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 웨이브 (9)

해자를 건널 다리가 만들어졌다. 골렘들이 해자로 접근할 수 없도록 최대한 성에서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치를 생각이다. 내 발목이 베어 물리고··· 정강이뼈가 박살 났을 때의 고통이 떠오르면서··· 왠지 모를 복수심이 생겼다. 피곤하고 지친 몸이었지만, 골렘들을 박살 내는 데에 대단한 의욕이 솟아올랐다.
“금방 다녀올게요. 그리고 잊지 말고 봉화를 올려주세요. 며칠 내로··· 우리 전사들이 이곳에 당도할 수 있을 겁니다!”
“음··· 그럼 몸조심하시오.”
해자를 건너면서 다리 근처를 아웅 거리는 골렘 하나의 팔뚝을 미스릴 소드로 힘껏 베어보았다.
끼기긱! 쓰커엉!
‘음··· 확실히 힘을 제법 써야 하는군!’
일반적인 전투에서는 무리하게 검을 강하게 휘두르는 것 보다, 적의 움직임을 읽고 빈틈을 파악해 검의 움직임 궤적을 이상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검술이니까. 하지만, 골렘들과의 전투는 아주 기초적인 검술만을 필요로 한다. 검술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검을 휘두르는 힘, 즉 완력이니까.
해자를 완전히 건너오자, 골렘들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놈들을 기다릴 이유는 없다. 전투의 목적은 적의 섬멸과 동시에 그들이 해자 근처에도 닿지 않게 하는 것이니까.
타다닷!
놈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해자에서 다쳤던 부상들은 거의 치유되어서 움직이는 데 큰 부담은 없었다. 다만, 누적된 피로로 인해 나 역시도 휴식이 시급했다.
‘빠르게 처리하고 자러 가야지!’
가장 선두에선 골렘은 내가 다가오자, 주먹을 힘껏 내질렀다. 묵직하고 강력한 것이 느껴졌지만 이런 엉성한 공격에 당할래야 당할 수 없다. 놈의 주먹은 횡으로 살짝 피한 뒤 가슴팍을 향해 미스릴 소드를 힘껏 후려갈겨 버렸다.
끼기긱기긱기긱!! 쯔어어억!
쿵!!!
단단하고 두꺼운 몸체로 놈을 단박에 두 동강 낼 순 없었지만, 가슴팍을 깊숙이 찢어 냈기 때문에 골렘은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선두에 섰던 골렘이 쓰러뜨리니 바로 뒤에 여러 마리의 골렘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모두 강력한 주먹을 내지르기 위해 움직이는 와중에 팔을 치켜들고 있었다.
‘이번엔 주먹을 내지르기도 전에 박살 내주마!’
골렘과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 졌을 때,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려 골렘 앞으로 달려들었다. 골렘의 공격 사정권에 들기 직전에 폭발적인 속도로 놈 앞으로 접근했기에, 놈은 미쳐 주먹을 내지르기도 전이었다. 미스릴 소드를 그대로 놈의 가슴팍에 박아넣었다.
끼긱!! 쿵!
‘확실히 베는 것보다는, 찌르는 것이 힘을 아낄 수 있겠어.’
놈의 약점은 가슴팍 중앙이다. 베기 공격으로도 나의 검은 그곳을 벨 수 있지만, 약점이 아닌 부분, 즉 많은 불필요한 부분에도 나의 힘이 소진된다. 하지만, 찌르기라면 정확히 놈들의 약점만을 공략할 수 있다. 적의 숫자는 50이다. 최대한 빠르고 체력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될 수 있으면 찌르기 공격으로 놈들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제 겨우 둘 처리했나··· 조금 더 속도를 올려볼까!’
갈 길이 멀었다. 나는 골레 무리 속으로 뛰쳐들어갔다. 쉼 없이 빠르게 움직이며 적의 공격을 피해냈고, 공격반경에 들어오는 족족 가슴팍에 검을 박아 넣었다.
쿵! 쿠궁! 쿵 쿵! 쿠웅!!
거대한 돌덩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쉼 없이 울려 퍼졌다. 골렘의 움직임은 느렸고 공격은 단조로웠다. 골렘을 쓰러뜨리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전투보다는 힘을 훨씬 더 써야 했다.
