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 웨이브 (3)

‘뭐? 골렘전쟁? 골렘이 쳐들어 오기라도 했단건가? 그리고 다짜고짜 전쟁에 참전하라니···?’
모두 티칸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린에게 티칸의 말을 전해 들은 유느이트와 오트롱 역시 눈만 꿈뻑이고 있었다. 우리 모두 대답이 없자 티칸은 조바심이 난 듯 우리를 윽박질렀다.
“왜 대답이 없나! 국왕의 명이다! 국왕의 명령은 거부할 수 없어. 그것 정도는 시골에서도 모두 알고 있겠지! 명령에 대한 거부는 곧 반역이란 말이다!”
잠깐··· 잠깐만 생각을 정리해보자. 그러니까, 수도에서는 우리를 공격하기는커녕 도움을 구하는 상황인 건가?
내가 생각을 정리하느라 뜸을 들이자 핸더슨이 나섰다.
“장군님. 그렇다면, 웨슬린의 수도에서는 오크들을 알트란에서 축출할 계획이 아닌 것 같군요. 오히려 그들에게 전쟁에 참전해달라 요청하는 상황··· 그렇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핸더슨이 제대로 정리해 주었다. 환영할만한 사실은 수도는 우리를 적으로 두고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렇다. 물론 국왕의 명을 받든다면 말이지.”
‘좋아··· 우선 수도에서 군대를 보낼 일은 없겠군!’
“그렇다면 장군님. 저희가 인간들과 함께 알트란에서 살아가는 것을 왕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겠네요!?”
나의 물음에 티칸은 빙긋이 웃어 보였다.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는 듯이.
“그렇다. 신상필벌! 전하께서 요구한 몇 가지 사항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말이지.”
“좋아요. 전하의 명을 알려주십시오.”
“첫 번째! 최대한 빨리 준비를 마쳐, 전사들을 이끌고 열흘 안으로 카르넬 영지로 합류할 것. 두 번째, 골렘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그들의 근거지를 궤멸시킬 것”
간단하다.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더 나아가 적들의 근거지를 공격해 승리로 이끄는 것. 하지만, 우린 적의 규모를 알지 못한다. 그들의 전투능력 또한. 게다가···
‘골렘들이 공격해 왔다고?’
“간단하고 좋네요. 그런데 골렘들이 왜··· 카르넬 영지를 공격하는 거죠?”
나의 물음에 티칸은 인상을 찌푸렸다.
“음··· 그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들의 본거지를 성공적으로 공략한다면 알아낼 수도 있겠지.”
그가 인상을 찌푸렸던 이유는 나의 질문이 예의에 어긋나서가 아니었다. 수도에서도 골렘들이 공격한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무력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좋아요. 그런데 왜 하필 우리입니까. 병사들이라면 다른 영지에 더 많을 겁니다.”
“이 돌··· 골렘의 잔해 속에서 내가 가지고 왔지. 그들은··· 인간의 힘으로 격파할 수 없어. 돌이 파괴되는 임계점의 충격을 주기 위해서는 인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오크나 오우거의 완력처럼 말이죠?”
“그렇다··· 그래서 알트란의 소식을 듣고 전사들을 네가 통솔할 수 있는지 확인하러 온 것이지.”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웨슬린은 크나큰 위기에 봉착했을 것이다. 인간의 완력으로 골렘들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면, 그들을 막을 방법이 있기나 할까?
“그럼··· 인간들은 골렘들을 어떻게 상대하고 있죠?”
“골렘은··· 인간들 가운데서도 최상위 수준의 완력을 가지고 검술에 통달한 자라면 혼신의 검격으로 약간의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일반적인 병사는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어. 인간이 그들 앞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개죽음이야. 유일하게 그들을 파괴할 수 있는 우리의 수단은··· 발리스타다.”
“바··· 발리스타요?”
발리스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건 또 어떤 무기 이길래 골렘을 파괴할 수 있단 말인가? 의아한 표정으로 핸더슨을 쳐다보았다.
“음! 발리스타란. 쉽게 말해서 지상에 또는 성벽 위에 설치된 거대한 석궁이란다. 공성 무기지. 작동원리는 석궁과 유사해. 하지만 인간의 크기만 한 화살 또는 창을 투사하기 때문에 그 파괴력은 성벽을 뚫고 들어갈 정도지. 인간이 만든 무기 중에 가장 큰 파괴력을 가진 무기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지금 골렘들은 막아내는 방법은 성에서 농성하면서··· 발리스타를 쏘아대는 것이네요?”
