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4)

”그래, 라진! 혹시 생각해놓은 협상 전략이 있니?“
라그모로 이동하는 동안 나와 드루칸은 협상 전략을 구상하기로 했다.
”글쎄요··· 사실 가격을 얼마나 요구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가격을 모르니 전략이고 뭐고 전혀 갈피를 잡을 수 없네요.“
”하핫! 방법을 한번 생각해보자꾸나.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우리조차도 가격을 모른다는 점이구만. 허헛!“
”그렇죠, 가격도 모르니··· 방법은 없는 것 같고, 그들이 적당한 가격을 쳐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나의 말에 드루칸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그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전략을 쥐어 짜내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눈을 번쩍 뜨더니 내게 말했다.
”라진! 이 마차에 가득 실린 미스릴 광석의 무게는 족히 100스톤은 될 거야! 우선 네가 생각하는 적정가격은 얼마인 것 같니. 1스톤에 말이다.“
”음··· 글쎄요. 그래도 실링 단위는 훌쩍 넘을 것 같고, 그래도 1~2파운드쯤은 되지 않을까요?“
나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그 정도로 낮진 않을 게다. 내가 추산하기로는··· 물론 정확하진 않겠지만, 최소한으로 잡아도 5파운드! 많게는 10파운드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어!“
10파운드라니!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알트란의 평범한 가정에서는 한 달을 사는데 10파운드도 쓰지 않는다. 1스톤에 10파운드면, 우리는 1,000파운드를 손에 쥘 수 있다! 엄청난 거금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가격도 비슷할까요?“
”우리의 협상 상대는··· 라그모 영지의 자랑 금빛물결 상단이지. 그곳의 단장인 에드먼은 아주 셈이 빠른 자다. 그는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를 계산해서 단숨에 미스릴 광석의 적정가격을 산출해낼 거야! 그가 몇 파운드로 측정하는지 우리에게 말해주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하핫!“
”아마도··· 최대한 가격을 후려쳐서 큰 이득을 보려 하겠죠.“
”물론, 그렇겠지! 쉽지 않은 협상이 될 거야··· 하지만 말이야! 여전히 가격 결정권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협상 과정에서 놈들을 제대로 요리하면, 놈이 생각하는 적정가격 역시 알아낼 수 있을 거야. 하핫“
”설마요··· 그걸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어요···!“
”흐흐···그러니까 전략이 필요하지··· 병아리 목조르기 전략이다!“
”병··· 병아리 목조르기?! 그런 전략이 있어요?“
드루칸은 상대방이 생각하는 적정가격을 알아내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전략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조금··· 위험할 것 같은데··· 잘 통할까요···?“
”절대! 이 전략은 절대 실패한 적이 없어!“
”한 번도 실패를 안 했다고요?“
”그럼! 아직 한 번도 써본 적이 없거든···!“
드루칸과 협상 전략을 구상하고 나니 어느새 라그모에 도착해있었다. 웨슬린 북부지역 최대 영지인 만큼 곳곳은 사람들로 붐볐다. 영지의 사람들 대부분 건강하고 부유해 보였다.
”알트란 사람들보다 훨씬 부티가 나네요.“
”하핫··· 이곳은 수도 다음으로 부유한 영지이니깐! 이제 다 왔구나!“
영지 안 가장 번화한 곳에 웅장하게 지어진 석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옆 커다란 목조창고는 교역에 쓰이는 온갖 도구와 교역품들이 들어차 있었다.
- 금빛물결 상단 -
”라진! 전략을 잘 숙지했을 거라 믿는다···!“
”네··· 그렇지만, 아저씨가 협상하시면 되니 저는···“
”아니! 협상은 네가 진행한다. 나는 옆에서 거들 뿐이겠지. 최초의 거래는 사장이 직접 협상해야만 해! 그것이 전통이니깐. 하핫!! 기대 하겠네. 라진“!
”좋아요! 들어가시죠!“
마차를 이끌고 건물 앞으로 다가가자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오호··· 마차까지 끌고··· 어떻게 오셨나요?“
약간 긴장이 되었지만, 최대한 여유 있는 척 근엄하게 그에게 대답했다.
”금빛물결의 단장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짓더니 나에게 말했다.
”에드먼 단장님과··· 약속이 되어 있으신가요?“
”하하··· 단장님께 미스릴 광석 한 마차를 끌고 왔다고 전해주시오. 에드먼께서 시간이 안 되신다면, 다른 영지로 바로 출발해야 하니 서둘러 기별해 주십시오.“
미스릴이란 말에 그는 흠칫 놀랐다. 그는 태연한 척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쓰며 다시 말했다.
”미스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확인해 봐도 좋습니다. 단, 우리 모두 바쁜 사람들이니 서두르길 부탁드리오.“
그는 마차의 짐칸으로 종종 걸어가더니 미스릴 광석을 들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가 미스릴을 알아볼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에 전혀 본 적이 없는 물건은 확실할 것이다.
”자···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태연한 척하는 그가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광석을 내려놓고는 빠른 걸음으로 건물 내부로 올라갔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는 다시 건물 밖으로 나와 우리에게 말했다.
