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에게 나라를 팔겠다니! 자네 제정신인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달꿀
그림/삽화
다교
작품등록일 :
2024.10.01 10:16
최근연재일 :
2024.11.24 09:32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3,735
추천수 :
212
글자수 :
324,787

작성
24.10.28 20:20
조회
50
추천
3
글자
12쪽

매듭

DUMMY

“오빠!? 정말 될거라고 생각해? 공존··· 말이야···”


아린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음··· 예전에 알트란에서 살 때는 말이야··· 그때는 오크들이 극악무도하고, 호전적인 전쟁광인 줄 알았어.”


“그런데?”


“겪어보니··· 그들이 호전적이라서 인간을 공격했던 게 아니라, 그냥 먹고사는 문제였던 거지. 산맥에서 구할 수 있는 식량은 제한되니까···”


“음··· 확실히 오크들도 농사를 짓고부터는··· 먹는 걱정은 안 하게 됐어···!”


“그렇지···! 이젠 인간과 충돌할 이유가 없어.”


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의 목적지를 물었다.


“오빠, 근데 진짜 어디를 가는 거야? 내일 밤 전쟁이라며! 얼른 돌아가서··· 좀 쉬어야 하는 것 아냐?”


핸더슨, 사울과의 이야기를 끝 마친 뒤, 그녀와 나는 곧장 산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동이 트기 전에 내가 마무리할 일이 하나 남아있었다. 그 일을 매듭짓고 산맥으로 돌아갈 작정이다.


“혹시···! 설마 원한 관계가 있어서 복수···? 같은 걸 하려고?”


그녀에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조금 더 걸으니··· 플린의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플린과 그의 저택을 지켜야 할 사병들 또한 보이지 않았다.


‘플린의 사병 역시 징집되어 성에 집결해 있나 보군···’


저택의 문을 박살 내고 들어갈 수 있지만,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린··· 이 문을 좀 열어야 할 것 같은데···”


“뭐야··· 뭐야 오빠?! 암살이라도 하려는 거야?”


나는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할 수 있겠어??”


그녀는 심각한 내 표정을 힐끗 바라보고는··· 천천히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깊은 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작게 주문을 외웠다.


“나와라앗··· 배앰···”


펑!


진짜 뱀이 나왔다. 그동안 그녀가 한 층 더 성장한 것일까··· 지렁이가 아닌 제대로 된 뱀이 나타나 그녀를 지켜보았다. 아린은 뱀에게 속삭였다.


“요···요거! 이 문 좀 열어줘”


그녀의 요청에 뱀은 조용히 담벼락을 타올랐다. 담을 넘어간 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의 빗장을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제법이네··· 아린···”


나의 칭찬에 그녀는 멋쩍은 미소를 짓고는,


“오빠··· 뭐··· 어떡하려고···”


“내 아버지의 원수가 여기 있어, 그에게 난 아들의 원수일 거고···”


짧게 대답해 준 뒤, 저택 안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저택 내부는 수수하지만 고급스러웠고, 멋진 가구와 장식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침실의 문은 열려 있었다.


플린, 플린, 알트란에서 손꼽히게 부유하며, 영주 알몬스와도 죽마고우인 사내. 내 아버지를 모함하고, 시아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자. 그가 여기 있다.


그에 침실에 들어서자,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결국, 왔구나··· 네가···”


그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언제부터 깨어있었던 것일까··· 그는 침대 끝자락에 걸터앉아 내 얼굴을 확인했다.


“늦은 시간인데··· 제가 깨웠나 보군요···”


나의 물음에 그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안부를 물을 셈이냐··· 네가 해야 할 일을 하거라”


그는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다치거나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잠을 전혀 자지 않는 사람처럼 퀭한 모습이었고, 당장 내일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야위어있었다.


“몰골이 엉망이네요. 잠을 주무시지 않나요?”


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 정말로 안부를 묻는군.”


나를 마주한 그는 놀랍도록 태연했다. 자신을 죽여야 할 이유가 너무나도 분명한 이가 늦은 밤 찾아왔는데··· 두렵지 않을 걸까?


“제가 올 것을 알고 있었나요?”


“언젠가··· 네가 올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 드디어··· 드디어 끝날 수 있겠어···”


그는 마치 자신의 숨이 끊어지는 것을 기대하는 듯했다.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나를 향한 증오를 멈출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이라도 품는 것일까···


‘그를··· 죽여야 하나···’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할 일이라···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증오했던 이와 마주쳤는데도 선뜻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만 먹으면 수초 안에 그의 목을 꺾어버릴 수 있다.


