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글리터

50. 깨어난 글리터
-예언학과 강의실-
노스무스 교수가 자기 대신 추천한 예언학과 교수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다.
하필 수업내용이 점성학이라니.
점성학이 뭐라고 이걸 밤새워 공부했더니 계속 눈이 충혈된 것 같다.
칠판에 커다란 원을 하나 그렸다.
그리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모습을 타원궤도로 그렸다.
한참 황궁 12도에 관해서 설명하는데 학생이 질문을 했다.
“교수님,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 아닌가요?”
이럴 줄 알았다.
아직 지동설이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인데.
질문한 학생을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몸치 알렉스 루미, 지적 호기심만 강한 녀석.
로월아스가 차분히 말했다.
“알렉스 루미, 앞으로 나와 보게.”
알렉스 루미가 잔뜩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로월아스는 학생들의 표정을 살폈다.
다들 알렉스 루미를 내가 혼내려고 불러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교육받은 사람이라고.
알렉스는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왔다.
“알렉스. 여기 서서 나를 마주 보면서 서 봐. 그래 그럼 이제 한번 돌아볼까요?”
알렉스는 몸을 돌려 교실 뒤쪽을 바라보았다.
로월아스는 학생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알렉스가 지구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나를 태양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지금 알렉스는 나를 등지고 있어요. 즉, 지구의 반대쪽이 태양을 등지고 있는 것이라서 알렉스는 태양인 나를 볼 수 없죠, 태양이 없으면 낮인가요 밤인가요?”
몇몇 학생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낮이요.”
로월아스가 알렉스에게 말했다.
“알렉스 학생, 천천히 제 쪽으로 몸을 돌려볼까요?”
알렉스는 천천히 몸을 돌려 로월아스를 바라보았다.
“좋아요, 이제 알렉스는 저를 향하고 있어요. 즉, 지구의 이쪽 면이 태양을 향하고 있는 낮입니다. 지구인 알렉스의 눈에 태양인 저의 모습이 보이는 거죠,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나요?”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로월아스가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이제 태양인 제가 한 바퀴 돌면서 알렉스를 계속 바라볼게요. 자, 주목하세요.”
로월아스는 알렉스를 중심으로 천천히 걸으며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제가 이렇게 돌 때마다, 알렉스는 고정되어 있죠. 그래서 알렉스는 아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이해했나요?”
“네.”
로월아스가 제자리로 돌아와서 말했다.
“알렉스, 내가 나를 계속 쳐다보면서 돌아봐.”
알렉스가 로월아스를 계속 쳐다보며 돌았다.
“지금 알렉스는 계속 태양을 보고 있으니 낮이죠?”
“네!”
“알렉스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봐.”
알렉스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사실 제자리가 아니라 저렇게 한 바퀴 돌면 1/365도만큼 이동하는데, 그게 하루에 지구나 한번 돈다는 자전이라는 겁니다.”
“태양인 나는 가만있는데 지구인 알렉스는 한 바퀴 돌아서, 하루만큼 타원궤도로 이동도 한 거죠.”
“아.”
알렉스 루미가 물었다.
“하지만 교수님, 태양인 교수님이 움직여도 결과는 같잖아요?”
로월아스가 알렉스 루미의 질문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좋은 질문이에요, 루미. 태양이 움직인다고 가정해도 지구의 자전과 공전 때문에 계절 변화는 여전히 발생할 수 있겠죠?”
로월아스는 칠판에 다시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먼저, 우리가 태양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상적인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루미가 했던 것처럼, 지구는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돕니다. 자, 그럼 이제 거꾸로 태양인 제가 돌아볼게요.”
로월아스는 알렉스를 중심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다시 한 바퀴 돌았다.
“제가 돌면서 루미를 계속 바라볼 때, 루미가 한자리에서 자전을 한다고 가정하면 같은 결과가 나오죠.”
“네.”
사실 지동설이 맞는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알렉스 수고했다, 들어가.”
“아 네.”
로월아스가 말했다.
“지구가 태양을 돌던, 태양이 지구를 돌던 주변의 강의실 풍경은 그대로였죠?”
“네 교수님.”
