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 (1)

"뭐야··· 아는 사람이야?"
말렌이 시프에게 물었다.
그 반응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는 반응이었다.
"뭐?"
시프가 놀랐다.
"하··· 이거 골치 아프게 됐구만, 그래."
빅터가 목덜미를 긁었다.
"나한테 볼일이 있는 건가?"
말렌이 물었다.
"그래, 형제. 형제의 존재를 아니꼽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서 말이야."
빅터가 몸을 풀며 말했다.
"뭐?"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 마나의 축복을 받았더라고."
뿌득뿌득.
빅터가 계속 몸을 풀었다.
그 나이만큼이나 몸이 많이 굳은 것 같아 보였다.
"마나의 축복?"
처음 들어보는 소리인 것처럼, 말렌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 마나가 알아서 들러붙는 사람 말이야."
빅터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좌우로 꺾은 후, 자세를 취하였다.
"무슨 말인지 난 도대체···."
말렌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림자를 두른 빅터가 땅을 차며 뛰었다.
그리고,
팡! 쾅!
말렌의 머리를 땅바닥에 내다 꽂았다.
그는 암살자였다.
그 빠른 속도에,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충격이 꽤 컸을 텐데도, 말렌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 봐, 이게 축복이 아니고 뭐겠어."
빅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렌이 빅터에게로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빅터는 그 주먹이 닿기 전에, 뒤로 피신하였다.
땅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이게 축복이라고?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데, 축복이라고?"
말렌이 빅터에게 따지듯 말했다.
"흥! 죽는 게 소원이라면 죽여주지. 목만 제대로 내밀고 있어라."
빅터가 얘기를 마치고, 칼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그림자를 두르고, 또 뛰었다.
"말렌!"
시프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지만, 말렌은 이미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죽음을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꺄악! 말렌, 무슨 일이야!?"
들려오는 여인의 비명 소리에,
말렌이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팔을 휘둘러,
쾅!!
빅터를 한쪽 벽으로 처박았다.
후두두두둑.
벽면이 부서지며, 빅터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말렌은 그것에 눈길도 주지 않고,
여인에게 다가가 그 허리춤을 잡았다.
"오, 리, 리사! 나를 걱정해 준 거야?"
그리고 물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짝!
뺨따귀였다.
리사가 씩씩 성을 내며,
말렌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말렌이, 자신의 뺨을 잡고,
금방 또 침울해 했다.
속이 훤히 보이는 사람이었다.
시프는 말렌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하지만,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너! 감히 나를 농락하다니!!"
빅터가 씩씩대면서, 말렌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을, 말렌이 곁눈질로 보았다.
그리고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슬픔이, 그에게는 우선이었다.
"흐윽, 흑 흑."
벌써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빅터가 그림자를 다시 두르고,
말렌의 목을 노리며, 달라 들었다.
그의 악에 받친 표정을,
시프는 그림자에 가려지기 전에, 보았다.
하지만,
탁.
빅터의 공격은 말렌의 몸을 가르지 못했고,
말렌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지도, 못하였다.
빅터는 수 차례 더, 말렌에게 공격을 가하였다.
팔을 높게 들어 찍고,
팔을 크게 휘둘러 베어 보았다.
하지만, 말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빅터의 공격은, 말렌에게 상처도 남기지 못했다.
"헉··· 헉···."
헝클어진 앞머리 사이로, 빅터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흑, 흐윽 흑흑."
말렌은 계속 울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시프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해결해 준다면, 정말로 좋을 것이었다.
* * *
또 다시 회사 앞.
회사 앞 골목 뒤에, 빌과 이반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아이샤는 따라오지 않았다.
현장에 나가는 것은, 그녀의 업무가 아니었다.
"알려줬듯이, 공원으로 가는 방법은 리프팅 박스(Lifting Box)가 유일하다네.
1층에서 리프팅 박스를 찾은 다음에 공원으로 내려가게.
리프팅 박스의 위치는 잘 기억하고 있나?"
빌이 이반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이반이 대답했다.
오랜만에 작전을 하는 느낌이었다.
"좋아. 그럼 공룡 복원종을 찾은 다음에는,
여기 이 우리에 넣어서 오게."
빌이 이반에게 우리를 건넸다.
그런데, 그 우리는 기대했던 것보다도 작은 것이었다.
새장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우리.
고양이가 들어가면 딱 알맞겠다는 생각이 드는 우리였다.
"이건?"
이반이 물었다.
"1세대 복원종은 크기가 그렇지 크지 않다네.
최근의 4세대 복원종이 아닌 1세대 복원종을 요구했던 것도, 그 크기를 염두에 뒀던 거겠지.
아마 본인이 직접 공룡 복원을 할 생각도 가지고 있을 걸세."
빌이 이반에게 설명해 주었다.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여도, 이 우리 또한 소산의 주문을 넣은 우리라네.
1세대 복원종을 가져오기에는 무리가 없을 거라네."
"그런데 1세대 복원종은 어떻게 알아보죠?"
이반이 질문하였다.
모든 걸 갖춘다고 하여도 가져와야 할 물건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빌이 품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그 종이에는 그림이, 그것도 아주 자세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여기 이걸 참고하게. 또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기에, 마지막에 건네주려고 했었네."
빌이 얘기하였다.
이반은 종이를 받아서 품 안에 넣었다.
"회사를 나온 뒤에는, 여기 이 장치를 누르게.
내가 기다리고 있다가, 곧바로 데리러 가겠네."
빌이 장치 하나를 이반에게 건넸다.
작은 마나석이 박혀 있는 둥근 장치.
이 또한 어떠한 주문이 부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반은 그 장치 또한 품 안에 넣었다.
