다.
프랑스의 석궁병들도 화살을 쏘았다.
수많은 불화살들이 서로의 진영에 날아들었다.
"대포 한 문에서 불길이 여러 번 치솟는구나."
저 멀리 투렐에서 불을 뿜는 봄바드를 보며 뒤누아는 침음을 삼켰다.
"저들도 개량에 성공했다는 말인가."
윌리엄 글라스데일.
무서운 자다.
프랑스 봄바드의 장점을 그대로 카피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다니.
투렐과 오를레앙을 잇는 교량이 내려가고 있었다.
저들은 쳐들어 올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아군쪽 병사들은 피로가 누적된 상황.
뒤누아가 가장 경계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때, 출정 준비를 마친 요셉이 뒤누아를 찾았다.
"잔과 라 이르, 질 드 레 남작을 비롯한 수비대 500과 민병대 300이 준비를 마쳤습니다."
"요셉."
불안한 미래를 예견이라도 하듯, 뒤누아의 미간이 주름을 지었다.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불 타는 바지선 스무 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비칸(외보 및 축성을 의미 *주요 방어시설 외부에 만들어지는 부차적 방어시설. 요새 보루 포대등의 방어구조물.)과 연결된 교량을 태워버리고 투렐을 뒤누아 공의 앞에 가져다 놓겠습니다."
어린 기사의 얼굴에는 등등한 자신감이 떠올라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뒤누아는 조용히 속으로 안도했다.
"네 표정을 보면 항상 이길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이길 수 있습니다."
"어찌 확신하느냐?"
"첫째는 저들의 급조 주퇴복좌기 보다 우리 쪽의 주퇴복좌기 성능이 높습니다.
둘째는 성녀가 선봉에 서기 때문이고.
셋째는 투렐은 원래 프랑스의 요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보다 더 투렐을 아는 자들은 없습니다."
넷째는 그게 바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구태여 말을 하지는 않았다.
요셉의 자신감은 미래를 아는 것에서 오고 있었다.
"출정해라. 투렐을 되찾고 오를레앙을 해방하자."
"예."
요셉이 바이저를 내렸다.
드디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전장에 나간다는 희열에 가득 찼기 때문일까.
요셉은 한 가지 사실을 망각했음을 이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
잔이 선두에 섰고, 그 뒤를 라 이르와 질 드 레, 그리고 요셉이 따랐다.
요셉은 요동치는 심장박동을 즐겼다.
드디어 잔의 옆에서 그녀를 지키며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생 루에서는 본대에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옆에서 싸울 수 없었지.
주님께서 지켜주는 프랑스 군대는 패배를 모른다.
그게 바로 원 역사이니까.
저들이 아무리 대포의 개량에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성녀의 사기 충천한 군대를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교량이 내려와 앉아 먼지를 일으켰다.
가라앉는 먼지 사이로 지축을 울리는 잉글랜드 기마병이 맹렬하게도 달려왔다.
스텐더드 깃발을 흩날리는 잔이 깃발을 머리 위로 높게 치켜들며 외쳤다.
"오늘 아침 미사에서 주님께선 내게 이리 말씀하셨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를 보살피니 프랑스에 영광 있으라!!"
적의 말발굽소리에 뒤지지 않는 세찬 함성이 쏟아졌다.
"진격해라!! 주님께서 우리를 보살피신다!!"
라 이르가 외치며, 가장 먼저 말 허리를 박차고 달렸다.
수백 맨앳암즈의 은빛 물결이 굽이쳤다.
거대한 루아르 강 경간에서 두 군대가 맞부딪혔다.
냉병기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투렐의 잉글랜드 병사들은 용맹했다.
풀플레이트아머를 입은 맨앳암즈를 상대로 장창을 들어 바이저를 벗기고 눈을 찢어발겼다.
프랑스의 맨앳암즈들도 지지 않았다.
강철 갑옷의 단단함과 특유의 기사도 정신을 바탕으로 적들을 무참히 도륙했다.
허공으로 피가 튀고 비릿한 냄새가 강물 비린내와 섞여 불었다.
요셉은 나서지 않고 잔의 옆에 딱 붙어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한 결 낫다.'
사뭇 다른 평가였다.
원래였다면 끔찍하다는 평이 주를 이루겠으나, 지금의 요셉은 트라우마를 극복한 상태.
더이상 이 광경이 끔찍하지 않았다.
