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뭉치

가장 어두운 연기,
그것이 점점 더 위로,
뻗어 올라가고,
하얗게 깔려 있는 안개 위로,
떠올라,
그 위에 놓여 있는 육신으로,
스며 들어갔다.
그리고 그 육신.
그 육신의 주인은 이반.
이반 주변에는 악몽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어떤 구체, 하지만 검은색 연기를 가진 것이 아닌,
빛이 뭉쳐 있는 것 같은 하얀색의 뭉치들.
그리고 그 하얀색 뭉치들은 꿈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반에게서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었다.
그 이반에게서 나오는 하얀색 실타래 같은 그것은,
아마도 마나,
아마도 이반의 영혼이었다.
아직 이반은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그는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영혼이 없는 빈 껍데기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이반에게 스며든 어두운 연기가,
그의 심장 부근에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구의 형태로 소용돌이치며,
그 반경을 넓혀 갔고,
그 반경에 닿는 하얀색 뭉치들을,
우드드득,
모두 떨어뜨렸다.
하얀색 뭉치들은,
이반에게로 다시 접근하려고 하였으나,
어두운 연기의 힘에 의해,
다시 떨쳐져 나가고,
다시, 접근하지 못했다.
이반은, 연기 속에서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어두운 연기를 발견하였다.
어떤 상황인지 바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자신은 분명 검은색 연기들에게 먹혔을 텐데···.
하지만, 사지가 모두 멀쩡했다.
그것을 발견하고 이반은,
자신이 먹혔던 그것이 꿈이었음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생생한 꿈이라,
꿈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몸에, 별로 기운이 없었다.
그리고 연기 너머에,
하얀색 뭉치들을 이반은 발견했다.
감각이 그것들을 거부하였다.
어쩌면 검은 연기들.
어쩌면 단순한 꿈은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어두운 연기가,
그 하얀색 뭉치들을 막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
문제는 어두운 연기를 통제할 방법을,
이반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두운 연기는 이반의 통제 밖에 있었다.
이것이 사라져버리면,
하얀색 뭉치들이 이반에게로 다가올 것이고,
꿈에서의 그 일이 재현될 수도 있었다.
이반은 아직 몸을 까딱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는 어두운 연기가 버텨줘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호손이 어서 돌아와야 했다.
* * *
새로운 날이 밝았다.
게라드는 금지된 숲을 바라보았다.
잘 먹고, 또 야외이긴 했지만 잘 잔 덕분에,
최근 들어 가장 컨디션이 좋았다.
금지된 숲.
게라드는 이반을 도우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게라드 혼자 금지된 숲에 들어가는 건,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었다.
오히려 짐만 될 것이었다.
게라드는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만약 갈 생각이라면,
적어도 바르거스는 데려가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금지된 숲에 들어가길 꺼린다는 것.
그를 설득할 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었다.
듣자 하니 금지된 숲에서 억지로 쫓겨난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자신도 납득한 것을, 어떻게 번복하게 만든단 말인가?
끼이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게라드가 집을 돌아봤다.
집에서 나온 것은 노파.
바르거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게라드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아이고! 깜짝이야!!"
노파가 예상하지 못한 듯, 깜짝 놀랐다.
"아, 죄송합니다."
게라드가 바로 사과했다.
그러자, 노파가 게라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얼굴에 뭐라도 묻은 것인가,
게라드는 자신의 얼굴을 슬쩍 닦아보았다.
하지만, 묻어나는 것은 없었다.
게라드가 의아한 얼굴로, 노파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왜 그러십니까?"
노파에게 물었다.
그런데 물음을 던진 게라드에게,
"뉘슈?"
노파가 의외의 말을 하였다.
그녀가 처음 본다는 듯한 얼굴로,
게라드를 바라보았다.
설마.
"저 모르시겠습니까? 어제 찾아왔던?"
게라드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쩌면 어제 잠깐 봐서 모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노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모르겠는디."
게라드를 처음 본다고, 못 박았다.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안 좋을 수도 있었다.
그녀의 건강 상태를 의심하는 것에 앞서서,
바르거스를 만나야 했다.
그에게 물어보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저는 어제 찾아온 게라드라고 합니다.
바르거스가 허락해 줘서, 여기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게라드가 노파에게 인사하였다.
