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포드의 법칙
49화. 벤포드의 법칙
로월아스가 다가서자 르블랑이 뒷걸음질 쳤다.
르블랑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마!”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말해봐, 내가 누군지?”
르블랑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당신을 믿었는데.”
로월아스가 말했다.
“말해봐 도대체 뭐가 보이는 거지, 나도 궁금해, 엘라리온의 피를 물려받은 당신의 눈에 내가 뭐로 보이는지.”
르블랑이 말했다.
“당신은 올빼미 공작이잖아.”
“올빼미 공작?”
르블랑이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스토라스, 당신이 바로 악마 서열 36위 스토라스 공작이잖아!”
로월아스가 물었다.
“스토라스 공작이라고 내가?”
르블랑이 당황해서 로월아스를 쳐다봤다.
“악마는 자신의 이름을 맞추면 소멸이 된다고 들었는데, 당신은 왜 사라지지 않는 거야?”
로월아스가 다시 물었다.
“왜 나를 스토라스 공작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르블랑이 말했다.
“그거야 당신의 눈에서 올빼미가 보이니까.”
로월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을 읽는단 말이지?”
“읽는 것이 아니야, 그냥 보여.”
“당신 말이 맞을 수도 있어, 나는 올빼미 글리터를 다시 살려내야 하니까.”
르블랑은 로월아스가 더 가까이 다가서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살려줘!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로월아스가 손을 내밀었다.
“페이트윈드를 줘, 나는 그게 필요해.”
르블랑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페이트윈드를 쥔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이건 줄 수 없어.”
“해치지 않을 테니 그걸 줘?”
르블랑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악마에게 줄 수는 없어.”
“나는 스토라스 공작이 아니야!”
르블랑이 눈을 감고 알 수 없는 말로 중얼거렸다.
“키-아프 키-에레크 베게이 찔마벳 로-이라 라 키-앗타 임마디 쉬브테카 우미샤안테카 헴마 예나하무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르블랑의 그 중얼거림을 느낌으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성경의 한 구절 같았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
로월아스는 르블랑의 중얼거림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이전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는데, 노스무스와 대결 이후 이상한 능력이 생긴 것 같다.
로월아스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과거의 조각들 속에서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 당신이 말하는 그 성경 구절, 그 구절을 나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아.”
르블랑은 여전히 몸을 떨며 로월아스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스토라스 공작이잖아, 이름을 밝혔는데 도대체 왜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거야?”
로월아스는 한 발짝 더 다가서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네게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라서 그렇지. 나는 그냥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래서 페이트윈드가 필요한 거야.”
르블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믿을 수 있지? 당신은 스토라스공작 맞잖아.”
“내 눈이 당신이 알고 있는 악마 스토라스 공작의 느낌일지 모르지. 하지만 나는 그런 악마가 아니야.”
르블랑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로월아스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로월아스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에게 페이트윈드를 줘. 그럼 나는 당신 눈앞에서 그냥 사라질 거야.”
르블랑은 결국 페이트윈드를 로월아스에게 건네주었다.
이대로 가버리면 악마에게 굴복당한 느낌을 받은 르블랑이 제대로 살지 못하고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월아스가 페이트윈드를 손에 쥐고, 르블랑에게 말했다.
“나 정말 스토라스 공작 아니라고요,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악마 본 적 있어요?”
르블랑이 멍하니 로월아스를 쳐다봤다.
“그럼 당신은 누구죠?”
뭔가 생각하던 로월아스가 말했다.
“그건 설명하기 곤란한 인식론 문제에요.”
“인식론?”
“나는 네 가지 영역에 속해 있어요.”
“네 가지 영역이요?”
로월아스가 차분하게 말했다.
“열린 영역의 나, 맹목 영역의 나, 숨겨진 영역의 나, 미지의 영역의 나.”
르블랑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게 뭐죠?”
“당신이 보인다고 하는 것은 나는 그 네 가지의 중에서도 맹목 영역의 나라고요.”
르블랑의 얼굴이 공포가 아니라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친구 구스타프가 자주 보여주던 표정이라 놀랍지도 않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알고 남이 아는 나, 남이 알고 나는 모르는 나, 내가 알고 남이 모르는 나,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나중에 당신이 말하는 것은 남이 알고 나는 모르는 나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라고요.”
르블랑이 머리를 흔들었다.
“네?”
“의사소통에서 중요한 조해리의 이론이 있어요.”
“조해리 이론?”
“아 그게 한 사람이 아니고, 조와 해리, 두 사람 이름 합쳐서.”
“아 두 사람이군요.”
“암튼, 그러니까 인식이 다르니 의견도 다를 수 있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아닌데 당신 눈에 보이는 나는 스토라스 공작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는 거죠.”
“네?”
