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

시프는 충격을 먹었다.
알비다의 쭈글쭈글한 파란 다리.
그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고, 끔찍한 것이었다.
시프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눈앞의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런, 무엇도 하지 못하는 시프를 향한,
"시프···, 구해줘."
간절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시프가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그나마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케로스는 스스로 생각하라 했지.
그래서 또 사라진 것일 수도 있었다.
알비다를 낫게 할 방법이··· 없어서 사라진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시프는 알비다의 다리를 직시했다.
파도가 그녀의 다리 위로 철썩, 이고 있었다.
"시프?"
정신이 아찔해지는 목소리.
일단 그녀를 해변에서 데리고 나가야 했다.
시프는 알비다를 안았다.
하지만 들기에는 약간 벅찬 무게.
다행히도 시프는 바람 마나의 적성자였다.
시프는 바람의 마나를 둘러,
알비다를 들고,
육지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모래가 끝나는 지점,
그 언덕 위에, 알비다를 내려놓았다.
자신을 내려놓는 시프를 알비다가 바라보았다.
"시프."
알비다가 시프를 불렀다.
"네? 왜요, 알비다님?"
시프가 알비다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알비다가,
"날 두고 가. 난 어차피···."
슬픈 말을 내뱉었다.
코를 훌쩍이면서.
그녀의 눈에서,
"가망이 없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포자기.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마음이 꺾여버린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알비다님!!"
시프가 소리 질렀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알아.
지금··· 큽. 다리 아래로··· 흐흑."
알비다의 얼굴이 잔뜩 찡그려졌다.
그녀의 얼굴에 물기가 많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알비다가 숨을 가까스로 넘기면서,
말을 마쳤다.
애처로운 모습.
"알비다님!!"
시프가 소리를 터뜨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시프가 알비다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울었다.
그리고 알비다도,
"으아아아앙."
울음을 터뜨렸다.
뱃일에 잔뼈가 굵은 그녀의 안에는, 소녀가 있었다.
하지만,
"그만 좀 울어라. 시끄러우니까."
방해꾼.
케로스가 다시 나타났다.
"뭐?"
시프가 케로스를 돌아보았다.
그의 방해, 그의 모진 말에 화가 난 얼굴이었다.
"뭐?가 아니라 케로스님이다. 꼬맹이."
케로스가 말했다.
그는 알비다의 다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래. 케로스님. 지금 뭐 하는 거야?"
감정이 많이 올라온 모습.
시프의 말투가 공격적이었다.
"건방진 건 애송이를 닮는 거냐, 가만히 있어봐라.
집중 좀 해야 하니까."
케로스가 그 태도를 바로 지적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집중하였다.
시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야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됐다.
케로스가 나타난 건,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뭐야, 시프 무슨 일이야?"
상체를 들어, 상황을 보려는 알비다.
그녀의 어깨를, 시프가 지그시 눌러 그녀를 도로 눕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손가락으로 입을 막으며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알비다는 입술에 침을 바르고 조용히 하였다.
고요한 가운데,
"힐."
케로스가 주문을 외웠다.
신성 마법.
눈이 휘둥그레지는 순간이었다.
시프가 입을 다무는 걸 까먹지 않고,
케로스와 그 장면을 보고, 말없이 놀랐다.
알비다의 푸른 다리에,
조금씩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쭈글쭈글 물 먹었던 다리가,
조금씩 펴지고,
이내 온전해졌다.
그 변화를,
알비다도 느낀 모양.
"헙."
알비다가 놀라움에 숨을 삼켰다.
그리고 그 뒤에, 케로스가 눈을 떴다.
"불을 피워라, 꼬맹이.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케로스가 말했다.
케로스의 명령.
그 까탈스로운 말투에도 불구하고,
시프에게 그것은 전혀 싫은 느낌이 아니었다.
"네!! 케로스님!! 알겠습니다!"
시프가 대답했다.
기뻐하는 것이 눈에 선했다.
시프가 알비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입 앞에 대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덜덜 떨렸다.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시프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알비다님! 어때요? 어떤 것 같아요??"
시프가 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알비다가 눈알을 굴려,
시프를 응시하였다.
그녀의 얼굴이 다시금,찡그려졌다.
"느껴져, 시프. 다리가··· 있어. 느껴져! 흐아아앙."
알비다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울음이었다.
"다행이에요, 알비다님. 정말 다행이야."
시프가 그녀와 이마를 맞대고,
기쁨을 나누었다.
풀이 듬성듬성 난 언덕에서,
시프와 알비다가 서로를 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꼴을,
"어서 장작이나 구해와라, 꼬맹이."
케로스가 가만히 봐줄 리가 없었다.
"네?"
눈물범벅으로 고개를 돌린 시프.
"아직 다 나은 게 아니다!
몸을 데워야 해.
그리고 먹을 것도 구해야 한다.
다 나을 때까지 아마 며칠은, 꿈쩍 못할 거다."
케로스가 꾸짖었다.
지금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이 맞았다.
"네. 케로스님."
시프가 수긍했다.
"알겠으면, 어서 움직여!"
케로스가 일갈했다.
그러자, 시프가 날쌔게 뛰어나갔다.
이반은 케로스와 어울리면서도,
그를 경계했었지만,
시프는 이제 그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케로스는 이제 그의 은인이었다.
그 말을 거스르는 일은, 앞으로 없을 것이었다.
* * *
"이제 저희 위치를 대강 알 것 같습니다."
게라드가 말했다.
하이드와 말렌이 그의 말에 집중했다.
번들번들한 그들의 입술.
말렌의 입가에는 불에 그을린 생선 껍질도 붙어있었다.
해변을 걷는 말렌의 뒤로, 드넓은 바다가 보였다.