그러고 보니, 정식으로 인사한 적은 없었다.
"그려? 그럼 이제 퍼뜩 가슈.
여긴 뭐 볼 것도 없잖수."
노인이 말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경계하는 느낌이었다.
그 말대로, 인사 없이 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었다.
기억력이 안 좋은 노파를 두고,
바르거스가 자신을 따라 올리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한 번 더,
게라드는 한 번 더 기대를 걸어보고 싶었다.
"바르거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르신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게라드가 노파에게 물었다.
친근감을 조성하기 위한 질문이었다.
"이 노인의 이름은 들어서 뭐하려고 그랴?"
노파가 되물었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게라드는 미소와 함께,
"이것도 인연이니까요. 말씀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부드러운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그것을 보고 노파가 기뻐하며,
"훙훙, 내 이름은 세실리아(Cecilia)라네. 만나서 반갑구먼."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세실리아.
예쁜 이름이었다.
그녀의 젊을 때의 모습이,
게라드는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때,
"뭐야, 할매. 왜 갑자기 아양을 떨고 있어?"
바르거스가 집 안에서 나왔다.
세실리아에게도 그 시비조는 여전하였다.
그런데,
"뭐? 내가 나이 드는 데 네놈이 보태준 거라도 있어?"
세실리아도 만만치 않았다.
"에휴, 곱게 좀 늙을 것이지.
악다구니만 늘어서는."
바르거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놈 자식이!! 새파랗게 어린 자식이 노인에게 그게 무슨 말이야, 이놈아!"
세실리아가 그 악다구니를 숨김없이 보여 주었다.
"손님 앞에서 못하는 말도 없구만.
아침이나 먹게 빨리 세수나 하고 와."
바르거스가 예사일이라는 듯,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안 그래도 갈 참이였어! 네놈도 눈곱이나 좀 닦아!"
세실리아가 소리치며, 오두막 뒤쪽으로 물러났다.
이렇게 투닥투닥하는 것이 그들의 일상인 듯했다.
"잠은 잘 잤나?"
바르거스가 게라드에게 물어왔다.
그가 귀가 따가운지, 귀를 후볐다.
눈곱도 닦으면 좋을 것이었다.
"예. 덕분에 잘 잤습니다."
게라드가 말했다.
그의 옆에는 잘 정돈된 담요가 있었다.
바르거스가 빌려준 것이었다.
"그래. 그럼, 언제쯤 떠날 생각인가?"
바르거스가 물었다.
"인사만 드리고 가려고 했습니다."
게라드가 바로 대답했다.
"그래. 마을은 서쪽으로 쭉 가면 나올 거야.
아마 하루는 꼬박 걸어야겠지만,
잘만 하면 오늘 내에 도착할 수도 있을 거야."
바르거스가 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게라드가 바로 응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그에, 바르거스는 게라드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게라드가,
"감사하지만, 저는 금지된 숲으로 갈까 합니다."
자신의 결심을 말하였다.
충격적, 아니,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바르거스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아마도 이 말은,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술수였다.
게라드도 바보가 아닌 이상,
금지된 숲에 혼자 간다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 것이었다.
운 좋게 동료를 만나다고 하여도,
아니, 운 좋게 만날 리가 없었다.
만나기도 전에 죽고 말 것이었다.
"진심인가?"
바르거스가 물었다.
죽으러 가겠다는 선언이,
진심인지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네, 진심입니다."
게라드는 물러나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계획이 수정되는 일도 있었고,
지금의 결정도 그것을 수반하는 것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반을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다 확실한 찬스는,
지금 금지된 숲으로 가는 데에 있었다.
게라드도 자신의 판단이 놀라웠지만,
위험 속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게라드는 자신이 달라졌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바르거스는, 더 물어봤자 입만 아프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래, 알겠네. 행운을 빌지."
게라드의 생각대로,
그를 염려하거나 따라갈 생각은 없었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게라드의 존재가 바르거스에게는 그렇게 의미 있지 않았다.
"네, 감사합니다."
게라드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만에 하나, 따라와 준다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런 건, 너무 형편 좋은 이야기였다.
게라드는 마음을 접고,
또 한편으로는 다잡고,
바르거스에게 고개를 숙이며,
"그럼, 가보겠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바르거스가,
"그래, 조심하게."
