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란투스 축제 - (8)

축제 마지막 날, 행사장에는 그 마지막을 끝까지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화가 난 표정으로 갖은 막대기와 연장을 챙겨온 빚쟁이들은,
그 빚 모두를 돌려주자 말썽을 부리지 않고 조용히 돌아갔다.
말썽을 부리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그들은 원래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파린이 그들을 화나게 만든 것이었고,
그 파린은 또 시장에게 휘둘렸던 것이었다.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이끌어 간 것이었다.
나쁜 것은 시장뿐이었나,
아니, 그 시장도 세력에 따른다고 했었다.
상황을 만든 세력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 굴레가 세력에서 끝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이미 여러 단계를 거슬러온 뒤,
그 위에 또 다른 단계가 없으리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탓을 그 위에 위에 위로 돌리는 것이 맞는 것일까.
사람은 상황에 휘둘릴 뿐인 것인가.
그것을 핑계로 흐름에 의탁하는 것 또한 사람이었다.
흐름을 거슬러서 고통을 받는 일을, 사람은 거부한다.
결국 그 끝에 더 큰 고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희미해 보이기에,
어설픈 희망을 가지고 그것을 무시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인가,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눈을 뜨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었다.
그렇게 잘못이란 따지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도 이반에게는 할 일이 확실해 보였다.
파린의 빚 전부를 청산하고,
갈란투스 서식지의 보호를 시장에게 약속받는 일.
파린을 위해서,
또 이 불쌍한 갈란투스를 위해서,
꼭 마치고 가야 하는 일이었다.
이반은 오늘 또다시 새끼 갈란투스 인형을 입었다.
어제의 무리로 폴이 몸살이 도져버렸기 때문이고,
그에게 따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론과 마찰을 빚을 뻔했던 일을,
게라드가 기억하고
또 다른 사건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런 조치를 취했을 수도 있었다.
뭐 아무튼, 이반은 인형 옷을 입고,
시프 그리고 하이드와 함께 행사장을 신나게 돌아다녔다.
축제 마지막 날은 그렇게 즐거운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즐거운 가운데,
그 소리는 난데없이 울려 퍼졌다.
꾸르에에에에에에엑!!!
두어 번 들어본 소리.
바로,
새끼 갈란투스가 제 어미를 부르는 소리였다.
이반은 놀라서,
서식지로 곧바로 달려갔다.
그 일은,
마지막 날에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모두 대피하세요!!"
등 뒤로, 게라드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빠른 상황 판단,
그것에 따르면 어미 갈란투스가 당도할 것이었다.
아니, 그 판단을 듣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 소리를 죽이는 마도구가 있었을 텐데,
왜 그 소리가 울려 퍼진 거지?
의문을 가지고, 이반은 서식지로 도약했다.
* * *
서식지로 진입한 이반은,
사태의 원인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새끼 갈란투스들이 쓰러져 있었고,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마도구들이 부서져 있었다.
흥분한 말렌이 그 가운데에 서 있었다.
"말렌!!"
말렌을 깨우기 위해, 이반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말렌이 무척이나 슬픈 눈으로 이반을 올려다보았다.
이반은 언덕을 내려가, 말렌에게로 단숨에 뛰어갔다.
"무슨 일이야? 말렌."
이반이 물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동공.
그 눈이 가리키는 곳 끝에는,
파린이 있었다.
파린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지나가면서 본 다른 쓰러져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 주변에, 나이프가 떨어져 있었다.
그 사람들이 관객으로 위장해,
이곳을 급습한 것이었다.
이반이 피를 흘리고 있는 파린 옆에 다가가 앉았다.
그녀의 목 아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반이 흘러나오는 피를 막고,
"파린!! 괜찮아? 눈 좀 떠봐."
물었다.
인형에 파린의 피가 묻었다.
파린이 슬며시 눈을 떴다.
"이반?"
파린이 이반을 알아봤다.
그리고,
"쿨럭."
피를 토했다.
그 모습을 본 이반은 다른 한쪽 팔을 움직였다.
품 속에 있을 성수를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인형 옷이 그것을 거부하였다.
