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와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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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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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와 영혼

DUMMY

"우린 너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을 거야."

이반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파린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이반은 순간, 자신이 매정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파린이 유도한 감정이었다.

거기에 흔들려서는 안됐다.


"정말."

이반이 더 단호하게 얘기했다.

물러나서는 안됐다.


"그래···."

파린이 서운해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진심으로 서운한 건지,

아니면 그런 척을 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여러 군데에서 돈을 빌린 전적이 있었다.

불쌍한 척, 아쉬운 척하는 것은 그녀의 주특기였다.


"그런데 갈란투스 축제라는 건 뭐야?"

이반이 화제를 돌렸다.


그 얘기를 듣고,

"갈란투스의 산란기를 맞아, 이제는 도시의 상징이 된 갈란투스를 기념하는 축제야."

파린이 곧바로 대답했다.


"이 도시의 상징은 갈매기 아니었어?"

이반이 물었다.


"그렇지. 하지만 다른 곳에는 갈란투스가 없잖아?

이 도시에만 존재하는 새니까, 더 의미가 있지."

파린이 다시 눈을 밝히며 얘기했다.


그녀의 관심 주제였다.


"그런데도 그 서식지를 밀어버리려 하는 거야?"

이반이 또 물었다.


"응···."

파린이 말끝을 흐렸다.


"그걸 겁내는 사람이 많아서?"

이반이 파린의 말을 기억해 냈다.


"그렇지. 갈란투스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

돈 많은 사람들이··· 많아.

그리고··· 도시를 확장하는 데에도 그게 거슬리는 모양이야."

파린의 눈이 슬퍼 보였다.


"그래도 도시와는 거리가 좀 있던데?"

이반이 의문을 던졌다.


"거리가 있긴 해도 갈란투스가 워낙 크니까,

안 보이긴 어렵지.

그리고 도시 상공을 날아다니까."

파린이 입을 꾹 다물었다.


갈란투스에게 불리한 얘기였다.


"그렇구나."

이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몰아붙인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갈란투스를 도시에서 몰아내려는 게 이해는 되었다.


"그럼 축제는? 갈란투스가 없어지면 그것도 없어지는 거 아니야?"


도시에 피해를 끼친다는 논리는 알았으니,

이제는 도시에 득이 되는 쪽을 따질 차례였다.


해가 되는 것보다 득이 되는 게 많다면,

서식지를 밀어버리는 것을 재고해 줄지도 몰랐다.


축제는 돈이 될 테니,

돈 많은 사람들도 그것이 사라지기를 원치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파린의 입에서 나온 건, 뜻밖의 얘기였다.


"갈란투스는 없어지겠지만, 축제는 계속될 거야.

그리고 이번이 아마, 갈란투스가 '있는' 마지막 축제가 될 거야."

파린이 이어서 말했다.


"뭐? 그게 말이 돼?"

이반이 놀라 물었다.


"높으신 분들에게는 말이 되는 모양이야."

파린이 퉁명스럽게 얘기했다.


"갈란투스가 여기 서식했다는 걸 기념한다는 거지.

석상도 세우고, 관련 행사도 만들 모양이야."


상식에서 벗어난 얘기였다.


"그래도 갈란투스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 거 아냐?"

이반이 따졌다.


"없어도 축제를 열 수 있고, 돈만 벌 수 있다면 괜찮은 거지.

그런데 문제는, 갈란투스가 여기서 내쫓기면 정말로 멸종할 수 있다는 거야."


파린이 말을 마친 후,

"후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녀에겐 무거운 얘기였다.


"멸종된다고?"


"응. 이곳만큼 적당한 환경을 찾기가 어려울 거거든.

이런 천해의 해협이 또 어디에 있겠어?

그리고 아까도 봤듯이, 원래 온순한 종이야.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또 새끼를 지키기에도, 그 몸집이 너무 크지.

보통 열 마리 남짓 낳는데, 살아남는 건 둘도 안돼.

성체가 되어도, 상처를 쉽게 입으니까 또 쉽게 죽지.

만약 사람들이 이 갈란투스를 노린다면, 금방 절멸하고 말 거야."

파린이 얘기했다.

너무나도 슬픈 눈이었다.


"그럼 너는 왜 갈란투스를 보호하려고 하는 거야?

땅을 사면서까지, 그러는 이유가 있어?"

이반이 물었다.


개인적인 질문일 수도 있었지만, 물어봐야 했다.