오로지 목표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적 기사 하나가 프랑스 병사들을 뚫고 잔을 향해 돌진했다.
기다란 장창을 쥐고 돌진하는 그 모습은 마치 지옥의 사자.
요셉이 말 허리를 박찼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야.
잔다르크를 지키는 기사다.
둘의 차이는 한끗이지만 명확한 것.
장창이 잔의 바이저에 닿기도 전에, 쏜살같이 달려 나간 요셉이 기마병의 머리를 쳤다.
툭!
전처럼 무언가를 베었다는 서늘한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지만.
왜인지 모를 고양감이 고개를 들었다.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감정.
요셉은 자신감을 얻었다.
"후위의 중기병은 나를 따라와라!"
요셉은 중기병을 데리고 말을 달렸다.
교량 아래로 자진 입수한 잉글랜드 병사들이 꽤 되었다.
저들이 헤엄이라도 쳐서 건너온다면 포위당하는 것은 오히려 프랑스 군 쪽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하나 둘 뭍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요셉은 중기병들을 말에서 내리게 했다.
그리고 뭍으로 올라오는 잉글랜드 병사들을 하나씩 착실히 죽였다.
오로지 잔다르크를 지키기 위해서.
잉글랜드 측 병사들을 통솔하고 있는 기사 메리엄은 좀처럼 뭍으로 향하지 못하고 있는 병사들을 보고는 강을 건너가기 위해 병사들을 물에 빠트리는 것을 중지했다.
교량 위에서 시선을 끌고 물을 통해 몰래 뒤를 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웬 이상한 어린 기사 하나가 병사들이 올라오는 족족 칼로 찌르고 머리를 베고 있다.
메리엄은 이를 부득 갈았다.
'투렐의 병력에도 한계가 있다. 어떻게든 저들의 뒤를 쳐야 하는데.'
하필이면 교량 위에서의 싸움.
장소가 협소하여 장궁병들의 화살도 프랑스의 맨앳암즈를 무력화 시킬 수 없었다.
정면에서 쏟아붓는 화살이 전부 풀플레이트아머에 튕겨져 나왔기 때문이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프랑스 병사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린 메리엄이 소리쳤다.
"계속해서 밀어붙여라!!"
그때였다.
콰아앙!!
투렐 요새의 성벽 파편이 일부 깨져 흘러내렸다.
당황한 메리엄의 말이 앞발을 들고 히힝 울부짖었다.
오를레앙 성에서 쏜 포탄이었다.
이윽고, 오를레앙의 반격이 물밀듯이 이어졌다.
포탄은 말도 안되게 빠른 속도로 투렐의 성벽을 두드렸으며, 그 아래에 있던 병사들은 흘러내린 돌 공에 맞아 죽고, 떨어져 내린 파편에 머리를 맞아 기절했다.
메리엄은 뒤를 돌아 투렐의 성곽을 바라보았다.
'글라스데일 장군.'
후퇴 명령이 없다.
계속해서 싸우라는 얘기.
아니나 다를까, 투렐의 포문이 내려가더니 한창 싸우고 있는 교량을 향했다.
설마.
메리엄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부 죽일 셈인가?
생각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투렐의 포문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맹렬하게 쏘아진 돌 공이 교량의 왼쪽을 정확히 직격했다.
수많은 프랑스 병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잉글랜드 병사들과 기사들이 깔려 죽었다.
충격파에 몸이 붕 뜬 이들은 저마다 교량에서 튀어나가 루아르강에 떨어졌다.
참극이었다.
오를레앙을 빼앗을 수 없다면 교량이라도 파괴해서 시간을 끌겠다는 글라스데일의 작전이었다.
얼마나 많은 아군 사상자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글라스데일은 그렇게 했다.
죽어도 저들이 투렐을 빼앗게 둘 생각이 없었다.
투렐을 빼앗기면 잉글랜드 군은 손가락만 빨며 물러나야 함을 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교량의 이곳저곳이 파괴되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돌 공이 낙하한다면 분명 교량은 끊어질 것이었다.
이에 겁을 먹은 양측 병사들은 서로의 진영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메리엄이 도망쳐 오는 병사들의 목을 베며 외쳤다.
"누가 후퇴하라고 했나!! 진격해!"
사지로 내모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략.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전쟁.
생과 사가 왔다갔다 하는 판국에 생각은 사치였다.
메리엄이 말을 달렸다.
도망치는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였다.