"저희는 원래 향하려던 중부의 항구 도시, 네빌다(Nevilda)와 금지된 숲의 중간에 있습니다."
게라드가 멈춰 서서 얘기했다.
"금지된 숲?"
말렌이 반응했다.
그도 금지된 숲에 대해서 들어본 모양.
말렌과 하이드도, 게라드를 따라 멈춰 섰다.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케로스가 얘기하기를,
이반이 금지된 숲에 내렸다고 했습니다."
게라드가 말했다.
"정말? 이반이 이 근처에 있어?"
하이드가 놀란 목소리로, 바로 물었다.
"아뇨, 근처는 아닙니다.
걸어서 이틀 정도는 걸릴 겁니다.
금지된 숲으로 가도,
네빌다로 가도 이틀입니다."
게라드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이반에게 갈 거야?"
하이드가 또 바로 물었다.
그녀에겐 중대사였다.
게라드가 말렌 쪽을 한번 확인하였다.
그의 표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러면 좋겠지만,
금지된 숲으로 들어가는 건, 자살행위에 가깝습니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다는 곳이니까요."
게라드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말렌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말렌의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
그것은 바로,
"게다가, 저희는 시프도 찾아야 하니까요."
시프 때문이었다.
시프가 무사한지 아닌지도 모르는 마당에,
새로운 선택지가 생긴 것이,
말렌은 기쁘지가 않은 것이었다.
"아···."
하이드가 입술을 오므렸다.
이반 이야기에, 시프를 잠깐 잊어버렸었다.
속으로 반성했다.
"그런데 사실, 여기에서도 애매한 부분이,
시프가 저희 위쪽에 있는지,
아니면 아래쪽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래쪽이 네빌다 쪽입니다."
게라드가 손가락으로 위와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하이드가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게라드가 그냥 빨리 말해줬으면 했다.
하지만,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원을 나눠서 양방향으로 걸을지, 아니면 함께 한쪽 방향으로 걸어갈지."
답을 주는 대신, 게라드는 선택지를 제시했다.
자칫 실망스러운 답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 답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
"나눠서 걷는다면···? 어떻게 나눠질 거야?"
하이드가 물었다.
"제가 따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게라드가 바로 답했다.
그의 표정이 진지했다.
"뭐?"
그 말에 놀란 건, 하이드만이 아니었다.
말렌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더 찢어지자고?"
말렌이 되물었다.
우려 섞인 목소리.
그는 현 상황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게라드의 제안도 당연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네. 한쪽을 선택한다면, 시프를 못 만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가 바로 엘 니도로 향해서,
그곳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입니다."
게라드가 설명했다.
"말렌 씨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물었다.
동의를 구하였다.
하지만,
"음···."
말렌은 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게라드를 따라간다.
그것이 그가 생각한 전부였다.
그래서 게라드의 발언에,
그는 당혹감을 느꼈다.
그런 그에게, 답변은 또한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네."
말렌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안 쓰던 머리를 쓰려니, 머리가 아픈 듯했다.
"그렇죠? 하이드를 부탁드립니다. 말렌."
게라드가 또 바로 말했다.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왜? 정말 그래야만 하는 거야? 게라드?"
하이드가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이드, 죄송합니다. 제 생각엔 이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게라드가 싱긋 웃었다.
보기에 불안한 미소.
"그렇다면 어디로, 게라드는 어디로 가려는 건데?"
하이드가 물었다.
그를 말리기 위해서,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었다.
"제가 위쪽으로, 금지된 숲 쪽으로 가겠습니다."
게라드가 말했다.
"뭐? 거기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 없는 곳이라며!
안 돼! 절대 안 돼! 가지 마!!"
하이드가 마음먹은 대로, 트집을 잡았다.
하지만,
"물론입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진 않을 겁니다.
금지된 숲 부근까지만 수색하고,
내륙 쪽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을을 찾아, 이동 수단을 구한 뒤,
여러분에게로 돌아갈 겁니다."
게라드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여러분은 시프를 찾는다면,
아니, 그를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네빌다로 간 다음,
엘 니도로 먼저 가서 기다려 주세요.
그쪽으로 향하는 상인들이 있을 테니,
헤매지 않고 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것도 아주 상세한 계획이,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갈 수도 있는 거 아냐?"
하이드가 다시 어떻게든 트집을 잡았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가 그래도 이곳 지리를 여러분보다는 잘 알기 때문에, 제가 가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아래쪽으로 쭉 걷기만 하면, 네빌다에는 어렵지 않게 도착하실 수 있을 겁니다."
게라드가 말했다.
게라드의 빠르고도 논리적인 답변에,
하이드는 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말 잘하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응···. 알았어."
하이드가 결국 수긍하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게라드는 확신이 있어 보였고,
시프를 찾는 것이 또 중요했다.
게라드의 말대로, 그가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었다.
"네. 여기서 잠깐 이별입니다.
다시 한번 하이드를 잘 부탁드립니다. 말렌."
게라드가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 하이드는 걱정하지 마."
말렌이 하이드의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짚고 말했다.
그보다 든든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하이드를 보고,
게라드가 바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먼저 걸어갔다.
"게라드도! 몸조심해!!"
하이드가 그 등 뒤에다가,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약간 멈칫거린 게라드.
눈물을 흘릴 것 같았던 건,
어쩌면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을 수도 있었다.
- 작가의말
최근에 무리를 안 하려다보니 조금씩 늦어지네요.
다음 주에도 비슷하면 연재 시간을 살짝 늦추겠습니다.
그리고 도항 편 후반부에,
케로스가 이반의 위치에 대해 알려주는 부분에,
금지된 숲을 언급하는 것으로 추가하였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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