“그게 우리가 보는 12개의 별자리입니다, 점성술에서 이걸 12 하우스라고 하고, 12달을 말하는 겁니다, 다들 자기가 태어난 달은 아는 거죠?”
“네.”
“일단 자기 생일을 기준으로 지금부터 잠깐 살펴보죠.”
“자기 별자리 다 찾았나요?”
“네 교수님.”
“알렉스, 몇 월생이고 무슨 자리지?”
“저는 6월생이고 쌍둥이자리입니다.”
로월아스가 칠판 판서를 가리키며 말했다.
“루미 학생은 제1 하우스가 쌍둥이자리예요. 1 하우스는 외모, 첫인상, 자기표현 방식을 나타냅니다. 쌍둥이자리의 영향으로 루미 학생은 아마도 호기심이 많고, 의사소통을 잘하며, 지적인 성향이 강할 거예요.”
학생들이 다들 '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로월아스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바넘 효과인데 내가 이런 바넘 효과를 가르칠 줄이야, 나 지식인 맞냐.
로월아스가 다시 말했다.
“1 하우스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가면, 루미 학생의 2 하우스인 게자리가 나오죠, 이것은 가치관, 재산, 자원을 나타냅니다. 게자리의 영향으로 루미 학생은 물질적인 안정과 가족과의 유대감을 중요시하며, 감성적인 가치관을 가질 가능성이 큽니다.”
“우와.”
알렉스 루미가 맞는다는 듯 감탄사를 냈다.
당연하지, 이건 누구한테나 말해도 저것 중에 하나씩은 조금씩 가지고 있어.
“루미의 제3 하우스는 사자자리입니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형제자매, 주변 환경을 나타냅니다. 루미 학생은 주목받기를 좋아하고, 창의적인 성향이 강할 수 있습니다.”
“제4 하우스는 처녀자리입니다. 이는 가정과 뿌리, 가족 관계를 나타냅니다. 루미 학생은 엄한 교육에서 자랐군요, 질서와 규칙을 중시하며, 세심한 성향을 가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에블린이 감탄사를 냈다.
“정말 루미랑 똑같아.”
***
-숙소-
침대에서 일어나서 다시 책상 위에 올려둔 페이트윈드를 쳐다봤다.
숙소로 오기 전 드워프 대장장이 마누스를 만났었다.
마누스에게 페이트윈드를 보여줬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그가 말했다.
“이제 생각나는군. 맞아 그 글리터라는 올빼미 말이야.”
“생각이 났다고요?”
“그게, 내가 만들었다기보다, 방법만 전해줬던 것 같아. 자네가 보여준 글리터의 그림을 살펴봤는데, 자네가 가져온 ‘페이트윈드’라는 이 보석은 글리터라는 소환수의 눈을 업그레이드할 물건 같군.”
“글리터의 눈이요?”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정확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닌데, 내가 엘라리온의 부탁으로 어떤 설계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것은 맞아.”
“설계도요?”
“맞아, 그중 하나가 자네가 그려놓은 이 글리터라는 올빼미 같은데?”
궁금했다.
내가 정말 여관 주인 르블랑에게는 글리터처럼 보였을까?
“혹시 이런 머리를 가진 악마도 있을까요?”
마누스가 뭔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36번째 악마라는 스토라스의 머리였지. 맞아 이제 기억나는 것 같아.”
한숨이 나왔다.
글리터가 내가 성장하면 자신도 성장한다고 말했는데, 그럼 정말 나는 스토라스인가?
마누스에게 물었다.
“혹시 스토라스를 실제로 본 적이 있습니까?”
마누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본 적은 없어, 그냥 그런 느낌이 드는 것뿐이야.”
상념에서 깨어난 로월아스가 다시 페이트윈드를 쳐다봤다.
대장장이 마누스는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글리터는 고칠 수 없다고 했다.
글리터의 눈을 교체하려면 주인이 직접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마누스에게 그 방법을 배웠지만, 막상 해보려고 하니 정말 내가 스토라스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누스는 짧고 투박한 손으로 쉽게 쉽게 설명했지만,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누스가 미소를 지었다.
“어때 쉽지?”
자꾸 ‘앨리스 링 프로젝트’가 떠 오른다.
