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라리온과 미나스 이야기
36화. 엘라리온과 미나스 이야기
라이나스가 마누스가 분해한 검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그 검 엘드라이트 아닌가?”
마누스가 말했다.
“확실히 내가 만든 것은 맞는데, 언제 만든 물건인지 전혀 기억이 안 나.”
“그 검이 엘드라이트면 언제 만들었는지 내가 아는 것 같은데?”
마누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자네가 엘라리온에게 선물로 만들어서 준 거잖아.”
“엘라리온?”
“기억 안 나?”
“글쎄.”
“그가 전쟁에서 자네 목숨을 구해줬잖아, 그런 머리로 어떻게 복잡한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지 모르겠군?”
검을 유심히 살펴보던 마누스가 말했다.
“아, 그의 이름이 엘라리온이었지.”
“이제 생각이 나?”
“그는 용인데, 인간이 아니잖아?”
“그의 인간 이름이 엘라리온이야.”
에드가와 소나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드가 학장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엘라리온이 원래 용이라니?”
라이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들은 그의 원래 정체를 모르지.”
“그럴 리가 없는데?”
“엘라리온은 인간 여자를 사랑해서 인간으로 살고 싶어 했지, 그래서 폴리모프 한 모습을 평생 풀지 않았으니 인간들은 그가 용인지 모르죠.”
에드가 학장이 다시 물었다.
“그게 사실이면 마법의 역사가 완전히 뒤바뀌는 것인데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항상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죠, 진실을 알려줘도 꾸며낸 이야기에만 반응하더군요.”
로월아스가 물었다.
“그가 평생 사람의 모습으로 살았다면 사람 아닙니까?”
라이나스가 로월아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인간들의 믿음에 관해서는 내가 잘 모르니 우리의 관점에서는 그렇다는 거지요.”
“그렇군요.”
라이나스가 미소를 지었다.
“당신도 엘라리온과 같은 거죠?”
“네?”
“이름이 로월아스라고 했죠?”
“아 네.”
“당신 속에는 엘라리온처럼 다른 존재가 있는 것 아닙니까?”
“네.”
“당신도 엘라리온처럼 두 개의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이죠?”
“두 개의 세상?”
“당신처럼 엘라리온도 그랬습니다, 그는 용이 되어 영생을 누릴 수도 있었는데,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해서 그냥 사람의 모습으로 죽기를 기다렸죠.”
“그가 죽음을 기다렸다고요?”
“용은 자신의 고통은 느껴도 다른 생물의 고통은 느끼지 못하는데 엘라리온은 달랐죠, 그는 다른 생물들이 느끼는 고통을 느끼고 싶어 했으니까.”
“아.”
마누스가 말했다.
“그래, 맞아 드래곤이 드워프를 구해주다니 그건 정말 기이한 일이었지, 내가 날 왜 구해줬냐고 물어봤었는데 말이야.”
로월아스가 궁금한 듯 물었다.
“그가 그 질문에 뭐라고 했나요?”
“자기 자신이 고통을 느끼면 살아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면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했어.”
라이나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엘프가 되고 싶어 한 것은 아닐까?”
마누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엘프는 드워프가 고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잖아, 엘프는 엘라리온처럼 될 수 없어.”
“드워프 들이 산을 시끄럽게 하고 광산을 개발하겠다며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고상하지 못한 짓이 맞아.”
“엘프들이 숲을 지키는 전쟁을 한다고 화살이 필요하다며 필요 이상으로 숲의 자원을 가져가는 것도 드라이어드 입장에선 마찬가지 아냐?”
“그건 달라.”
마누스가 미소를 지었다.
“뭐가 달라, 지금 화내려고 했지?”
라이나스가 미소를 지었다.
“나 화 안 났는데?”
둘의 눈치를 보던 에드가 학장이 라이나스에게 물었다.
“엘라리온이 용이었다면 그가 인간에게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 준 이유는 무엇인가요?"
라이나스가 말했다.