이반의 품 안에 성수, 파루스의 눈, 공룡 그림과 호출 장치가 함께 있게 되었다.
"그럼 행운을 빌겠네. 늑대 소녀를 위해서라도, 꼭 공룡을 잡아와야 하네."
빌이 이반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그 말이나 그의 손의 온기가, 부담스러웠지만, 이반은 수긍하였다.
하이드를 되찾기 위해서, 꼭 성공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반은 우리 안에 갇혀 있던 하이드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졌다.
* * *
회사 안에 들어가기란, 이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 외관에서 느껴지는 포스와는 다르게, 경비가 삼엄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전과 달리 경비 인력이 있긴 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았고 별다른 방어 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안이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회사의 직원들도 걸림돌이 되지는 못했다.
그들은 기운이 없어 보였고, 시야 또한 좁아 보였다.
이반은 리프팅 박스를 금방 찾아냈다.
위치를 알고 있었기도 했고,
리프팅 박스라 할 만한 게 이것 말고는, 없었다.
리프팅 박스··· 처음 보는 신기한 장비였다.
회색 상자가 수많은 밧줄들에 연결되어 있었고,
그 위의 천장이, 뻥 뚫려 있었다.
밧줄들이 어둠 속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회색 상자는 그 바닥 부분도, 공중에 살짝 떠 있었다.
그 아래로 바닥이 이어지지 않는 걸 봐서는,
그냥 회색 상자 자체가 공중에 걸려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반은 회색 상자의 옆쪽에 붙어 있는 버튼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버튼을 눌러봤다.
그러자, 회색 상자의 가운데 부분이 지잉 하면서 열렸다.
안에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작은 방이 있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신기, 그 안으로 발을 내딛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반에게는 그만한 용기가 있었다.
물러설 수 없는 동기 또한 가지고 있었다.
이반은 리프팅 박스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리프팅 박스 안은 회사 내부보다도 밝았다.
마나석을 이용한 조명들이 안을 밝히고 있었다.
마나석의 이러한 활용 또한 본 적도 없었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확실히 프로스트 다운의 동굴에서 마나석의 빛이 도움 되기는 했었다.
리프팅 박스의 내부에도 버튼이 있었다.
위, 아래 모양의 화살표 버튼.
오르고 내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이반이 향할 곳은 아래쪽이었다.
이반은 아래 모양의 화살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묵묵부답.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설마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가 긴장했었는데,
그 긴장감이 무색해졌다.
약간의 정적.
그리고 어떤 말이 나올지, 이반은 왠지 모르게 예상이 됐다.
"멍청아, 마···."
"마나를 써야지, 예~. 네네 알겠습니다."
이반이 케로스의 말을 가로채며,
마나를 의식한 채로 버튼을 다시 눌러보았다.
그러자, 덜컹.
리프팅 박스가 아래로 쭈우욱 내려갔다.
이반은 벽에 기대어서 박스 내부를 훑어보았다.
놀라서, 위험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덜컹.
리프팅 박스가 멈추면서,
그 가운데 부분이 다시 열렸다.
이반은 리프팅 박스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공원이라 부르는 게 납득이 될 정도로 수풀이 우거진 곳이었다.
이반은 리프팅 박스를 뒤돌아 보았다.
할 일을 마친 리프팅 박스가 그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확실히 이런 이동 수단이 있다면 많이 편리할 것 같았다.
이런 것을 개발한 만부스가,
이반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또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번에 몰래 숨어들었을 때 왜 트라팔가와 마주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반은 다시 앞을 보았다.
끼에에에엑!!
날아다니는, 머리가 큰 공룡.
그리고 그에 화답하듯,
우어어어어엉!
숲속에서 모가지를 내미는 둥근 머리의 공룡.
공원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 * *
시프의 바람이 이루어진 방식은,
그 기대와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 줄 몰랐던 시프는,
"이반!!"
이반의 이름을 하늘 위로 크게 불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반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름을 듣고,
"이반?"
빅터가 크게 놀랐다.
"너, 이반을 알아?"
빅터가 시프에게 물었다.
그는 말렌에게의 공격을 멈추었다.
아직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말렌.
어느 누구도 그를 말릴 수 없었다.
"이반?"
시프가 의아해했다.
이반이란 이름이 흔한 것은 아니었지만,
왜 빅터가 그런 반응을 보인 건지 이해가 안 됐다.
시프는 긴장감에, 숨을 죽였다.
"암살자 이반을 알아?"
빅터가 다시금 물었다. 이번에는 더 자세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시프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대답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긴장한 탓이었고, 그 긴장감이 빅터의 물음에 의해 배가되었다.
"너, 아는 구나? 그렇지? 아는 거지? 이반이 여기 있는 거지?"
빅터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하하하하하!! 이거 엄청난 건수가 있었구만 그래! 좋았어! 어서 이놈을 해치우고 이반에게로 가야겠어.
시프, 네가 안내 좀 해줘야겠다!"
빅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시프는 매우 사악하게 느껴졌다.
시프는 활을 꺼내, 빅터를 노렸다.
하지만, 빅터는 그 음흉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하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여기 이놈을 먼저 끝장내고 갈 테니까 말이야."
빅터가 품 안에서 마나석을 하나 꺼냈다.
검보라색의 마나석 주위로, 흉흉한 기운이 감돌았다.
딱 봐도 위험한 물건이었다.
그것을 빅터는, 최후의 수단으로 아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빅터가 마나석에서 힘을 끌어내,
자신의 팔 주위, 그림자 위에 감았다.
그리고 그 팔을, 말렌에게 곧장 휘둘렀다.
"안 돼!!!"
시프가 다급히 소리쳤다.
시프의 간절한 외침에,
말렌이 그 두 눈을, 번쩍 떴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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