“제게 뭔가··· 할 말··· 없으신가요?”


그는 코웃음 쳤다.


“허헛! 설마··· 내가 네게 목숨이라도 구걸할 줄 알았더냐?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피터를 죽인 네놈··· 네놈 숨을 끊어놨어야 했거늘!!”


그는 여전히 피터의 죽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 아버지를 죽였을 때, 어떠셨나요?“


”네 아비는 네 놈 때문에 죽었어!! 네놈 때문에!“


”그래서··· 마음이 좀 풀리던가요?“


플린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거론 부족해··· 네놈이 살아있으니까···“


”그러면··· 시아는요?“


시아라는 이름을 듣자 플린 역시 다소 표정이 어두워졌다.


”시아··· 그 아인 죽을 필요가 없었지··· 그 아이도 네놈 때문에 죽은 거야···“


내 아버지를, 시아를 죽이고도 그에게는 공허함만이 남아있는 듯했다. 플린은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서 끝내라···!“


그의 삶은 피터의 죽음, 그 순간에 멈춰 있었고 전혀 나아가지 못했다. 순간 그가 가엾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를 그렇게 만든 건 나다···


”잘 지내라··· 뭐 이런 얘기는 못 할 것 같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플린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무··· 무슨 소리야! 어서···!! 어서 끝내라고··· 어서!!“


”당신을 용서한 것은 아니에요. 이렇게 와보니 알겠네요. 당신은 정말로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그는 절규하며 소리쳤다.


”난 네 아버지를 죽였어!! 어서 끝을 내!“


그는 이제 빈 껍데기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긴 말의 의미를··· 이제 알 것 같았다.


”이제는 제가 지켜야 할 것들이 많거든요. 저는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그를 뒤돌아섰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돌아와!! 넌! 날 죽여야만 해 돌아와!!“


저택을 나올 때까지 그의 절규와 외침이 내 귀를 때렸다. 그는 내가 그를 뒤로하고 나아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듯했다. 그가 느끼는 공허함을 나 역시 느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저택을 나오자 알트란의 밤공기는 어느 때보다 상쾌하게 느껴졌다.


눈을 휘둥그레 뜬 아린이 내게 물었다.


”오빠, 아버지의 원수라며···? 그냥 가도 되는 거야?“


플린을 용서한 것도 아니었고, 그를 원망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만, 플린의 목숨 따위 아무 의미 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를 죽인 뒤 찾아올 공허함이 두려웠다.


”그는 이미 벌을 받고 있는걸··· 그리고 난 할 일이 많아. 지켜야 할 친구들도 많고!“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내가 지켜야 할 아린은 나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오빠! 근데 그 시아란 여자!! 뭐··· 약혼녀라거나··· 애인이었다거나··· 뭐 그런 거였나···!?“


”흠···“


”뭐였냐고?“


”뭐··· 비슷해! 그리고 시아가 뭐야! 함부로 이름을 불러! 언니라고 해야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뿌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음··· 예뻐? 나보다?“


콩!


아린에게 꿀밤을 선물해주었다.


”산맥으로 어서 돌아가자! 내일은 긴 하루가 될 거야!“



◆ ◆



날이 밝자, 붉은 달의 저택에 모두 모여 알트란 해방전쟁에 대해 논의했다. 나는 알트란에서 핸더슨과 했던 대화 내용 전부를 전달했다.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유느이트가 말했다.


”라진··· 단단한 성안에 숨어있는 적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기다리면 놈들이 산맥으로 올 텐데 굳이···“


”그들이 산맥으로 올 때면, 그 수를 짐작할 수 없어. 게다가 경비대까지 합류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막지 못할 거야.“


”하핫! 라진! 그렇다면 자네 생각은··· 징집된 인원이 준비되기 전 우리가 먼저 움직이자는 말이군! 핸더슨의 말대로라면, 경비대는 관여하지 않을 테니까···! 확실히··· 그편이 가장 적은 손실로 전쟁을 끝낼 방법이긴 하겠구만!“


고박사는 셈이 빠르다. 말이 많고 잘난 체하는 것이 치명적인 흠이긴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정리해주었다.


”경비대 놈들··· 확실히 공성전엔 관여하지 않는 건가···?“


”응! 나도 들었어! 그 핸더슨이란 아저씨가 똑똑히 말했거든!“


유느이트는 공성전 와중에 혹시나 경비대가 우리의 뒤를 공격할까 걱정하는 듯했다. 하지만, 핸더슨은 확실히 말했다. 유느이트 또한 핸더슨을 경험해보았다. 그도 알 것이다. 핸더슨은 믿을 만한 인물인 것을.


