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준비
존슨이 가져온 것은 가지와 애호박, 그리고 피망 등을 켜켜이 쌓아 올려 구운 요리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처음 보는 빨간색 채소도 함께 있었다.
"이건 뭐죠?"
이반이 그 빨간색 채소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그건 토마토라고 하는 겁니다."
존슨이 대답했다.
약간은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
당당하지 않은 그 모습이 이반의 마음에 걸렸다.
"토마토라고요?"
이반이 다시 물음을 던졌다.
"네, 요즘 들어온 채소인데, 사람들은 잘 먹지 않더라고요.
악마의 열매라나 뭐라나,
참 말도 안 되는 걸, 사람들은 다 믿는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존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들의 믿음에 관해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틀린 것도 있지만,
그것이 그들을 보호해 주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모험을 걸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반은 먼저 그 요리를, 입에 가져가 보았다.
다른 일행들은 모두, 이반의 반응을 살폈다.
하이드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느껴졌다.
하지만,
"으으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뭐야 이건! 너무 맛있는데!!"
이반이 감탄하였다.
뿌듯해 하는 존슨.
그는 자신의 요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걸 뭐라 해야 되지?
야채들이 씹히는 것도 너무 좋고,
이 빨간색 채소에서 나는 짭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정말로 일품인데?"
이반이 요리의 맛을 설명했다.
요리에 대한 순수한 감상이었다.
마치 미식가가 된 것처럼, 그 감상을 잘 풀어냈지만,
자신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이반은 자각하지 못했다.
이반의 감상 뒤로,
일행들도 어서 요리를 먹어보았다.
"와···!!!"
연이어,
"음···!!!"
터져 나오는 감탄.
일행들도 예외 없이 요리를 좋아했다.
"이거면 되겠어요. 이반!"
게라드가 신을 내며 말했다.
파린의 얼굴도 한층 밝아져 있었다.
자신의 고민이 풀려가는 것을, 그 입으로 직접 맛보는 그녀였다.
희망과 기대감이, 그녀의 눈에 비치고 있었다.
아이들도 요리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보통 야채를 마지못해 먹곤 했었다.
먹을 게 부족하면 보통 그런 법이었다.
하지만 이 야채 요리는, 정말로 맛있게 먹었다.
말렌은 한술 더 뜨고 있었다.
단숨에 자신에게 할당된 양을 모두 해치우고,
혹여라도 다른 사람이 음식을 남길까, 지켜보고 있었다.
참으로 독특한 남자였다.
"그래서 이 요리는 뭐라고 하나요?"
이반이 존슨에게 물었다.
그러자, 존슨이 고민하였다.
음식의 이름을 따로 정해두지 않은 듯했다.
"음··· 토마토와 야채 구이, 어떠십니까?"
존슨이 얘기하였다.
절망적인 네이밍 센스였다.
식욕이 떨어질 정도였다.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이반은 속으로 바랐다.
그리고 역시 기댈만한 건,
"일단 토마토는 빼는 게 어떨까요?
악마의 열매라는 얘기도 있으니까."
게라드뿐이었다.
"그리고 이 토마토도 가능하다면,
형체를 조금 뭉개는 게 좋을 것 같고요.
그래야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라드가 피드백을 주었다.
"이름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반이 이 새를 놓칠 새라, 곧바로 물었다.
"이름은··· 아무래도 굴 포트의 이름을 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갈란투스의 이름도 담으면 좋을 것 같고요."
게라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둘의 조합을 생각한 이반은, 불안감이 들었다.
둘 모두의 의미를 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갈란 포트(Galan-pot) 어떠십니까?
포트는 발음이 같으니까,
충분히 말이 되지 않을까요?"
게라드가 제안하였다.
그리고 그 제안은,
"오···!"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이미 토마토와 야채 구이를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지만,
의미를 다 담은 것치고는 꽤 절묘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채소는 저도 취급하지 않았던 건데,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네요.
이 맛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앞으로 많이들 찾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요리법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게라드가 존슨에게 물었다.