그런데,


"그냥."

대답은 간단했다.


"뭐?"


"그냥이라고. 그냥 새가 좋고 갈란투스가 불쌍하니까.

그게 다야."

파린이 다시 대답했다.


파린은··· 정말로 순수한 사람이었다.


물론 돈을 여기저기에서 빌린 건 잘못이었지만,

그마저도 그녀에겐 간절했던 것이었다.


이반은 벙쪘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정적을 깬 건,


말렌이었다.


"그럼 파, 파린 씨는··· 어떤 남자를 조, 좋아하십니까?"

말렌이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


사고가 따라가지 못했다.


"돈 많고 힘 쎈 사람."

파린이 대답하고 싱긋, 웃었다.


그 미소를 보고, 말렌이 결심한 듯, 표정을 다잡았다.


왠지 모르게 위험한 느낌.


파린의 새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그의 마음에 들었던 걸까,

그 결심의 이유를, 이반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럼 축제는 언제야?"

이번엔 시프가 물었다.


축제라는 말에 동한 건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이번에도 짐작할 수 없었다.


"축제는 5일 뒤. 5일 뒤에 시작해서 3일간 진행돼.

시내에서도 오늘부터 축제 준비를 시작했을 거야."

파린이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시프.


그것을 보고, 만부스에서 상인들이 움직인 일과,

일을 미룰 수 없다는 그레고리의 말이, 이반은 떠올랐다.


상인들은 축제를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

게라드의 부푼 꿈도 축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


파린을 도울 방법이, 이반은 생각났다.


그 또한 도움을 받아야 하겠지만,

도움은 받는 편이 나았다.


혼자보다는 둘이 무조건 나았다.


"그럼 일단 내일 시내에 함께 가자.

도움을 구할 사람이 있어."

이반이 파린에게 말했다.


이반의 진지한 얼굴에, 파린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그녀였다.


파린은 고개를 흔들어 눈빛을 다잡고,


"응."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어느새 밤이 되고 있었다.


이반이 고개를 돌려, 하이드를 보았다.


* * *


밖이 어두워지고,

해변 위로 달이 걸렸다.


이반과 하이드, 그리고 다른 일행들 모두,

해변가에 모여 있었다.


하이드의 목에는 파루스의 눈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눈이, 달을 보며 떠져 있었다.


옅은 초록색을 띠던 그 눈동자는,

어두운 밤보다도 깊은 검은색으로 주변의 빛을 삼키고 있었다.


공중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하이드는,


늑대의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다.

약간 힘이 빠져 보였지만, 사람의 모습 그대로였다.


평소라면 이미 늑대로 변했어야 하는 시점이었다.


"와아아아!!!"

시프가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말렌의 동공도 커졌다.

그리고 그의 입도 크게 벌어졌다.


감격스러운 건,

이반도 마찬가지였다.


"하이드!!!"

이반이 소리쳤다.


그리고 목걸이를 보던 하이드가,

고개를 들어 동료들을 보고,


그 눈에서 주륵,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우아아아앙."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하이드가, 이반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이반에게 안겼다.


이반이 하이드를 꼬옥 안았다.


그리고 시프가 다가와서 그 둘을 함께 안고,

말렌도 함께 했다.


파린은 어리둥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니, 일어나지 않은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세한 내막은, 듣지 못했었다.


잠시 후, 이반이 품에서 하이드를 꺼냈다.

그가 양손으로 하이드의 양 팔을 붙들었다.


하이드의 얼굴은 눈물범벅.


부끄러운지 하이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몸은 어때? 달라진 건 없어?"

이반이 물었다.


"응."

하이드가 대답했다.


"피곤하다거나 그러진 않아?"

이반이 또 물었다.


"조금? 약간 힘들어. 졸린 것 같아."

하이드가 말했다.


나른한 느낌.

마나가 빠져나가는 느낌일 것이었다.


"그래? 다행이다. 그리고 잘 됐어. 정말 잘 됐어!"

이반이 하이드의 어깨를 흔들었다.


"고, 고마워. 흐윽."

하이드가 다시 눈물을 보였다.


말 못할 아픔이, 그녀에게는 많았다.


하이드가 다시 울음을 터트리자,

이반이 그녀를 다시 안아 주었다.


"안심할 수는 없다."

케로스가 갑자기 나타나서, 분위기를 깼다.


"뭐?"

이반이 그에 반응했다.

짜증을 낸 것은 아니었다.


