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끝

"뭐?"
갑자기 나타난 케로스에, 이반이 인상을 찌푸렸다.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상황에만 나타나는 그 모습이, 이반은 마음에 안 들었다.
"네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애먼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케로스가 말했다.
"히이이익!!"
공중에 뜬 케로스와 대화하는 이반의 모습에, 시장이 질겁하였다.
"비켜."
이반이 경고했다.
자제력이 이미 그 끝에 와 있었다.
"애송이!!"
케로스가 소리쳤다.
그러자, 이반이 그늘진 눈으로 케로스를 보았다.
그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그 여자 때문이냐?
하지만 그 여자를 거부한 건 바로 네가 아니더냐!?"
케로스가 따졌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었다.
그것까지 보고 있던 건가?
이반은 케로스에게 싫증이 났다.
이반이 목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뭐 하는 거냐 애송이! 당장 그만둬!!"
케로스의 만류에도 이반은 그것을,
그 마나석이 달린 목걸이를,
쨍그랑!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충동적인 결정.
그 결정을 본 케로스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반!!!"
그 또한 분노했다.
이반의 이름까지 부르며, 분노했다.
각자의 입장이란 그렇게 다른 것이었다.
이반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에게로.
모든 일의 원흉은 아니지만,
그 책임은 나눠 받은 그에게로.
물론 그는 가능하다면 그 책임마저도,
구실을 대며 피할 것이었다.
그리고 제도 뒤에 몸을 감출 것이었다.
하지만 이반은 그런 꼴을 볼 수 없었다.
여기에서 벌어진 일은,
여기에서 정산을 마쳐야 했다.
죗값이 깎여나가는 것을, 이반은 원치 않았다.
가장 단순하고도 가장 확실한 해결책.
이반은 그것을 줄곧 남을 위해 사용했었다.
어쩌면 그 책임의 고리에,
이반은 많은 기여를 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었다.
서약이든 뭐든, 그를 가로막을 수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
"이반!! 당장 그만둬라! 당장 그만두고 마나석을 주우러 가!
지금 그만둔다면, 내 특별히 용서해 주마!!"
케로스의 외침도, 그의 바람도,
이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반은 멈추지 않았다.
"이··· 멍청하고도 애석한 놈!!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네까짓 놈, 나도 더 이상 알 바 아니다!!!"
화가 잔뜩 난 케로스가 결국 이반을 떠나버린 것도,
이반은 제대로 보지 않았다.
이반은 그렇게, 시장 앞에 섰다.
"뭐, 뭐 하려고? 나, 나, 나는 아무 잘못도 없어!"
시장이 소리쳤다.
꽈당.
시장이 겁을 먹고, 의자에서 떨어졌다.
시장이 바닥을 더듬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벽에 기대어서,
"서식지, 그리고 파린을 공격하라고 명령한 건 내가 아냐!!"
소리쳤다.
"뭐!?"
어이가 없었다.
시장의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이었다.
파린이 공격받았다는 말을, 이반은 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역시 고의였다.
"그러니까 왜 그딴 골칫거리를 보호한다고 나서서,
이 꼴을 기어이 봐야 하느냐고!
잘못은 그년이 한 거지,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시장이 되려 성을 내며, 파린을 욕했다.
그 또한, 파린에게 화가 나 있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짜증이 쌓였던 것이었다.
이반은 말을 나눈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왜 말을 할 기회를 준 것일까.
자백을 듣기 위해서?
앞으로 할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런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 사람 같지도 않은 벌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손해였다.
벌레를 죽이면서 의미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었다.
이반은 벌레에게로 조용히 움직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벌레를 꾹 눌러 죽였다.
피가 튀지 않게, 소리도 나지 않게,
일정한 속도로,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도 인지 못하게,
그렇게 자연스럽고도 편안하게.
이반의 칼끝에서 핏방울이 주르륵,
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이 나온 자리로 되돌아갔고,
칼에는 핏방울이 조금도 남지 않았다.
이반은 몸을 들어서,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벌레를 내려보았다.
벌레가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반은 시장실 문을, 돌아보았다.
지금도 시장실 밖에서 안쪽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쉬리,
그리고 입구의 시청 직원은,
이것이 이반의 짓임을 알아볼 것이었다.