“그렇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놈들을 파괴할 수 있는 건 발리스타뿐이었지. 하지만··· 인간을 초월한 완력이라면 놈들을 파괴할 수 있을 거야.”
“그럼··· 우리가 놈들을 막아내고 그 근거지만 소탕하면···”
“전하께선 널 알트란의 영주로 임명하실 거야. 네가 싫다면, 네가 원하는 다른 사람도 상관없지.”
자신 있었다. 티칸의 설명에 따르면, 웨슬린이 골렘에 고전하는 까닭은 놈들의 무시무시한 방어력 때문이다. 놈들이 지성과 강력한 공격력까지 겸비했다면, 카르넬 영지는 벌써 함락되었을 것이다.
‘그깟 돌 따위···!’
유느이트와 오트롱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 역시 국왕이 약속한 우리의 알트란 이주를 전해 들었기에 들떠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골렘 전쟁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좋습니다. 열흘 안으로 카르넬로 합류하겠습니다.”
“좋아··· 나는 먼저 카르넬로 출발하도록 하지. 서둘러 주게···”
티칸의 일행은 주저 없이 카르넬로 출발했다. 티칸이 떠나자 유느이트는 택지가 떠나갈 듯이 웃었다.
“크크크큭··· 인간 녀석들이 우리 전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군.”
“음··· 그래 맞아. 인간으로선 그 돌덩이들을 상대하기 역부족이었을 거야”
“하핫··· 라진! 간만에··· 재밌는 일이 되겠어. 흐···흐아! 붉은 달 최강전사의 피가 끓는다!”
“오빠··· 참 운이 좋단 말이야. 이런 기회가 오다니 말이야. 하핫!”
“유느이트, 언제 출발할까? 사실 준비랄 것도 없잖아!”
왕국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은 큰 위기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전쟁은 기회나 다름없다. 모두 들떠서 전쟁영웅이 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을 때, 핸더슨이 다소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우선··· 선발대를 보내 상황을 살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만에 하나 이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요? 글쎄요··· 제가 보기엔 상당히 다급해 보이던데요···?”
“음··· 카르넬까지 말을 바꿔가며 밤낮없이 움직인다면, 힘들겠지만··· 사흘 안으로 도착해. 선발대가 현지 상황을 확인한 뒤에 전사들을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군.”
“뭘 그렇게까지··· 그냥 출정하시죠?”
“라진··· 사령관은 나다. 잊었는가? 대신 선발대에는 널 포함해주지.”
아차! 핸더슨은 사령관이다. 유느이트가 크게 반대하지 않는 한 전사들의 지휘권은 기본적으로 핸더슨이 가지고 있다.
“음··· 제가 걱정하는 것은 시간이에요. 카르넬에 도착해서 아무 문제 없다면, 다시 알트란까지 돌아와야 하잖아요··· 카르넬에 갔다, 다시 알트란 또다시 카르넬··· 열흘 안에는 무리에요···!”
“라진··· 너 바보냐?”
“네···?”
핸더슨이 나를 바보냐고 묻자마자, 아린과 오트롱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들은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린은 곧바로 핸더슨을 흉내 냈다.
“하핫! 라진···! 바보냐!? 오빠 바보야?”
“히히··· 라진··· 너 정말 구제 불능! 바보냐!?”
“바보는 아니긴 한데··· 무슨 방법이 있나요···?”
“봉화··· 봉화를 올리면 되지. 선발대가 카르넬에 도착하고, 특이사항이 없다면 바로 봉화를 올린다. 그러면 나와 유느이트가 전사들을 이끌고 카르넬로 가겠네.”
“오빠? 봉화 몰라? 봉화! 그 산에서 불 피워 가지고 소식 전하는 그거 말이야!”
“히히··· 한 가지 확실한 건 라진은 멍청하다! 헤헷”
아린과 오트롱이 봉화를 염두도 해두고 있었을 리 없었겠지만, 그들은 신이 나서 나를 또 놀려댔다.
“음··· 봉화를 이용한다면, 시간 안에 전사들이 도착할 수 있겠네요.”
“사울··· 알트란과 카르넬 사이에 있는 모든 봉화대에 경비대원의 파견을 부탁해도 되겠나···?”
