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쟁 (4)
쌔애!!
철갑뱀은 후레자식 용병단을 향해 돌진했고, 거대한 꼬리로 놈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크억!!”
“끄으아아!!!”
꼬리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두 세 명의 용병들이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쓰러진 이들은 다시 전투에 참전할 수 없는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라···라진! 우리의 샤먼··· 아린이 성공했나 보군! 철갑뱀이다!”
“유느이트···! 철갑이 아니야··· 뱀은··· 미스릴로 되어있어!”
전사들은 이제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미스릴 소드로 무장했다. 아린은 소환의 매개체로 철로 만들어진 롱소드가 아닌 미스릴 소드를 사용했을 것이다.
아린이 소환한 거대한 뱀은 은은한 빛을 뿜어내 반짝이고 있었고, 후레자식들의 공격에도 거의 흠집이 생기지도 않았다.
핸더슨이 이끄는 경비대 또한 알몬스의 사병들 앞에 다가섰다. 알트란의 경비대는 대륙 내 어떠한 병사들보다 강한 인원들로 구성되어있다. 경비대원 백 오십을 막기 위해서는 일반병사 이백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가장 선두에서 서서 경비대를 이끄는 것은 핸더슨이었다. 그는 불필요한 죽음을 피하고자 알몬스의 병사들 앞에 서서 고함쳤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물러선다면, 목숨은 건질 수 있다! 알몬스는 이제 끝났어! 목숨을 귀히 여겨!”
하지만, 몇몇 어리석은 병사는 핸더슨에게 덤벼들었다. 덤벼든 병사들은 어김없이 그의 일격에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개죽음당하고 싶은가! 모두 무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 알몬스는 끝났어!”
핸더슨의 고함에 병사들은 정신을 차렸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경비대원을 막을 수 없는 데다, 경비대와의 전투라니 알트란 인들끼리 싸우는 것은 그들 또한 원치 않았다.
“핸··· 핸더슨경! 우리는 빠지겠소! 영지로··· 우리가 사는 집으로 모두 돌아가리다!”
병사 하나의 외침이 있자 모두 그들의 무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항복! 알몬스고 나발이고 마음대로 하시오! 우리 모두 가족들에게 돌아가겠소!”
알몬스의 병사들··· 그들 역시 알트란의 주민이다. 그들을 상대로 핸더슨은 불필요한 살육을 원하지 않았고, 병사들은 혼비백산 영지로 달아났다. 하지만, 후레자식들에 대한 핸더슨의 태도는 단호했다.
“경비대원들을 들으라! 후레자식들에게 투항은 허락하지 않는다! 놈들은 모두 극악무도한 범죄자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핸더슨과 경비대원들이 용병들을 향해 무섭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미스릴 뱀 역시 지칠 줄 모르고 그들을 공격했다.
‘됐다! 전세는 뒤집혔다.’
후레자식 용병단의 숫자는 삼백이지만, 전사들과의 전투에서 꽤 큰 손실을 입었다. 게다가 지금은 경비대원들까지 그들을 덮쳤다. 여전히 그들의 숫자가 더 많았지만, 경비대원 들이 합류하자 급격히 무너졌다.
우리가 승기를 잡자 후방에 있던 누군가가 검을 들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핫!! 이 놈들! 붉은 달의 힘을 보여주마!”
‘응? 고··· 고박사?’
“고박사! 네가 갑자기 왜 온 거야!”
고박사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라진! 나는 붉은 달의 장로다! 부족의 운명을 건 전투에 솔선수범해야 하는 법이지! 하핫!”
‘인제 와서?’
이 자식··· 조금 전까지 처절하게 밀리고 있을 때는 나타나지 않더니··· 얄밉기보다는 귀여웠다.
이제 적들의 숫자는 눈에 띄기 줄어들었다. 그들 또한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하나둘씩 전장을 이탈하여 달아나는 이들이 보였다. 그러나 핸더슨은 범죄자가 달아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울! 자네는 추격조를 이끌고 달아나는 놈들··· 모두를 제거해! 알트란에 발을 들인 범죄자는 누구도 살아갈 수 없음을 알려줘야 한다!”