뭐든 반대로 만들어 버리는 속성의 ’앨리스 링‘ 아무래도 이쪽 세상으로 건너오면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
글리터를 정말 다시 깨워야 하는 건가?
그냥 김수오는 잊고, 로월아스로 살면 안 되나?
평생의 고민이 또 발목을 잡는다.
아니야, 나는 김수오야.
실제로 잘 알고 있잖아, 여긴 내가 속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 어떻게든 윤경을 찾고, 다시 돌아가긴 해야지.”
글리터를 불렀다.
“글리터, 글리터, 글리터!”
엘릭시아의 정원 옆에서 잠들어 있는 글리터의 모습이 스르륵 나타났다.
글리터에게 말했다.
“글리터, 이제 너의 눈을 업그레이드할 시간이야.”
글리터가 잠깐 눈을 떴다가 눈을 감았다.
로월아스는 페이트윈드를 조심스럽게 손에 쥐고, 글리터의 눈에 가까이 가져갔다.
마누스가 가르쳐준 대로, 그는 페이트윈드를 사용해 글리터의 눈을 세밀하게 관찰했다.
페이트윈드는 반짝이며 글리터의 눈과 연결되었다.
글리터가 버둥거렸다.
“눈 뜨지 마, 잘하고 있어, 글리터. 조금만 더 참아줘.”
로월아스는 집중력을 유지하며, 페이트윈드를 글리터의 눈에 맞춰 조정했다.
손이 약간 떨렸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글리터를 분해하는 과정은 복잡했다.
마누스에게 정말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지만, 실제로 하려니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긴장하지 마, 이건 그냥 조립식 장난감을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것일 뿐이야.
재조립 과정에서 페이트윈드가 글리터의 눈에 완벽하게 맞아 들어갔다.
“딸깍!”
뭔가 걸리는 느낌과 함께 글리터의 눈에서 빛나는 광채가 퍼져 나왔다.
뭐야, 왜 이리 쉬워?
막상 완성되니, 너무 허무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쳤을 때였다.
눈을 뜨자마자 글리터의 몸에서 빛이 퍼져나갔다.
강력한 에너지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로월아스는 놀라운 광경을 잠시 감탄하며 지켜보았다.
“글리터, 다시 돌아왔구나.”
글리터의 눈에서 점점 더 강한 빛이 퍼지며, 로월아스의 앞에 홀로그램 메시지가 하나씩 계속 올라갔다.
-퀘스트 완료 메시지
페이트윈드 퀘스트 완료.
일반 글리터가 매직 글리터 레벨로 레벨 제한이 5레벨에서 25레벨로 상향되었습니다.
-마누스의 가르침 퀘스트 완료로 글리터의 체력 회복 능력이 개방되었습니다.
-엘라리온의 마법의 가방 퀘스트가 계속 진행됩니다.
수많은 메시지가 계속해서 주르륵 올라갔다.
업데이트 패치를 하는 것처럼 주르륵.
로월아스는 빠르게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너무 빨랐다.
“그렇게 빨리 글자들을 사라지게 하면 어떻게 읽으라는 거야!”
그러자 글리터의 눈이 깜박거리며 글자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로월아스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매직 글리터의 시각 능력 업그레이드.
-매직 글리터의 소환자는 이제 어두운 곳에서도 완벽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능력이 개방되었습니다.
-매직 글리터와 소환자의 정보 소통 권한이 올랐습니다.
-생략-
-강화된 글리터가 동종의 소환수를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천히 올라가도 한꺼번에 일기에는 너무 많은 내용이었다.
“글리터, 뭐 그냥 너만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됐다.”
글리터는 반짝이는 눈으로 로월아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허공의 글자들이 스르륵 사라졌다.
뭐야 저 녀석, 왠지 위엄있어 보이네, 정말 CPU 업그레이드라도 된 것처럼.
글리터가 이전에 풍기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너 원래대로 돌아온 것 맞아?”
글리터가 도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뭐야 이 녀석, 말이 좀 짧은데?
“야 너 왜 그래?”
허공에 글자들이 나타났다.
-고장으로 인한 글리터의 충성도가 하강하였습니다.
뭐야, 그런 거였어?
“야 그거, 내가 아니라 갑자기 가브가 갑자기 너를 공격해서 그런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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