“알겠습니다. 사령관님의 부탁이라면 당연히 저희도 돕겠습니다.”
“고맙네. 사울”
사울이 핸더슨의 부탁을 수락하자 핸더슨은 유느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느이트··· 라진, 오트롱, 아린 선발대. 봉화. 너, 나, 전사들 출정.”
핸더슨은 오크들의 언어로 유느이트에게 본인의 계획을 전달했다. 몇 가지 단어만을 사용했지만, 또박또박 오크들의 말을 구사했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계획을 효과적으로 전달해낸 듯 보였다. 핸더슨이 오크들의 말을 사용한 것에 유느이트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 사령관의 뜻대로 하시게. 다만, 나도 선발대에 합류하고 싶은데···”
유느이트는 전사 중의 전사다. 전투능력을 발휘할 기회에 직접 나서고 싶은 표정이 역력했다.
“역시 유느이트! 솔선수범하는 모습 보기 좋아!”
하지만, 아린이 유느이트의 뜻을 핸더슨에게 전달하자 핸더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안돼. 유느이트 넌 족장이야. 함정의 우려로 선발대를 보내는데 선발대에 족장을 포함할 순 없어. 그건 바보짓이야!”
유느이트가 함께 가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누군가에게 화풀이할 기회가 왔다!
“유느이트! 너 바보냐!”
아린과 오트롱이 키득댔다.
“함정 때문에 선발대를 보내는데, 족장인 네가 간다고 하면 어떡해! 생각을 좀 해!”
나의 놀림을 들은 유느이트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당연히 맞는 말로 호통을 치니 뭐라 맞받아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 아린과 오트롱이 신나서 나를 놀려댔는지 이해가 갔다.
“크흠··· 그런가··· 흠흠!”
유느이트는 아쉬운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라진, 사흘 안에 반드시 카르넬에 도착해야 하네. 전사들을 움직이는 것은 더 시간이 걸릴 거야 최소 닷새는 잡아야 할 것이야. 네가 일찍 도착해야 전사들을 이동하는 데 무리가 없어져.”
“사흘이면 충분해요. 만약에 아린의 회복마법이 말에게도 통한다면, 이틀 꼬박 달려가면 가능한 거리일 겁니다.”
“좋아··· 그럼 준비하도록 해. 오트롱과 아린이 역시 선발대에 합류하는 것으로 하지.”
아린과 오트롱은 이번 선발대가 새로운 모험이 될 것이란 확신하는 듯 들떠 보였다.
“오트롱! 멋진 여행이 될 거야! 재밌겠다. 그치!?”
“헤헷··· 좋아 기대된당. 흐헷!”
“야··· 쉽지 않은 일정이야. 우린 밤낮없이 달려가야 한다고. 마차 짐칸에 잠깐 눈을 붙일 순 있어도. 누군가는 항상 깨어있어야 해.”
“아저씨! 언제 출발하면 돼!?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하면 되겠지!?”
‘크윽···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 거냐. 아린!’
아린의 물음에 핸더슨은 단호히 대답했다.
“아니··· 지금 당장 출발하도록 해. 꾸물거릴 여유 따윈 없으니까.”
“아니··· 그래도 먼 여정이 될 건데 식량도 좀 챙기고 충분히 준비하고···”
아린은 나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지금 바로 출발이란 말에 더욱 신이 나 외쳤다.
“꺄악! 오트롱! 사령관 아저씨가 지금 바로 출발하래!”
“좋아! 좋아 좋아! 가자! 마차는 어디 있지!?”
“아니, 우리 준비를 좀 하고 가자니깐”
“뭐 며칠이나 간다고! 샤먼의 명령이다! 라진은 지금 바로 마차를 구해왓!”
마차를 지금 당장 내가 어디서 구하냐고··· 라고 걱정할 새도 없이 핸더슨은 사울에게 다시 말했다.
“사울··· 미안하지만, 쌍두마차를 준비해주게··· 한시가 급하니 지금 당장 부탁해도 되겠나···?”
핸더슨의 말을 들은 사울은 근처에 있는 대원에게 손짓했다.
“지금 바로 달려가서 쌍두마차를 구해오게! 최대한 빨리!”
뭔가 상당히 급박하게 일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골렘 전쟁은 우리에게 큰 기회가 될 것 역시 사실이니까··· 지체할 이유도 없다.
“하··· 좋아! 바로 출발이다.! 웨슬린을 구하러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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