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2)

여름이 한창이었기에 자는 동안 춥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박사의 말대로 모기들은 오크들을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놈들은 유일한 인간인 나만 공격했으니까!
‘도대체 몇 방이나 물린 거야···! 어떻게든 빨리 집을 지어야 해!’
한여름의 태양은 일찍부터 떠올라 있었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오크가 벌써 일어나 있었다. 걱정했던 대로 전사들은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로 그저 멀뚱히 눈만 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일어나자마자 유느이트가 내게로 빠르게 접근했다.
“라진··· 고박사가 인간들에게 전사들의··· 집짓기를 의뢰해야 한다더군···”
“맞아··· 빠르게 터를 잡으려면, 인간들의 도움이 필요할 거야!”
나의 대답에도 유느이트는 나를 계속 째려봤다.
‘아!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건 나와 아린 뿐이지!’
그가 왜 나를 노려보고 있었는지 이해했다. 인간들에게 의뢰하려면··· 인간의 말을 구사해야 하니깐. 오크들은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깨어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유느이트! 전사자들의··· 미스릴 소드를 챙겨서··· 우선 영지로 가보자고!”
“그래··· 라진··· 그들이 우릴 도와주리라 생각하나? 네 생각은 어때?”
“글쎄··· 한번 해보자고··· 도움이 필요한 건 우리니깐. 잘 설득해 봐야겠지!”
나와 유느이트가 출발하려 하자 아린과 오트롱 역시 낌새를 채고 따라나섰다. 허겁지겁 쫓아온 오트롱이 나를 보며 말했다.
“라··· 라진! 어떻게··· 어디로 갈 거야?”
“우선··· 알트란 광장으로 가보자고, 아마도 핸더슨이 주민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거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사람이 있겠지!”
◆ ◆
핸더슨이 주민들에게 현재 상황을 아직 얘기하기도 전이지만, 영지 전체에 소문이 퍼져나갔다. 라진과 그가 이끌고 온 오크 전사들이 알몬스를 몰아냈다고.
“자네! 들었나··· 어제의 일은··· 라진이란 녀석이··· 주민들이 징집되어 산맥 토벌에서 개죽음을 당하기 전에 어쩔 수 없이 먼저 나선 것이라 더 구만!”
“에잇! 오크들이 우리가 죽을까 봐··· 그랬다는 게 말이 되나!”
“아니야! 라진은 이제 오크들의 사령관이라더군!”
“뭐··· 뭐? 사령관?”
“그래! 사령관 말일세! 지금은 오크들의 사령관이 되었지만, 라진 또한 알트란 출신이야. 주민들이 의미 없이 산맥에서 죽어 나갈 것에 가장 개탄스러워했다던데!”
“그렇다면··· 진짜 라진과 오크들이 우리를 위해서 온 거라고?”
“나도 들었어! 이제 오크들은 인간들을 전혀 공격하지 않는다더구먼. 외곽의 빈 땅에서 살 거라던데?”
“허허··· 그것참 희한한 일이군. 경비대에서는 뭐라고 하던가?”
“핸더슨의 말도 마찬가지였어! 놈들은 알트란을 위해 대신 피 흘렸다나···”
“아무리 우릴 도왔어도··· 지척에 그들이 사는 건··· 뭔가 좀 찜찜한데···”
군중들이 수군거리는 사이에 핸더슨이 나타나 군중들에게로 다가왔다.
“찜찜해 할 필요 없습니다. 저희 알트란의 경비대는 언제까지나 여러분들을 지킬 것입니다.”
사람들은 핸더슨 등장을 알아차리고 그의 주변으로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핸더슨경!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놈들과 정말로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믿습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경비대원이 그들을 공격하면, 그들 모두를 몰살시킬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위해 피 흘린 자들을 쫓아내지 않을 겁니다.”
“여··· 역시! 든든하군”
“그래! 우리에겐 경비대가 있잖아. 일단 지켜보자고들!”
핸더슨의 자신 있는 태도에 군중들의 동요는 다소 가라앉았다. 핸더슨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외곽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우리에게 해를 입힌다면, 그들을 몰아낼 것을 약속드립니다. 여러분들은 그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지내주시면 됩니다.”
“흐음···”
“엇! 저기!!! 저기 좀 봐!”