이번 해방전쟁이 최소한의 피해로 전쟁을 끝내는 방법임을 모두가 동의하지만, 알트란 외곽에 터전을 옮기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미심쩍어했다.


”라··· 라진! 알트란에서··· 인간들과 함께 산다는 것 말이야··· 인간들을··· 믿어도 괜찮을까?“


”지금 우리는 인간들을 공격한 들 아무런 이득이 없어. 알트란 해방전쟁은 인간과의 전쟁 위협을 없애고, 더 좋은 땅으로 이주할 좋은 기회야!“


”그··· 그래도··· 밤에 경비대가 우릴 기습하거나···“


”알트란의 경비대··· 그리고 우리 전사들··· 두 세력의 힘은 동등해. 전투가 벌어지면 양쪽 모두 공멸이야. 바보가 아니고서야···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다들 뭘 그렇게 걱정해? 가만히 보면 인간들보다 더 겁이 많다니까! 정말!“


아린의 호통에도 누구도 쉬이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오랜 기간 이어진 인간과의 전투가 그들 기억 속에 각인된 탓 이리라···


”인간들 역시 똑같은 걱정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말을 끝맺고 붉은 달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시종일관 대화를 경청하던 붉은 달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하··· 새로운 시대라··· 놀랍구먼··· 네 말대로 누군가 결단을 내려야겠지!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한 법이지···!“


‘새로운 지도자라니?’


”유느이트···! 이제부터 붉은 달은 네가 이끌도록 하거라··· 나는 이미 지쳤다. 부족이 변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싶구나··· 새로운 시대를 열려면 젊은 족장이 필요한 법이다!“


유느이트는 놀라 소리쳤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 들지 않았느냐! 알트란 해방전쟁과 관련한 결정, 그리고 부족 발전을 위한 모든 결정은! 새로운 족장, 붉은 달 유느이트가 내릴 것이다. 이것은 명령이다!“


족장의 명은 절대적이다. 붉은 달의 충격적인 결정에 모두가 숨죽이고 있었다. 유느이트 또한 한동안 말이 없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붉은 달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오래 전, 붉은 달은 알트란에 후계자를 잃었다. 부족의 장로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족장의 지위를 이양하는 것은 예정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빠르고,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이 순간,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바로 지금.


붉은 달은 새로운 시대를 언급했다. 그것을 지켜보고 싶다고 했다. 유느이트는 붉은 달의 생각을 읽었을 것이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기를···!


”붉은 달 유느이트는 명한다. 오늘 밤! 알트란의 해방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오크에게 나라를 팔겠다니! 자네 제정신인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완결을 내며.. 24.11.24 37 0 -
공지 연재시간 안내 24.10.02 47 0 -
공지 후원 감사드립니다. 24.10.02 100 0 -
60 고요한 아침의 나라 (完) 24.11.24 47 1 10쪽
59 아린 24.11.22 28 2 10쪽
58 바위의 숨결 24.11.21 24 2 12쪽
57 2교대 24.11.20 28 2 13쪽
56 골렘 웨이브 (9) 24.11.20 27 2 12쪽
55 골렘 웨이브 (8) 24.11.19 26 2 12쪽
54 골렘 웨이브 (7) 24.11.17 27 2 12쪽
53 골렘 웨이브 (6) 24.11.16 30 2 12쪽
52 골렘 웨이브 (5) 24.11.15 30 2 12쪽
51 골렘 웨이브 (4) 24.11.14 27 2 12쪽
50 골렘 웨이브 (3) 24.11.13 27 2 12쪽
49 골렘 웨이브 (2) 24.11.12 31 2 12쪽
48 골렘 웨이브 (1) 24.11.11 27 2 12쪽
47 재판 (4) 24.11.10 28 2 11쪽
46 재판 (3) 24.11.09 26 2 12쪽
45 재판 (2) 24.11.08 27 2 11쪽
44 재판 (1) 24.11.07 30 2 12쪽
43 축제 (5) 24.11.06 30 2 12쪽
42 축제 (4) 24.11.05 38 2 12쪽
41 축제 (3) 24.11.04 38 2 12쪽
40 축제 (2) 24.11.04 45 2 13쪽
39 축제 (1) 24.11.02 42 2 12쪽
38 해방전쟁 (4) 24.11.01 41 2 12쪽
37 해방전쟁 (3) 24.10.31 40 3 12쪽
36 해방전쟁 (2) 24.10.30 39 3 12쪽
35 해방전쟁 (1) 24.10.29 39 3 12쪽
» 매듭 24.10.28 51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