‘이거 꽤 힘드네···’
처음 한두 마리를 쓰러뜨릴 때까지는 몰랐지만, 놈들을 쓰러뜨리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손아귀의 힘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놈들이 공격이 단조로웠을지라도 수많은 놈이 쉴 새 없이 주먹을 뻗었고, 무시할 수 없는 파괴력을 지녔기에 전투 내내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즉, 체력적으로 매우 가혹한 전투였다.
“으아아!! 왜 이렇게 많어! 좀 빨리 뒈져라 뒈져!!”
끼긱! 쿵! 끼기기긱! 쿵!
몇 마리나 처치했을까··· 놈들의 숫자를 살펴보았다. 적어도 반 이상은 처리한 것 같았지만··· 놈들을 처리하는 속도보다 나의 체력이 고갈되는 속도가 더 빠를까 걱정이 되었다.
‘이번 공격만 방어하면··· 다음 공격은 내일 정오쯤 될 거니깐! 그땐 오트롱에게 맡겨야지 히히’
이런 전투라면 확실히 오트롱이 훨씬 더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오트롱은 오크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졌고, 골렘보다 체격도 훨씬 크다. 그의 거대한 미스릴 대검을 몇 번 휙휙 휘두르면 놈들은 종잇장처럼 잘려나갈 것이 분명하다.
끼기기기기기기기···
골렘의 가슴팍을 미스릴 소드로 베었을 때, 나의 검은 놈의 약점까지 뚫어내지 못한 듯했다. 돌이 갈려 나가는 소리는 들렸지만, 약점을 완전히 파괴하지 못하자 골렘은 쓰러지지 않았고 나에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퍼억!! 빠각!
“크헉!!!”
털썩!
놈의 주먹이 나의 옆구리에 꽂히자, 갈비뼈가 부러진 듯했고, 그 충격으로 인해 나는 멀찍이 나뒹굴어 버렸다.
‘젠장··· 팔에 힘이 많이 빠졌나···’
지속된 전투로 손아귀와 팔의 힘이 점차 떨어졌고, 집중력도 다소 흐트러졌을 것이다. 일격에 놈들을 쓰러뜨려야만 반격당하지 않는데 조금 전 나의 공격은 떨어진 완력으로 인해 놈의 약점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갈비뼈가 부러졌지만, 뼈의 위치가 어긋나진 않았기 때문에 전투는 이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집중해야 한다. 이제 몇 마리 남지 않았다고! 반드시 일격에 쓰러뜨려야 해!’
다시 심기일전하여 놈들을 쓰러뜨려 나갔다.
베기! 찌르기! 찌르기! 베기! 찌르기!
끼긱!! 쿵!
끼기기긱!! 쿵!
“이제 그만 좀 쉬자 나도!! 뒈져버려!!”
마지막 남은 골렘을 향해 미스릴 소드를 힘차게 박아 넣었다.
끼이이이기긱!! 쿠우우우웅!!!!!
털썩!
마지막 골렘이 쓰러짐과 동시에 나 역시 바닥에 뻗어 버렸다.
“헥···헥헥!! 헥헥···”
이 짓거리···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아!!!
이놈들 다 처리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모르긴 몰라도 꽤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처음에는 빠르게 놈들을 처리했지만, 점점 체력이 떨어지면서 적을 쓰러뜨리는 속도도 크게 떨어졌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을 막아냈으니 다음 공격, 즉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기쁨의 소리를 내질렀다.
“다 잡았다!! 이제 나도 잘 거야!!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아주 쿨쿨 잘 거라고!!! 하하핫!!”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곳 카르넬의 영웅이 되어 이제 성으로 돌아가면 되니까. 뒤돌아 성을 바라보니 성벽 위에 있어야 할 병사들은 대부분 휴식을 취하러 돌아갔고 경계근무를 서는 최소 인원과 대장만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다시 해자를 건너 성안으로 이동했다. 병사들의 대장과 아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린은 핀잔을 주듯 내게 말했다.
“흥! 꽤 오래 걸렸네. 자신만만하게 나가더니 말이야?”
“아린! 혼자서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그보다 좀 자고 있지 왜 기다렸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벌써 자러 갔겠지! 바보야!”
대장은 나와 아린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본 후 입을 열었다.
