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란투스 축제 - (7)

콕. 콕.
다가온 아르만의 사슴 머리를 새끼 갈란투스, 라일라가 찔러보았다.
호기심이 동한 모양.
아르만은 그것이 라일라의 장난인 줄 알고 즐거워하였다.
가장 예쁜 갈란투스와 가장 아름다운 사람.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르만이 머리에 사슴 탈을 쓰고,
일행들과 어울리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이반은 아르만에게 다가갔다.
"아르만, 그러고 보니 척결자는 어떻게 했어?"
이반이 물었다.
나름 말을 걸어본 것이었다.
"교회에 넘겨줬어."
아르만이 짧게 대답했다.
그의 사슴 머리가 벗겨질 것만 같이 달랑거렸다.
라일라가 그 머리를 계속 건드렸다.
"교회?"
"응. 치료도 필요하고,
왕도에 연락한다면 그쪽이 나을 테니까."
아르만이 대답했다.
"왕도에? 척결자가 자신을 방해했다고,
보고하면 어떻게 하게?"
이반이 놀라 물었다.
"상관없어. 우리가 받은 명령도 아니고,
우리에겐 자율권이 있으니까."
아르만은 당당했다.
확실히, 기사단은 독자적으로 움직인다고 들었었다.
자신들의 규율에 따라,
왕국을 수호하고 신을 섬기는 집단이 기사단이었다
"그러면 말렌이나 나를, 잡아갈 생각은 없는 거야?"
이반이 대뜸 물었다.
이미 이름을 듣고 제론이 그 존재를 눈치챈 것 같으니,
아르만도 다르지 않을 거란 계산이었다.
그리고,
"잡는다니···, 만약 한다면 즉결심판이지."
그것이 맞았다.
아르만이 대답했다.
제법 차가운 말투.
현장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말렌도, 파린도 그 얘기를 모두 들었다.
조금도 꿈쩍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긴장감을,
꾸에레에엙!!
라일라가 사슴 머리를 벗기며, 날려버렸다.
당황한 아르만이 얼굴을 가리고,
한쪽 팔을 휘저으며 그 사슴 탈을 되찾으려 하였다.
그 바로 주변에는 이반 일행 뿐이었지만,
서식지 전체에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꽤 산재해 있었다.
아르만의 휘젖는 팔 위로,
흔들리는 사슴 탈을,
말렌이 손을 뻗어 잡았다.
키가 큰 그에게는 가뿐한 일이었다.
파린은 긴장감을 못 이기고,
다른 아이들을 살피러 떠났다.
"자, 여기."
말렌이 아르만에게 사슴 탈을 돌려주었다.
그것을 받고,
아르만이 다시 머리 위로 그것을 눌러썼다.
"고마워."
다시 안정을 찾은 아르만이,
그 사슴 머리가 이반을 보았다.
"하지만 안심해. 당장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우리가 우선하는 건 도시의 감시야."
아르만도 대뜸 말했다.
제론이 감추려고 한 것을, 아르만은 그냥 말해버렸다.
"그럼···."
"그런데 오해는 하지 마.
도시가 잘 관리되고, 잘 기능하고 있는지 보러 온 것뿐이니까.
해협 너머로는 좀처럼 사람을 보내기가 어렵거든.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대신 온 거야."
아르만이 이반의 말을 막고 말했다.
"그럼 도시는 안전한 거야?"
이반이 말을 돌려서 물었다.
"그럼! 우리가 이렇게 와 있는데,
누가 위험하겠어."
아르만이 가슴을 펴고 대답했다.
독립 획책 유무에 대해 물으려 한 건데,
아르만은 곧이곧대로 대답하였다.
그냥 직접적으로 묻는 게 나을 판이었다.
"그럼 독립 계획은 없는 거야?"
이반이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사슴 머리가 미동도 하지 않고,
이반을 응시하였다.
이반을 빤히 보았다.
선을 넘는 질문이었나?
이반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건 정말로 유언비어야.
북쪽 사람들이 왕국에 호의적이지 않긴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독립을 하려고 하지는 않아."
사슴 머리가 또 구겨졌다.
라일라가 아직도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아르만이 사슴 탈을 잡았다.
그것이 또 벗겨지지 않도록 꽉.
