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57화. 투자
로베스피에르가 에드가 학장에게 말했다.
“상인 조합에서 대량의 향신료를 들여온다고 하던데 혹시 알고 계십니까?”
에드가 학장이 물었다.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나, 게시판에는 그런 공지 사항이 없던데?”
“다 아시잖아요, 그런 고급 정보는 암암리에 퍼지는 거죠.”
“확실한 정보인가?”
로베스피에르가 미소를 지었다.
“제가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에드가 학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네는 너무 바른말만 해서 문제지.”
로월아스도 배포된 자료를 읽어서 대충 알고 있었다.
수요가 많으니 그걸 토대로 보면 많은 양의 향신료가 들어와야 한다.
로베스피에르가 말했다.
“문제만 없다면 경매에 참여만 해도 꽤 수익이 괜찮을 텐데, 조합에 투자하실 생각 없습니까?”
“음?”
에드가 학장이 로월아스를 쳐다봤다.
“자네 생각은 어때?”
로월아스는 잠시 생각하다가 차분히 대답했다.
“장사가 된다고 향신료를 대량으로 들여오면 공급 증가로 인해 오히려 향신료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상인 조합의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따라서 상인 조합의 주가도 하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어떻게 해도 투자하지 않으면 기존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지 못하잖아?”
“향신료의 대량 입하가 실제로 발생할 것인지, 그리고 그로 인한 가격 하락이 어느 정도일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정보가 중요합니다.”
“저 친구가 말했잖아.”
“저분의 정보를 신뢰할 수 있다면,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죠.”
로베스피에르는 흥미롭게 로월아스의 의견을 듣고 있었다.
“정보는 확실한 것입니다.”
로월아스가 에드가 학장에게 말했다.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은 현재 시장의 전반적인 상황과 다른 주요 요인입니다. 예를 들어, 다른 상품의 가격 변동, 정치적 상황, 경제적 요인 등이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네한테 물어본 것 아닌가?”
“현재 이곳의 주식은 제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수치 분석뿐입니다, 다른 쪽의 변수는 분석할 수 없어요, 게다가 바다에는 해적들이 많잖아요.”
“으음?”
로월아스가 다시 말했다.
“공급의 안정성도 문제지만, 잘 팔린다고 너무 많이 들여오면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투자는 말리고 싶습니다.”
로베스피에르가 미소를 지었다.
“이 정보는 아무도 모릅니다, 상인 조합만 알고 있죠, 한꺼번에 물량이 풀릴 일은 없을 겁니다.”
상인 조합에서 담합이라도 한다는 건가?
이 시대의 증권 거래소는 법과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고 시작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에드가 학장이 다시 물었다.
“물건을 조금씩만 풀기로 한 건가?”
로베스피에르가 말했다.
“학장님은 그래도 저와 안면이 있으니 특별히 알려드리는 겁니다.”
에드가 학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저 대사는 전형적인 사기꾼들의 대사인데, 수상한데?
“향신료를 실은 상선은 어디쯤 오고 있나?”
“안정성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사실 이미 도착해있죠, 다만 다른 투자자와 문제가 조금 있긴 한데.”
“음.”
“빨리 결정하셔야 합니다, 일부 품목은 조만간 바로 경매에 부칠 겁니다.”
“혹시 공개 경매 입찰인가?”
“물론이죠, 순식간에 다 팔려나갈 겁니다.”
“그럼 그때 입찰을 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때는 제값 주고 사셔야죠.”
에드가 학장이 로월아스를 쳐다봤다.
“자네 생각은 어때?”
로월아스는 게시판의 수치들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빵 한 덩이가 1수, 1 루브르가 20수, 후추 한 팩의 경매가격이 평균 86 루브르면 수로 환산하면 1,720수니까 원으로 계산하면?
빵 한 덩이를 천 원으로만 잡아도 후추 한 팩의 가격이 17,200,000원인가?
여기 기준으로도 대략 500g이 한 팩인데.
로월아스가 로베스피에르를 쳐다봤다.
“후추 한 팩의 원가는 얼마 하지도 않을 텐데, 후추 한 팩에 86 루브르(천칠백만 원)이나 받는다니, 이걸 누가 사서 먹죠?”
로베스피에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평민들은 꿈도 못 꾸죠, 최상위 계층의 고객에게 파는 겁니다, 사실 없어서 못 파는 물건입니다.”
중세시대의 최상위 계층이면 한량이라는 귀족인 유한계급을 말하는 건가.
유한계급은 쓰는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많아서 화려한 소비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계층을 말한다고 했는데.
혹시 피에르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려고 하는 건가?