“그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평소의 엘라리온은 인간이 마법을 사용할 줄 알게 되면 세상을 위해 조금 더 나은 존재들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에드가 학장이 말했다.
“왜 북부 제국에서는 그럼 엘라리온을 악마라고 낙인찍은 거죠?”
라이나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들은 그의 피를 얻어서 마법의 사용법을 익혔는데, 그가 다시 그것을 빼앗아 갈까 두려워해 오히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죠.”
마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엘라리온이 인간에게 마법을 준 이유는 신들에 의해 고통받는 인간들이 좀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인데, 인간들은 오히려 신의 반대쪽에 선 악마라고 엘라리온을 모함했지.”
에드가 학장이 말했다.
“모든 인간이 그런 나쁜 심성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마누스가 말했다.
“인간들도 힘들지, 신의 편을 들지 않으면 자신들의 존재가 부정되고, 마법을 가져다준 엘라리온의 편을 들면 신의 반대편에 서야 하고.”
라이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만든 마법사 미나스만이 충실히 엘라리온의 높은 뜻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지.”
마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제일 안 됐지, 인간들은 그녀도 엘라리온의 하수인인 마녀라며 이단으로 몰지 않았나?”
라이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그 기억도 나는군, 인간들은 마법을 배우고도 무슨 일만 생기면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라고 몰아세웠지.”
로월아스가 모든 이야기를 듣고서 물었다.
“미나스가 마녀로 몰렸다고요?”
에드가 학장이 말했다.
“마녀사냥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로월아스가 물었다.
“마녀사냥이요?”
에드가 학장이 조용히 답했다.
“그 일은 후대에 다 누명이었다고 밝혀졌죠, 가장 중요했던 가뭄의 문제는 미나스님이 마법을 가르쳐서 그런 것이 아니었죠, 그저 날씨가 추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라이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일이 기억이 나는 군요, 정말 추운 겨울이 반복되었는데, 모든 생물과 숲의 엘프들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시기였지요.”
마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절에는 눈이 드워프 들의 키 보다 두 배는 높게 내리고 쌓였으니 우리는 이동조차 힘들었지.”
“겨울에 폭설이 내렸다는 건가요?”
“인간들은 집의 지붕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려고 눈을 거리로 던졌고, 어떤 마을은 쌓인 눈으로 길이 끊겨서 한동안 갇혀 있기도 했지.”
에드가 학장이 말했다.
“저도 어릴 때 비슷한 경험을 했었죠. 제가 어릴 때도 겨울은 정말 길었고 춥고 배고팠죠.”
마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들은 염치가 없지, 미나스가 그렇게 힘들 때 도움을 줬는데, 미나스를 마녀로 몰아갔으니.”
로월아스가 끼어들었다.
“원래 마녀사냥은 늙은 과부의 재산을 노린 성직자들, 법률집행자들, 각 영지의 권력자들이 짜고 꾸며낸 일이 많았다고 배웠죠.”
라이나스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 추위가 시작되기 전에도 숲이 죽어가는 현상이 발견되었죠, 그래서 이번에 제가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에드가 학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또다시 긴 겨울이 나타날 것이라는 겁니까?”
라이나스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나스 마법사 시절의 일이 지금 반복되려고 합니다, 그 악몽이 다시 되풀이되는 것은 막아야겠죠, 그건 숲의 엘프도 견디기 힘든 시련의 시간이니까요.”
마누스도 장난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건 심각한 문제야, 당시에 드워프 들도 먹을 것이 없어서 많이 죽었지.”
로월아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단순한 날씨의 변화가 아니라, 누군가 날씨를 조작하려고 한다는 말인가요?”
라이나스가 로월아스를 쳐다봤다.
“마녀나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숲에 환경에 문제가 생긴 것은 확실하죠, 로월아스 교수님이 가지고 계신 ‘엘릭시아의 정원’은 원래 숲에 있어야 하죠.”