본래라면, 그들 또한 처리하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시청 전부를 처리할 수도 있었다.
시스템이 마비되든 말든, 상관없었다.
항상 그런 식으로 해 왔었다.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이반의 일이 아니었다.
명령에 따라 반대를 배제하는 것,
그것만이 이반의 소임이었고, 그의 고려 사항이었다.
그리고 경험 상, 사람도 금방 채워지고, 시스템도 금방 복구가 됐었다.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이반은 암살자가 아니었고,
부품을 치우거나 먼지를 터는 일을 할 생각도 없었다.
날끝을 겨눠야 할 곳은,
소모되고 대체되는 작은 부품들이 아니었다.
잘못된 시계 추를 부수고,
태엽을 다시 감아야 했다.
이반의 새로운 소임은 그곳에 있었다.
* * *
행사장으로 다시 돌아온 이반을,
게라드가 맞았다.
"이반!! 어떻게···, 파린 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게라드가 물었다.
"교회에 맡겼어."
이반이 말했다.
"그녀는, 무사합니까?"
게라드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반은,
"몰라."
그 답을 몰랐다.
그것을 확인하러 갈 용기가,
이반에겐 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바로 가서 확인해 보도록 하죠."
게라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것이었다.
"고마워."
이반이 답했다.
"이반! 당신은··· 괜찮은 겁니까?"
게라드가 물었다.
그가 이반을 걱정하였다.
"응. 그냥 이제, 알 것 같아."
이반이 말했다.
의미심장한 말.
그가 어떤 일을 겪었을지,
게라드는 섣불리 짐작할 수 없었다.
대신,
"갈란투스는, 말렌 씨가 막아주셨습니다.
하지만 행사는··· 더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파린 씨와 말렌 씨가 없는 데다가,
상인들도 돌아가 버렸고, 손님들도 더 이상 오지 않거든요.
도시에까지 소문이 다 퍼진 것 같습니다."
상황을 브리핑해 주었다.
당연한 내용이었지만,
그것을 설명 받는 것이 필요하긴 했다.
"말렌 씨는 폴 씨의 천막 안에, 누워 있습니다."
게라드가 말했다.
"고마워."
이반이 다시 감사를 표했다.
감정이 극으로 치닫고, 그 목적이 분명해진 뒤에,
그에게 남은 건 감사뿐이었다.
그 외에는 모두 공허했다.
천막으로 걸어가는 이반을,
게라드가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게라드는 시내로 향하였다.
이곳의 정리는, 나중의 일이었다.
천막으로 들어간 이반은,
누워 있는 말렌과 그 옆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시프와 하이드를 발견하였다.
"이반!"
하이드가 이반을 반겼다.
시프는 말렌에 대한 걱정에,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눈짓으로 이반을 아는 체하였다.
이반은 그것을 이해하였다.
서운함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말렌은 어때?"
이반이 물었다.
그리고 말렌을 살펴보았다.
그 말렌이라도, 상처가 곳곳에 나 있었다.
"지쳐서 잠들었어.
치료를 받으면 좋겠지만, 말렌을 들고 갈 수도 없어서···."
시프가 침울해했다.
자신의 무기력함을 느낀 것이었다.
"파린은? 파린은 어떻게 됐어?"
이번엔 하이드가 물었다.
"파린은 교회에 맡겼어."
이반이 다시 대답했다.
이미 한 번 한 대화.
그 뒤에 올 말이 무엇인지는,
뻔했다.
"괜찮대?"
하이드가 물었다.
하지만 이반은 이번엔,
"응. 괜찮을 거야."
다른 대답을 택했다.
하이드가 걱정하기를 원치 않아서였다.
"그래? 다행이다."
하이드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따뜻한 웃음.
그리고 죄스러운 마음.
어쩌면 모든 것이 그런 웃음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이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의 시야는, 어두워져 있었다.
"이반은 어때? 괜찮아?"
이번엔 하이드가 물었다.
이반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있었다.
하지만 그 걱정을, 이반은 이번에도 받을 수 없었다.
"난 괜찮아."
이반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씁쓸한 미소.
그 미소가 억지로 짓는 미소라는 것을,
하이드도 시프도, 모두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지적할 수는 없었다.
이반이 무엇을 견디고 있을지, 알 수 없었고,
아는 척할 수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시프가 물었다.