"어··· 가능합니다. 하지만 왜···?"
존슨이 약간은 경계하면서, 물었다.
자신의 창작을 공유하는 것은 꺼려지는 일이었다.
"사람들에게 이 토마토를 팔 때, 요리법도 알려 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게라드가 맑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여전히 처세가 좋은 모습이었다.
그 웃음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상인이 아니고서야 많지 않을 것이었다.
"음···, 좋습니다. 그럼 기왕 알려 드리는 거, 많이 좀 퍼뜨려 주십시오.
가만, 그렇다면 제 이름을 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제 이름을 붙여서, 존슨즈 갈란 포트(Johnson's Galan-pot)는 어떠십니까?"
조금은 나아진 건가?
아니, 그냥 갖다 붙였을 뿐이었다.
그 센스는, 여전히 절망적이었다.
"그냥 갈란 포트가 나을 것 같습니다."
게라드가 미소를 지으며, 사양하였다.
그리고 이번의 미소는, 어딘가 차가운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거절할 수 없었다.
* * *
먹을거리가 무사히 해결된 후,
이제는 볼거리가 걱정이 되었다.
사람들을 시내에서 나오게 만들 만한 볼거리가 필요했다.
웬만한 볼거리로는 그 먼 거리를 움직이게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아이디어를 준 것은 존슨이었다.
식사 후에, 이반 일행들이 고민하는 것을 듣고서,
존슨이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물론, 존슨은 이미 포섭한 뒤였다.
역시나 시장 한쪽 구석에, 인형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고
그에게 가서 상담해 보라고, 존슨이 얘기해 주었다.
인형 가게는 시장 반대쪽 끝에 있었다.
존슨의 가게와는 대척점을 이루는 지점이었다.
그 둘이 어떻게 왕래를 한 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미스터리였다.
인형 가게는 존슨의 가게보다 훨씬 깔끔했고,
아기자기한 인형들이 선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인형들을 보자마자, 하이드가 얼굴을 밝히며 좋아했다.
어차피 새끼 갈란투스 인형을 만들어 판다는 계획도 있었으니,
겸사겸사 잘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인형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볼거리를 만든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이 인형들을 행사장까지의 길 위에 하나씩 놔둬야 하는 것인지,
오는 사람들에게 인형을 준다고 꼬드겨야 하는 것인지,
이반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가게를 계속 구경하였다.
그리고 인기척을 느끼고,
가게 안쪽에서 나온 것은, 왜소한 체격의 남자.
수염도 머리털도 바짝 깎은 그는,
이 인형들을 만든 사람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귀여운 인형들을 만든 사람은 당연히 여자이고,
또 할머니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 예상을, 이 남자는 아득히 비웃으며 나타났다.
"천천히 둘러보세요. 작은 것은 동화 두 개부터 시작합니다."
남자가 값어치를 얘기하였다.
목소리도 보통의 남자 목소리였다.
여성스러운 구석은 별로 없었다.
하이드는 빨간 모자를 쓴 여자아이 인형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조금은 만져 봐도 된단다."
하이드를 보고, 남자가 얘기하였다.
나름의 배려였다.
하지만, 섣부른 배려였다.
뿌각.
나무 인형의 팔이, 하이드가 손을 대자마자 부러져 버렸다.
그리고 울상을 지으며, 이반을 돌아보는 하이드.
이반은 이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항상 막을 새가 없었다.
그리고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하이드를 보고 있는 인형 가게의 남자.
그는 이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만지자마자 부러질 줄은, 정말로 몰랐을 것이었다.
충격에 휩싸인 모습.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건 저희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자칫 불편해질 수도 있는 분위기를, 게라드가 빠르게 나서서 정리하였다.
"아···, 네."
남자가 떨떠름해 하며 대답했다.
"그보다도 하나 상의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는데,
잠깐 대화할 수 있을까요?"
게라드가 이어서 물어보았다.
"어떤 일이시죠?"
남자가 하이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물었다.
