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란투스 축제 - (4)

빚쟁이들이 물러간 뒤에,
행사는 다시 원활하게 진행되었고,
밤이 깊어지고 새끼 갈란투스들이 제 어미의 품으로 돌아가면서,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아르만은 오지 않았다.
말렌이 아쉬워하였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게라드가 일행들에게 인사하며 돌아다녔다.
사람들도 모두 돌아갔기 때문에,
공터의 모닥불은 일행들의 차지가 되었다.
게라드가 피워 놓은 모닥불이었다.
일을 마친 일행들이 게라드의 손짓에 따라,
모닥불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반은 먼저 인형을 벗고,
꼬맹이들과 함께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다.
조금 더 살이 빠진 듯한 느낌의 이반.
꼬맹이들은 그 옆에 그냥 앉아 있지 않았고,
작게 코를 골며,
이반에게 기대, 졸고 있었다.
숲속 친구들은 잠에 들 시간이었다.
그들에게 먼저 다가온 것은, 비교적 가까이에 있던 존슨과 폴이었다.
존슨은 많은 손님을 처음 받아본 탓에 꽤나 지친 모양.
폴도 인형부터 분장까지,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아 녹초가 된 모습이었다.
고개를 떨구고 축 늘어져 있는 그들을 보니,
따뜻한 차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이어 다가온 파린은 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든 진이 빠져 버린 모습.
아이들을 상대하면서, 새끼 갈란투스도 신경 써야 했기 때문에,
그 고단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온 말렌 또한 혼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분장을 한 채로 시내도 돌아다니고,
행사장으로 돌아와서는 인원 통제도 도운 그였다.
원래도 지구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상당한 무리를 했음이 분명했다.
어느 한 사람,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여, 첫 시작을 훌륭하게 이뤄냈다.
"모두 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게라드가 모닥불 앞으로 다가와서 앉았다.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총괄한 사람.
그가 아니었다면, 이것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현장을 감독하고 인원들을 살피는 데에도,
그는 최선을 다하였다.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였다.
당장이라도 박수를 쳐주고 싶었지만,
그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도대체 몇 명이나 온 거야, 게라드?"
이반이 물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모두가,
고개를 살짝 들어, 그 물음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일행들을 살펴보는 게라드.
그의 눈빛에 만족감이, 어려 있었다.
두구두구두구,
일행들이 기대감을 가지고 게라드를 쳐다보았다.
북이라도 있다면 칠 기세였다.
그리고,
"오늘 저희 행사장을 찾아온 사람들의 수는 무려···!"
눈치를 살피고,
"114명입니다!!"
발표.
그 숫자에, 모두가 크게 놀랐다.
모두 숨을 삼켰다.
시장이 서식지를 찾지 말라 했음에도,
이렇게나 많은 숫자가 찾아온 것은, 놀라운 성과였다.
"와아아아!!"
어느새 잠에서 깨어, 기뻐하는 시프 그리고 하이드.
하이드의 목에서 목걸이가 출렁거렸다.
그 목걸이의 끝에는 파루스의 눈이 달려 있었다.
굳이 마나를 쓰지 않아도 이렇게 즐겁게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나를 빼고 생각할 수가 없는 세상이었다.
이반도 하이드가 아니었다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반은 하이드의 저주를, 완전히 풀어주고 싶어졌다.
그 결과로 그녀가 지금처럼 마나를 쓰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맞는 일이라고, 이반은 여기게 되었다.
일행들의 자축 아래에서,
밤이 더욱 깊어지고,
모닥불이 더욱 빨갛게 타올랐다.
축제 기간은 아직 이틀 더, 남아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파린의 집에서 나와 행사장을 다시 찾은 일행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것은 바로,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는 상인들의 행렬.
원래라면 식자재를 충당하러 간 존슨과,
그를 돕는 폴과 말렌만이, 그 길 위에 있어야 했다.
게라드가 서둘러, 상인들에게로 뛰어갔다.
그리고 얘기를 나눈 뒤에,
그들을 행사장으로 인도하였다.
이반도 꼬맹이들과 파린과 함께, 서둘러 행사장으로 갔다.
파린은 어제의 피로를 모두 잊은 양,
활기가 충만한 모습이었다.
여자의 생리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게라드, 이게 무슨 일이야?"
행사장에 도착하여, 이반이 물었다.
게라드는 짐을 끌고 온 상인들을 안내하며,
그들을 적절한 곳에 배치하고 있었다.
"해냈습니다, 이반!"
무척이나 신이 난 듯한 게라드.
"뭐가?"
이반은 당황스러웠다.
"도시의 상인들이, 저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게라드가 크게 소리쳤다.
정말로 기쁜 소식.
이반은 상인들의 행렬이 다시 보였고,
그것이 너무나도 반갑게 느껴졌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행사장으로 들어오는 상인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말이 안 되는 상황에, 인지가 따라가지 못했다.
"왜? 게라드, 도대체 왜?"
이반이 드문드문한 말로 물었다.
"이반?"
이반을 걱정스레 쳐다보는 게라드.
"도대체 왜, 상인들이 여기로 오는 거야?"
이반이 인상을 썼다.
머리가 아파 보였다.
빠른 해결이 필요했다.
"아! 듣자 하니 도시 내에 소문이 퍼졌나 봅니다.
사람들이 오늘 이곳을 많이 찾을 거라는 기대에,
상인들이 이곳으로 모이고 있는 겁니다."
게라드가 즉답했다.
그의 톤이 한층, 높아져 있었다.
"그래?"
이반이 아직 상황을 다 받아들이지 못했다.