로월아스가 로베스피에르를 쳐다봤다.
표정 관리를 하고 있지만, 그의 표정에는 그런 귀족들에 관한 격멸이 가득 찬 것으로 보였다.
저 표정 위험한데?
설마 이런 식으로 살생부를 작성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로베스피에르의 저 표정도 이해가 되긴 하는데.
해안가에서 빵 한 덩이 값을 일당으로 받고 일하는 사람도 많은데.
로월아스가 차분히 말했다.
“정작 그걸 배로 실어서 온 선원이나 인부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후추 사서 먹을 엄두도 나지 않겠네요.”
로베스피에르가 로월아스를 쳐다봤다.
“북부의 검을 차고, 그런 생각을 하시는 줄은 몰랐군요.”
***
-해안가 하역장-
굳이 후추가 정말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을까?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에드가 학장이 물었다.
“대체 저자들은 누구지?”
“저도 모르죠, 절대 제 근처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아니 왜?”
“위험하니까요.”
“그게 무슨 소린가?”
“칼에는 눈이 없잖아요, 멀리 계시면 제가 보호할 수도 없고요.”
“아니 나는 그냥 투자자인데?”
“그런 거 따지는 자들이 아닌 것 같아요.”
얼굴을 가린 자들은 로베스피에르가 속한 상인 조합과 반대파인 것 같았다.
상황을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배신자들이라고 욕을 하며 검을 겨누고 있었다.
로월아스가 로베스피에르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여기 쌓인 향신료들에 뭐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유권 분쟁이 조금 있는데 우리가 이길 겁니다.”
에드가 학장이 복면을 쓴 자들을 보며 말했다.
“저자들이 이길 것 같은데, 저자들은 자네 부하들처럼 그냥 어중이떠중이가 아니야, 체계적으로 검술을 배운 자들로 보여.”
로베스피에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해적 떨거지 연합이라고 하던데 그럴 리가요?”
“내가 마법 아카데미 학장이지만, 기사 아카데미 아이들도 가끔 가르치고 자주 봤었네, 내가 검을 잘 다루지 못해도, 보는 눈은 달라, 동작만 보면 바로 알아.”
“음?”
로월아스가 물었다.
“해적들의 잔당과 거래를 하셨습니까?”
로베스피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물을 지켜야 하는데 다른 방법이 있어야지.”
“그럼 그 대금을 외상으로 하셨어요?”
“이렇게 과격할 줄은 몰랐는데.”
“그럼 투자하라고 했던 돈이 해적들에게 줄 돈이었습니까?”
“맞아.”
“그런데 돈을 줬는데 저자들은 왜 저러는 겁니까?”
복면을 쓴 자들 편에는 로월아스가 로베스피에르와 대화할 때 곁에 멀뚱거리며 서 있던 자도 있었다.
로베스피에르가 그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자가 거래되는 후추의 실제 가격을 알고 변심한 것 같군요.”
“네?”
로베스피에르가 말했다.
“저를 우선 목표로 할 겁니다, 제가 유인할 테니 두 분은 문의 반대쪽으로 달아나세요.”
에드가 학장이 머뭇거렸다.
“우리의 투자금은 어떻게 되는 건가?”
“아니 지금 당장 죽게 생겼는데, 투자금이 중요합니까?”
“그렇지만, 그것도 중요한데.”
로월아스가 에드가 학장을 끌어당겼다.
“학장님, 일단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 돈은···”
“목숨이 우선이고, 돈은 나중에요.”
에드가 학장과 함께 로베스피에르가 달려간 곳의 반대편을 방향으로 뛰쳐나갔다.
고함과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에드가 학장이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몸을 숨길만 한 곳을 찾아야 했다.
해안가의 커다란 바위 같은 것이 보였다.
“일단 저리로 가서 몸을 숨기기고 상황을 좀 지켜보죠.”
바위 뒤로 몸을 숨겼는데, 그때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야옹.”
왜 갑자기 아내 윤경과의 대화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가끔 영화에서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아내 윤경이 말했다.
“개나 고양이나 뭐 이런 소리를 듣고 여자가 호기심에 다가가는 거 너무 이상해, 그럼 꼭 일이 터지는데?”
혹시 하는 마음에 고양이 울음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에드가 학장이 다가가고 있었다.
아 안 되는데?
고양이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곳에 커다란 시체 같은 것이 보였다.
에드가 학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게 뭐야 사람 아냐?”
에드가 학장이 쓰러져 있는 사람을 건드리는 것이 보였다.
“이봐요!”
물에 젖은 것으로 봐서 바다에서 해안가에서 밀려온 건가?
그 짧은 순간, 또다시 아내 윤경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내가 말했다.