핸더슨의 말이 끝나고 주민 중 하나가 광장을 향해 걸어오는 라진 일행을 발견했다.
“라진!! 라진이 오고 있어!”
“듣던 대로 오우거 한 마리도 같이 온다!!”
군중들의 지금의 상황과 라진의 등장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
“오빠! 저기!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여있네!”
“으음··· 라진··· 저긴 것 같군··· 잘할 수 있겠나?”
유느이트는 수많은 인간을 적으로서 상대할 때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화합의 대상으로 인간들을 마주하니 놈은 몹시 긴장한 듯했다.
“얌마! 유느이트 긴장하지마! 어차피 넌 말도 안 할 거잖아. 내게 맡기라고!”
핸더슨을 중심으로 구름같이 모여있던 사람들은 우리가 다가오자 길을 내어주었고, 우리는 핸더슨의 곁으로 이동했다.
“오··· 라진. 어쩐 일로 이리도 일찍···”
“안녕하세요! 라진입니다!”
나의 인사에 사람들은 별다른 답례를 하지 않았다 긴장된 표정으로 나의 말을 기다리는 듯했다.
‘좋아···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우리를 도울 수 있도록···’
“안녕하세요! 아린입니다. 호호”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아린 역시 사람들을 향해 인사했다.
“오··· 저 여자아이 또한··· 오크들의 동료인가···?”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구먼··· 얘야! 너도 라진··· 그리고 오크들과 함께니?”
내가 인사했을 때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고, 그녀를 걱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호호··· 그렇답니다. 오크들은 인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거예요! 제 옆에 있는 사납게 생긴 오크는 유느이트라고, 오크들의 족장이에요!”
그녀는 사람들에게 유느이트의 정체를 밝힌 후 유느이트에게 속삭였다.
“유느이트 손바닥을 펴고 사람들을 향해 들어봐! 그리고 그걸 흔들어!”
“뭐···? 그게 뭐지?”
오크들은 인간들과 다르게 손 인사는 하지 않는다. 인사말은 존재하지만, 손바닥을 펴 보이며 흔드는 행위는 인간들의 전유물이었다.
“아 쫌! 한번 하라고! 나 샤먼이야?”
“난··· 족장이다!”
샤먼과 족장··· 그들은 서로에게 명령할 수 없다. 족장과 샤먼은 부족 내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않는다.
“한 번만~ 한 번만 해줘···”
“유···유느이트!! 해라!! 해줘라!”
오트롱까지 합세해 옥신각신이 이어지려 하자 유느이트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손바닥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흔들었다.
“뭐··· 뭐야! 저 자식 인사하는 건가?”
“하하··· 그런 것 같은데?”
유느이트의 인사에 대한 답례로 영지의 사람들 역시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사람들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알트란에 등장한 오크들로 이곳은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일순간에 따뜻한 분위기로 변해갔다.
오크들은 인간들을 해치지 않는다. 나와 핸더슨이 수 없이 그 이야기해도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아린이 부탁한 유느이트의 손 인사하나가··· 지속되었던 긴장을 날려버렸다.
‘아린··· 이 녀석··· 대단한데···’
“잘했어··· 아린!”
“호호··· 물론 멍청한 오빠는 할 수 없는 일이겠지! 고마운 줄 알아!”
“하핫··· 라··· 라진! 고마운 줄 알아!”
뒤바뀐 분위기에 핸더슨도 흡족해했다. 미소를 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라진··· 이곳까지 온 용건이 있나. 혹시··· 할 말이라도···”
‘지금이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군!’
“네!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같이 살고 오크들이 공격하지 않는다. 뭐 이런 얘기들은 벌써 들으셨을 거고요··· 음··· 저희는···”
긴장된다···!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줄 것인가···!
“영지 북쪽에 택지를 개발하려 합니다!”
조용···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 택지개발? 어쩌라고? 하는 표정들이다.
“영지 북쪽에 목조주택 서른 채를 건설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노동력은 충분합니다만, 건축기술은··· 오크들보다 인간들이 훨씬 뛰어다닐까요···!”
핸더슨은 나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라진··· 설마 너희들 집을 짓는데 우리에게 손을 보태라는 건가?”
“도와주십시오! 응당한 보수를 치를 것입니다.”