이반은 팔을 안으로 넣고,
칼을 꺼내,
인형 옷을 쨌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머리도 벗어버렸다.
새끼 갈란투스 인형이 처참한 모습으로,
바닥을 뒹굴었다.
이반은 다시 파린의 상처 부위를 손으로 누르고,
다른 한쪽 손으로 서둘러 자신의 품속을 뒤졌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 봐도,
성수는 없었다.
이미 시프가 말렌에게 모두 썼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을 떠올린 이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것을 간신히 뜬 실눈으로 가만히 보는 파린.
파린이 손을 들어 그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울지 마."
파린이 말했다.
그 말에, 이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반이 주변을 둘러봤다.
말렌 외에 아무도 없을 주변을.
하지만 그곳에, 시프가 있었다.
언덕 위에서 놀란 눈으로 현장을 보고 있었다.
"시프!!!"
이반이 외쳤다.
그렇게 큰소리는 처음이었다.
시프가 화들짝 놀랐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을,
이반은 필요로 했다.
하지만 그 말이, 끝까지 다 나오지 못했다.
상황의 긴박함과 무게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시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반의 말뜻을 그는 눈치챈 것이었다.
시프가 행사장으로 곧장 돌아갔다.
이반이 다시 파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만 참아, 파린. 곧 사람이 올 거야."
이반이 다급하게 말했다.
"괜··· 찮아."
그 말을 내뱉고, 파린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리고 커다란 그림자가 그 위로, 졌다.
이반은 그 그림자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꾸르에에에에에에엑!!!
성난 어미 갈란투스가 날개를 크게 펄럭였다.
절망적인 상황.
이반은 다시 파린을 보았다.
사람을 기다릴 것이 아니었다.
어서 그녀를 데리고, 도움을 구하러 가야 했다.
이반은 말렌을 보았다.
말렌이 무릎을 꿇은 채로, 이반 쪽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말렌!!!"
이반이 또 소리쳤다.
말렌이 찌푸린 인상으로, 이반을 응시했다.
"부탁해."
이반이 역시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
말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반이 그림자를 두르고 뛰쳐나갔다.
말렌이 일어섰다.
그리고 다가오는 어미 갈란투스를 마주하였다.
이전처럼 그냥 돌아갈 거라는 기대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 * *
행사장에 나타난 그림자.
행사장에는 사람들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이반!!"
시프가 이반을 알아보고 주의를 끌었다.
"여긴 없어!!! 교회로, 교회로 가야 해!!"
시프가 큰소리로 말했다.
이반은 그 소리를 듣고,
속도를 더 내어, 시내로 달려갔다.
마주치는 인파들이 눈치도 못챌 정도로 빠르게,
빠르게 시내, 그리고 교회로 향했다.
파린을 들고 뛰었다.
그녀의 목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조금은 잠잠해졌다.
그것이 좋은 사인이기를, 이반은 간절히 바랐다.
머지않아 도착한 시내.
교회는 시내의 중심부에 있었다.
그 높은 첨탑이 그 위치를 밝히고 있었다.
반가웠다.
"조금만 더 힘내, 파린."
이반이 잠들어 있는 파린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그것은 스스로를 위한 말이기도 했다.
이반이 힘을 더 내서, 교회로 단숨에 달려갔다.
교회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것을 따로 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림자가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나타난 그림자를 보고, 사제는 크게 당황하였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사제였다.
그에게도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그림자 안에서,
두 남녀가 나타났다.
피가 범벅인 두 남녀.
부상을 당한 쪽은 여자였다.
"신부님!!!"
남자의 간곡한 외침.
상황은 분명해 보였다.
"빨리 이쪽으로."
사제가 제대에서 나오며 말했다.
일단은 응급 처치가 중요했다.
이반이 파린을 바닥에 뉘었다.
그리고 그 파린을, 사제가 살폈다.
그녀의 목 위로, 사제가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힐(Heal)."
기적을 외웠다.
그의 손 위에서 포근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이 파린의 상처 부위 위로, 찬연히 번졌다.