“반대로 내가 보는 당신은 여관 주인이기도 하고 엘라리온의 피를 물려받은 자이기도 하고, 악마를 봉인하는 자이기도 하고, 검은 장미 형제단의 일원이기도 하잖아요.”
“그건 그렇죠.”
“말해봐요, 열린 영역의 당신과 맹목 영역의 당신, 숨겨진 영역의 당신과 미지 영역의 당신은 누구죠?”
르블랑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생각해보라고요.”
“나는?”
로월아스가 미소를 지었다.
“제 친구랑 똑같은 표정을 짓는 군요, 그럼 이제 내 눈에 보이는 당신은 저의 친구인가요?”
“친구요?”
***
-숙소-
눈을 감았다.
녹트는 어둠의 심장을 가지고 어디로 사라졌을까?
여관 주인 르블랑의 말이 사실일까?
나는 김수오인데.
로월아스의 원래 정체는 악마 스토라스일까.
생각이 많아졌다.
고개를 흔들었다.
다 잡생각이다.
김수오일 때도 오해는 충분히 많이 받았다.
내가 아는 나와 남이 모르는 나.
남이 아는 나와 내가 모르는 나.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나.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나.
로월아스는 껍데기일 뿐이야.
나는 그냥 김수오다.
***
-마법 아카데미 학장실-
로월아스는 소나에게 노스무스 교수가 아카데미로 돌아올 수 없다고 전해야 했다.
노스무스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굳이 죽음을 선택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나는 이제 지쳤어, 이미 빛의 심판자도 넘겼고, 그의 부름을 다시 거절할 힘이 나에게 없어.”
“사람으로 죽고 싶다면서요?”
“맞아.”
“그럼 이건 아닌 거 같아요.”
“음?”
“시지프는 사람으로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지하실에 가뒀고, 죽음이 세상에서 사라졌죠.”
“음?”
“죽음이 세상에서 사라지자, 하데스와 아레스가 항의해서 결국 시지프는 제우스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알아.”
“계속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벌이라는 것 아시잖아요. 바위는 정상에 오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올려야 하는 영원한 노동이죠.”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이대로 악마와 함께 봉인되는 것은 인간답지 않다고요?”
“음?”
“인간은 정상에 올랐을 때 잠깐의 안도감을 느끼고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하는 존재라고요.”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인간이 되고 싶다면서요, 이런 죽음은 인간답지 못하다고요, 시지프는 죽음도 선택하지 못하니까요.”
“그런가?”
“그러니 죽지 말고 삶의 무게를 견디며 버티세요.”
“음?”
상념에서 깨어났더니, 소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휴가를 신청하신 것이 아니라, 아예 그만두신다고 하셨다고요?”
“네 건강상의 이유로 휴양차 먼 곳으로 가신다고 더이상 강의는 못 하실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그럼 아카데미 학사일정은 어떻게 해요?”
로월아스는 노스무스 교수에게 들은 대로 이야기했다.
“교수님 후임으로 한 분을 추천해놨다고 조만간 아카데미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소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추천이요?”
로월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떤 분이신데요?”
“그것까지는 말씀해주지 않으셨는데요?”
소나가 한숨을 푹 쉬었다.
“아!”
깊은 한숨에 전해져오는 스트레스.
소나의 주변에 여기저기 널린 서류들, 들어오기 전부터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김수오 시절에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동료들에게서 많이 보던 표정.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몰려왔을 때 생기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
뭐가 소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지?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간단한 장부 같은데, 왜 저러지?
로월아스는 숫자라면 자신 있었다.
“저기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네?”
“지금 하시는 일이요.”
“아, 이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노스무스 교수와 대결을 한 이후에 생긴 현상인가?
이전보다 계산 능력이 훨씬 더 빨라진 것 같다.
눈으로 장부들을 훑어보다가 소나에게 물었다.
“이 장부들은 다 뭐죠?”
“이건 마법 아카데미 회계 장부들입니다.”
“제가 좀 봐도 될까요?”
소나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건 비공개 자료들이라 교수님은?”
로월아스가 빙그레 웃었다.
“제가 좀 봐도 될까요, 제가 숫자에 강하거든요?”
소나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저기 그건 좀, 교수님은 감찰이시잖아요.”
“그걸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도움만 주려고요.”
“회계 장부도 검토할 줄 아세요?”
숫자들이 기록된 장부들을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노스무스 교수와 그림 대결을 펼칠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능력 같다.
모든 숫자가 마치 허공에 화면이라도 있는 것처럼 투사되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숫자들이 마치 자동으로 계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답이 보였다.
“음 이상하네?”
소나가 허공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로월아스를 보며 물었다.
“자료를 보여달라고 하시더니 지금 뭐 하세요?”
로월아스가 뭔가 계속 계산하더니 말했다.
“이상해요, 마치 칠판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제가 글자와 숫자를 허공에 적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네?”
