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항

이반은 바로 씨 서펜트의 머리 위를 달려,
그것의 미간에 칼을 푹 박아 넣었다.
미간에서 피가 터지면서,
키에에에에에에엑!!
씨 서펜트가 소름끼치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의 흔들리는 머리 위에서,
이반은 칼을 잡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아무래도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한 듯했다.
데스 체이서 때와 마찬가지로,
이마 깊숙이, 칼을 찔러 넣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이제는 방법의 가짓수도 줄어들었고,
도움받을 곳도 없었다.
힐끗, 노인은 아직도 배 위에 엎드려 있었다.
씨 서펜트가 난리를 치는데도,
배가 전복되지 않은 것이 신기했고 또 다행이었다.
이반은 칼을 더 꽉 잡았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이제는 오기뿐이었다.
여기에서 죽을 수는 없다는 마음.
이것을 꼭 죽이겠다는 마음.
이반은 칼을 뽑고 다시 깊게 찔렀다.
키에에에에엑!!!
그에 반응하며, 씨 서펜트가 또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이 한 번이 끝일 줄 알았다면,
오산이었다.
이반은 다시 칼을 또 뽑고
또 찌르고,
또 뽑고 또 찌르고,
또 뽑고 찍고 찍고 찍었다.
이를 악물고,
다른 한쪽 손으로는 그것의 피갑을 꽉 잡으면서.
전력을 다해 칼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끝에,
씨 서펜트가 머리를 하늘 위로 크게,
들어올렸다.
거의 수직의 높이.
이반의 몸이 그것을 따라, 공중에 붕 떴다.
몸의 무게가 순간 사라진 듯한 기분.
그 기분도 잠시,
씨 서펜트의 머리와 이반이 급속도로,
하늘 아래로 떨어졌다.
이반은 칼을 쥔 손과 피갑을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그리고 그림자의 손으로도 그것의 머리를 꽉 잡았다.
씨 서펜트의 머리를 놓치면,
바다에 그대로 부딪칠 것이었다.
몸이 으스러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
이반은 긴장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해표면에 닿기 전에 그것의 머리를 틀어,
그것의 머리가 바다에 먼저 부딪치게 하였다.
푸콰아아악!!
처음 들어보는 터지는 듯한 물소리.
그 물소리와 함께, 거센 물줄기, 수많은 물방울들이,
이반의 시야 너머로,
하늘 위로 치솟고, 흩뿌려졌다.
그리고 안개 위로, 쏟아져 내렸다.
더욱 짙어진 바다 안개.
그 해면 위에 떠 있는 검은 형체.
그 형체 위에서 이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질긴 녀석이었다.
* * *
케로스의 말, 이반이 로렐 해협에 있다는 그 말을 듣고,
게라드와 일행들은 서둘러 항구로 향했다.
케로스와의 서약은 이미 마친 뒤였다.
죽어서라도 이반을 찾겠다는 서약.
그 서약에, 게라드는 용감하게도 조건을 달았다.
그 조건은 케로스도 이반을 찾는 데에 적극 협조한다는 것.
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고,
그 외의 도움도 어쩌면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적극 협조라는 것이 애매한 단어기는 했지만,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게라드는 판단했다.
일행들은 항구에서 적당해 보이는 범선의 자리를 구매했다.
교섭은 역시 게라드가 담당했다.
범선을 타는 하이드의 표정이 무척 신나 보였다.
"우와!!"
감탄사를 내뱉는 하이드의 시야에는,
돛과 그 옆을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이 있었다.
역시 항구 쪽에는 갈매기들이 많았다.
무척이나 많았다.
시프는 풍경보다는 배 자체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을 살펴보았다.
선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배의 이곳저곳을 만져보았다.
그러다가, 그가 타륜을 만졌을 때,
"거기!! 거기에서 손 떼지 못해!?"
누가 소리를 질렀다.
시프가 깜짝 놀라며, 타륜에서 손을 떼고,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독특한 반원 모양의 모자를 쓴 여자가 있었다.
누구···?
라고 묻는 듯한 시프의 표정.
그 표정에,
"나는 이 배의 선장, 알비다(Alvid)다!"