“굉장하군··· 라진, 카르넬이 자네에게 큰 빚을 졌어. 자네가 나가 있던 동안 티칸 장군께서 돌아왔어. 자초지종을 다 설명 들었다네.”
“오호, 그는··· 티칸 장군은 어디에 있죠?”
“아! 밤이 깊었으니, 숙소로 가셨지. 내일이면 뵐 수 있을 걸세.”
치사하게 전투는 우리에게 맡겨두고 잠이나 퍼질러 잤다는 건가! 뭐··· 그가 전투에 도움 될 것도 없으니 상관은 없지만,
“우선 저도 좀··· 자러 가볼까 합니다. 여독이 풀리지 않은 채 전투를 좀 했더니 퍽 피곤하네요. 하하”
“그러게나··· 푹 쉬고··· 내일 정오도 부탁함세!”
“하하··· 네, 걱정하지 마세요. 놈들을 막아내면서 체력을 좀 충전하고 놈들의 본거지까지 싹 털어버리겠습니다.”
“좋아! 아주 든든해!”
대장은 매우 흡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피곤에 찌들어 있을 테지만, 카르넬을 지킬 수 있다는 희망에 미소를 되찾았다.
“그보다 아린! 오트롱 상태는 어때?”
“음··· 잘자고 있어. 얼굴은 퀭한데 기분 나쁘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단 말이야.”
“하하··· 그래, 얼른 우리도 돌아가자!”
대장과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몇 발자국이나 걸었을까···
성벽 위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병사 하나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외쳤다.
“자! 잠시만요! 어어··· 이··· 이상한데··· 이러면 안 되는데······”
“무슨 일이야? 뭐 수상한 것이라도 보았는가!?”
성벽 위의 병사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성 밖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고, 눈을 비비고 또다시 성 밖을 확인했다.
“뭐야!? 뭘 본 거야! 무슨 일 있나! 어서 대답하게!”
병사는 몇 차례 확인 끝에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의 표정은 절망적이었다.
“오··· 옵니다!! 놈들이··· 놈들이 또 몰려오고 있어요!!”
“뭐야!? 고··· 골렘 말하는 것이냐!?”
“화··· 확실합니다! 놈들이 몰려옵니다!”
대장 역시 망연자실했다. 못 들은 척 숙소까지 빠르게 걸어갈까 하는 고민을 아주 잠깐 했지만···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대장님! 어떻게 된 겁니까. 분명히··· 하루 두 번 정오와 자정에 놈들이 몰려온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무··· 물론 그랬지! 지금까지··· 한 달 동안 똑같이 몰려왔다고. 이럴 수가··· 이럴 리가 없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 달 동안이나 골렘이 들이닥치는 주기는 정확히 유지되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우리가 도착한 날··· 추가적인 공격이 밀려왔다.
“혹시 그렇다면··· 예정된 다음 공격··· 정오 전까지 몇 번의 공격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상태론 아무것도 알 수 없지··· 지금의 공격도 예측할 수 없던 것이니까”
하루 두 번 몰려오던 골렘의 물결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골렘들의 물결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크게 올지 이제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하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장은 나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나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들의 힘으로 카르넬을 지킬 수 없다는 무력감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또 한 번 놈들을 혼자서 다 쓰러뜨릴 수 있을까···’
체력적인 부담으로 놈들을 상대하는 것이 약간 걱정되었다. 나는 아린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아린을 바라보며 나의 미스릴 소드를 까딱까딱 가리켰다.
“아린··· 혹시···”
“아! 소환의 매개체라면 나도 있어!”
그녀는 그녀 손목에 채워진 팔찌를 보여주었다. 고급스러운 은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팔찌는 분명 미스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고박사가··· 필요할 거라며 만들어줬지롱!”
역시 필요할 때마다 동료의 무기를 빌릴 순 없을 테니, 그녀에게 꼭 필요한 물건일 것이다.
“헤헤··· 아린, 그렇다면··· 이번 공격은··· 네 뱀으로 한번···”
“아! 오빠! 무슨 내 마력이 샘솟아 넘치는 줄 알아? 하루에 한 번도 힘들어! 그리고 오빠를 구해준다고 특별하게 더 강하게 만들어 냈다고. 무리야 무리!”
그녀는 나의 계획을 단칼에 거절했다. 아린은 헐떡이는 내가 걱정되지도 않는지 나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오빠 뭐해? 안 나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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