로월아스가 허공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장부의 숫자들이 로월아스의 손에 따라 그대로 복사되는 것처럼 허공에 써졌다.
소나가 놀란 듯 말했다.
“어 지금 어떻게 하신 거예요?”
집중력만 흐트러지지 않으면 계속 그 숫자들이 허공에 떠 있게 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저도 모르겠어요.”
“이런 건 처음 봐요.”
숫자를 보다 보니 뭔가 이상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로월아스는 숫자 중 일부를 추려서 다시 어떤 막대그래프를 하나 그렸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이거 너무 이상한데요?”
소나가 물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로월아스가 중얼거렸다.
“벤포드의 법칙에서 어긋나는 것이 보여요.”
“벤포드의 법칙이요?”
로월아스가 말했다.
“이 숫자로 막대그래프를 그리면 로그 함수 모양이어야 하는데, 이 회계 장부는 뭔가 이상하군요?”
“로그 함수요?”
“벤포드의 법칙에 따르면 어떤 모집단의 앞자리 숫자만 떼어서 모아보면, 그 앞자리 한 자릿수의 개수는 이 막대그래프처럼 들쭉날쭉한 것이 아니라, 마치 로그 함수 그래프처럼 보여야 자연스럽거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학생들이 책을 읽을 때 앞부분만 많이 읽잖아요, 그 책이 어려우면 더 그렇죠.”
소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저도 그런데?”
“벤포드라는 사람이 그걸 보고 왜 그런지 생각하다가 연구해서 발표한 어떤 법칙입니다.”
“네?”
“임의로 조작하지 않은 통계들은 대부분 벤포드의 법칙을 따라요, 1에서 9까지 숫자의 분포가 로그 함수 곡선이어야 맞거든요.”
“로그 함수 곡선이 뭐죠?”
“1이 제일 많고 9가 제일 적어야 한다고요. 그 줄어드는 비율이 로그 함수처럼 이런 모양의 비율이라서요, 이건 이상해요.”
소나가 물었다.
“어떤 점이 이상해 보이나요?”
로월아스가 말했다.
“그냥 간단하게 말해서, 어떤 책을 다 읽은 사람보다 처음 부분만 읽은 사람이 당연히 훨씬 많다는 간단한 원리에요,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숫자 모임에 나타나요.”
“거의 모든 숫자요?”
“그래서 벤포드의 법칙을 ‘맨 앞자리 수 법칙’이라고도 하는 거죠.”
“음?”
“숫자들을 보세요, 왜 책들의 앞부분 페이지만 유난히 더러워지는지 생각하면, 모든 숫자는 ‘1’로 시작하는 것이 제일 많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무슨 법칙이라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벤포드의 법칙은 자연스럽게 생성된 많은 숫자의 데이터는 당연히 첫 자리가 1이 나올 확률이 가장 높다는 것을 말해요, 1이 나올 확률은 약 30.1%이고, 2가 나올 확률은 17.6%, 3은 12.5%, 첫 자리가 9일 확률은 4.6% 이런 식으로 로그 함수처럼 줄어들어야 자연스럽다는 거죠.”
“아 그래서 그 줄어드는 그래프를 그럼?”
“네 맞아요, 사실 일부 사람들은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벤포드가 공식화했기 때문에 그냥 벤포드의 법칙이 된 거죠.”
“재미있네요.”
“벤포드는 이 법칙을 검증했고, 강의 폭, 산의 높이, 사망률, 물건의 가격 등 많은 데이터에서 이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소나가 물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여기 회계 장부의 숫자들의 앞 숫자만 모두 따서 개수를 정리해서 막대그래프를 그렸잖아요.”
“네.”
“벤포드의 법칙은 회계 부정이나 데이터 조작을 탐지하는 데 유용해요. 예를 들어, 지금처럼 회계 장부의 숫자 분포를 막대그래프로 그렸을 때 로그 함수 그래프처럼 줄어들지 않으면 데이터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커요.”
“조작?”
“여기 있는 회계 장부를 좀 더 자세히 보자면, 수많은 숫자 중에서 앞자리가 4, 5, 6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벤포드의 법칙에 따르면 이런 숫자 분포는 나와서는 안 되거든요.”
“정말 이 장부에 어떤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요?”
“회사의 회계 부정이나 분식 회계와 같은 문제는 이런 식으로 잡아낸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이 그래프는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요.”
“아, 이해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장부의 부분이 문제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알 수 없어요, 벤포드의 법칙은 그냥 장부가 조작되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거든요.”
“그럼 장부와 다르게 적자가 난 원인이?”
“분식 회계라고 하죠.”
“분식 회계라고 하시면?”
“여자들이 화장할 때 분칠하듯이, 장부를 조작하며 숫자가 딱딱 맞게 누군가 분칠을 했다고요.”
“아···네.”
소나의 반응을 보니 범인을 아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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