하이드가 인형을 들고 슬퍼하고 있었고,
이반이 하이드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갈란투스 축제와 관련해서 뭔가 보여줄 만한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
존슨이 이곳을 찾아가 보라고 했거든요."
게라드가 말했다.
"존슨이요? 그 이상한 요리 만드는 존슨?"
남자가 물었다.
친구라고 한 것 치고는, 평가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존슨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인 것 같았다.
존슨의 요리를 먹어본 사람으로서,
씁쓸하게 느껴지는 평가였다.
"예. 그렇습니다. 대화 가능하실까요?"
게라드가 다시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아, 네. 가능합니다. 제 이름은 폴(Paul)입니다."
자신을 소개하였다.
"그럼 안쪽으로 가서 얘기하실까요?"
폴이 자신이 나왔던 가게 안쪽을 가리켰다.
"네, 좋습니다. 저는 게라드입니다."
게라드가 동의하였다.
게라드가 폴을 따라서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반 일행도 그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하이드의 손에는 팔이 부러진 빨간 모자 인형이, 들려있었다.
* * *
가게 안쪽에는, 폴의 작업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의 탁상 위에, 천으로 감싸진 무언가가 있었다.
"아마 이것 때문에, 존슨이 저를 소개해 준 것 같은데."
폴이 그 무언가의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게 뭐죠?"
게라드가 운을 뗐다.
그리고 기대감이 느껴지는 표정.
폴이 원하는 반응이었다.
폴이 만족한 듯 웃으며,
"바로, 큰 인형입니다."
그 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천 아래에는,
거대한 인형의 틀이 자리하고 있었다.
큰 인형···.
절망적인 네이밍 센스는 이곳 시장의 특징인가?
이반은 정말로 궁금하였다.
하지만 그보다도 눈앞의 물체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하였다.
"이건 도대체 뭔가요?"
게라드가 먼저 물었다.
"아! 이건···."
폴이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깨달았다는 듯,
"사람이 들어가서 쓰는 인형입니다."
인형에 대해 설명하였다.
하지만, 그 설명이 와 닿지 않았다.
처음 보는 물건에,
처음 듣는 설명이었다.
"어떻게 사용하는 거죠?"
게라드가 물었다.
기획의 책임자는 게라드였다.
"아! 보여드릴까요?"
폴이 또 놓친 것이 있다는 듯, 얘기하였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일은 많지 않았을 것이었다.
폴이 눈앞에서 그 인형 틀을 쓰기 시작했다.
몸통 부분에 몸을 쏙 넣고,
팔을 뻗었다.
그리고,
"저기···, 저것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머리 부분 쪽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네, 알겠습니다."
게라드가 대답했다.
하지만, 앞으로 나선 것은 말렌이었다.
"내가 할게."
말렌이 호기심을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
씩 웃는 얼굴이, 즐거워 보였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는 느낌이었다.
말렌이 그 머리를 들어, 폴에게 씌워 주었다.
그리고 폴이 팔을 들어, 그 머리를 돌려가며 맞추었다.
"자, 어떻습니까?"
폴이 인형을 완전히 쓰고서, 짜잔! 자세를 취하며 물었다.
하지만 어떻냐고 하기에는,
기본 틀만 있어서 인지 그 모습이 밋밋했고,
또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와! 대단한데요?"
게라드는 박수를 치며 그것을 칭찬하였다.
그것을 보고 의아한 이반.
"게라드, 이게 뭔지 알겠어?"
이반이 게라드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하지만,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게라드의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뭐!? 그럼 왜 박수를 치는 거야?"
이반이 놀라 물었다.
하지만 오히려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이반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라드.
"당연히 폴을 위해서죠.
그의 노력을, 무시하고 싶진 않습니다.
게다가, 이것이 어떤 물건인지,
또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그가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게라드가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그의 고민의 산물이었고,
그것은 인정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 뜻을 이해하고,
이반도 게라드를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일행들도 따라서 박수를 쳤다.
그 박수 속에서, 폴이 신난 듯 몸을 움직였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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