"하지만 그렇다면 만부스는?
혹시 만부스가 어떻게 된 지 알아?"
이반이 또 물었다.
아르만의 눈치를 볼 일은 없었다.
"만부스는, 곧 정리될 거야."
아르만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움직였다.
"그만 돌아가자."
아르만이 이반과 말렌에게 말했다.
라일라가 계속 사슴 머리를 쪼는 것이,
신경 쓰였던 것이었다.
"그래."
이반과 말렌이 아르만을 뒤따랐다.
아르만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말은 다 들은 것 같았다.
그가 왜 그것을 다 말해줬는지는 불분명했지만,
그의 거리낌 없는 성격 덕인 듯했다.
만부스의 소식을 들은 말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 *
행사장으로 돌아온 이반은,
게라드가 무사한 지부터 확인하였다.
멀리서 봤을 때엔,
그래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어서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몸이 전후좌우로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게라드?"
이반이 게라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그러자 게라드의 목이 부자연스런 곡선을 그리며,
이반을 돌아보았다.
"이반?"
그리고 쿵.
게라드가 마지막 말을 남기고, 테이블 위에 쓰러졌다.
"하하하하하하!!!"
맞은편에서 기쁜 듯 웃는 제론.
"그래도 꽤 버텼군. 깨어나면 칭찬들 해주라고.
오랜만에 즐거웠다!"
제론이 소리쳤다.
그는 취기는 있어 보였지만, 정신은 멀쩡해 보였다.
둘이서 얼마나 마신 걸까,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그만 가자, 제론."
아르만이 말했다.
동그란 사슴의 인형 눈이, 이반의 눈에 들어왔다.
"좋지. 충분히 즐겼나?"
제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응. 재밌었어."
아르만이 말했다.
괜히 뿌듯해지는 말이었다.
"대화도 많이 했고."
사슴의 고개가 이반을 향했다.
"고마워, 이반 그리고 광대 씨. 덕분에 즐거웠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줘."
아르만이 말했다.
"그러니까 말렌이라고···."
옆에서 기어들어가는 말렌의 목소리.
그 말이 소용없을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자 아르만이 말렌을 보았다.
그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사슴 머리 안에서 피식 웃고 있을 아르만이, 이반은 상상되었다.
"그래. 우리도 와줘서 고마워."
이반이 아르만을 보며 말했다.
다시 이반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만.
이미 제론은 등을 돌린 뒤였다.
그런 제론에게로 아르만이 뛰어갔다.
그리고 무언가가 생각난 듯 갑자기 등을 돌리는 제론.
"또 보자고. 말렌!!"
제론이 손을 흔들며 말렌에게 말했다.
꼭 불리고 싶었던 그 이름을, 제론이 말해 주었다.
"또 봐!! 제론!!"
말렌이 큰소리로 외쳤다.
기뻐 보였다.
* * *
모든 뒤처리가 끝난 뒤에,
이반 일행은 파린의 집으로,
그리고 다시 집 앞의 해변가로 나왔다.
게라드는 파린의 집에 뉘여 놓았다.
술병이 나서 몸을 잘 가누지 못했다.
"이제 내일이면 끝이네."
이반이 파린을 보고 말했다.
바다 너머를 보고 있는 파린.
감회에 젖은 듯 그 눈이 촉촉해 보였다.
"그러네."
파린이 그 시선을 바다에서 떼지 않고 말했다.
그녀의 옆에 하이드가 앉아 있었다.
시프는 모래를 차며 말렌과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일만 했던 하이드와 시프였다.
축제 기간 동안 정말 고생 많았었다.
"게라드에게 물어보니까 빚은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내일 빚쟁이들 오면 돈 다 주고 보내면 돼."
이반이 말했다.
그도 바다 너머를 보았다.
수평선 위로 푸른빛이 은은히 깔려 있었다.
달빛을 받은 안개였다.
"응. 고마워."
파린이 고개를 돌려, 이반을 보았다.
"너희가 아니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어."
파린이 말했다.
그녀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가식적이고 회피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차분하고 진지한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밤의 고요하고 잔잔한 분위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일 수도 있었다.
"다 네 열정 덕분이지.
그리고 아직, 하루 더 남았어."
이반이 말했다.
"그렇지. 하루 더 힘내 봐야지."