오히려 오를레앙 성을 향해 돌격하는 메리엄을 본 병사들은 도망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메리엄이 교량 위 프랑스 군 진영을 휩쓸었다.
반면, 요셉은 잔의 옆으로 돌아와 있었다.
곧이어 돌 공이 교량의 옆을 직격했고 수많은 사상자가 루아르 강으로 떨어졌다.
돌 공 또한 교량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미친.'
윌리엄 글라스데일은 미친 놈인가?
어떻게 자신의 병사들도 있는 교량에 포탄을 때려 부을 생각을 한단 말인가.
옆을 보니, 잔의 얼굴이 심하게도 일그러져 있었다.
"글라스데일!! 너를 용서하지 않겠다!!"
잔이 말의 허리를 박차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말릴 틈도 없이 달려나간 잔을 허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요셉도 말을 달렸다.
"요안나!! 잠시만 기다려!"
하지만 여러 곡성과 포성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요셉의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처음으로 생 카트린의 검을 빼어 들고 달려가는 잔은 용맹한 한 명의 기사와도 같았다.
검을 들고 잉글랜드 진영을 휘저으니, 감히 그녀를 건드릴 수 있는 적이 없었다.
잔은 검 한 번 휘두르지 않고 그저 달릴 뿐이었지만 생 카트린의 검이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잔의 패기에 졸도한 병사들은 겁을 집어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검이 마치 잔과 공명하듯 웅웅 울렸다.
모두가 그것을 자각한 것은 아니었다.
오로지 잔과, 요셉만이 자각했다.
'검이?'
'검이······.'
두 사람은 동시에 생 카트린의 검을 바라보았다.
요셉은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에 불안해졌고, 잔은 불현듯 치밀어 오르는 자신감에 격앙되었다.
잔의 말이 잉글랜드 병사들을 치며 그들을 전부 루아르 강에 빠트렸다.
잔의 목적은 단 하나.
이기기 위해서 악마와도 같은 선택을 하는 윌리엄 글라스데일을 잡는 것.
잔의 격성을 들은 라 이르와 질 드 레도 함께 말을 달렸다.
저 멀리, 메리엄이 검을 치켜들었다.
'프랑스의 마녀야. 오라. 내 이 검으로 너를 단죄하노라.'
메리엄이 반대편에서 맹렬히 말을 박차고 달렸다.
두 사람이 점점 가까워졌다.
요셉은 더더욱 말에 박차를 가했다.
안된다. 안돼.
이 전투에서 잔은 부상을 당한단 말이다.
어깨와 목쪽에 화살이 꽂히는 중상을.
요셉이 자신감에 취해 망각했던 것이었다.
왜 미리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분명 알고 있는 역사였는데.
요셉은 후회를 담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메리엄이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잔은 두려움 하나 없이 말을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가 검을 잔의 목을 향해 찌르려던 그 순간,
카앙!!
가까스로 도착한 요셉이 메리엄의 검을 쳐냈다.
덕분에 잔은 메리엄을 지나쳐 투렐로 계속 달려갈 수 있었다.
라 이르와 질 드 레가 그 뒤를 따랐다.
메리엄 또한 가만히 당하고 있기만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바로 반격을 가한 메리엄이 요셉의 앞을 가로막았다.
"너로구나! 프랑스의 어린 기사여. 생 루에서 허드슨의 목을 찔러 죽였다지?"
"비켜!"
"프랑스의 마녀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한이나, 어차피 시간문제. 검 하나 휘두르지 못하는 년이 홀로 투렐을 향해 달려갔으니 곧 죽을 것이다. 성녀는 죽고, 내 손에 프랑스의 미래도 잘릴 것이다."
메리엄은 퍽 멋있게도 검을 겨눴다.
프랑스의 미래.
그것은 어린 기사 요셉을 일컫는 말.
성녀 만으로도 이미 골치가 아플 정도인데 연전연승을 거듭하는 어린 기사까지 존재하다니.
메리엄은 요셉의 앞에서 기사도의 예를 표했다.
그리고 쏜살 같은 검이 빗발쳤다.
얼른 이 놈을 따돌리고 잔의 옆에 따라붙자는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큭!"
메리엄은 허드슨과는 다르게 빈틈이 없는 자였다.
게다가 여기는 눈에 뿌릴 흙도 없는 교량 위.
요셉이 한눈을 팔며 상대할 만한 자가 아니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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