“왜 사람들은 시체를 보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꼭 확인하려는지 모르겠어, 그러다가 항상 일이 터지잖아.”
그 순간 에드가 학장이 뒷걸음질 쳤다.
몸을 일으킨 시체가 에드가 학장을 노려보았다.
로월아스가 검을 뽑았다.
“학장님, 얼른 뒤로 물러서세요.”
그 시체 같은 인영의 눈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검은 눈동자가 없었다.
빠르게 다가선 로월아스가 에드가 학장을 막아섰다.
“뒤로 빠지세요.”
엘드라이트의 빛나는 광채를 본 인영이 뒤로 움찔거리며 물러섰다.
에드가 학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게 도대체 뭐지?”
또 윤경과 나눴던 대화가 떠 올랐다.
아내가 말했다.
“괴물로 변하기 전까지 기다려 주지 말고, 그냥 이상해 보이면 바로 도망을 쳐야지, 저 상황에 왜 다가가서 그걸 확인을 하는 거야?”
“영화인데 주인공이 그냥 도망치면 볼 게 없잖아?”
이건 영화가 아니잖아.
짧은 상념에서 깨어난 로월아스가 에드가 학장에게 말했다.
“달려요.”
“뭐?”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자고요.”
“아니 그래도 저쪽은.”
어느새 그 인영의 얼굴이 문어 머리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로월아스가 다시 말했다.
“빨리 움직여요.”
에드가 학장이 놀랐는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히 흑태자 에드워드와 있을 때 공격을 했던 마물들이다.
저것들이 왜?
이곳저곳에서 마물들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딘가 앨리스 링 현상과 비슷한 게이트가 열린 건가?
그럼 뭐야, 두 번째 도전자가 로베스피에르가 아니라는 건가?
가장 먼저 다가온 마물은 에드가 학장이 건드렸던 마물이었다.
로월아스가 엘드라이트를 빙그르르 돌려서 문어 머리 마물을 겨냥했다.
“학장님 위험하다고요, 빨리 움직여요.”
마물이 내리치는 손을 검으로 막았다.
“어!”
마치 검으로 쇠기둥을 치는 것 같은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엘드라이트의 위력에 놀랐는지 마물도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학장님, 뭐 하세요!”
물러섰던 마물이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에드워드 흑태자가 마물들을 상대할 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마물들의 피부는 매직 아머를 두른 것보다 단단해, 네가 가르쳐 준 검술이 아니었으면 제압하지 못했을 거야.”
하나라면 거리도 있고,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찌르기를 사용하면 되는데.
마물들이 하나둘 포위를 하는 것처럼 바위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문제였다.
에드가 학장이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로월아스가 엘드라이트를 단단히 쥐었다.
다가오는 마물들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첫 번째 마물이 덮쳐오기 전에, 로월아스는 번개처럼 빠르게 엘드라이트를 찔렀다.
검은 마물의 목을 단숨에 꿰뚫고, 마물이 쓰러졌다.
에드워드가 그랬다.
목을 자르거나 단숨에 숨통을 끊지 못하면 막다가 지쳐서 죽는다고.
어느새 분노한 듯 두 번째 마물이 옆구리를 노리며 달려들었다.
로월아스가 엘드라이트의 검날이 새끼손가락 쪽으로 가도록 다시 검을 빙그르르 고쳐잡았다.
예전에는 매직 아머를 뚫으려고 그런 식으로 찌르기를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들은 사람이 아니잖아.
두 번째 마물의 목을 쉽게 가르고, 로월아스는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로월아스는 최대한 빠르게 근처의 마물들을 정리해나갔다.
“학장님, 얼른 움직여요, 저도 곧 지칠 거라고요.”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에드가 학장이 움직였다.
그중 기이한 마물 둘이 로월아스를 지나쳐 에드가 학장을 향했다.
이것들이 머리를 쓰네?
빠르게 다가가서, 다시 우회하는 마물의 머리를 정확히 베어냈다.
갑자기 정적이 생겼다.
“뭐야?”
여기저기 엉켜있던 자들의 싸움을 멈추고 모두 로월아스 쪽을 쳐다봤다.
누군가 외쳤다.
“마물들이 나타났다.”
그때 피리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마물들이 오히려 해안가 쪽으로 수영을 하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덕에 로월아스는 오히려 잠시 숨을 골랐다.
주변은 잠시 고요해졌다.
로월아스는 엘드라이트를 천천히 내려놓으며 에드가 학장을 향해 손짓했다.
“학장님, 이제 안전합니다.”
에드가 학장이 로월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정말 북부의 소드마스터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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