파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파린이 나지막한 말로 분위기를 잡았다.
그녀의 옆에 하이드가 있음에도,
괜히 긴장이 되었다.
"응?"
이반이 반응했다.
정적은 불편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반! 이반!! 이것 좀 봐!"
시프가 손에 무언가를 든 채로 달려왔다.
그리고 시프의 행동에,
파린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반은 그녀에게서 눈을 떼고,
시프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그 모아진 두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조개.
그 껍데기에서 나온 조개가 뻐끔거리며, 숨을 쉬고 있었다.
시프의 손에 바닷물이 담겨 있었다.
"귀엽지? 꽤 크지 않아?"
시프가 물었다.
그의 표정이 환했다.
"크기는 뭘. 내 거가 더 커, 이것 봐."
말렌이 손에 들고 온 조개를 자랑하였다.
동그랗지 않고 길쭉한 조개였다.
그것을 주워온 사람들과 닮은 조개들이었다.
"파, 파린. 이것 좀 봐봐."
말렌이 그 조개를 파린의 앞에 들이밀었다.
그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 파린.
"그래. 예쁘네."
파린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조개는 그녀의 관심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에,
말렌은 기뻐하였다.
"정말? 이거 줄까? 어때?"
말렌이 물었다.
"그래."
파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말렌이 그녀의 손 위로 조개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씨익 웃는 말렌.
"기다려 봐. 또 가져올게!"
말렌이 신이 나서, 또 조개를 찾으러 갔다.
그리고 이반을 뚱한 표정으로 보는 시프.
시프도 이반에게 조개를 주고 싶어 했다.
"이반, 이반도 이거 가질래?"
시프가 물었다.
그 귀여운 물음을 듣고,
"응."
이반이 웃으며 답하였다.
"그래!"
시프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시프가 이반에게 조개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또,
"기다려 봐! 또 가져올게!!"
말렌을 따라 멀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다려 봐! 나도 같이 가!!"
하이드도 함께였다.
하이드도 이반이 웃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그렇게 모두가 썰물처럼 떠나고,
왠지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 이반이 파린과 함께 남았다.
그리고 파린이 무슨 말을 꺼낼지,
이반은 짐작이 되었다.
이미 비슷한 전례가 있었다.
"떠날 거야?"
파린이 물었다.
대답이 꺼려지는 질문.
하지만 그것을 회피할 순 없었다.
"응."
이반이 짧게 답했다.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파린의 불만.
"뭐?!"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무책임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반이 물었다.
"빚은 다 갚는다고 해도,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니잖아.
시장도 건재하고,
여기 서식지도 내일이 지나면 내 것이 아니게 된다고.
결국 갈란투스 모두 죽게 될 거야."
파린이 하소연했다.
비관적인 생각.
이반은 무슨 말을 할 수 없었다.
"갈란투스가 죽고 나면, 나도···."
파린이 말을 삼켰다.
꺼내기엔 너무도 무거운 말이었다.
이반은 파린에게 다가갔다.
파린이 바다를 보며, 울먹거리고 있었다.
이반은 말없이 파린의 옆에 앉았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앉았다.
하지만,
파린이 이반을 와락 안았다.
그리고,
"가지 마. 너희 다 가버리면,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파린이 훌쩍거리며 말했다.
모두가 떠난 뒤의 공백.
그녀는 그것이 겁났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투정을, 다 받아줄 수는 없었다.
이반은 왕도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
"시장하고는 꼭 담판을 짓고 갈게."
파린의 머리 위에서, 이반이 말했다.
그런 이반을,
파린이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를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듯,
그 입술을 이반에게로 가져갔다.
하지만,
"이반!!"
천진난만하게 돌아오는 하이드와 시프.
그 둘이 경주하듯 이반에게로 뛰어왔다.
누가 먼저인지가 그 둘에게는 중요했다.
이반이 그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린은 그를 크게 저지하지 않았다.
그럴 힘이 그녀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무엇이 됐든, 앞으로는 좋아질 일만 남아있을 거야."
이반이 파린에게 말했다.
그리고 꼬맹이들에게로 몸을 돌려, 그들을 반겼다.
파린이 이반의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몸을 돌려, 바다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큰 파도가, 해변을 덮쳤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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