여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혀왔다.
그 호쾌한 모습을,
시프는 멀뚱멀뚱, 가만히 지켜보았다.
"너 이 녀석···!"
그 모습이 못마땅한 듯한 알비다.
그녀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다가오는 그녀의 앞으로,
"저는 게라드입니다. 상인이죠.
이쪽은 시프, 제 동료입니다."
게라드가 끼어들었다.
아···!
시프는 그제야 자신을 소개해야 했음을 알아차렸다.
이름을 밝혀온 상대에게 자신도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기본적인 예의였다.
하이드는 배에 기대어서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말렌은,
"내 이름은 말렌. 만나서 반가워, 레이디."
그랬지. 옆에 있었다.
"시프입니다."
시프가 자신을 다시 소개했다.
게라드를 따라서, 예를 갖추었다.
그 시프의 태도를 보고,
"그래! 잘 왔다. 내 배에!!"
알비다가 싱긋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말렌은 가볍게 무시되었다.
그 모습이 오늘은 재밌게 느껴진 시프였다.
웃음기를 그 얼굴에 머금으며,
"영광입니다."
시프가 악수를 받았다.
알비다는 시프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혹시 바다를 건너는 배편이 언제 언제 있는지 아십니까?"
게라드가 물었다.
이반이 배를 탔다면, 언제쯤 탔을지 가늠해보기 위한 것이었다.
경비대가 항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범선을 타지는 못했을 것 같았지만,
그가 해협에 있다고 케로스가 얘기했으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건··· 나도 잘 몰라. 보통 출발 전에 시간을 알리기는 하는데,
다른 배들의 사정까지는 잘 알지 못해."
알비다가 대답했다.
듣고 보니 당연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여기 항구에는 배가 너무 많았고,
정박비를 내는 것 외에는 별도의 관리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그럼 반대쪽 항구까지는 얼마나 걸립니까?"
게라드가 또 물었다.
"뭐 아마, 해가 질 때 즈음 도착할 거야.
보통 그랬으니까. 시간은 잘 몰라."
세세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알비다가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게라드가 예를 갖추어서, 감사를 표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알비다에게 인사한 뒤,
"그래. 걱정 마라! 바다 건너편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테니까!!"
알비다의 대답을 듣고,
일행들을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
게라드의 의문은 이것이었다.
적어도 어제, 이반은 배를 탔을 텐데,
왜 오늘 아침까지도 해협에 있던 거지?
케로스가 이반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맞나?
그렇다면 그건 어떤 방식이지?
이반은 또 도대체 어떤 상황에 있는 거지?
어서 어디 한적한 곳을 찾아가서,
케로스에게 물어봐야 했다.
"자, 출항이다. 애들아! 닻을 올리고 돛을 더 펼쳐라!"
케로스의 뒤로, 알비다가 선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네! 누님!!"
선원들이 일제히 대답하고,
배가 항구를 떠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턱.
배 위로 올라온 손 하나.
철퍽.
몸이 물 위로 올라오고,
텁. 터텁.
상체가 배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결국,
쿠당탕.
온몸이 배 위에 들어왔다.
배 위에, 이반이 드러누웠다.
안개는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주변은 밤이 된 듯, 어두웠다.
이반이 좁은 배 위에서 몸을 뒤척여,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아직도 엎드려 있었다.
설마, 겁먹은 나머지, 그대로 요단강을 건너 버린 건가?
이반은 노인의 어깨를 잡고,
그 얼굴을 살핀 뒤,
"할아버지, 할아버지!!"
노인을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그에 따라 머리를 움찔움찔 흔드는 노인.
노인이 눈을 서서히 떴다.
다행이었다.
아, 그런데 졸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졸았던 건가?
노인 얼굴에 가득한 짜증은,
누군가의 잠을 억지로 깨웠을 때, 그 얼굴에서 볼 수 있던 것이었다.
"아, 왜 난리야, 이놈아! 너 때문에 잠 다 깨버렸잖냐!"
정말이었다.
노인이 자신을 깨웠다고 타박하였다.
이반이 눈을 길게 떴다.
마치 나뭇가지 같은 모양.