"일단 오늘 하루 동안은 계속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후에도, 마음을 다 놓아서는 안 된다."

케로스가 말했다.


"파루스의 눈이 마나를 빨아들인다고 해도,

그 마나가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정말로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것이 마나를 어딘가에 저장하는 것이라면 결국,

그 용량이 언젠간 다 찰 수도 있는 거고,

그 안에 쌓인 것을 토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 주의해야 한다."

케로스가 경고했다.


그 경고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걱정돼서 한 소리였다.


이반은 모르겠지만, 그는 하이드를 꽤 아꼈다.


그리고 이반은 케로스의 그 경고를, 흘려듣지 않았다.


"알겠어. 내가 잘 살펴볼게."

이반이 말했다.


"살펴보는 걸로 충분하면, 말도 꺼내지 않았다. 멍청이.

원래 위험은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최악의 순간일 때 말이지."

케로스가 인상을 구겼다.

어떤 기억이 떠오른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마나와 영혼은 어떤 관계야?

정말 그 둘이 다르지 않은 거야?"

이반이 물었다.

일전에 빌이 얘기했던 것이 맞는지 궁금하였다.


"같은 거라고도 볼 수 있지.

마나는 영혼의 잔여물 같은 것이다."

케로스가 말했다.


"잔여물?"

이반이 물었다.


"그래. 잔여물. 육신이 썩어서 비료가 되듯이,

영혼이 떠나면서 남기는 것이 마나고, 그게 다른 영혼의 먹이가 되는 거지."

케로스가 대답했다.


"영혼이 떠난다고?"

이반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영혼은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하다가, 어딘가로 떠난다.

그 파루스의 눈이 닿는 곳이 그곳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중 하나일 수도 있지."

케로스가 하이드의 목걸이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이반의 품에 안겨서, 고개만 케로스를 향해 돌리고 있었다.


"그럼 잔여물이라는 건, 결국 다른 사람의 영혼이라는 거야?"

이반이 물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연료같이 쓴다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다.


"아니. 사람뿐만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 심지어 꽃이나 나무 같은 식물까지도 마나를 남긴다.

생명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멍청이."

케로스가 꾸짖었다.


그는 사람에 관해서는 아니었지만, 자연에 대해서 만큼은 남다른 존중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잔여물을 남긴다고? 그게 충분히 많은 거야?"

이반이 재차 물었다.


그의 생각에, 마나는 너무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그래. 원래는 잔여물을 많이 남기지 않는 것이 맞다.

영혼도 그 무게가 측정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이기에,

그 잔여물 또한 활용이 어려울 정도로 적게 남는 것이 맞지."

케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로스에게 인정 받은 듯한 기분이 갑자기 들었다.

약간 불쾌했다.


"하지만, 이 세계에는 저주가 씌어 있다.

영혼이 마음대로 떠나질 못하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영혼의 잔여물, 그 찌꺼기를 끌어모은 다음에,

그것을 동력 삼아 세계를 떠나거나,

그 찌꺼기에 파묻혀서 그대로 소멸되거나 한다.

그 너무 커진 부피를 영혼이 감당하지 못하는 거지.

아무튼, 영혼이 오랜 기간 끌어모은 그 찌꺼기를, 우리는 쓰고 있는 것이다."


케로스가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심각한 얘기였다.


저주라니.


마나가 죄의 산물이라고 했던 호라 마을 사제의 말이, 이반은 떠올랐다.


"그렇다면 그 저주는 누가···."


"신이지. 씻지 못할 죄를, 인간은 지었다.

그리고 그것을 비밀로 하고 있지."

케로스가 이반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대답하였다.


"신에게 지은 죄를 비밀로 하고 있다고?

그렇다면···."


"그렇다. 교황청이 그것을 비밀로 하고 있을 거다."

케로스가 또다시 빠르게 대답하였다.


왠지 모르게 케로스가 답변을 성실히 해주고 있었다.

이때, 질문을 더 해야 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신이 존재하는 거야?"

근원적인 질문을, 이반이 던졌다.


"그렇다. 신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신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놀라운 얘기.


"뭐?"

이반이 반사적으로 물었다.


"신이란 영혼의 총체, 그리고 그것의 의지를 읽는 자를 동시에 칭한다.

네가 생각하는 이 세상을 창조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뭐!?"

주변에 있던 모두가 케로스의 얘기에 크게 놀랐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작가의말

많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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