”마··· 마침 에드먼 단장님께서 시간이 되신다네요. 하하!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제품 확인을 위해서 제가 광석 하나를 챙겨 따라 올라가겠습니다.“
그의 안내를 받아 건물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금빛물결이라는 상단 이름답게 건물 내부 곳곳은 금빛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거 진짜 금인가···“
”쉬잇!“
드루칸이 나에게 눈치를 주었다. 아무래도 시골뜨기티를 내는 것은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건물 안 응접실에 도착하니 에드먼은 자리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금빛 장식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여유로운 태도로 우리를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금빛물결의 에드먼입니다. 앉으시지요!“
”안녕하세요! 알트란에서 온 라진입니다. 이 쪽은 저와 동업을 하시는 드루칸이고요“
”처음 뵙겠습니다. 단장님, 드루칸입니다. 여기 모두 바쁜 사람들이 모였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지요. 사장인 라진이··· 저희가 온 용건에 대해 말씀드릴 겁니다···“
”음···! 저희는 금빛물결과 교역을 트려 합니다. 저희가 공급할 제품은 미스릴입니다. 혹시나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면, 바로 말씀해주십시오. 다른 영지로 가보겠습니다.“
병아리 목조르기 전략의 첫걸음! ‘너희 말고도 살 사람 많아’를 시전했다. 그는 미스릴에 관심이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우리가 미스릴의 유일한 공급원임을 한 번 더 인지할 것이다.
”하하··· 많이 급하신가 봅니다. 물론 미스릴이라면 관심이 있지요.“
상단의 직원이 챙겨온 광석을 에드먼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에드먼은 그것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분명··· 놀랐을 텐데. 대단한 침착함이군’
”음··· 확실히 미스릴이군요. 좋습니다! 조건에 대해 논의해 보시죠. 가지고 오신 미스릴의 양··· 그리고 원하시는 가격을 알려주십시오.“
내가 제시한 가격이 그가 생각하는 가격보다 낮아도··· 그는 가격을 더 낮추려 할 것이다. 그는 장사꾼이니까!
”마차에 실린 양은 100스톤 정도 될 것입니다. 직원들을 시켜 무게를 재보아도 좋습니다. 가격의 경우 저희는 스톤 당 10파운드를 요구합니다. 가치보다 현저히 저렴한 가격이니 에드먼 님께서도 큰 이득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반응을 살폈다.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입을 열었다.
”하아··· 흐음! 물론 미스릴은 귀중한 자원입니다. 하지만··· 10파운드라, 제가 이것들을 10파운드에 매입해서 더 큰 이문을 남길지는 큰 의문이 드는 가격입니다. 저는···“
그는 꽤 오랫동안 뜸을 들이더니 작게 입을 열었다.
”저는··· 스톤 당 4파운드를 제안드립니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닙니다. 신중히 판단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분명, 10파운드도 그에게 좋은 조건일 것이다. 드루칸이 추산한 적정가격 범위의 중간 정도니깐. 하지만 그 역시 장사꾼이다. 협상을 통해 이득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 그는 10 파운드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제안을 거절했으니 이제 병아리의 목을 조를 차례다. 목을 쥐어짜다 보면 그가 생각하는 적정가격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 실망스럽군요. 미스릴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좋은 제안 드렸으나, 그 제안은 철회토록 하겠습니다. 다시 스톤 당 11파운드의 금액을 제안 드립니다.“
에드먼의 표정이 찰나의 순간 일그러졌다. 그는 금세 태연한 표정을 다시 지어 보였지만,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하하··· 재미있군요. 라진 님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거래는 우리에게도 큰 도박입니다. 한 번에 수백 파운드의 금액을 투자해야 하는 데다, 미스릴의 가공과 판매 모두 우리의 몫입니다. 얼마만큼의 이득이 날지도 모르고, 자칫 일이 잘못되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어요.“
물론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거래가 완료되면 우린 큰돈을 받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그다음 자질구레한 일들은 모두 금빛물결의 몫이다.
‘묘하게 설득된다···! 우리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나···?”
에드먼은 고개를 숙이고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큰 결심을 한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의··· 위험부담도 고려해주십시오. 흐읍! 좋습니다. 스톤 당 6파운드! 이것이 저희의 마지막입니다.”
6파운드···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이번 거래로 우리는 600파운드나 챙길 수 있으니까, 정착자금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에드먼의 말에는 확실히 일리가 있다. 그가 떠안는 위험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드루칸··· 드루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쪽 눈썹을 힘껏 치켜들었다.
’더···!? 그래··· 좀 더 가보자!‘
“물론··· 금빛물결이 부담해야 할 위험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제안을 하겠습니다. 12파운드. 스톤 당 12파운드입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아쉬워지네요. 저희는 미스릴의 가치를 모르는 이와는 거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 에드먼은 더 흥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쥐어짜 내고 짜내는 듯했다. 12파운드로 얼마만큼의 이득을 창출할 수 있는지 치열하게 계산하고 계산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12파운드!”
그는 12파운드로도 충분히 이득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에드먼은 그제야 잠시 미소를 지었다.
“그럼, 1,200파운드네요. 돈을 지불해 주십시오.”
“라진님··· 애석하게도 지금 우리가 보유한 현금은 800파운드 정도입니다. 400파운드는 다음번 거래 시 준비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오늘의 거래는 그에게 있어 예정되지 않은 일이었다. 금빛물결로서도 1,200 파운드의 현금은 미리 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음··· 그렇다면‘
“400파운드는··· 현물로 받겠습니다. 라그모 영지에 있는 돼지, 닭, 빵 그리고 맥주를 잔뜩 준비해주세요. 마차 몇 대라도 상관없습니다. 400파운드 대신 우린 그것을 가지고 돌아가겠습니다.”
“호오···! 좋습니다! 상단의 인력을 총동원하여 최대한 빠르게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에드먼은 당황하기보다 오히려 크게 기뻐했다. 우리에게 제공하는 현물에도 그는 이득을 붙일 테니까.
“상단에 있는 마차를 모두 소집해! 라그모에 있는 맥주, 가축, 빵을 깡그리 쓸어오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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