생각하기를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
"왜! 이놈아!! 사람을 깨웠으면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 이놈아!"
목청이 더 좋아지신 것 같았다.
좀처럼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다시 바다 건너편으로 갈 수 있을까요?"
이반이 물었다.
그런데···.
"뭐라고? 들리게 좀 말해, 이놈아!!"
또였다.
이반의 눈이 또다시 길어졌다.
ㅡㅡ
"다 시 건 너 편 으 로 가 요 !"
이반이 소리 질렀다.
그리고,
"시끄러, 이놈아! 다 들려, 다 들린다고!!"
노인이 또 성을 냈다.
이걸 즐기고 있는 건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 * *
갑판 아래에서, 게라드는 한적한 장소를 찾았다.
게라드의 옆에는 목걸이를 맨 시프가 함께였다.
말렌과 하이드는 갑판 위에 남았다.
말렌이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멀미를 심하게 느꼈다.
시프도 어서 볼일을 보고 그를 돌보러 갈 생각이었다.
시프가 목걸이를 밖으로 꺼냈다.
마나석은 시프가 맡게 됐었다.
하이드가 그것을 맡기를 희망했으나,
파루스의 눈과 마나석은 상성이 좋지 않았다.
파루스의 눈을 떼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자연스레 그 책임은 시프가 지게 되었다.
"케로스님, 계십니까?"
예를 갖춰서 게라드가 물었다.
서약에 포함된 내용, 게라드는 그런 것을 잘 지켰다.
"뭐냐, 무슨 볼일이냐?"
케로스가 나타나서 물었다.
"혹시 지금 이반이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게라드가 물었다.
"지금··· 잠시만.
음··· 해협을 막 건넌 것 같군.
흔들림이 사라졌어."
케로스가 대답했다.
"흔들림이라면 영혼을 느끼는 겁니까?"
게라드가 물었다.
그는 그 방식이 궁금했다.
"그렇지. 서약을 맺은 대상의 영혼이 어떤 상태인지,
또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알 수 있다."
케로스가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예상치 못한 자세한 설명이었다.
"그래서 해협에 있을 거라 생각한 거군요?
파도에 따라서 영혼이 흔들려서?"
게라드가 호기심을 조금 더 풀고자 했다.
"그렇지. 그리고 거리나 방향 같은 걸로도,
어느 정도 대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케로스가 얘기해 주었다.
그는 호기심에 관대했다.
시프는 그것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있을까요?
저희처럼 엘 니도로 향할까요?"
게라드가 물었다.
하지만,
"막 건넜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까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왕도로 가기야 하겠지만,
음··· 꽤 멀리에 내린 것 같군."
원하는 답변을 들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호기심만 더 생겼다.
"멀리요?"
게라드가 물었다.
"그래. 항구로는 가지 않은 것 같군.
그런데··· 영 좋지 않군.
금지된 숲(Forbidden Forest)에 내린 것 같다."
케로스가 대답했다.
"정말입니까?"
게라드가 놀라서, 바로 물었다.
"그래. 그곳에 그 외의 것은 존재하지 않지.
애송이라 하더라도 살아 나오기 힘들겠어."
케로스의 말을 듣고,
게라드가 침을 꿀꺽 삼켰다.
금지된 숲.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그 숲이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게라드가 대화를 정리했다.
더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 싱겁군."
케로스가 비아냥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게라드, 이반은 괜찮겠지?"
케로스가 사라지자마자, 시프가 물었다.
약간의 불안함이 섞인 시프의 표정을 보고,
"괜찮을 겁니다."
게라드가 애써 미소를 보이며 답하였다.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이반이 이번에도 위기를 헤쳐 나올 것이라고 믿어야 했다.
"그럼 저희는 어서 말렌에게로 가죠.
잠깐, 혹시 시프는 여선장에게로 가주실 수 있겠습니까?"
게라드가 부탁했다.
"응. 근데 왜?"
시프가 물었다.
"말렌을 도울 방법이 있는지 여쭤봐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선장은 시프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으니까요."
게라드가 설명했다.
납득이 가는 말이었다.
"알겠어. 내게 맡겨줘!"
시프가 가슴을 펴고, 말했다.
든든한 모습이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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