공기가 바뀌고, 그에 따라 파린의 몸이 변화했다.
피가 멎고, 상처 부위가 아물었다.
그리고 파린의 표정도, 어딘지 모르게 편안해졌다.
느낌뿐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어떤가요? 신부님, 괜찮은 건가요?"
확인이 필요했다.
"글쎄요. 일단은 안으로 옮겨서, 더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수녀장!!"
사제가 외쳤다.
수녀들이 이미 인기척을 느끼고, 나오고 있었다.
"어머나!!"
이반과 파린에게 묻은 피를 보고 놀라는 수녀들.
그녀들을 보는 이반의 두 눈이 퀭했다.
"당신도 따라오시죠."
사제가 이반을 보고 말했다.
이반의 피로를 걱정한 말이었다.
다가온 수녀들이 파린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옮겼다.
그것을 보고,
"아니요.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이반이 정중히 거절했다.
이반의 두 눈이 교회 정문을 향했다.
예상보다 빨라졌지만, 담판을 지으러 갈 때였다.
* * *
시청 건물은 교회와 가까이에 위치해 있었다.
둘 모두, 도시에는 중요한 건물이었다.
이반이 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나요?"
물어보는 시청 직원에,
"시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이반이 대답했다.
그러자 그 직원이,
"시장님은 3층 시장실에 계십니다.
약속은 잡으셨나요?"
물었다.
이반은 그 물음에 고개만 끄덕이고,
곧바로 계단으로 향했다.
아무도 이반을 막지 않았다.
시장실에 도달할 때까지, 그랬다.
하지만 그 문을 다짜고짜 열려고 하자,
"잠시만요!"
응접실의 비서가 그를 말렸다.
이반은 그녀를 한번 흘겨보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막무가내였다.
시장실에 들어선 이반은 시장을 바로 보았다.
"뭐야, 쉬리(Shiri)? 사람 들이지 말라니까?"
시장의 시선은 책상 위, 서류를 향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시장님. 이 사람이 막무가내로 들어가서."
쉬리가 하소연했다.
그 말에, 시장이 이반을 보았다.
그리고 쉬리는 문을 닫고 나갔다.
"당신은!?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시장이 물었다.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
그것이 척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확인을 해야 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알텐데?"
이반이 물었다.
그 말에, 시장이 잠시 곰곰히 생각하더니,
"아니요. 모르겠습니다만?"
대답했다.
"모른다니. 사람들을 풀어서, 서식지를 공격한 게 당신 아냐?"
이반이 물었다.
모른 척하는 시장에 화가 더 뻗쳤다.
"호오···."
흥미롭다는 듯한 반응.
"당신 말고, 그런 짓을 벌일 사람이 또 있다고 생각해?"
이반이 추궁했다.
물음이 아닌, 추궁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시장은 물음으로 받아들였다.
"음···. 시장 사람들이 아닐까요?"
시장이 대답했다.
"뭐?"
그 유연한 전가에, 이반이 놀랐다.
"물론 저를 먼저 떠올리신 건, 납득이 갑니다.
하지만, 자신의 손님을 뺏긴 시장 사람들이,
저보다도 화가 나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어차피 내일, 서식지의 소유권을 돌려받을 테니,
그렇게 급하게 굴 필요가 없습니다."
시장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위로 꼬부라진 자신의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열받는 말투와 행동이었다.
"그리고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기사단이 이곳에 와있습니다.
제가 정말로, 괜한 일을 벌이고 싶어할 것 같습니까?"
시장이 또 다른 근거를 들었다.
그 반응과 그 근거,
모두 그의 무죄를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음흉한 사람들을,
이반은 이미 많이 봤었다.
그들에게 또 놀아날 생각은, 이반에겐 없었다.
이반이 결심한 듯, 발을 뗐다.
그리고,
"진정해라, 애송이."
어쩌면 가장 음흉한 유령이 이반의 앞에 나타났다.
- 작가의말
계획의 보강편을 퇴고하면서, 소리를 차단하는 마도구를 서식지 주변에 세운다는 설정을 추가했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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