"네. 축제 기간이라고 하여도 모두가 주목을 받는 건 아니니까요.
시장에 남아 있는 것보다 이곳에 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거죠."
게라드의 첨언.
그 말에, 이반은 상황이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데 이게··· 우리에게도 좋은 거야?"
의문이 또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의문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게라드는 밝은 안색을 잃지 않았다.
"물론이죠. 이반."
게르드가 단언했다.
이반의 혼란을 진정시키려는 듯한 느낌.
"이곳의 아이템들이 풍성해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게 될 것이고,
저희들의 수익 또한 늘어날 겁니다.
갈란투스 보호에 대해서 더 많은 공감을 받을 수도 있을 테고요!"
갈란투스 보호, 그 취지를 잊지 않고 있는 게라드였다.
"그렇구나."
이반이 수긍하였다.
그의 인상이 한결 풀어졌다.
그 편해진 얼굴을 보고,
게라드가 미소를 지었다.
아직 할 말이 더 남아있는 모양.
게라드가 미소를 유지한 채, 그 할 말을,
"그리고 물론, 자릿세도 받을 생각입니다."
입 밖으로 꺼냈다.
감탄.
게라드의 말에, 이반이 소리를 내지 않고, 감탄하였다.
시프 또한 그 입을 막고, 옆에서 감탄하고 있었다.
항상 게라드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던 그였다.
어쩌면 상인의 자질이 그에게 있을지도 몰랐다.
"후후."
작은 웃음소리를 남기고 또 할 일을 하러 간 게라드를,
이반과 시프가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파린은 이미 자신의 자리로, 알아서 찾아가고 있었다.
* * *
게라드의 말대로, 오늘의 행사장은 한층 더 성황이었다.
어제 홍보하러 갔던 이반 일행들은,
오늘은 행사장에 남아 사람들을 상대하였다.
분장은 어제 그대로 또 하였다.
하지만 새끼 갈란투스 인형을, 이반은 쓰지 않았다.
그 역할을, 이반은 다시 제 주인에게 넘겨주었다.
천막을 젖히고 나오는 새끼 갈란투스, 인형.
그 인형과 이반이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은 긴장한 듯한 새끼 갈란투스, 인형.
그 안에 들어있는 건 다름 아닌, 폴이었다.
"화이팅!"
이반이 주먹을 쥐며 말했다.
그리고 폴이 그 모션을 따라하며,
"화이팅!"
다짐하듯 외쳤다.
인형을 쓴 폴이, 공터 앞으로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공터 주위에 모여 있었다.
상점들을 구경하면서, 그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모두,
새끼 갈란투스 인형을, 그리고 그 안에 든 폴을, 응시하였다.
하지만 그대로 굳어버린 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그가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무언가를 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그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폴 자신도 마찬가지였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
폴의 옆으로 다가온 토끼와 다람쥐,
하이드와 시프.
하이드와 시프가 폴의 옆에 서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였다.
어쩌면 그에게 더 부담이 되었을 호응 유도.
하지만,
하이드와 시프로부터 힘을 얻은 것인지,
폴이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보여주었던,
신나는 몸짓을, 관객들 앞에서 하기 시작했다.
약간은 어설펐지만, 흥겨운 몸짓.
춤 같지만 춤이라기엔 꼬이는 스텝.
그리고 그 몸짓을,
옆에 선 꼬맹이들이 따라 했다.
이반은 그것을 보고, 걱정이 싹 가셨다.
그의 몸짓은 서툴렀지만 그 다운 것이었고,
그것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꼬맹이들이,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었다.
흥겹고도 가슴 뭉클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반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 몸짓을 지켜보던 모두가,
폴이 동작을 마치자마자,
폴과 꼬맹이들에게 큰 환호를 보냈다.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좋아하였고,
어른들도 즐거워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매그니피션트(Magnificient)."
게라드가 이반의 옆에 나타나서, 말했다.
그 말대로, 정말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사람들이 보내는 환호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새끼 갈란투스, 폴.
그리고 함께 고개 숙이는 토끼와 다람쥐, 하이드와 시프.
이반은 이 장면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반의 두 눈에,
아르만과 제론이 들어왔다.
경계 대상 1호와 2호였다.
"게라드."
이반이 그 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게라드도 그 경계 대상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무엇에 환호하는지 궁금해하는 아르만과,
마지못해 따라온 것 같아 보이는 제론.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아르만의 미모는 단연 돋보였다.
감추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그것을 처음으로 마주한 게라드는,
그 자리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게라드를 이해한다는 듯 바라보는 이반.
이미 겪어본 일이었다.
그 일로 타박도 받아 봤었다.
이반은 게라드를 그대로 두고,
그 둘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빈자리는 게라드가 채워줄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라드가,
뒤늦게 이반의 움직임을 발견하고,
꿀꺽.
침을 삼켰다.
긴장되는 뒷모습이었다.
괜한 마찰이 일어나지 않기를,
게라드는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어느새, 이반이 아르만과 제론 앞에 섰다.
"여긴 무슨 일이야?"
이반이 아르만, 그리고 제론에게 물었다.
"응? 당신은 누구?"
아르만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아···!
이반은 어제 자신이 새끼 갈란투스 인형을 입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기사단이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도,
그는 경계하지 않고 있었다.
이미 얼굴을 마주한 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반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묻잖아. 너 뭐 하는 놈이냐고!"
제론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뭐 하는 놈이냐고?
일행의 보호자? 리더? 아니, 암살자이자 도주자?
이반은 또 혼란에 빠졌다.
오늘따라, 머리가 뻑뻑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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