손을 흔들며 그를 보내 주었다.
게라드는 뒤를 돌아,
금지된 숲 쪽으로 발을 옮겼다.
해가 그 숲 위로 이제 막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안개.
짙은 안개가 그 숲에 발을 들이는 자들에게,
경고를 전하고 있었다.
* * *
어두운 연기는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바닥이 없는 것 같은 힘.
어디에서 오는 건지, 멈출 기색이 없는 힘이었다.
하얀색 뭉치들도 포기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 하얀색 뭉치들은 아마도 상위 정령들.
루시아나 호손에 따르면 그럴 것이었다.
이반은 호손이 돌아와 주기를, 아직은 기다렸다.
하지만 그 기대하는 마음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이 줄어들었다.
호손이 마지막에 보인 표정,
그의 모습이 이반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왠지 모르게,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간도 이미 많이 지났을 것이었다.
이반에게 남은 방법은,
몸을 회복한 뒤에 자력으로 이곳에서 나가는 것.
아마 어두운 연기는 그때까지 버텨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에너지를 취할 곳이 없다는 것.
그냥 누워있는 것만으로 기력을 다 회복할 수는 없었다.
이곳을 나갈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무언가 먹을 것이 필요했다.
뭐라도 먹지 않는다면,
이곳을 채 나가지 못하고, 쓰러져 버릴 것이었다.
그런데, 주변에는 먹을 만한 것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이 화이트 포레스트에 과연 먹을 것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어떠한 동물도, 과일도 보지 못했었다.
먹을 게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게 아닐 것이었다.
아, 그래서 이 하얀색 뭉치들이 이렇게 달려드는 것인가?
그들에게 이반은 먹을 것이었고,
이곳에는 먹을 것이 항상 부족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악착같이 달려드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의 끝이,
이들에게 먹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반은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이반은 손을 뻗어보았다.
그리고 그 하얀색 뭉치를 잡으려고 해 보았다.
뭐라도 형태가 눈에 보이는 것은,
이반 자신을 제외하고는 이것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잡히지 않았다.
이것들은 사람의 손으로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연기 밖으로 나온 이반의 손을,
그 하얀색 뭉치들이 오히려 노리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돌진은,
어두운 연기에 의해서 다시 막혀버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반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서 나오는 어두운 연기를,
마나처럼 의식해 사용해 보는 것.
그 자체를 써보려 했던 것은 잘 되지 않았지만,
마나처럼 쓴다고 한다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연기는 아마도,
심연의 힘.
그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물론 마나석을 버렸는데도,
왜 그것이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 말고는 없었다.
그리고 이 연기가 정말로 심연의 힘이라면,
다룰 수 있을 것이었다.
이반은 그것을 다뤄본 적이 있었다.
이반은 마나를 의식하듯,
어두운 연기를 의식해 보았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이반은 심연의 힘을 썼을 때처럼,
심연이 그를 감싸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연 또한 이반을 의식하였다.
이반은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집중력은 잃지 않고,
마나를 쓰듯 그것을 뻗어보았다.
심연의 힘이, 이반의 손을 따라, 펑하고 터졌다.
이반은 그 힘을 다루는 방법이 잘못됐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아마도, 손에 두르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반은 화이트 포레스트에 들어왔을 때,
마나를 다루는 한 방식을 깨우쳤었다.
흐름을 의식하는 것,
그리고 그 겉의 발산되는 부분을 걷어내는 것.
이반은 눈을 감고 집중하였다.
그리고 그 방식을 의식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얀 구체가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
심연.
심연만이 있었다.
이반은 심연 속에 있었다.
심연 속에서, 이반은 표류할 뿐이었다.
걷어낼 것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반이 그것을 깨달은 순간,
손길이 느껴졌다.
심연의 손길.
그리고 그 손길이 이반을 스윽 어루만졌다.
아···!
이반은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어두운 연기가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어두운 연기, 심연의 그림자를, 이반은 뜻대로 다룰 수 있었다.
이반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덥썩,
하얀색 뭉치를 하나 움켜잡았다.
발버둥 치는 하얀색 뭉치.
하지만 그것은 이반의 손아귀,
심연의 그림자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반은 하얀색 뭉치를 입으로, 가져갔다.
- 작가의말
후반부 수정하느라 좀 늦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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