로월아스는 숲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숲에서 실비아라는 드라이어드를 만난 적 있는데, 혹시 그 일과 관계가 있을까요?”
라이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이어드는 숲의 보호자로 우리 엘프와 다르게 인간들과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데,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도움을 청할 정도면 일이 아주 심각한 거죠.”
마누스가 라이나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엘프들은 드워프 들이 자연을 파괴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연 그 자체인 드라이어드 처지에서 보면 숲을 파괴하는 것은 엘프도 마찬가지지.”
라이나스가 마누스를 쳐다봤다.
“우리는 드라이어드 들을 존중하지만, 드워프 들은 그런 마음조차 없잖아.”
에드가 학장이 로월아스를 쳐다봤다.
“자네가 사람들에게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드라이어드를 만났다고?”
로월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라이나스가 에드가 학장에게 말했다.
“그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 이제 그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에드가 학장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미나스 마법사가 마법 아카데미를 만들기 전에 숲의 드라이어드들에게 허락을 구했다는 전설을 기록으로 본 적이 있는데.”
라이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전설이 아니라 사실이죠, 드라이어드가 허락하지 않았으면 아카데미는 존재할 수 없었고 생활 마법을 모르는 인간들은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더욱더 많이 죽었을 겁니다.”
에드가 학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기온이 하강해서 숲의 나무 성장은 지체되었고. 먹을 것이 부족한데 가축 전염병까지 널리 퍼져 수많은 가축은 죽었죠, 거의 추수를 하지 못할 정도의 농사는 흉작이었죠.
마누스가 물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시기에 드라이어드는 왜 인간들을 받아들인 거지, 인간들은 엘프보다 더 심하게 숲을 훼손시키는 존재인데.”
라이나스가 말했다.
“미나스의 부탁이었지, 겨울에 나무의 껍질을 갈아서 빵으로라도 만들어서 먹지 않았으면, 인간은 모두 죽었을 거야.”
마누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숲이 그렇게 하면 더 죽어갈 수 있는데도 인간들을 받아들였단 말이잖아?”
“드라이어드는 모든 생명을 존중해, 인간들도 살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숲이 죽어가는데 인간의 생명을 걱정해서 자신의 생명을 나눠줬다고?”
“드워프의 마음을 이해하는 엘프가 없듯이 드라이어드의 마음을 이해하는 엘프도 없어.”
마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전쟁을 꼭 해야 한다면 드워프는 엘프를 선택해서 싸우지, 절대 드라이어드를 전쟁의 상대로 선택하고 싶지는 않지.”
라이나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마누스를 쳐다봤다.
“무슨 소리야?”
“엘프와 드워프는 생각도, 생긴 외모도 비슷해서 닮았잖아, 드라이어드는 생각도 모습도 종잡을 수 없으니.”
라이나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가 엘프와 드워프가 닮았다는 거지, 그리고 드워프와 엘프와 전쟁이 나면 드라이어드는 엘프를 도울걸.”
마누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아무도 모르지, 드라이어드 마음을 누가 알겠어.”
로월아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요, 제가 본 드라이어드 실비아는 사람의 모습이었는데요?”
라이나스가 로월아스를 다시 쳐다봤다.
“다른 종족에게 부탁해야 할 때는, 그 종족과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나, 그래서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지, 실제 드라이어드의 모습을 아는 사람은 없어.”
“아, 그런 거군요.”
마누스가 순식간에 엘드라이트를 다시 조립했다.
“이 검 말이야,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내가 만든 것이 확실히 맞는 것 같아,”
로월아스가 화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혹시 엘드라이트의 힘으로 소환되었다는 소환수도 고칠 수 있나요, 지금은 화분 곁이 아니면 눈도 깜박이지 못하는 상태인데?”
마누스가 라이나스를 쳐다봤다.
“자네가 말해보게, 저 친구가 말하는 소환수가 어떻게 ‘엘릭시아의 정원’이라는 화분의 영향을 받는 거지?”
라이나스가 화분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질문을 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라이나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된 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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