핸더슨의 주문에 사울은 근처에 있던 병사 몇을 데리고 도망치는 놈들까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웨슬린에서 악명을 떨치던 후레자식 용병단은 오늘 밤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 ◆
성곽 위에서 알몬스와 블랙슈반은 함께 성문 앞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의기양양 승리를 낙관하던 그들은 경비대의 참전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비대의 참전으로 알몬스의 사병들은 모두 달아났으며, 후레자식 용병단원들은 그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영주님··· 아니··· 알몬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블랙슈반의 호통에 알몬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역시 지금의 상황이 절망적이었으리라···
“이··· 이런······ 이런 일이!!”
절망에 빠진 알몬스를 확인한 블랙슈반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알트란에서 미스릴을 통해 상상하기 힘든 부를 거머쥘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자신의 용변단이 곧 전멸할 처지였다.
“알몬스··· 이 등신 같은 새끼··· 집안 단속을 어떻게 했길래······!”
블랙슈반은 알몬스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알몬스를 어떻게 해본들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알몬스! 이 놈아! 똑바로 말해··· 이곳을 나가는 다른 길은 어디지!?”
블랙슈반의 물음에도 알몬스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빠악!
참다못한 블랙슈반이 알몬스의 안면을 주먹으로 후려갈겨 버렸다. 블랙슈반은 추호도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 없었다. 부하들의 생사와 관계없이 그는 후일을 도모하려 했다.
“이 새끼야! 정신 차려! 어서 탈출 경로를! 대답해!”
뻐억!
엉망이된 얼굴의 알몬스는 정신이 돌아온 듯··· 성곽 위의 병사하나를 불렀다.
“자네···! 내성 안에 성 밖으로 통하는 길··· 그곳으로··· 성곽 위에 있는 모든 병사와 블랙슈반 이끌고 빠져나가게···”
병사는 알모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동료들에게 고함쳤다.
“이봐 들! 뒷길로 빠져나가자고! 놈들에게 화살 세례를 부었으니, 열 받아서 우리는 죽일지도 몰라! 어서 움직여!”
“알몬스···! 지금 네 놈을 찢어발길 수 있지만, 오크 놈들에게 당하는 것이 더욱 고통스럽겠지. 잘 뒈져라··· 저승에서 보자”
블랙슈반과 병사들은 알트란 성을 빠져나가기 위해 성곽 아래로 이동했다.
“하하··· 하하하하!!!! 일이 왜 이렇게··· 하하하하하하!!!!”
알몬스는 실성한 듯이 크게 웃어젖혔다. 그리고 정신이 든 듯, 자신의 아내와 딸을 만나기 위해 알트란 성 내부 자신의 침실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적에게 치욕을 당하는 것만은 막으려는 생각이다.
◆ ◆
챙!
고박사의 미스릴 소드와 용병 한 녀석의 검이 부딪혔다. 미스릴 소드는 일반적인 롱소드보다 훨씬 강력하지만···
“으아억!”
고박사는 인간의 완력에도 미치지 못하는지 미스릴 소드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용병단원의 발차기에 바닥에 나뒹굴어 버리곤 공포에 휩싸였다.
‘어휴··· 전투능력은 형편 없구만···’
그를 구하러 가려는 찰나에 핸더슨이 고박사에게 다가오는 용병을 막아섰다. 그리고 휘두르는 검을 슬쩍 피하고는 주먹으로 그의 복부를 후려갈겼다. 고꾸라진 용병의 목에는 핸더슨의 검이 드리워져 있었다.
“네놈들의 대장은 어디 있나···!”
‘대장···!? 확실히··· 후레자식 용병단의 대장은 보이지 않는군···!’
쓰러진 용병은 두려움에 질려··· 긴급하게 말했다.
“여··· 여긴 없어! 성··· 성안에 있···”
촤르륵!
필요한 정보를 들은 핸더슨은 놈의 목을 가볍게 그어버렸다. 핸더슨은 한 놈도 살려둘 생각이 없다. 핸더슨은 알트란 성안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전세는 기울어 놈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이미 후레자식 대부분은 죽음을 면치 못했고 남아있는 인원들 또한 경비대원들이 자신들을 살려두지 않을 것을 아는지, 살아남기 위해 의미 없는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오트롱! 유느이트! 우린 알몬스를··· 잡으러 가자고···”
나 역시 성안으로 빠르기 뛰어 들어갔다. 뭐 어찌 되었건, 알몬스를 잡긴 해야 할 테니까.