“돈은··· 돈은 있나?”
돈 얘기가 나오니 괜히 주눅이 들었다. 우린 분명히 미스릴이라는 밑천이 있지만, 소작농 생활을 했던 나는 돈 구경도 해본 적이 없다.
“아···! 아뇨··· 그··· 아직··· 돈은··· 아직 없긴 한데··· 저희가 가져온···”
내가 어버버··· 하는 것을 모두가 느낀 듯했다. 유느이트는 말을 더듬는 나를 보고 이마에 손을 짚었다! 오트롱 역시 한심한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라···라진··· 처음 붉은 달 산성에서 큰소리치던··· 패기는··· 어디 간 거냐··· 저런···”
수많은 적들 앞에서 오크들을 지휘하던 내가 왜 이리 어버버 했을까··· 분명··· 고박사 그 자식 때문일 것이다. 어젯밤 멍청하단 소리를 하도 들었더니 분명 주눅든 것이다! 보다 못한 아린이 한숨을 한번 쉬더니, 입을 열었다.
“핸더슨 아저씨! 목조주택 하나를 짓는데 돈이 얼마나 드나요?”
“흠··· 석재를 사용하지 않는 목조라면··· 100파운드 정도면 할까?”
핸더슨의 고민을 덜어 주려는 듯, 주민 중 하나가 나섰다.
“뭐··· 소박하게 짓는다면 80파운드 정도면 될 겁니다. 100파운드라면··· 목조주택 하나에 충분한 금액이겠네요.”
가격을 확인한 아린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여기! 미스릴 소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것을 스무 자루나 가지고 있어요. 대륙에서 유통되는 미스릴은 극히 희박한 것을 모두 아실 거예요. 극소수의 미스릴 광산은 모두 폐광되어 지금은 신규생산이 이루어지지 않지요. 이 미스릴 소드의 가격은 얼마 정도 할까요?”
“호오··· 미스릴이라···”
“과연 그 검이 미스릴 소드라면···”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그들은 미스릴을 본 적도 거래해 본 적도 없다. 그만큼 대륙에서 미스릴은 귀한 물건이니까. 가격을 알고 있을 리 없었다. 잠깐의 정적이 있고 난 뒤, 핸더슨은 조용히 말했다.
“라진··· 사실··· 미스릴은 가치를 매기기 힘든 물건이야···”
핸더슨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린은 기세 좋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러면··· 이 미스릴 소드가 100파운드보다는 더 비싸지 않을까요!?”
“흠··· 물론··· 귀한 물건이니 100파운드는 족히 될 것 같긴 한데···”
핸더슨은 말끝을 흐렸다. 그 역시 미스릴을 거래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 순간 군중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서서 외쳤다.
“내··· 내가 살게! 100파운드 정도라면 내가 한 자루 사고 싶은데!”
그는 미스릴 소드의 가치가 100파운드는 훨씬 뛰어넘을 것을 확신하는 듯했다. 그가 구매를 희망하자 다른 사람들도 동요했다.
“그··· 그럼 나도 한 자루··· 살까···?”
아린은 빙긋 웃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향해 다정하게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미스릴 소드를 팔아서 이득을 남길 생각 따윈 없어요···! 목조주택을 서른 채를 지을 건데요··· 건축에 능한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릴게요. 작업이 끝나면··· 이 검들의 소유권을 넘겨드릴게요! 작업하는 동안 여러분들의 안전은··· 물론 여기 핸더슨 경께서 책임지실 거고요!“
”음··· 물론 경비대는 그곳에 있을 겁니다.“
핸더슨은 갑자기 호명된 본인의 이름에 당황했지만, 경비대의 협조를 약속했다.
”그리고! 재료가 되는 나무들은 오크들이 모두 벌목할 것이고, 오크들 역시 함께 작업할 거예요!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오크들이 할 것이니··· 튼튼한 집이 지어지도록 우릴 지휘해줄 분! 지원 부탁드립니다! 호호“
‘인간이 오크들을 지휘해 주택을 만든다···’
몸에 전율이 타올랐다. 그러한 광경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오크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사람들이 흔쾌히 하려 할까··· 분명 꺼림칙해 할 것이다.···
‘누가··· 하려고 할까···’
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 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고는 아린을 향해 외쳤다.
“언제!!!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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