계획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이반에게는 더 편했을 것이었다.
"왕도로 갈 생각이야."
이반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이, 시프는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이반?"
시프가 이반을 불렀다.
그 부름에, 이반은 시프를 빤히 쳐다보았다.
깊고도 슬픈 눈.
이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시프는 알 것만 같았다.
"우리도··· 같이 가는 거지?"
시프가 물었다.
하지만 그 물음에, 이반은 답하지 않았다.
이반은 대답 대신,
천막을 젖히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반!!"
시프가 이반을 따라나서며, 항의했다.
하이드는 이반을 놓치기 싫어서,
달려가서 이반의 옆에 꼭 붙었다.
하지만, 불청객이 와 있었다.
이반의 시야, 그리고 시프의 시야에 그들이 들어왔다.
아르만과 제론.
기사단.
완전히 무장한 아르만,
그리고 맨몸에 가까운 제론.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러 주었네, 이반.
이제는 모른 척해 주기 힘들겠어."
아르만이 말했다.
"어차피 호의로 그런 것도 아니었잖아."
이반이 대꾸했다.
그의 태도는 부정적이었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네?
이 모습이, 네 진짜 모습이야?"
아르만이 또 물음을 던졌다.
그 물음이 단순한 호기심에 의한 것인지,
호의로부터 기인한 것인지는 불분명했지만,
그가 이반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런 걸 왜 묻는 거야? 어차피 싸울 거면서."
이반이 대답했다.
그는 말에, 책임지지 않는 말과 변명에, 궤변에, 지쳐 있었다.
빚쟁이들이 왜 그렇게 게라드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지,
이반은 비로소 이해가 됐다.
"그 말이 맞다. 애송이.
이제야 조금 사내다워졌군."
제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러자,
"내가 상대할게, 제론."
아르만이 제론을 제지하였다.
"네가 나서면, 애들까지 다칠 거야."
아르만이 말했다.
위선.
그것이 이반에겐 위선으로 보였다.
그의 시각은 삐딱해져 있었다.
상대는 어차피 기사단.
시스템의 중추인 그들을 결국에는 다 꺾어야 했다.
순서는 상관없었다.
아르만과 제론이 순서를 정하는 사이,
이반이 그림자를 두르고,
그 둘에게로 곧장 뛰쳐나갔다.
캉!
이반의 일격을 막은 것은,
아르만이었다.
소리도 없이, 소리보다 빠르게 찌른 일격이었지만,
아르만은 그것을 막아 내었다.
아르만의 주위로 파직 파직,
노란 불꽃과 찢어지는 소리가 번졌다.
그리고 손이 약간 저려왔다.
그 저림은 방해였지만,
그것 때문에 물러날 순 없었다.
캉, 캉! 캉 캉 캉 캉!!
이반이 연격을 퍼부었다.
모두 급소를 노린 공격.
하지만 놀라운 반응 속도로, 아르만이 그것을 또 다 막아 내었다.
처음 보는 마나의 활용이었지만,
아마도 그것이 그의 적성인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뒤늦었지만,
확실하게 이반을 향해 뻗은 제론의 팔.
그 그림자를 덮치기 전에,
물의 방벽이 제론의 팔을 막았다.
하이드의 짓이었다.
하이드를, 제론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이반이,
타깃을 제론으로 바꿨다.
제론이 반응도 못하게 쏟아지는 연격.
하지만, 아르만이 그것을 또 다 막아 내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동작.
말이 안 됐다.
이반은 자신의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자신의 칼날에 붙어 있는,
아르만의 검과 연결된, 희미한 실 같은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아르만을, 이반에 따라오게 만든 것이었다.
이반은 그것을 떼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만져지지 않았다.
후악!
그때 갑자기 퍼지는 공기 소리.
자신에게 가까이 온 이반에게로,
제론이 그 팔을 다시 뻗었다.
하이드가 그것을 또 막아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반은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면서, 아르만과의 연결도 끊겼다.
거리의 제한이 있는 것이었다.
다시금 아르만과 제론에게로 도약하려는 이반.
하지만,
쉬익.
가느다란 바람 소리가 이반을 스치고,
그 앞에,
콰악.
화살이 박혔다.
돌아보니, 시프가 울음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 작가의말
컨디션 난조로 조금 늦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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