“라··· 라진! 영주 놈··· 바로 죽여도 돼···!?”
“그의 처분은··· 경비대에 맡기자고, 놈 때문에 많은 알트란의 무고한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어. 교수대에 매달던··· 뭐 어찌하든 경비대가 처리할 거야···”
성 안은 고요했다. 성곽에서 화살을 퍼붓던 궁수들은 온데간데없었고, 알트란 그리고 후레자식 용병단의 대장 역시 보이지 않았다. 성안에 먼저 들어와 있던··· 핸더슨이 우릴 보고는 조용히 읊조렸다.
“도망쳤군··· 성을 나가는 뒷 길이 있다. 알몬스도··· 블랙슈반도 미천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리로 도망쳤을 거야···”
“우선··· 성안에 다른 곳들도 확인해보시죠···”
핸더슨과 우리는 성안 곳곳을 확인해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몬스의 침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어렴풋이 알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놈들이 곧 올 거요··· 이 방법밖에 없소”
“도··· 도망칩시다! 뒤··· 뒷길이 있잖아요! 어린 우리 딸까지 이렇게 할 순 없어요···! 흐윽!”
“나는 알트란의 영주요! 도망··· 가지 않을 겁니다!”
우리 모두 목소리를 듣자마자 침실을 향해 달렸다.
‘알몬스··· 이 미친놈! 무슨 꿍꿍이지···’
쾅!
핸더슨이 문을 박차고 침실 안으로 들이닥쳤다.
“알몬스! 뭐 하는 건가! 자네 가족들은 죄가 없어!”
침실 안의 세 사람은 모두 극약이 담긴 병을 들고 있었다. 아마 알몬스는 자신의 아내와 어린 딸에게도 자결을 권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뭐··· 뭐 하는 거야! 뒈지려면 혼자 뒈질 것이지!”
알몬스는 침실로 들어온 우리의 모습을 확인했다.
“핸더슨··· 이게 다 네놈 때문이다. 나와 내 가족들이 너희와··· 오크들에 치욕을 당할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그는 우리가 그의 아내와 딸에게 몹쓸 짓을 할 것이라 강하게 믿는 듯했다. 그의 표정은 절망적이었다.
“제이나··· 나의 딸··· 미안하다··· 이 방법뿐이구나···”
그의 아내와 어린 딸은 그저 울고 있을 뿐이었다. 핸더슨은 알몬스의 아내와 딸을 향해 뛰쳐나갔다.
“드시면 안 됩니다! 당신들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요!”
알몬스는 핸더슨의 움직임을 보자마자 자신이 들고 있는 극약을 단숨에 들이켰다.
“커억!”
“여··· 여보······ 놈들에게··· 잡히면··· 안돼··· 야··· 약을······”
핸더슨은 알몬스의 아내와 딸이 가진 약병을 낚아챘다. 그들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알몬스의 아내는 핸더슨을 향해 물었다.
“이···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건가요···”
“······ 부인께서는 더는 영주의 아내가 아닙니다.”
핸더슨은 그녀를 짐짓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알몬스가 행한 일들을 부인과 따님께 책임을 물을 순 없지요···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겁니다··· 여느 알트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하고, 땀 흘리며 사셔야 할 겁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군주의 식솔들은 끔찍한 일을 겪기 마련이다. 남겨진 식솔 중 남자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고, 여자들은 더욱 더··· 처참한 처지에 놓인다. 알몬스와 그의 가족들도 그것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죽음 또는 치욕을 걱정했을 알몬스의 아내와 그의 딸이 조금은 안도한 듯 했다.
“고··· 고맙습니다. 핸더슨 경···”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걱정 마시고··· 가시지요.”
알트란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던, 그리고 죽음으로 내몰던, 영주였던 남자는 바닥에서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알몬스··· 언제부터인가 그는 탐욕에 눈이 멀었고, 비참한 최후를 자초했다. 그의 죽음으로 알트란 해방전쟁이 막을 내렸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